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21)
220화 – 휴식 – Hell’s Hotel Kitchen (2)
– 이은솔
가뜩이나 식자재 상태도 심상치 않은데 요리를 12접시나 먹어야 한다는 말에 충격받았다.
“야!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내가 푸드 파이터도 아니고 12접시를 어떻게 먹어?”
“왜 못 먹습니까?”
이 인간, 아니 괴물이 드디어 미쳤나?
“나보고 공정하게 심사하라며? 뷔페 가서 세 접시 이상 먹어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12접시 먹으라고 하면 먹을 수 있겠냐?”
“아하! 본인의 위장 크기가 부족하다는 말씀이시죠?”
“그거지.”
“그 부분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인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손에서 알약 다수를 꺼내 들었다.
“…”
“한 접시 비우실 때마다 이 약을 드시면 됩니다. 그러면 위장 문제는 싹 해결됩니다. 또, 이전 요리를 먹고 그 요리의 영향이 남아서 다음 접시의 요리 평가에 영향을 끼치는 일도 해결해줍니다. 참고로 모든 요리는 호텔 특제 접시에 담겨서 서빙 될 예정이므로 앞의 요리를 먹는 사이에 뒤 요리가 식거나 맛이 떨어질 일은 없습니다.”
새삼스레 그런 약, 그런 접시가 세상에 있을 수 있겠냐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호텔인데 그러려니 하면 된다. 그보다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는 주방에서 만들어진 요리를 12접시나 꾸역꾸역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 말았다.
“형! 소는 원래 다리에도 코가 있어요?”
“와 미치겠네! 승엽아! 그거 좀 버리라고 했잖아!”
“언니, 버섯은 원래 움직이나요?”
“에에엣! 송이야 그거 버섯 아니야!”
“이거 내가 먹을 필요는 없는 거지? 다행이네.”
“은솔이가 먹는 거래.”
가인아 제발! 내가 먹을 필요 없으니 다행이야? 음식을 보기도 전에 이미 비위가 상했다고!
“상인~~! 상인~~!”
“오호? 김아리 참가자, 하실 말씀이라도?”
“요리 시간 좀 늘려줘. 재료가 이상해서 손질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 앗! 방금 새우가 둘로 쪼개지더니 안에서 또 새우가 나왔어!”
“호텔 특산물, ‘분열 새우’입니다. 시간 연장의 경우 참가자 전원의 합의가 있다면 -”
“모두 동의했어.”
요리 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늘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먹을만한 음식이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분열 새우’ 같은 것 말고 그냥 새우가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1시간 30분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
요리 시간이 끝난 후, 동료들이 8개의 접시를 은빛 뚜껑으로 덮은 채 모여들었다.
— 덜컥! 덜컥!
“…”
“허허! 박승엽 참가자? 요리가 무척 신선한 상태군요?”
“이상하게 때려도 때려도 죽지 않아서요.”
“그래서 그냥 접시에 담아서 왔습니까?”
부처님! 제가 수행이 너무 부족했나요?
“이은솔 셰프.”
“…”
“이은솔 셰프?”
“응….”
“평가를 위해 모자를 써 주시지요. 솔직한 평가에 도움을 줄 겁니다.”
모자? 그러고 보면 이 자리에 도착했을 때부터 탁자 위엔 모자가 있었다. 모자에도 무언가 의미가 있을까? 아니면 의미 없는 컨셉질? ‘솔직한 평가에 도움을 준다’는 건 또 무슨 말이지?
“참가자 여러분, 제가 호명하는 순으로 요리를 들고 오시기 바랍니다. 먼저 김묵성 참가자분?”
할아버지의 이름이 불리자 마음이 안정됐다. 지난 몇 달간 대화하다가 느꼈지만 할아버님은 세상 경험이 많고 요리에도 나름대로 조예가 있는 분이니까!
과연, 내 앞에 놓인 접시는 뚜껑이 열리기도 전에 이미 괜찮은 냄새가 났다.
“할아버님 이 요리는 뭔가요?”
“보면 안다. 그냥 해물찜이니 걱정 말거라.”
그 말대로 접시 안에 담긴 음식은 다양한 조개와 문어, 생선이 적절히 담긴 해물찜이었다. 대량의 음식을 먹어야 하는 날 위한 배려일까? 요리의 양이 무척 적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
“어떻게 평가해?”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할아버님! 수고하셨어요. 제 점수는요~!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 해물 비린내도 전혀 없고, 간도 괜찮고 감칠맛과 풍부한 맛이 잘 살아있었어요. 조개의 씹히는 맛, 국물의 시원함도 모두 훌륭했습니다.”
할아버님이 내 말을 듣고 갸우뚱했다.
“내 나름대로 해물찜 실력에 자신 있다 보니 8점이 뭔가 아쉬운 느낌인데…. 맛도 좋다면서 2점이 깎인 이유를 물어도 되겠냐?”
대답하기 전, 갑자기 옆에 있던 상인이 끼어들었다.
“김묵성 참가자!”
“…”
“셰프님께 존칭을 쓰시지요.”
“… 2점이 깎인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쉬웠다.
“문어가 너무 싱싱해서요.”
젓가락으로 들어 올린 문어는 분명히 새하얗게 다 익었는데도 다리가 느릿하게 꿈틀거렸다. 평소 산낙지도 즐겨 먹은 내가 아니라면 이걸 보기만 해도 토했을 게 분명해!
“아니 저 문어 새끼는 내가 대가리랑 다리를 다 잘라서 20분을 끓였는데 왜 안 죽어?”
옆에서 상인이 한 마디 훈수했다.
“허허! 참가자분, 호텔 특산 문어는 열기에 아주 강합니다. 다만, 냉기에 약하므로 사전에 동결 처리를 거쳐 죽인 후에 -”
“진짜 지랄 좀 하지 마라!”
할아버님이 한참 투덜거리며 테이블을 벗어났다. 옆에 놓인 알약을 먹자 신기하게 배에 음식이 들어간 느낌도 싹 사라지고 입이 청량하게 씻겨졌다. 이제 다음 차례다.
다음 접시를 들고 온 사람은 엘레나였다.
“후! 다른 분들은 기묘한 재료를 골라서 고생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저 창고의 모든 식자재가 이상했던 건 아니에요. 전 평범한 식자재 위주로 넣어서 요리했으니 언니 마음에 드실 거예요.”
듣기만 해도 안심된다.
엘레나가 내민 접시에 담긴 수프의 분홍빛을 보자마자 정체를 알아챘다. 다름 아닌 동유럽 전통 수프인 보르시다. 이 특유의 분홍색은 서양 사탕무의 일종인 비트로 붉은색을 내고 여기에 생크림을 발효시켜 만들어지는 스메타나(사워크림)를 넣어서 나오는 색이지.
엘레나 말대로 평범한 식자재만 썼는지, 수프 안에서 헤엄치는 오징어가 나온다거나 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천천히 숟가락을 움직여 접시를 비웠다.
“엘레나, 우선 재료가 좋아서 가산점을 줄게. 꿈틀거리는 양파 같은 게 없어서 좋았어.”
“고마워요!”
“레시피는 어머니께 배운 거야?”
“꼭 그런 건 아니고 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워낙 많이 먹는 음식이거든요.”
“다른 사람에게도 여러 차례 해줬겠네?”
“네. 아버지에게도 몇 번 해드렸고 한국에서 사귄 친구들에게도 해줬어요.”
“다들 좋아했어?”
“그럼요.”
“안타깝네.”
“예?”
“다들 엘레나 얼굴 보고 진실을 말해주지 못했구나. 아니면 보르시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원래 이런 기이한 맛인가 보다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네. 미안한데, 난 보르시 먹어봤어. 레시피를 어머님께 배운 건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다. 사실 어머님도 이걸 드시면 놀랄 테니까.”
“예? 예?”
“재료는 아주 좋고, 플레이팅도 깔끔하고, 날 배려하는 마음도 느껴져. 다 좋은데 딱 하나가 없네. ‘맛’. 앞으로도 보르시는 친한 사람에게만 해주도록 해. 그 사람들은 앞으로도 말없이 이걸 다 먹을 테니까.”
“에에에에!”
“내 점수는 5점이야. 자 저리 비켜. 다음 사람!”
한참 동안 이어진 내 신랄한 평가에 엘레나는 충격에 가득 차 입을 딱 벌리고 동료들도 어질어질한 표정을 지었다. 곧 나도 어질어질해졌다.
“으아아아아아! 이거 뭐야? 야 상인! 이거 뭐냐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방, 방, 방, 방금 요리를 먹자마자 내 입이 저절로 움직였어!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을 고르는 중이었는데 -”
“허허! 제가 모자를 드릴 때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솔직한 평가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죠?”
“그게 대체 무슨 -”
“호텔은 항상 학연, 지연, 인맥 등이 참가자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방해하는 일을 우려합니다. 나와 좀 친하다고 좋게 말해주고, 사이가 나쁘다고 독설을 날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나는 말문을 잃고 말았다!
다음으로 송이의 접시가 내 앞에 놓였다. 조금 전 내가, 아니 이 미친 모자가 엘레나를 울리는 일을 실시간으로 봤기 때문인지 송이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어, 언니. 제가 원래는 김치볶음밥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김치가 없었어?”
“네에엥…. 김치도 없고, 고춧가루는 있는데 고추장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뭐야? 김치 대신 배추? 양념은 간장?”
“네. 배추 간장볶음밥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근본 없는 요리 그 자체네.”
“…”
접시를 비웠다.
“일단 재료가 꿈틀거리지 않아서 그건 좋네. 볶은 정도도 그럭저럭 적당해.”
“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너, 이거 맛을 보긴 했어?”
“예?”
“배추가 바닷물에서 헤엄치다 왔니? 이렇게 짠 볶음밥은 살면서 처음 먹어본다! 게다가 계란 후라이 상태는 뭐야? 겉이 다 탔잖아! 석기시대 사람도 너보단 불을 잘 다뤘겠다!”
내 고함을 들으며 송이는 어디론가 날아갈 것 같은 애처로운 표정을 짓다가 총총거리며 도망갔다. 점수는 4점이었다.
혼돈으로 가득한 주방! 다음으로 접시를 들고 온 사람은 아리였다.
“난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을게.”
접시를 열자 나타난 건 비프스튜였다.
딱 한 숟가락을 삼키자마자 모자가 끊임없이 불어넣던 알 수 없는 독설의 기운이 사라졌다!
살살 녹을 정도로 부드러운 고기, 월계수 잎에서 나는 향긋한 향과 입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여러 채소까지! 기름지면서도 풍미 가득한 스튜 국물은 양이 겨우 이 정도 뿐인 게 아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감칠맛이 가득하다.
“아, 아리야!”
“응?”
“엄청 맛있어! 이거 뭐야? 아주 맛있는데? 요리사로 일한 적도 있어?”
“후. 제 점수는요?”
“말할 필요도 없이 10점! 10점이지. 살면서 이런 요리는 처음 먹어봐.”
아리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얘는 진짜 어디서 요리라도 배운 걸까? 뭘 해봤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동료긴 하지만 이건 너무 엄청난데?
농담이 아니다. 한 숟갈 한 숟갈을 먹을 때마다 흡사 머리에서 번개가 치는 기분까지 들었다! 어떻게 이런 요리가 나올 수 있지? 이래 봬도 귀한 집 자식이라 어릴 때부터 비싼 음식 많이 먹어봤지만, 그 음식들과도 비교가 어려운 –
… 이게 말이 되나? 30년 동안 비프스튜만 갈고닦은 전업 셰프도 아닌데?
“이의 있습니다!”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들었다. 가인이가 손을 들고 있었다.
“제가 아까 봤는데 -”
“조용히 해!”
“아리 네가 조용히 해. 가인아, 말해봐.”
“아리가 아까 요리 완성하기 직전에 자기 피를 넣었어요. 분명 오래된 피의 힘을 쓴 사악한 술수가 있으리라 봅니다.”
… 다들 멍한 표정으로 아리 쪽을 바라보았다.
“에잇! 변호 타임!”
“… 말해봐.”
“이 요리대회는 음식이 맛있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야? 아니에요? 내 피를 넣지 말라는 말은 없었는데?”
“아니 그건 상식선에서 -”
“이 세상 어디에도 발만 남아도 살아있는 소고기로 요리하라는 장소는 없잖아! 호텔의 상식에선 내가 맞을지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 혼란을 가중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흠. 그 말은 맞는 말이군요.”
“맞긴 뭐가 맞아?”
“Hell’s Hotel Kitchen의 규칙에 유산을 쓰지 말라는 내용은 없긴 합니다. 저도 그 부분을 금지하진 않았군요. 게다가 호텔의 재료는 본래 다소 ‘특별한’ 재료들이니, 아리 양의 피는 ‘본인만의 특수한 비밀 재료’로 볼 소지가 있습니다.”
이 요리대회는 미쳤나 봐. 조금 전에 호텔은 ‘학연, 지연, 인맥’ 같은 요소를 배척한다고 하지 않았어? 학연·지연은 배척하지만, 유산을 통한 세뇌는 허용하는 요리대회. 훌륭하다.
“게다가 은솔 셰프가 이미 점수까지 10점이라고 밝혔으니 심사는 끝났습니다.”
“하핫! 들었죠? 가인아! 항의하려면 미리 했어야지.”
“와! 진짜 세상이 미친 것 아닙니까?”
세상은 아니고 호텔이 좀 돌긴 했다. 멍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뭐 좋아. 알겠는데 다음에 또 피 넣으면 그땐 0점 줄거야.”
“네~!”
“다음!”
다음으로 내 앞에 놓인 것은 가인이의 접시였다.
— 덜컥!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주 싱싱한 요리’가 나올듯한 불길한 예감이!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