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13)
212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 Re (6)
– 이은솔
페로 가인의 설명을 듣던 할아버님이 잠시 고민하다가 정리하기 시작했다.
“네 말을 듣고 주의 목적이 뭔지는 알았다. 그 목적을 위해 104호에서 놈은 일부러 아우렐리아에게 제대로 도움을 주지 않아서 너희에게 패배하게 했겠지?”
“그렇지요.”
“그러면 그놈은 왜 개입한 거냐?”
“네?”
“너희 말대로면 아우렐리아는 어차피 너희에게 밀려서 패배 직전이었다며? ‘신성한 태양’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너희 손에 죽고 방이 해결됐겠지. 우리는 이미 신성한 태양을 얻어서 방 밖으로 나갔을 테고.”
“…”
… 듣고 보니 그렇다.
주의 목적이 방의 해결이라면, 그는 애초에 무슨 성물을 보내고 가인이의 몸을 빼앗고 강림하는 등의 요란스러운 일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아우렐리아는 어차피 우리에게 패배하기 직전이었으니까! 가만히 기다리면 목적을 이뤘을 테다.
더 생각해보니 또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애초에 ‘정의’에 관한 정보는 왜 줬지? 그 정보가 아니었다면 엘레나의 정의에 힘입어 우리는 훨씬 빨리 아우렐리아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잠시 내 말을 들어봐라. 내 생각엔 너희가 주의 압도적인 힘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꽤 쉬운 부분을 놓친 것 같다는 말이지. 본래 바둑도 옆에서 훈수 두는 사람 눈에는 뻔히 보이는 수가 직접 두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법이다.”
“묘수가 떠오르셨나요?”
“너희 말을 듣다가 일종의 가설을 세웠다. 답답하지 않게 결론부터 말해주마. 나는 주 그놈의 승리 조건이 단순한 방의 해결이 아니라 ‘한가인의 유산 획득’이라고 본다.”
“반드시 제가 유산을 얻어야만 주의 목적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희가 의문을 가지는 꽤 많은 부분이 쉽게 이해가 간다. 왜 개입했을까? 가만 내버려 두면 유산을 가인이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지. 당시 아우렐리아와의 싸움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힘을 모아서 진행했다고 했지?”
“맞습니다. 모두에게 해결 기여도가 인정될 상황이었죠. 그 상황에서 해결했다면 선택의 시간이 와서 우리끼리 유산을 얻을 사람을 결정하도록 했겠네요. 아마 저는 유산을 포기했을 겁니다. 제가 또 얻으면 2층의 남은 방들에서 봉인 당할 테니까.”
“그러니까 주는 개입한 게다. 아우렐리아를 죽인 후 나머지 참가자까지 싹 죽여서 유산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가인이 너만 남겨야 했으니까. 그 후에 호텔고에 남은 사교도 잔당을 처치해서 방을 해결했겠지.”
“아우렐리아에게 정의에 관한 정보를 준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보니 의도를 알겠네요. 엘레나가 정의를 발동해서 아우렐리아를 1-1로 이겨버리면 엘레나에게 너무 많은 기여도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군요.”
“맞다. 기여도 차이가 너무 크면 선택의 시간도 없이 엘레나가 바로 유산을 얻을 수 있지. 그러니까 정의는 봉인 당해야만 했다. 또, 두 번째 목적도 있었으리라 본다. 전투의 변수로 인해 너희가 패배할 가능성이지.”
이쯤 되자 나도 슬슬 감이 오기 시작했다.
“싸움이란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니까 주는 우리가 질 가능성도 염두에 뒀군요!”
“너희가 전력에 비해 너무 못 싸워서 패배할 경우, 아우렐리아가 너희를 죽이지 못하게 하려고 계시를 내린 거지.”
할아버지의 가설을 들은 후, 페로 가인은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주의 목적을 위해서 반드시 제가 유산을 얻어야 하는 이유, 강림과 관련이 있을까요?”
“필시 그러리라 본다. 주가 유산의 형태로 외부로 나가서 뭘 하려고 할까? 모를 일이지만, 그가 자기 멋대로 활동하기 위해선 유산의 소유자를 본인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위한 포석이 아마도 네가 얻은 강림이겠지.”
할아버지의 가설을 요약하면 간단하다. 주의 승리를 위해선 다른 사람이 유산을 얻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가인이가 유산을 얻어야 한다는 것!
가설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아우렐리아와의 대결은 어차피 우리의 승리로 향하는 중이었는데 주가 개입했다. 단순히 방의 해결만이 목적이라면 가만 내버려 뒀으면 될 문제다.
둘째, 엘레나의 정의를 카운터치는 정보를 아우렐리아에게 전달했다. 이를 통해 엘레나가 단독으로 아우렐리아를 처단해 압도적인 기여도를 쌓을 가능성을 차단하고, 혹시나 아우렐리아가 이긴다 해도 아우렐리아가 우리를 몰살하지 못하도록 했다.
셋째, 강림의 존재 자체가 주의 계획에 있어서 가인이가 어딘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 말을 끝으로 할아버님은 조금 지쳤는지 조용해졌다. 하지만 주변의 분위기는 아까에 비하면 확연히 밝아졌다. 드디어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방의 해결 자체가 주의 승리라면, 우리에겐 답이 없다. 하지만 가인이가 유산을 얻는 것이 주의 승리라면, 우리 중 다른 사람이 유산을 얻는 것으로 주의 승리를 막을 수 있다.
조금 기운을 회복한 할아버님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있구나. 대체 그놈의 주는 왜 이렇게까지 자유롭게 개입할 수 있는 게냐? 우린 이미 여러 저주의 방을 해결했고, 많은 죄수를 만났지만 이런 놈은 본 적이 없다.”
“적어도 주가 힘이 세서는 아닐 겁니다.”
“그건 나도 동의한다. 감히 인간으로서 신적인 존재들의 강약을 논하기는 우습다만, 주가 호텔의 법칙을 무시할 정도로 강했다면 104호에 갇혀있진 않겠지.”
“사실 저도 일종의 가설을 세웠거든요. 예전에 제가 올빼미에게 104호에 관해 받은 조언 기억하세요?”
“무슨 판 어쩌고 하지 않았냐?”
“‘가장 지혜로운 자는 모두가 이득 볼 수 있는 판을 짠다’였죠.”
나도 기억났다.
“꽤 오랜 시간 이 조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네요. 조언 해석의 핵심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가장 지혜로운 자는 누구를 뜻하나? 둘째, 이득 보는 모두는 누구인가? 셋째, 그들은 무슨 이익을 보는가?”
“지혜로운 자는 주 아니냐? 104호에서 수작을 부린 건 그 놈일 텐데?”
“올빼미는 항상 한 단어에 여러 가지 의미를 담습니다. 요전엔 악취미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에게도 호텔이 부여한 제약이 있기 때문이겠죠. 호텔에서 ‘지혜’는 올빼미 본인을 뜻합니다. 저는 더 나아가서 이 표현이 후원자 전체를 지칭했다고 봅니다. 즉, 주와 후원자들이 판을 짰습니다.”
“이득 보는 ‘모두’는 누구냐?”
“어제 죽어 나간 사교도나 주의 손에 죽을뻔한 아우렐리아는 아닐 겁니다. 안타깝지만 이 호텔에서 저주의 방 내부의 NPC는 협상 테이블에 설 자격조차 없는 존재니까요. 호텔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게임의 테이블에는 세 가지 주체가 있죠. 죄수, 참가자 그리고 후원자.”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가인이가 하려는 말을 이해했다.
“가인이 네 말은 이 의미네. 본래 참가자와 후원자는 방의 해결을 목표로 하고 죄수는 저항하는 위치야. 하지만 주는 본인 역시 방을 해결하기 위한 판을 짰어. 이 목적은 후원자의 목적과도 일치해.”
“그래서 주가 부리는 여러 가지 꼼수를 후원자들이 묵인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주가 부린 꼼수 중 하나인 강림은 우리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줬죠. 제 마도서부터가 강림이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었을 물건이고.”
할아버지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약간 더 얹자면, 사실 후원자들이 보기엔 ‘신성한 태양’이나 강림의 부작용으로 가인이 네 정신에 주가 스며드는 문제는 별것 아닐지도 모르겠다.”
“…”
“인간 사정을 봐주는 놈들이 아니니까. 지금도 소파에 기절해있는 엘레나를 봐라. 그놈들이 사람 정신 건강을 걱정해줬으면 ‘불길한 상상’같은 유산은 내리지도 않았겠지. ‘이계의 별 조각’도 문제고.”
“후원자들이 보기에 지금 우리가 하는 이 회의는 대체 어떻게 보일까요?”
“한심한 고민으로 보일지도 모르지. 별것도 아닌 ‘인간의 순수성’ 따위를 신경 쓰며 손쉬운 길을 피해서 어려운 길을 간다고 느낄지도. 하지만 관리국 요원으로서 말하건대, 가인이 네가 후원자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 그래서 나도 널 위해 주의 계획을 목숨 걸고 막을 생각이니까.”
간단한 이야기다.
주는 강림과 유산을 통해 호텔을 탈출하기 위한 계획을 짰고 그 계획의 과정에서 저주의 방은 해결된다. 나아가서 강림은 참가자들이 호텔을 진행하는 데 엄청난 전력이 된다. 따라서 주의 계획이 후원자에게도 이익이므로 주는 후원자의 묵인하에 온갖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것.
이게 사실일까? 가인이 본인도 확신하지 못하는 가설이니 알 수 없는 문제다. 이 호텔에서 우리의 추측이 틀렸던 경우도 많으니까. 하지만 이 문제로 더 고민할 때가 아니다.
할아버지가 상황을 정리했다.
“자~! 상황 파악은 이쯤 하면 됐다. 하염없이 고민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목표는 정해졌으니까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유산을 얻으면 됩니다.”
“바로 그거지. 그걸 위해서 해야 할 일도 보이는구나. 아우렐리아를 찾아내서 족치면 그만 아니냐?”
“할아버님, 그 부분은 움직이면서 조금 더 생각해봐요.”
“은솔이 네게 다른 생각이 있냐?”
“네. 우선 가인이에게 듣기로 아우렐리아는 주가 본인을 죽이려 함을 깨닫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하더군요.”
“뭐, 나름 성녀 비슷한 위치였을 텐데 모시던 신이 본인을 죽이려 들었으니 놀라긴 했겠지.”
“지금 그녀는 신앙심을 잃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도 계속 ‘대적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누나 말을 들으니까 예전에 수석 연구원이 해줬던 말이 떠오르네요. 사실 죄수니 대적자니 하는 표현은 우리가 방을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 편의상 만든 개념에 가깝고, 호텔 자체에 그런 개념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죠.”
“시나리오는 유동적이야. 그러니 무작정 예전 정보대로 판단해선 곤란하지. 게다가….”
“힌트.”
“그래. 힌트. ㅁ은 아버지를 ㅁㅁ하는 법. 아직도 이 의미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첫 글자는 딸이라고 보거든. 딸을 이용해서 아버지, 즉 주를 어떻게 하라는 힌트야. 마침 그 딸은 아버지에게 상당한 배신감을 느끼며 도망갔지. 이게 우연일 리가 있을까?”
“일단 아우렐리아를 찾아봅시다. 거기서부터 시작일 것 같아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페로 가인이가 앵무새 몸으로 고개를 끄덕거리자 너무 귀여워서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은신처를 나와서 바깥으로 나가면서 생각했다. 아우렐리아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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