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19)
218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 Re (12) Fin(?)
– 엘레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하지만 지상은 사방이 부서진 기계들로 가득해서 발 하나 제대로 디딜 장소가 없다.
부수고 또 부쉈다. 대체 얼마나 많은 기계를 부쉈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날 죽이기 위해 관리국이 보낸 병력이 대부분 무인 병기였다는 점이다. 그 많은 기계 사이에 사람은 고작해야 10명도 되지 않았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지하도시가 붕괴한 후, 관리국은 이 ‘호텔고’에 관한 정보를 나름대로 수집한 결과 수상하기 짝이 없는 학교라는 사실을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또, 호텔고에서 날뛰는 나에게 사람의 정신을 홀리는 마력이 있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좋아. 다 때려 부순 나로선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홀가분할 뿐이니까!
축복도 다 썼고, 불길한 상상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 따라서 몸에 힘이라곤 한 올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아까 하늘로 날아가며 이 방 밖으로 나간 가인 씨를 봤기 때문에 마음은 편안했다.
그러면 이제 난 어떻게 할까….
바닥에 떨어진 총 한 자루를 집어 들고 바로 자살할까 하다가 뭔가 아쉬워서 지하도시 쪽으로 이동했다. 어린 소녀를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으흑! 흐으윽! 으아아앙!”
“얘, 왜 그렇게 울고 있니?”
멍하니 날 돌아본 소녀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서렸다. 날 아는 걸까? 하기야, 이 장소에서 그렇게 요란하게 싸웠으니 알아보지 못하는 게 이상할지도.
“너! 너희가, 너희가 아버님을!”
“아버님? 주에게 무언가 일이라도 생겼나 봐?”
짐작은 갔다. 모르긴 몰라도 가인 씨의 몸을 강탈하기 위한 계획은 그에게도 매우 많은 힘을 투자한 일이었을 터다. 그 계획이 실패한 지금, 적어도 ‘두 번째 시도’에서는 주에게도 남아있는 여력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 상황이 이 소녀에겐 신의 소멸처럼 받아들여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주는 소멸하지 않았다. 104호가 남아있는 한 그에게도 여전히 기회가 남아있으니까.
“나는 아버님의 딸이야! 내가 있는 한 교는 -”
그 뒤로 소녀가 어쩌고저쩌고 징징거리는 말은 무시하고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내가 이 방에 더 남아있을 이유가 있을까?
가인 씨는 탈출했고, 경찰에 잡혀간 승엽이를 빼면 동료들은 다 죽은 상태다. 하지만, 적에게도 더 이상 남은 전력은 없는 듯하다. 어쩌면 눈앞의 이 소녀만 죽이면 해결일지도?
…
한 가지 고민이 머리에 남았다. 유산, ‘신성한 태양’은 주가 만들어낸 또 다른 자기 자신. 그는 그 유산을 가인 씨가 얻어서 밖으로 나가길 바랐다.
그렇다면, 가인 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유산을 얻으면 대체 무슨 일이 생길까?
적어도 주가 바라지 않는 결말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주가 바라지 않는 결말이 곧 우리에게 좋은 결말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가인 씨가 아닌 다른 사람은 그 유산을 감당할 수 없어서 즉시 타죽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 주에게는 최악의 결말이겠지만, 우리에게도 최악인 건 마찬가지다.
이런 극단적인 가정은 터무니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산’이란 이러니저러니 해도 호텔이 우리에게 주는 보상이다. 그 보상이 주어지자마자 얻은 참가자를 태워죽인다고? 호텔이 그런 식의 이상한 보상을 허락할 리는 없겠지.
모르겠다. ‘신성한 태양’을 가인 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얻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어. 이런 때 ‘조언’이 있으면 도움받을 수 있을 텐데.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
두 번째 시도, 다사다난하고 험난했지만 우린 결국 주의 모든 계획과 수를 알아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면 우리가 훨씬 유리한 상황에서 방을 진행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이 신성한 태양을 얻었을 때의 위험성은 가인 씨의 ‘조언’을 통해 물어보면 나름의 답을 얻을 수 있겠지?
이 상황에서 굳이 지금 불확실함과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신성한 태양이 정 아쉽다면 그때 다시 104호로 돌아오도록 하자. 물론 탈출 버튼은 이제 사라졌으니 지금보다 더 강해질 필요가 있겠지만!
— 탕!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8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방 바깥에서 퍼뜩 정신을 차리는 순간, 내 눈이 제일 먼저 향한 장소는 다름 아닌 상태창이었다.
‘현자의 조언 : 3’
드디어 상태창에 걸렸던 페널티가 사라졌다!
과정은 험난했지만 페널티를 104호에 몰아넣고 버리는 패로 쓰자던 아리의 계획이 나름대로 성공한 셈이다. 바로 무엇을 물어볼지 고민해봤다. 몇 가지 질문이 바로 떠올랐다. 물론 동료들과 의견을 나눠 볼 필요는 있겠지.
일어서서 주변을 돌아보자 익숙한 얼굴들이 다들 빙그레 웃고 있었다. 모두와 함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다과 테이블 쪽으로 이동했다. 대화 주제는 당연히 104호였다.
“결국 104호는 탈출로 마무리군요. 해결한 사람은 없는 거죠? 엘레나는 자살로 끝냈고? 승엽아?”
“저도 탈출인데 아리 누나보다 훨씬 빨리 나왔어요!”
“훨씬 빨리?”
“경찰에 잡혀가고 일주일인가 후에 탈출 알림 뜨던데요?”
“아! 그거 알겠네. 우리가 당일 바로 구교사로 쳐들어갔는데, 엘레나가 구교사를 무너트린데다가 다음날은 관리국 무인 병기들과 엄청난 싸움을 벌였거든. 아마 네가 말하는 시점에서 호텔고가 폐교된 게 아닐까?”
104호는 탈출로 마무리를 짓도록 하자. 솔직히 다시 들어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젠 탈출 버튼이 없어서 같은 전술은 쓸 수 없다. 내가 마지막에 주에게 했던 말을 해주자 동료들이 다들 정신없이 웃었다.
“그 와중에 그런 생각도 했어? 그건 좀 지혜로운 해결책이었다고 해줄게! 다만 탈출 버튼이 사라진 건 좀 아깝다. 물론 어차피 때 되면 쓸 물건이긴 했지만.”
아리는 재미있어하면서도 탈출 버튼이 아까운 듯했다. 나도 그 마음은 이해했다.
“하 참! 너도 참 어지간하다. 그런 놈 앞에서 ‘치매 걸렸냐, 우리 사이에 다음이 어딨습니까?’ 이러면서 놀릴 생각이 드냐?”
“형, 솔직히 제가 제일 짜증 났을걸요? 그 미친 새끼가 여기 사람도 8명이나 있는데 기어이 내 몸만 빼앗으려고 온갖 수작을 부리는데 진짜 소름이 돋았네! 악질 스토커가 따라다니는 기분이에요.”
“스토커라. 확실히 그놈이 독한 스토커긴 하지. 그러고 보니 궁금한데, 너 강림 남았냐?”
그 말을 듣자마자 상태창의 한 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강림 : 1]“… 아직 1회 남았네요.”
아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미 한번 써 봤지만 별일 없었잖아? 내 생각에 강림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104호로 들어갈 때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야?”
지금까지 겪은 일과 주의 발언 등을 종합해보면, 주가 내게 강림을 내린 이유는 한가인이라는 인간 자체를 강화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신을 호수라고 칠 때, 호수를 간장 종지에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호수를 담으려면 그릇 자체도 그만큼 커져야겠지. 내 몸의 통제권을 가지고 주와 첫 번째로 충돌했을 때 주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얻은 사악한 깨달음이 온전히 네 재능이라 착각하지 말라!’
마도서의 숙련도와 관련한 내 성장이 믿기 힘들게 빠르다는 아리의 이야기, 언젠가부터 불현듯 느껴지곤 했던 기묘한 초감각, 마지막으로 주의 저 말까지 더하면 답이 나온다. 강림은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성장시켰다.
그렇다면 104호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강림은 별문제가 없는 걸까?
생각이 복잡해지려던 차, 할아버지가 명쾌한 논리로 상황을 정리했다.
“뭘 또 고민하냐? 예전과 똑같다. 평소엔 쓰지 말고 이거 없으면 몰살이다 싶을 때 한번 쓰면 될 일이지. 어차피 못 쓰고 죽으면 이 호텔에서 하염없이 고통받을 테니 그때는 설령 이후에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쓸 것 아니냐.”
“그렇죠.”
고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 말마따나 몰살과 같은 엄청난 위기에 처하면 세 번째 강림 사용에 그 어떤 부작용이 기다린다 해도 무조건 쓸 테니까. 강림에 관한 이야기가 잠시 오간 후, 이번엔 누나가 주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진짜 주 그놈은 너무했어! 무슨 공략집을 보고 온 사람처럼 우릴 공략하려 드는데 너무한 것 아니야? 진짜 다시는 보는 일 없었으면 좋겠네.”
진철 형은 다른 의문을 꺼냈다.
“주 그놈 같은 죄수가 더 있을까요?”
“죄수라 하면 탈출을 꿈꾸는 게 당연할지도? 목적 자체는 오히려 이해가 갔어.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을 유산으로 만들어서 방을 해결한 후 탈출시킨다는 방식이 놀라웠을 뿐이지.”
주처럼 탈출을 꿈꾸는 또 다른 존재. 그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아리가 머리를 붙잡았다.
“아리야? 왜 그래?”
“아니…. 뭔가 비슷한 존재를 한번 만나본 것 같아서. 착각인가?”
비슷한 존재? 아리가 잊은 기억인 건가?
여하튼 주가 아니더라도 탈출을 꿈꾸는 죄수는 더 있으리라는 가설 자체에는 다들 동의했다. 사람도 감옥에 갇혀있으면 탈옥해보려고 발악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데 하물며 신이나 다름없는 호텔의 죄수들이라 해서 다를 리 없다.
즐겁게 오가던 이야기가 어느새 의사 선생님 쪽으로 향했다.
“상현 씨! 아까 전엔 진짜 놀랐다. 난 진짜 상현 씨가 주에게 홀린 줄 알았다니까? 엘레나는 어떻게 생각해?”
누나의 놀리는 듯한 말투에 엘레나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선생님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그때는 조금 당황해서.”
“아닙니다. 오히려 알아채신 분들이 대단하신 셈이지요. 게다가 당시 제 행동을 주가 읽어서 관리국 병기들과 싸워야 했던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제가 사과할 일입니다.”
“아니에요. 어차피 설령 관리국 군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해도 우린 가야 했을 테니까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누나가 갑자기 훅 찌르듯이 물었다.
“상현 씨, ‘주’의 제안을 들었을 때 솔직히 혹하지 않았어?”
모두가 순간적으로 움찔했지만 선생님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 침착하게 답했다.
“요전에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무슨 말?”
“호텔에선 강력한 리더쉽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리더쉽은 초자연적인 힘보다는 지식과 품성 등 사람의 자연스러운 능력에서 발현된 리더쉽이길 바란다고 했었지요.”
“아, 기억나.”
“그러니 주는 애초부터 탈락입니다. 저로선 고민할 여지가 없던 문제입니다.”
잠시 긴장감이 감돌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탁 풀렸다. 우리는 저녁 식사시간이 될 때까지 다과 테이블에서 한참 동안 웃고, 떠들며 즐겁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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