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17)
216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 Re (10)
– 엘레나
마치 천천히 재생되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새장에 갇힌 날 구하러 온 동료, 그 동료의 가슴을 관통한 적의 흉탄. 꽤 고전적인 시퀀스가 아닌가? 차이점이 있다면 영화와 비교할 수 없이 리얼하게 느껴진다는 점 정도겠지.
의사 선생님의 몸이 허물어지는 순간, 내 안에서 어떤 선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격렬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심판 대상’이 확장됨을 느낀다. 지금, 정의의 천칭은 새로운 집단을 다시금 천칭 위에 올렸다.
— 라아아아아!
몸 전체에서 빛이 터져 나오고 천칭이 나선으로 회전하며 새장을 찢어발겼다. 혼돈 속에서 다시금 자유를 얻었다.
확장된 감각이 하늘에서 무언가 날아옴을 발견했다. 마치 새로운 전투 헬기와 같은 –
다음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광원이 나를 비췄다. 말로만 듣던 섬광탄에 노출되면 이런 느낌인가? 너무 엄청난 불빛이 발생해서 그냥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 세상이 빛으로 가득했다. 곧 빛뿐만이 아닌 어마어마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그제야 관리국이 나와 충돌한 그 잠깐 사이에 세운 전략을 깨달았다. 엄청난 위력의 섬광탄으로 나를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서 시간을 끌겠다는 것!
단순히 시간을 끄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같은 의문은 어리석다. 별 전체의 혼돈체에 맞서 세상을 긴 세월 지켜온 조직이라면, 지금의 내가 휘두르는 것과 같은 엄청난 힘이 결코 대가 없이 얻을 수 없으리라 짐작했겠지. 어쩌면 일종의 시간제한이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시각과 청각이 모두 마비되자 역설적으로 나는 평온함을 얻었다.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공간에서 생각했다. 대체 어디까지 심판 대상으로 삼아야 할까?
혼란스러운 싸움 와중에 대체 무슨 생각인가 싶으면서도 동시에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이 혼란하다 해서 재판도 하지 않고 처형할 수 있겠는가?
흉악한 범죄자를 잡았을 때, 수많은 대중은 항상 당장 저놈을 쳐 죽이라고 말한다. 목을 베어라, 산채로 태워라, 물리적 거세가 좋겠다. 그 분노의 마음 또한 인류가 ‘정의’를 추구하는 하나의 원동력이겠지.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설령 카메라 앞에서 사람을 죽인 자를 잡았다 해도 몇 년에 걸친 3번의 재판을 통해 한점 억울함과 의문이 없도록 만든 후 벌하는 것이 재판 아니던가?
이런 답답함조차도 곧 정의의 본질이며 내 축복의 본질이기도 하다.
무고한 동료인 의사 선생님을 해친 것은 분명 옳지 못한 행위지만, 관리국은 분명 세상을 지키는 조직이다. 결코 그 집단 전체를 심판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애초에 조금 전의 상황은 일종의 ‘정보 부족으로 인한 우발적인 사고’에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굳이 관리국 요원의 목숨을 빼앗는 방향으로 응징할 필요 까진 없을 것 같다. 돌아가신 의사 선생님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돈으로 끝내자. 어차피 선생님도 밖에 나가면 다시 살아나실 테니까 완전히 돌아가신 것도 아니잖아.
물론 내가 관리국에 돈을 받아서 선생님의 가족에게 전달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이런 건 그냥 편하게 편하게 가자.
내가 관리국 장비를 잔뜩 부수는 걸로 퉁 치기로 했다.
이 정도로 마음속 결론을 내린 후, 뭔가 다시 보이고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 어찌 보면 섬광탄에 무력해진 채 이상한 생각만 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별걱정은 없다.
관리국의 전술에는 처음부터 한 가지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으니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 축복에서 전투를 담당하는 본체는 내가 아니라 천칭이다. 내 역할은 단지 천칭에 ‘기준’을 제공하는 것뿐!
*
– 이은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다족 보행 로봇! 3대나 되는 거대 로봇이 우리를 삼각 대형으로 포위하자 할아버님 또한 갈 길을 잃고 멈추어야 했다.
분명 저 로봇에 사람의 흔적 따위는 보이지 않았지만, 로봇 상단부에서 튀어나온 기관포가 우릴 조준하는 순간 그 의도는 대화 없이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죽여버리겠다는 뜻.
“그래도 다짜고짜 쏘진 않네요.”
할아버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별로 대단한 힘이 없어 보이니 일단 데려가서 심문하려는 게지. 저놈들도 뭐가 뭔질 모르는 상황이니 나름대로 꽤 답답하지 않겠냐? 우리는 그 의문을 풀어줄 사람이고. 피곤한 일이구나. 잡혀간다고 바로 끝나진 않겠지만, 그 사이 주가 회복하면 사태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와 할아버지가 복잡한 고민을 시작하려던 때, 갑자기 엄청난 빛과 소음이 들려왔다!
…
모든 세상이 멈췄다.
너무 강한 빛에 사람이 노출되면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그냥 온 세상이 빛으로 가득 차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체감상 10분 정도는 흐른 것 같은데 섬광탄에 맞은 상태로는 시간 감각조차 이상해져서 정확히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가 다시 할아버지 손에 들려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아버님은 요원이시라 조금 더 일찍 정신 차리셨나?
“대체 뭐죠?”
“이제 정신이 들었구나. 상황은 나도 모르겠다. 정신 차렸을 땐 로봇들이 다 사라졌더라.”
“엘레나!”
“뭐?”
“저기 엘레나 안 보이세요? 엘레나가 하늘에서 벼락을 여기저기 던지고 있어요!”
간신히 상황을 파악했다. 분명 관리국 군대 앞에서 무력해졌던 엘레나가 다시금 굉장한 힘을 얻어 날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헛웃음을 지었다.
“은솔이 네 눈엔 저게 엘레나로 보이는 모양이지만 내 눈엔 그냥 노란 점만 보인다.”
나는 대답 대신 할아버님 손에서 내려와서 달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엘레나는 아까 전 까지만 해도 관리국에 대해 정의의 축복을 쓰진 못하고 있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상황 파악은 나중에 나가서 천천히 물어보면 될 일이다. 정신없이 구교사 건물을 향해 달렸다.
한없이 달려서 구교사 내부로 진입, 1층에 위장용으로 설치된 휘장을 걷고 지하도시로 통하는 통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통로 내부엔 아우렐리아가 있었다.
“… 혼자 지하도시로 간 줄 알았는데 우릴 기다리셨나요?”
“10분 정도는 여러분을 기다려볼 생각이었습니다. 상황이 혼란스럽긴 하나 새롭게 선 자의 사도시라면 어렵지 않게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고전하셨군요.”
마치 우리를 질타하는 듯한 싸가지 없는 말투. 원래부터 딱히 동료도 아니긴 하지만 이 여자가 진짜!
“사소한 일에 미리 힘을 뺄 필요는 없지. 어차피 너도 혼자 주를 보는 것이 두려워서 우리를 기다렸던 것이 아닌가?”
페로 가인이의 비꼬는 듯한 대답에 아우렐리아는 별다른 반박 대신 그냥 뒤로 돌아서 걷는 쪽을 택했다.
한참 동안 지하도시를 걸어가며 생각했다. 아우렐리아를 포섭해서 데려오기로 온 판단은 적절했다. 이 장소에서 우리는 도저히 길을 찾을 방법이 없다.
원래도 지하도시의 구조는 전혀 모르긴 했지만, 최소한 도시 내에 조명은 충분했고 환기도 잘 되었다. 그러나, 얼마 전 주에게서 탈출하다가 엘레나가 일으킨 지반 침하로 인해 지하도시는 말 그대로 붕괴한 상태다.
방호복의 헤드램프 기능을 써서 최소한의 빛은 확보했지만, 그것뿐이다. 사방이 무너진 폐허나 다름없으니 내 눈으로도 어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오로지 도시 전체의 지형을 꿰뚫고 있던 아우렐리아만 아무 일 없다는 듯 걸어 나갔다.
…
“어디로 가는 중이야? 주가 어디 있는지 짐작해?”
“어제부터 생각했답니다. 여러분의 말에 따르면 아버님은 여러분의 일행이었던 소년의 몸에 강림하셨는데 그 몸이 빈사에 빠진 상태죠.”
“강림이라기보다 몸 도둑질이라고 생각하지만, 상황은 네 말대로지.”
“빈사에 빠진 몸을 회복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지반이 무너진 이 장소에서 그나마 가장 안전한 장소겠지요. 또, 아버님의 힘이 가장 강하게 깃든 장소일 필요도 있을 테고.”
“지하도시 내에 무슨 신성한 장소 같은 게 있는 모양이지?”
“비슷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 도시 전체가 아버님의 성역(聖域)이지만, 성역 내에서도 특별히 더 성스러운 장소라고 해두죠.”
성역 내에서도 특별히 더 성스러운 장소, 성역 중의 성역.
… 그 신성한 존재를 무너트려야 하는 우리로선 적의 아가리에 직접 들어가는 느낌이다. 정말 괜찮을까? 가인이에게 계획에 관한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30분 가까이 이동한 끝에 기묘한 통로로 들어오는 순간, 이 장소임을 느꼈다. 모든 설비가 붕괴한 지하도시와 달리 이 통로부터는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로에 진입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체불명의 소녀가 나타났다.
“정말 당신들이 여기까지 왔군요. 아아…. 세상일이 모두 위대한 분의 손 위에 있으니, 그분의 예측은 틀리는 법이 없으십니다.”
12세? 13세? 고작해야 1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녀의 몸에선 알 수 없는 광휘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아우렐리아가 앞으로 나섰다.
“성아야, 아버님께서 네게 힘을 내리셨니?”
“아우렐리아. 말을 함부로 낮추지 마세요. 모든 이의 아버님께서 제게 계시를 내리셨어요. 이제 제가 교단의 새로운 기둥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표정엔 한없는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이제야 ‘아버님’이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성녀를 세웠음을 인지한 아우렐리아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옆에서 페로 가인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주 이 새끼도 참 대단한 놈이네요. 이 와중에 ‘형사 미성년자 성녀’라니. 저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어요?”
할아버지는 헛웃음을 지었다.
“엘레나가 기어코 여기까지 올지 모른다 생각했나? 꼬마야, 너 보나 마나 초등학생이지?”
‘꼬마’라는 말에 발끈한 소녀의 몸에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아우렐리아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잠깐, 성아야. 나는 너랑 싸우려 온 게 아니야.”
“무슨 말씀이시죠?”
“나는…. 나는 그저 아버님께 의문을 여쭈려고 찾아왔어.”
새로운 성녀라는 소녀의 표정에 대놓고 비웃음이 실렸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아버님이 당신이 자격이 없다고 여기신 거예요! 대체 무슨 의문은 의문이죠? 감히 모든 이의 아버님을 당신의 모자란 머리로 헤아리려 들고, 의문을 품는 사실 자체가 당신의 부족함입니다.”
아아~! 주 이 새끼가 아우렐리아는 머리가 굵어져서 말을 잘 안 듣는다 싶으니까 더 미친 꼬맹이를 새로운 성녀로 들였구나. 어지간한 새끼다.
이 와중에도 아우렐리아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 성아, 아니 성녀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옳습니다. 다만 저는 제 의문을 단 한 번이라도 풀고 싶습니다. 설령 그 후에 절 죽이셔도 좋습니다. 성녀님, 아니 아버님! 지금 이 아이의 눈을 통해 절 보고 있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한평생을 당신에게 바쳤답니다. 잠깐의 대화조차 하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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