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16)
215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 Re (9)
– 이은솔
슬슬 어둑한 시간, 할아버님이 모는 차를 타고 구교사로 향하며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뉴스의 내용이 완전히 다 조작된 상태네. 구교사의 붕괴와 관련해서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한 이야기는 아예 없어. 그냥 노후화된 건물의 갑작스러운 붕괴, 인명피해는 다행히 없으나 건물 안전기준에 대해 점검해야 한다, 이런 식의 터무니없는 기사들이야.”
“평범한 부실 공사로 인한 건물 붕괴처럼 처리한 모양이군요.”
“너희 교단이 이런 짓도 할 수 있어?”
뒷좌석의 아우렐리아는 그냥 어색하게 웃었다. 질문에 대해 답한 사람은 운전 중이던 할아버님이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당연히 관리국이 한 일이지!”
이 무대에서도 ‘관리국’일까요? 라고 물으려고 했지만, 아우렐리아가 있어서 그냥 말을 삼켰다. 다행히 그녀가 별 반응 없는 것을 보니 이 무대에서도 초자연적인 현상을 관리하는 조직의 명칭은 관리국인 듯하다.
전방에 익숙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는 104호의 모든 비밀이 숨겨진 장소인 호텔고로 돌아왔다.
— 탕!
환영 인사가 시작되었다.
*
호텔고로 도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총탄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사교도 세력이 상당한 무장 집단이라는 사실은 이미 첫 번째 시도에서 죽음으로 깨달았다. 그러나 막상 사방에서 총탄이 튀고 순식간에 자동차가 벌집이 되기 시작하자 새삼스레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여기 설정상 21세기 대한민국 아닌가요?
물론 이 정도는 이미 계산한 범주 내의 상황이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총탄에 자동차의 창문이 처음 깨지는 순간 방호복을 입은 운전석의 할아버님을 제외한 사람들은 전부 차체 하단으로 숨고, 동시에 엘레나가 일어섰다.
광대한 호텔고 부지, 사방에 산적한 사교 집단이 보내오는 명백한 살의!
응징의 필요성을 인지한 정의의 천칭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황금으로 빛나는 엘레나는 누가 보아도 ‘나 엄청 대단해!’라고 사방팔방에 외치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총탄이 엘레나를 향하며 나머지 사람들은 자유를 얻었다.
황금빛이 물결처럼 퍼져나간다. 어둑어둑하던 호텔고 일대가 마치 초저녁처럼 밝아졌다. 허공에 떠오른 엘레나는 빠른 속도로 날아가며 천칭을 마치 거인이 휘두르는 요요처럼 써서 사방의 사교도들을 공격했다.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드는 천칭에 부딪히는 순간, 사교도들은 마치 만화영화의 한 장면처럼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엄청난 파괴의 현장! 지금은 ‘배신자’가 되어 학교로 돌아온 아우렐리아는 차마 자기 눈으로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는지 고개도 들지 못했다.
“아우렐리아, 정신 차려요. 우릴 구교사로 안내해주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 미안해. 정신 차릴게.”
우리는 비교적 천천히 구교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의’의 특성상 엘레나는 범위 내의 모든 사교도를 차별하지 않고 하나하나 전부 응징하느라 그리 빨리 이동하지 못했다. 우리는 엘레나의 보호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위험했기에 엘레나의 속도에 맞춰서 이동해야 했다.
계속해서 구경하던 아우렐리아는 이제 안타까움을 넘어 감탄의 영역에 속한 감상을 보였다.
“터무니없는 힘이군요. 이래서 아버님이 이 여자를 견제하는 계시를 내리신 걸까….”
“너도 만만치 않아.”
아우렐리아는 코웃음을 치며 뒤쪽의 ‘신의 사도’, 페로 가인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여자의 힘이 전력의 전부라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버님께서도 무언가 더 숨겨두셨을 테고.”
“네가 걱정할 바 아니다.”
이 포스 뭐야? 가인이는 앵무새가 되니까 더 유능해진 느낌인데?
“… 물론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하셨겠지만 -”
무어라 반박하려던 아우렐리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나를 붙들고 바닥을 굴렀다.
— 콰아앙!
갑자기 발생한 엄청난 폭발! 귀가 먹먹해지며 정신조차 차릴 수 없었다. 뭐가 뭔지 깨닫기도 전에 아우렐리아는 다시 나를 들고 어디론가 폴짝폴짝 뛰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우리가 서 있던 장소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다섯 개나 생겨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이게 무슨 -”
크레이터의 중앙, 폭발에 휘말려 바닥에 처박힌 엘레나가 옷만 살짝 그을린 상태로 별일 아니라는 듯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 두두두두두두!
거대한 모터가 돌아가는 엄청난 기계음. 엘레나가 내뿜는 빛 말고는 광원이 많지 않던 어둑한 밤하늘에 순식간에 10대가 넘는 헬리콥터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문득, 아우렐리아가 어느새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텔고의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나까지 계속 살리기는 무리라고 판단하고 지하도시로 움직인 듯하다.
“아, 이제 슬슬 죽을 시간이네.”
아니었다. 아주 크고 단단한 방호복 장갑이 날 한 손으로 잡아채더니 굉장한 속도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쪽 손에 자그마한 앵무새가 마치 웅크린 참새 같은 자세로 붙들려있었다.
이동을 할아버님에게 온전히 맡기고 생각에 집중하자 금방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변두리 지역에서 입시 학교로 위장한 채 음모를 꾸미는 사교 집단 따위가 전투 헬기를 이렇게 여러 대 부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우리는 지금 이 무대의 관리국에 의해 쫓기기 시작했다!
*
– 김상현
삽시간에 혼란에 빠진 호텔고 전경을 살피며 생각했다. 104호에서 일행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는 오늘 밤이다. 내일, 늦어도 모레쯤 주가 힘을 회복하고 나면 일행에게 기회는 없다.
이 방의 해결 조건은 무엇인가? 성녀와 교단의 붕괴. 성녀는 이미 교단을 떠났으니, 남은 것은 교단의 잔존 세력 뿐이다. 그리고 그 잔존 세력의 대부분은 주가 묻힌 구교사 인근을 떠나지 못했다. 이 장소는 그들에게 신이 강림한 성역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로선 깨어나자마자 ‘잘 먹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사교도들을 케이크처럼 베어 물면 바로 끝난다는 이야기다. 그걸 알았기에 나는 동료들에게 ‘오늘 당장 승부를 봐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동료들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이 장소에 도착했다.
사교도 잔당 따위는 정의를 사용한 엘레나에게 아무런 위협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상황은 주에게도 분명 위기이리라!
…
그렇게 생각했다.
한 가지 놓친 점이 있다면, 이 계획을 주 또한 손바닥 보듯 훤하게 읽었다는 사실이다. 계획을 읽은 주가 사용한 첫 번째 패는 다름 아닌 관리국!
구교사 옥상에서 호텔고를 돌아보았다.
하늘에는 10대가 넘는 헬리콥터가 날아왔다. 지상에는 8대 정도의 정체불명의 거미를 닮은 다족보행 로봇이 다가왔다. 이것으로도 모자랐는지 하늘에는 알 수 없는 은색 상자를 탑재한 수많은 드론이 흡사 그물망처럼 하늘 전체를 덮어버렸다.
대체 무슨 수를 써서 딱 이 타이밍에 관리국 군대가 오게끔 했을까? 모를 일이다. 그리고 지금 그걸 연구할 때가 아니다!
잠깐 사이에 일행이 위기에 몰렸다. 은솔 양을 들고 달리던 묵성 어르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미 로봇에 의해 포위당해 움직이지 못했다. 황금의 빛을 뿌리는 엘레나는 이미 여러 차례 중화기에 사격 당하며 땅에 수십 번 내리꽂히면서도 제대로 반격하지 못했다.
왜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지? 몇 차례 동료들에게 들었던 정의의 위력대로라면 저렇게 무력하게 당하진 않을 텐데?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정의의 특성 때문이다. 대상이 사악한 인간이어야 한다고 했던가? 관리국 타격대는 분명 인간이긴 하지만 사악하다고 보긴 어렵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세상을 지키는 집단이니까.
애초에 지금 상황을 관리국 입장에서 해석해보자.
난데없이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을 부리는 여인이 나타나서 학교 부지에 있던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 중인 상황이 아닌가! 물론 이 민간인들이 사실 세상 말아먹을 사악한 신의 신도들이긴 하나, 관리국이 모든 정황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이 바로 주가 준비한 한 가지 패, ‘세상을 지키는 군대’다.
새삼스레 왜 동료들이 104호의 주를 꺼림칙하게 여겼는지 느꼈다. 사악한 자를 벌하는 ‘정의’의 원리를 무너트릴 수 있는 카운터를 준비하다니? 마치 주가 호텔 파티를 분석해서 공략하는 느낌이 아닌가!
보스 몹의 패턴을 분석해서 해결해나가는 게임을 하던 플레이어가 갑자기 본인을 분석해서 공략하는 존재를 만난다면 이런 느낌이리라.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듯한 거대한 새장 같은 물건이 나타나서 엘레나를 가두었다. 초자연적인 존재의 힘을 억누르는 일종의 봉인 도구인가? 새장 속에 갇힌 엘레나의 힘이 슬슬 흐려지는 것이 보였다.
…
과거의 어렴풋한 기억들이 떠올렸다. 오래전, 저쪽의 새장 속 아가씨와 같은 축복을 얻었던 사람이 있었다. 아리 아가씨의 말에 따르면 2층에서 어린아이가 된 미로는 완전히 제멋대로 정의를 썼다고 하지만, 정신이 멀쩡했던 미로는 그런 식의 막 나가는 운용은 하지 못했다. 미로 역시 그녀 나름의 선악 판단의 기준이 있었고, 그 기준에서 어긋난 존재들을 처벌하는 식으로 축복을 써야만 했다.
당연히 지금 엘레나가 겪는 문제를 미로도 종종 겪었다. 방의 해결을 위해선 쓰러트려야 하지만 사악한 존재라고는 보기 힘든 NPC들. 그 앞에서 먹통이 된 정의의 축복. 그때 미로는 어떻게 대응했더라?
… 생각났다.
마침 주가 내게 내린 힘이 약간 남았다. 본래는 동료들을 속이고 해치라고 준 힘이지만 굳이 그런 용도로 쓸 필요는 없겠지.
내 몸이 붕 떠올랐다. 마치 하늘을 나는 투명한 택시에 탑승한 듯한 재미난 경험 속에서 밤하늘을 가로지른 내 몸이 엘레나가 갇혀있는 새장으로 다가갔다. 새장 속에 갇힌 아가씨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엘레나 양, 뭘 하고 계십니까? 이 정도 새장은 얼마든지 뜯어내실 수 있잖아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의를 쓰고 계실 때는 대화가 불가능하신가요? 이 점은 미로님과 다르군요.”
얼마 남지 않은 한 줌의 힘을 양팔에 불어넣어서 새장을 억지로 벌리기 시작했다. 내 행동을 본 엘레나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곧 꺼내드리겠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이제 슬슬 때가 됐는데? 처음에야 갑자기 허공에서 사람이 날아왔으니 당황했겠지만, 지금 내가 행동을 보였으니 반응이 올 때가 됐다.
— 탕!
엄청난 폭음. 한순간에 정신이 나갈 듯한 엄청난 격통.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인지 포탄인지 알 수 없는 중화기가 내 상반신을 꿰뚫었다. 주가 내린 신비한 힘의 잔여분 덕택에 즉사는 면했지만, 어차피 몇 초 더 버티는 정도겠지. 내 죽음을 인지한 엘레나의 눈이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 이제 됐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의식이 흐릿해지기 직전, 오래전의 대화가 떠올랐다.
‘내 힘은 본디 나쁜 놈을 벌하기 위한 힘이야. 하지만….’
‘하지만?’
‘때로는 벌하기 위해서 나쁜 놈으로 만들어야 할 때도 있어.’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