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15)
214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 Re (8)
– 이은솔
아우렐리아를 은신처로 데려온 후, 우리는 그녀에게서 교단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모은 정보를 정리하며 몇 가지 계획을 세우던 그 시각, 상현 씨가 은신처에 도착했다.
지하도시에서 죽었으리라는 예측과 전혀 다른 멀쩡한 상태로 우릴 찾아온 상현 씨는 상당한 놀라움을 안겨줬다.
“으아앗! 상현 씨? 대체 어떻게 살아나오셨어요?”
“…”
“상현 씨?”
“은솔아, 뒤로 물러서거라.”
차갑게 울려 퍼진 할아버님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서 물러섰다. 할아버님의 한 손엔 권총이 들려 있었다. 동료에게 총을 겨누다니!
놀라서 할아버님의 팔을 붙잡으려다가 그제야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상현 씨가 지하도시의 붕괴 과정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은 것까지는 운이 좋았다고 치자. 애초에 우리도 멀쩡하게 잘 나왔으니까.
대체 왜 ‘이제야’ 이 장소로 왔지? 할아버님이 탈출 버튼을 가지고 마지막 보험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은 가인이를 제외한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 은신처의 장소 역시 최소한 교사 팀끼리는 초반에 확인했다. 그래서 내가 페로 가인이와 엘레나를 데리고 은신처로 올 수 있었던 것.
긴장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김상현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제가 예전에 드렸던 말씀 기억하십니까?”
“예전에 한 말?”
“호텔과 같은 위험으로 가득한 공간에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말씀드렸지요?”
“…”
“저는 그 리더 역할을 해주실 적절한 분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지금 주가 제게 임하셨습니다. 제 말은 곧 그분의 뜻이니, ‘대화’를 조심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김상현의 몸에서 흐릿한 빛이 발생했다!
어느새 황금 안을 빛내며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엘레나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의사 선생님! 아니 이 개새끼가 진짜! 널 살리자고 한 사람이 가인 씨인 건 알고 -”
흥분하는 엘레나의 팔을 할아버지가 잡아끌었다.
“뭐 좋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겠지? 설마하니 새 주인님을 섬기겠다 하고 문안 인사하러 온 건 아닐 텐데.”
“물론이죠. 주께서 여러분께 제안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말해봐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러분은 이미 외통수에 처하셨습니다. 104호의 저주의 근원이 교단 그 자체라는 점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교도와 성녀를 처단하는 순간 방은 해결됩니다. 성녀는 이미 ‘탈락’했으니 남은 세력은 교도들 뿐이지요. 여러분은 교도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 호텔고에 잔당이 남아있겠지.”
“하하하! 정말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설마 호텔고 같은 요란한 건축물을 기적으로 허공에서 일으켜 세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짓을 했다면 관리국이 진작에 전쟁을 벌이고도 남았습니다. 당연히 평범하게 지은 건축물입니다. 그 돈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하, 네놈 말은 호텔고나 지하도시를 건설하는데 들어간 돈과 인력을 공급할 수 있는 교단의 세력이 따로 많이 있다 이 소리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그 세력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으시겠지만, 설령 찾아낸다 해도 처리하기까진 꽤 시간이 걸리시겠지요. 참고로 주께서는 내일 이 시간쯤이면 이미 훌훌 털고 일어나실 겁니다. 하룻밤 사이에 여러분이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까?”
“…”
“그러나 주께서는 결코 폭압적인 마귀가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이끌어나가실 지혜와 자비를 품으신 분. 여러분은 104호에선 그분과 대립 중이지만, 밖으로 나가면 그분의 수족이 되어 험난한 호텔을 헤쳐 나갈 사람들이지요. 그러므로 주께서 자비를 베풀기로 하셨습니다.”
“뭐, 어차피 우리에겐 답 없는 상황이니 개지랄 말고 와서 싹싹 빌어라 그런 소리냐?”
“주께서 고민할 시간을 하루는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내일 저녁, 구교사로 오시지요.”
“야! 너 이 개새끼가 진짜-”
여기까지 들었을 때 기어이 참지 못한 엘레나가 달려들었다! 이번엔 내가 엘레나의 양손을 붙잡고 뒤로 당겨야 했다.
… 대화 시작할 때 ‘제게 임하셨다’라고 했지?
“엘레나 제발!”
엘레나를 뒤로 당기는 순간, 의사의 눈이 내게 향했다. 그의 눈에는 분명한 감사의 빛이 깃들어있었다. 김상현이 은신처를 떠났다.
*
“다들 왜 막으신 거예요? 그 인간을 -”
“제발! 아까는 그렇게 순발력 있고 똑똑했으면서 지금은 갑자기 왜 이래?”
“예?”
“엘레나, 아까 상현 씨가 한 말은 전부 진실 판정이었어?”
“… 네.”
할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가인이 네 생각엔 어떻게 들렸냐?”
여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진짜 앵무새 흉내를 내면서 견과류까지 쪼고 있던 페로 가인의 입이 열렸다.
“선생님이 나름대로 수를 쓰시는 모양입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느낌으로 행동 중이신 듯한데….”
“말 앞 부분이 좀 이상했지?”
“‘주가 나에게 임하셨다.’라고 말하면서 빛을 보이는 행동은 전혀 할 필요가 없는 동작이었죠. 사실상 이 대화는 주도 듣고 있다고 우리에게 미리 경고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대화’를 조심하십시오. 이 표현도 이상하던데? 입을 조심해라, 말조심해라 등 다른 표현도 많은데 ‘대화’를 조심해라. 이건 딱 봐도 ‘대화창’ 조심하라는 의미로 들려.”
엘레나가 다소 당황하며 답했다.
“주가 참가자의 자격을 얻었으니 대화창을 염탐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하지만 대화창엔 거리 제한이 있는걸요! 여기서 구교사까지는 차 타고도 제법 거리가 멀어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엘레나 말대로 거리가 멀지. 김상현이 하려던 말은 추후 우리가 그놈 근처로 갔을 때 대화창 함부로 쓰지 말라는 말이다.”
“상현 씨가 정말 우리를 배신했다면 주의 뜻을 전하는 전령 노릇을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 있었어.”
그 ‘좋은 방법’을 할아버지가 명확히 표현했다.
“애초에 우리 파티는 기본적으로 동료를 의심하지 않는 성향 아니냐? 그놈이 미리 뼈라도 좀 부러트리고, 몸에 상처도 많이 내고 왔으면 의심하지 않았을 거다. 우리와 합류한 후 밤에 기습했으면 우린 다 죽고 이 방은 주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거지.”
아까와 다르게 묘하게 상황 파악이 늦고 감정적으로 대응한 엘레나와 달리 다른 세 명의 판단은 모두 일치했다. 김상현은 방금의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무언가 전달하려 했다.
“아까 전 대화, 엘레나가 거짓말 탐지로 파악했듯이 상현 씨가 전달한 말 자체는 전부 사실이야. 주가 협상안을 전하라고 한 것 자체는 사실이겠지.”
할아버지가 바로 지적했다.
“잊지 마라. 거짓말 탐지 판정은 김상현에게 적용됐을 테니까. 김상현이 참말을 했다 해서 그를 전령으로 쓴 주가 우릴 속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알고 있어요. 주가 상현 씨도 속였을 수 있죠. 여하튼, 각자 떠오르는 대로 말해봐.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부분은 교단의 세력과 관련된 이야기야. 아까 아우렐리아에게 들은 이야기와 묘하게 다른데?”
“아우렐리아는 호텔고의 핵심 세력을 제외한 외부 집단은 교단의 실체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죠. 주의 존재는 물론이고 아우렐리아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교단 일부가 아니라 단순한 손가락 발가락입니다.”
“맞아. 그러니까 우리 능력으로 교단의 세력을 처리하는 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는 내용은 단순한 블러핑이야. 실제로는 호텔고 잔당만 처리하면 될 거야.”
앵무새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대답했다.
“동의합니다. 저도 주목한 부분이 있어요. 고민할 시간을 하루 줄 테니 내일 와라. 무슨 의미로 들리세요?”
할아버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나랑 비슷하게 느꼈구나. 그 말은 우리 시간을 낭비하게 하려는 수작이다.”
페로 가인이가 바로 답했다.
“주가 내일이나 모레면 회복한다는 말 자체는 사실일 겁니다. 의사 선생님이 그 말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제 몸에서 나오기 직전에 예측했던 시기와 일치하거든요. 또, 주가 다음 강림을 또 쓸 수 있을 때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습니다.”
상황은 명확하다. 내일, 늦어도 모레면 주는 회복한다. 주의 회복 후에 우리에게 기회는 없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이 그가 가장 약한 순간이다!
이게 바로 주가 협상안을 제시하는 척하며 판 함정이다. 그는 우리가 무엇보다 귀중한 시간인 ‘오늘’을 주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 회의하는 일 따위로 낭비하길 바랐다.
“좋아.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곧 출발하자. 시간이 적의 편이니 오늘 끝을 봐야 할 모양이네.”
우리의 설명을 듣고 상황을 이해하며 어딘가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엘레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할 말이 있는데요.”
“말해봐.”
“지금 우리가 주에게 간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는 가만히 서 있는 주를 상대로도 다 죽을뻔했는걸요.”
“그때는 주가 강림을 쓴 상태였지.”
“저는 주가 강림 하나만 믿고 있는 존재이리라 믿지 않아요.”
그 말 만큼은 동의했다. 지금까지 느낀 ‘주’란 대체 어떤 존재이던가? 함정을 파고, 그걸 피해 지나가는 길에 또 함정을 파고, 아니다 싶어 돌아가는 사람을 저격하기 위한 저격수까지 대기시킬 존재다.
말없이 듣고 있던 페로가 한마디 했다.
“저에게 생각이 있어요.”
엘레나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
– 이은솔
어둑한 시간.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고 구교사로 출발하려던 우리에게 한 사람이 합류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아우렐리아 양. 혼자 한참 명상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해야 했어요. 지금 구교사로 가시려는 것 맞죠? 제게 약속하셨잖아요? 의문을 풀 기회를 주시겠다고.”
솔직히 이 여자,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나름 어설프게 포섭한 후 교단에 대한 정보를 제법 알려준 것은 사실이다. 그 덕분에 주의 속임수도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무려 교단의 성녀씩이나 되는 인간이 한순간에 돌아설 수 있을까? 평생의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행동이나 다름없는데?
의외로 할아버지는 쿨하게 받아줬다.
“따라오시오. 당신도 당신 나름의 결말을 볼 필요는 있겠지.”
“할아버님?”
김묵성 : 힌트.
이해했다. 우리가 여태껏 해석했던 힌트대로라면 아우렐리아에겐 이 방에서 분명 어떤 역할이 있다. 적어도 교단의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정도가 전부는 아니겠지. 그녀를 믿는다기보다는 힌트를 믿기로 했다. 현실적으로 그녀에게 아직 남은 약간의 힘조차도 아쉬운 상황이기도 하고.
— 부르릉!
오늘 밤, 우리는 현실로의 탈출을 꿈꾸는 신을 사냥한다.
*
고급스러운 침대, 그 위에서 의식을 잃은 듯한 청년.
분위기만 보면 누군가 베개로 얼굴을 살짝 누르기만 해도 곧 죽을 듯했다. 하지만 청년을 ‘치료’중인 의사는 이 청년이 이미 미사일이 떨어져도 코털 하나 까딱하지 않을 존재임을 잘 알고 있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며 끝없이 신체를 비틀어대는 기묘한 혈독(血毒)이 아니었으면 이미 이 방은 이 자의 손에 의해 끝났겠지. ‘오래된 피’로 이런 일도 할 수 있었나? 김상현이 아는 한 ‘미로’도 이런 운용은 불가능했다.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뜻을 전했느냐?’
“그렇습니다.”
‘흠…. 나는 분명 상황을 살펴 몇 명은 죽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상황을 살펴 행동하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죽일 수 있으면 죽이고, 자신 없으면 뜻만 전하라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자신이 없어서 내 말만 전했다?’
“그렇습니다.”
누워있던 청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걸 살피던 김상현은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늑대 앞에 선 토끼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아이야. 네 얕은수를 내가 모를 것 같으냐?’
“…”
‘네 재주가 가상하니 귀여운 장난으로 생각하마.’
무슨 의미일까. 청년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
노인의 어깨 위,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능을 가진 앵무새는 회백색 머리칼을 뽑으며 생각했다. 모든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리고 있다.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이렇게 쉽게 풀리기 시작하면 보통 틀렸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구교사에 도착하면 무언가 예상 밖의 일이 생기겠지. 하지만 괜찮다. 상대가 그 어떤 수를 준비했다 해도 –
우리에겐 그 모든 수를 넘어설 수 있는 패가 있으니까.
결착의 순간이 다가온다. 길고 길었던 주와의 관계를 청산할 시간이 되었다.
“… 대체 넌 왜 내 머리카락을 뽑는 게냐?”
“아차차! 몸에 밴 습관인가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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