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23)
222화 – 보상 확인, 202호 진입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9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혼란스럽기 짝이 없던 요리대회가 끝났다. 자연스레 모두의 관심사는 요리대회의 보상, 아리가 얻은 유리병과 누나가 얻은 모자로 향했다.
유리병에는 깨알같이 작은 글씨가 적혀있었다.
‘싱싱 보온병 : 신선도가 중요한 식자재를 보관해주세요!’
무슨 도구인지는 설명을 보자마자 알았다. 내부에 보관하는 물질의 신선도를 유지해서 상하지 않게 해주는 병이다. 송이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질문했다.
“어디에 쓰는 도구일까요? 마실 것 보관? 저주의 방 중에서 물을 구하기 힘든 방이라도 있는 걸까요? 그 방을 대비해서 미리 식량을 담아가야 하나?”
아닌 것 같다.
“식량을 담는 용도로 쓰기엔 너무 작아. 그냥 보온병 크기잖아? 아무리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담아도 우리 일행이 한 끼 먹기도 힘들 텐데.”
다른 사람들도 몇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진철 형은 어쩌면 저주의 방 어딘가 우리가 특정한 액체를 보관해야 하는 시나리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냈다. 그럴듯했지만, 그 특정 방 하나만을 위한 도구가 호텔의 특수이벤트에서 나왔을 것 같지는 않다.
당장 내일 저주의 방에 들어가야 하는 만큼 도구의 사용법을 빠르게 알아낼 필요성을 느껴서 조언을 썼다.
[조언 : 3 -> 2] [식자재란 통상 생물이다. 사람도 생물이다.]조언을 전해 들은 아리가 반쯤 입을 벌리며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신선도’, ‘식자재’라는 단어의 의미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보다 포괄적인 모양인데?”
“뭐?”
“단순히 세균 번식을 막는 식품의 신선도 개념을 넘어서 액체에 담긴 마법적인 힘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주는 모양이야! 조언의 내용은 ‘네 피를 담아라.’라는 말로 들렸어.”
그 말을 듣자 동료들도 순식간에 아리가 떠올린 발상을 이해했다.
“병에 네 피를 담을 생각이야?”
“내 피는 본래 내 몸에서 벗어나면 순식간에 유산에 의한 힘을 잃어. 하지만 이 병에 있다면 다를지도 몰라.”
그 말과 함께 아리는 주사기를 꺼내서 천천히 피를 담기 시작했다. 과연 호텔 물건답게 식자재 보관용 도구조차도 피비린내가 나는 사용법이 있다.
그 광경을 보며 진철 형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그 병에 아리 피를 담아서 우리가 포션처럼 쓸 수 있는 건가?”
실험 결과는 진철 형의 희망과는 다소 달랐다. 대체로 소유자가 정해진 호텔 도구들은 주인이 쓰는 경우에만 초자연적인 성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유리병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병에 담긴 아리의 피는 병이 아리 손에 있는 동안에는 장기간 오래된 피의 힘을 유지했으나, 병이 우리 손으로 넘어오자 급속도로 평범한 피가 되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병의 용도를 이해했다. 자기 몸 안에 있는 피만 쓸 수 있던 아리에게 추가적인 피 용량 500mL를 제공하는 것!
오래된 피는 유산을 쓸 때마다 실제 피를 소모한다. 이 특성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피의 양은 오래된 피의 위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이것이 아리가 ‘더 큐브’에서 목이 잘렸을 때, 또 ‘호텔고 2차전’에서 자살한 후 평소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을 쓸 수 있었던 원리이다.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몸에 있는 피 전체를 썼기에 가능했던 위력인 셈이다. 이를 고려하면 저 병은 아리에게 꽤 유용한 도구이다.
쉽게 결론이 나온 유리병과 달리 모자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모자에는 설명서도 딱히 없네요?”
“효과 중 한 가지는 알았어.”
누나가 얻은 셰프 모자의 특성 중 한 가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쓰고 있는 동안 누나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할 수 없으며, 속마음 그대로를 ‘조금 독하게’ 쏟아낸다.
…
이게 대체 무슨 효과야? 이거 장점 맞아? 결국 참지 못한 누나가 짜증 섞인 분노를 토해냈다.
“야! 이게 뭐야? 그냥 내가 욕쟁이 아가씨가 되는 게 성능 전부야? 이걸 어디에 쓰라고 준 거야? 이 개 xxx-”
“누, 누님, 일단 모자를 벗고 이야기하시죠.”
“… 다들 미안. 이상하게 이 모자만 쓰면 입에서 욕이 나오려고 하네. 대체 어디에 쓰라고 만든 거야?”
모자를 쓰면 진실만 말해야 하고 말에 자꾸 욕설이 섞인다. 이 자체는 ‘적에게’ 발생시키면 제법 유용한 효과긴 하다. 욕설이 섞이는 건 황당하지만 상대를 당황하게 하는 효과는 있을 테고, 진실만 말하도록 강제하는 효력은 심문 등의 상황에서 아주 유용한 성능이니까.
문제는 호텔 도구들의 특성상 주인이 아닌 타인이 사용할 때는 효과가 없다는 점에 있다. 누나 대신 우리가 모자를 썼을 때는 앞서 말한 모든 효과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하얀 모자로 변해버린 것. 이쯤 되자 누나는 모자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도 조금씩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휴식일, 점심 즈음 요리대회도 끝났으니 시간은 많이 남았고 할 일도 딱히 없었다. 조언도 남은 두 개 모두 아낌없이 털어 넣었다.
저녁 무렵, 우리는 마침내 이 기묘한 모자의 실체를 이해했다.
“신기한 모자네요. 분명히 유용한 상황이 나올 겁니다.”
은솔 누나는 더 이상 모자에 대해 불평을 표하지 않았다.
— 털컥!
점심시간 이후로 볼 수 없었던 소년이 105호에서 ‘탈출’했다.
“살, 살았다! 진짜 살았다!”
“승엽아? 진짜 그 닭 다 먹은 거야? 절대 못 먹을 줄 알았는데.”
승엽이는 대답 대신 페로를 껴안고 정신없이 뽀뽀했다. 앵무새는 매우 귀찮아하며 부리로 승엽이를 찍은 후 날아갔다.
“페로가 대신 먹어줬어요!”
다행히 저주의 방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승엽이가 105호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늦은 밤, 우리는 내일 202호에 진입하기로 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에…. 이 분위기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상태창 기준으론 오늘이 호텔에 들어온 지 100일 차라고 하네요.”
저주의 방에 들어가기 직전이라 모두에게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리가 대답했다.
“별 의미 없지 않아? 어차피 모두가 서로 다른 시간을 보냈으니까. 네 상태창은 네가 방에서 죽고 나면 더 이상 시간을 세지 않던데.”
“그건 맞아. 그냥 해본 소리야.”
엘레나가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이번엔 누가 봉인 당할까요? 또 가인 씨?”
“그럴지도요. 똑같은 사람이 두 번 봉인 당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없었죠.”
할아버지는 살짝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글쎄다. 이번엔 다른 사람일 것 같은데. 물론 그냥 감이지만.”
어제 모자의 힘을 파악한 후, 꽤 즐거워진 누나는 쾌활한 태도로 말했다.
“자~ 자! 이제 들어가자. 각자 필요한 도구는 다 챙겼지? 마음의 준비도 끝났고?”
새삼 더 시간 끌어서 좋을 게 없다. 시간 끈다 싶으면 심심해 보인다며 이상한 이벤트를 열어주는 호텔이기도 하다. 202호의 문이 열렸다.
*
– 엘레나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저 높은 지상, 두 발로 걷는 야만인들의 헤아릴 수 없는 악의!
일찍이 선조들이 저들에게 은혜를 베풀었건만, 은혜를 모르는 짐승들에게 베푼 호의는 처절한 피눈물로 돌아왔노라.
동포들이 겪어온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이 내 머리를 쉼 없이 강타했다.
…
머리가 아파진다. 내 것이 아닌 기억, 사람의 마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억겁의 원한이 내 머리를 깊숙이 파고든다.
[당신은 봉인되었습니다! 스킬, ‘명경지수’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동료들의 도움을 기다리세요.]‘엘레나 이바노바’의 의식이 깊은 곳으로 침잠한다. 의식을 잃기 직전, 모두에게 응원 한번 해주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모두 화이팅!”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부장님, 청성 그룹에서 보낸 자료 읽으셨나요?”
“읽긴 했는데 대체 무슨 주장을 하려는 건지 원!”
“아무래도 대외적인 견해와 실제 입장이 다소 다른 듯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놈의 회장 상판대기를 보려고 직접 가는 중 아니냐. 허 참 그놈이 -”
“부장님, 그래도 청성 그룹에선 조심해주세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회장 아들이 참변을 당한 상황입니다.”
— 삑!
머리 전체를 울리는 알림과 함께 정신이 들었다. 동시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많은 정보량이 우리 모두를 침묵에 빠트렸다.
…
“지, 진철아! 일단 차 좀 세워!”
차를 세운 후, 우리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사람은 다 있는데 한 사람만 없네. 엘레나가 봉인 당한 상태야.”
“무슨 의미일까요? 그 방의 해결을 위한 필수적인 능력의 소유자가 봉인 당한다고 했는데.”
“글쎄…. 상대가 악인이라 정의의 힘이 필요할지도 모르지. 일단 각자 정리 좀 해보자.”
주변을 돌아봤다. 엘레나를 제외한 전원이 고급스러운 리무진에 탑승한 상태였다. 우리는 제법 멋들어진 정복을 입고 있었고, 옷에는 고풍스러운 배지가 온 세상에 광고하듯이 달려 있었다.
‘혼돈 재해 관리국’
‘우리 관리국이요!’라고 온 세상에 광고 중인 멋들어진 정복과 길 가는 사람이 모두 한 번씩 돌아볼 리무진을 관용차로 쓰고 있다는 점은 두 가지 사실을 암시했다.
첫째, 우리는 관리국 요원 신분이다. 둘째, 이 무대의 관리국은 ‘훨씬’ 더 공개적으로 활동 중이다.
순차적으로 정보가 떠올랐다. 나이도 있고, 실제 관리국 요원이기 때문인지 할아버지가 ‘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우리를 통솔 중이다. 우리는 ‘진상을 밝혀내라’라는 임무를 받고 청성 그룹에 파견된 상태.
관리국에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부산 앞바다의 ‘해신 섬’에 살아가는 어인족들이 청성 그룹의 고위층을 다수 살해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 고위층 중 한 명은 그룹 회장의 장남이기까지 했다. 물론 어인족들은 살인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우리는 그 진상을 밝혀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이게 대체 뭐야?”
나와 비슷한 시점에 대략적인 시나리오를 이해한 동료들이 다들 입을 딱 벌렸다! 대체 뭔 소리야?
부산 앞바다에 뭐? ‘해신 섬’? 사람이 아닌 이종족이 대놓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고? 심지어 재벌과 분쟁을 벌여? 분명히 부산이 어쩌고 하는 것 보면 배경이 대한민국인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물 흐르듯이 마구 튀어나와서 다들 말문을 잃었다.
그 사이, 할아버지가 갑자기 핸드폰을 꺼냈다.
“어~! 나 김 부장인데, 회장님은 잘 계시는가? 다름 아니라 우리가 1시간 정도 늦을 것 같아서 말이지. 회장님께 잘 말씀드려주시게.”
모두의 시선이 할아버지에게 향했다. 할아버지는 아리에게 눈치를 줬다.
“내가 해?”
“내가 말주변이 좀 없잖으냐.”
“좋아. 아무래도 시나리오의 ‘배경’에 대한 설명을 해줘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묵성이가 시간을 번 거야.”
다행히 돌아가는 상황을 나름대로 이해한 두 사람이 있었다.
“너희, 관리국의 ‘계파’에 대해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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