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14)
213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 Re (7)
– 이은솔
아우렐리아부터 찾아내기로 하자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하늘의 딸은 교단의 심처에서 신을 모시는 성녀로 살아온 사람이죠. 세상일에 그리 밝지 않을 겁니다. 뜬금없는 장소로 갔을 것 같지는 않아요.”
“가인이 말에 동의해. 갑자기 전혀 모르는 장소로 가진 못할 거야. 애초에, 주의 손에 목이 뚫려서 부상이 심하니까 그리 멀리 있지 않으리라고 봐.”
“마침 짐작이 가는 장소가 좀 있다.”
호텔고에 도착하자마자 교사 신분을 활용해가며 호텔고 주변의 지리, 지형을 알아냈던 할아버님이 사교 집단의 은신처가 있을 만한 장소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 사이, 혼절해있던 엘레나가 깨어났다.
“언니, 아까는 죄송 -”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까 너도 와서 회의나 해. 몸은 괜찮지?”
“몸은 괜찮아요. 하지만 불길한 상상은 한동안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그건 짐작했어.”
“언니, 그런데 상현 씨는 어디 있어요?”
“모르겠어. 지하도시가 무너질 때 지반이 무너지면서 죽은 것 아닐까? 이럴 때는 가인이가 상태창을 잃은 게 아쉽네. 원래는 동료 정보 확인하면 알 수 있었을 내용인데.”
“지금은 있었어도 무리죠. 지혜가 봉인되면서 조언이든 뭐든 상태창 기능 대부분이 막혔어요. 사실 막힌 게 다행입니다.”
“그렇네. 주가 상태창의 기능까지 썼다고 생각하니 진짜 끔찍하다. 어쨌든 상현 씨는 아마 죽었을 거야.”
“… 나중에 나가서 상현 씨에게도 죄송하다 말씀드려야겠네요.”
내가 엘레나에게 앞서 우리끼리 했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달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지도를 살펴서 4개의 장소를 추려냈다. 우리는 즉시 각 장소를 하나하나 찾아갔다.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한 저녁 무렵, 세 번째 장소인 호텔고 인근의 자그마한 숲에 들어서자마자 심상치 않은 빛을 발견했다.
“저 빛! 저거 뭐야? 누가 야영하는 건 아니겠지?”
“빛이요?”
엘레나와 할아버지가 무슨 말인가 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네요. 너무 멀리 있어서 누나 눈에만 보이나 봐요.”
“아니야. 별로 멀지 않아.”
“그러면 누나의 조안(鳥眼)에만 보이는 빛인가 보죠? 초자연적인 현상일 것 같으니 가봐요.”
“그래. 그런데 ‘조안’은 또 뭐야?”
“단안 거조의 눈이니까 조안.”
… 이 네이밍 센스는 아리에게 배운 건가? 새삼 따지기도 피곤해서 그만두었다.
숲 안쪽으로 들어가자 빛은 점점 강해졌다. 마침내 숲 내부의 자그마한 오두막을 찾아내자 빛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두막 내부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이 마치 오두막이라는 물리적 실체를 투과하듯이 사방으로 뻗치고 있었다.
“확실하겠지?”
이미 우리 중 실질적으로 유일한 전투원인 할아버지가 긴장한 표정으로 권총을 잡아 쥐고 여차하면 달려들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 털컥!
문이 열리며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
아우렐리아는 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빛은 바로 목 부위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듣자 하니 주는 더 이상 아우렐리아에게 힘을 보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빛은 남아있는 약간의 힘을 모조리 상처 회복에 집중하면서 발생한 건가?
“대화가 어려우신가요? 목이 크게 다치셨다고 들었는데.”
“… 가능합니다.”
가능하다는 대답과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내가 기억하던 목소리와 완전히 달랐다. 매우 거칠고, 탁한데다가 말 한마디를 꺼내자마자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 고통을 참아가며 억지로 입을 여는 게 그녀 나름의 자존심이겠지.
“긴장 풉시다. 이제 우리가 싸울 이유는 딱히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아버지께서 너희를 막아 교단을 -”
“지키라고 하셨나요? 그 교단은 이미 쫄딱 망한 것 같은데.”
“당신들이 본 게 교단의 전부가 아닙니다!”
“뭐, 교단이야 아무래도 좋죠. 중요한 점은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버님께서는 당신을 그리 아끼시지 않는다는 점이니까요.”
정곡을 찔린 아우렐리아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아버지께서…. 무언가 큰 뜻이 있으셨겠지요.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뜻이 있기야 있었겠죠. 그런데 그 뜻이 당신이나 교단에 유익한 뜻일까요?”
“저는 그분께 제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분이 제 목숨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면 바치면 그만입니다.”
아우렐리아는 쉽게 신앙을 포기하지 못했다. 주를 부정한다는 것은 평생 교단의 성녀로서 살아온 그녀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에는 이미 모순이 있었다.
“아하, 당신의 말을 요약하면 주께는 미천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계획이 있고, 그 계획에 당신의 목숨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바치겠다는 이야기죠?”
“… 그렇습니다.”
“그러면 구교사 지하의 도시에선 왜 도망갔나요? 도망가지 말고 목을 잘 닦아서 손수 베어서 아버님께 바치셨으면 당신 아버님의 계획이 완성되었을 텐데. 설령 그 자리에선 놀라서 도망갔다 칩시다. 지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죠? 당장이라도 아버님이 파묻힌 장소로 달려가서 목을 바치셔야죠.”
“…”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맙시다. ‘주’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니까요.”
“아버지가 내가 생각하는 존재와 다르다?”
“그렇죠. 그러니까 -”
“웃기지 마! 네가 주께서 어떤 분인지 대체 뭘 안다고 잘난 체지? 한 가지는 인정하지. 나는 아버님께서 어떤 뜻을 품으셨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최소한 너보단 잘 알아! 내가 지금 싸울 힘이 없는 줄 알아? 목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시간을 벌 요량으로 잠시 말장난에 어울려줬을 뿐인데, 감히 -”
으아! 으아! 조금 전에 이 여자의 역린을 건드린 것 같다. 압박을 너무 강하게 넣었나? 아우렐리아가 진심으로 분노하자 다시금 손에 빛이 깃들었다. 동시에 목을 가리고 있던 붕대가 붉게 물들었다. 이 미친 여자, 상처 회복에 쓰던 힘으로 우리와 싸울 생각이냐고!
그 순간, 알 수 없는 말이 들려오며 장내의 혼란을 가라앉혔다.
“묻나니, 어째서 세상에 고통이 가득한가? 천지에 악이 가득하도다. 그 연유는 무엇인가. 답하나니, 그것은 곧 이 세상이 거짓된 창조주의 손에서 빚어졌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주께서 낙원을 약속하셨노라.”
아우렐리아의 표정에 놀람이 깃들었다.
“내려놓으라. 낙원으로 떠날 그대를 무겁게 만드는 모든 것을 내려두라. 주께서 완벽한 세계를 약속하셨나니, 거짓된 세상의 재산 따위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삿된 육신은 그야말로 낙원의 철로 앞에 놓인 가장 큰 장애물이니 가장 먼저 치워버려라.”
“대체….”
“왜 놀라는가? 외인에게 비밀로 해왔던 교리가 내 입에서 나옴이 그토록 놀라운가? 그게 아니라면 한낱 동물이 사람의 말을 해서 놀라운가?”
“…”
가인이는 대체 쟤네 교리는 언제 알아챈 거야? 첫 번째 시도 때 알아냈나? 알아낸 건 그렇다 쳐도 그걸 여태 외우고 있었어? K대 가려면 암기력이 이렇게 좋아야 해?
“놀라지 말고 들으라. 주가 이 땅에서 흉계를 꾸민지 억겁의 시간이 흘렀나니…. 심판의 때가 다가왔노라.”
갑자기 이 분위기 뭐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엘레나가 페로 가인이를 손목에 올린 채 손을 하늘로 뻗었다. 동시에 거짓말 탐지 능력을 사용했는지 엘레나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엘레나는 자연스럽게 몇 걸음 움직여서 태양을 등지고 섰다.
“너, 아우렐리아야. 주에 대한 네 믿음이 배반당하지 않았으리라 확신하느냐? 네 신이 정녕 너와 신도들을 위해왔다면, 어찌하며 파국의 순간에도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았는가?”
아우렐리아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말할 때와 반응이 완전 다른데? 비밀로 숨겨왔던 교리가 적의 입에서 나왔다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혼란에 빠진 건가?
“당신이…. 당신이 ‘새롭게 선 자’의 사도십니까?”
“가련한 아이야. 스러져가는 추운 오두막에서 홀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냈느냐? 썩은 의자 위에서 대체 몇 번이나 신을 찾았느냐?”
“그걸 대체 어떻게 아셨나요!”
뭘 어떻게 알아? 뻔한 이야기인데. 평생 모신 신에게 갑자기 공격받은 후 도망쳐서 혼자 오두막에 누워있으면 무슨 생각이 들었겠어? 훌쩍거리면서 신에 관한 생각만 했겠지!
엘레나 : 가인 대체 뭐함?
이은솔 : 가인이는 대화창 안보임.
엘레나는 이 와중에 가인이가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대충 흐름에 맞췄구나! 얘도 참 대단 –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에서 제일 숭고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앵무새를 향해 무릎 꿇고 있었다.
아하! 내가 문제였네. 조용히 합장하자. 그리고 슬픈 생각 슬픈 생각.
“아이야. 평생 지켜온 단단한 마음. 결코 한순간에 포기할 수는 없겠지. 그러므로 네게 기회를 주겠노라.”
“기회라 하심은….”
“날 따라오라. 심판의 순간, 너는 네 아비에게 질문할 수 있으리.”
…
끝났나?
살짝 고개를 치켜들자 페로 가인이가 날개 한쪽을 뒤로 뻗어서 엘레나 머리를 툭툭 치는 게 보였다. 그제야 엘레나도 뒤로 돌아서서 무슨 발레를 하듯이 우아하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우렐리아는 어딘가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엘레나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알 것 같다. 이 여자, 신비주의적인 쇼에 엄청나게 약하잖아! 엘레나랑 유사한 스타일인가?
분위기를 깨트리지 않기 위해 머리 한쪽에선 계속 슬픈 생각을 떠올리면서 방금의 대화를 복기했다.
평생 지켜온 교단, 모든 것을 바쳐왔던 신에게 배신당한 성녀의 마음속에 남은 갈망은 대체 뭘까? 복수? 아니다. 언젠가는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당장 복수심이 생기기에 상대는 무려 신이다.
그녀의 가장 큰 갈망은 다름 아닌 ‘대체 왜?’이리라.
대체 왜 신은 교단을 버렸는가? 대체 왜 신은 성녀를 버렸는가? 정말로 신이 숭고한 대의를 이루기 위한 큰 판을 짰다면 설령 목숨을 요구한다 해도 바칠 수 있다. 그 정도 광적인 신앙심은 있으니까 성녀씩이나 됐겠지.
그러나 주는 그 어떠한 사전 설명도 없이 교단과 성녀를 희생시켰다. 그렇기에 그녀의 머릿속에 남은 감정은 ‘대체 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의문은 그녀 단독으로는 풀 길이 없다. 혼자서 답변을 구하러 가면 신의 손에 의해 죽을 테니까.
가인이는 아우렐리아에게 그 답을 구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겠노라고 제안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그녀가 가인이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단순히 신비한 쇼의 위압감에 굴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우리가 초자연적인 힘을 지녔음을 확인한데다가 그녀가 가장 바라는 소원을 정확히 짚어냈기에 협상이 성공한 것!
…
가인이는 모든 계산을 아우렐리아와 만나고 그 잠깐 사이에 했던 걸까? 아니면 직관적으로 내린 판단이 맞아떨어졌나? 모를 일이다. 저 정도 앵무새라면 정말 신의 사도를 자처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지하도시의 붕괴 과정에서 죽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김상현이 멀쩡한 몸으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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