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24)
223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관리국의 존재 정도야 안다. 혼돈체, 과거에는 단순하게 악마나 귀신 정도로 생각한 괴물들을 때려잡는 조직이라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일반인의 상식은 딱 그 정도다. 그 안에서 무슨 계파 갈등이 빚어지는지는 당연히 몰랐다.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 아니니까 다들 잘 들어. 관리국에는 크게 세 가지 계파가 있어.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파괴, 격리, 통제’라고 볼 수 있지.”
파괴, 격리, 통제.
“파괴 계파는 가장 전통적인 세력이야. 모든 혼돈체의 전면적인 배제를 목표로 삼고 ‘착한 혼돈체는 죽은 혼돈체뿐이다’라는 관점을 고수하지.”
송이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관리국이 원래 그런 조직 아니에요?”
“더 들어봐. 격리 계파는 파괴 계파의 한계를 인지하며 형성된 집단이야. 이제 너희도 호텔에서 수많은 일들을 겪었으니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너희가 보기엔 우주의 혼돈체를 인류가 다 제압하는 게 가능해 보여?”
… 날갯짓 한 번에 토지와 대기를 뒤집어엎던 나방, 자신 힘의 극히 일부만으로 사람을 천사로 만들던 주와 같은 불가해한 존재들이 머리를 스쳤다.
“답이 없어 보이긴 하네.”
“답이 없어. 현재 인류의 힘으로는 상대할 방법이 없는 혼돈체가 우주에 널렸고 그들 중 지구에 관심을 가지는 존재도 적지 않지. 바로 이 현실 인식에서 격리 계파는 시작해. 우리 힘이 부족함을 인정한다면, 보이는 모든 혼돈체를 적대하는 파괴 계파의 행동은 지극히 위험한 행동이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 원래는 딱히 사람을 해칠 생각이 없던 존재들이라 해도 파괴 계파가 나타나서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면 인간을 해칠 마음이 생기겠지.
“격리 계파의 목적은 단어 그대로 ‘격리’야. 통상적으로는 혼돈체를 인간과 분리하는 게 목적이고, 혼돈체가 너무 강하면 반대로 인간을 떼어내지. 이렇게 서로 나뉘어서 각자 다른 세상을 살게 만드는 게 목적이야.”
듣고 있던 은솔 누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격리하고 싶다고 할 수 있어? 사람이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존재라면 그 ‘격리’도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
“크흠! 은솔아. 네 궁금증을 이해한다만 지금은 적당히 계파의 특성만 이해하렴. 어차피 지금 우리는 관리국에 대한 전반적인 강의를 하려는 게 아니지 않으냐? 지금 이 방, 202호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지.”
할아버지의 태도는 명백히 ‘더 묻지 말라’ 였다.
이럴 거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 말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필요해서 꺼냈으리라. 어쨌든 뒤 문장은 맞다. 우리는 지금 현실의 관리국에 관한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202호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리국을 이해하는 중이니 적당한 수준의 지식만으로 충분하겠지.
하지만 조금 전의 이야기는 신경이 쓰였다. 은솔 누나의 지적은 문명의 힘으로 파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혼돈체라면서 격리는 또 어떻게 하냐는 것. 이에 대한 논리적인 답 하나가 떠올랐다.
관리국에는 알 수 없는 격리 수단이 있다. 강맹한 혼돈체를 죽일 수는 없지만, 인간으로부터 떼어낼 수는 있는 어떤 힘이 있다.
아리의 강의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참고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 격리 계파가 중심이 된 세계라고 보면 돼. 혼돈체와 인간이 서로 모른 체 하며 살아가는 세계, 선을 넘지 않은 존재들은 관리국도 그냥 눈 감는 세상.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관리국의 존재 정도는 알지만, 정확히는 모르는 세계관.”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격리 계파’가 주도권을 잡은 세상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격리 계파가 꽤 유능한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는 이 호텔에 들어오기 전까지 괴물이나 악마는 TV에나 나오는 줄 알았을 뿐, 세상에 괴물이 이렇게 많은지 전혀 모르면서 평온한 일상을 살아왔으니까.
“이제 202호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여긴 딱 봐도 답 나왔어. ‘통제 계파’가 주도권 잡은 세상이야.”
파괴 계파가 가장 오래된 세력, 격리 계파가 파괴 계파의 한계를 느끼며 나온 그다음 세력이라면.
“통제 계파는 가장 최신의 세력, 가장 급진적인 집단이야. 이들은 혼돈체를 배제하거나 격리하려는 관점 자체가 ‘낡았다’라고 판단해.”
“배제, 격리 자체가 낡았다?”
“그들은 혼돈체, 나아가서 이들이 다루는 힘의 근원을 연구하고 초자연적인 힘 자체를 사람의 ‘통제’하에 두고자 하지. 더 많이 나아간 집단은 아예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선 존재로 변혁시켜야 한다고 믿기도 하고, 또 어떤 집단은 이종족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추진해.”
할아버지가 살짝 끼어들었다.
“사실, 통제 계파 역시 근본적으로는 사람의 존속을 꾀하는 집단이다. 다만, 존속을 위해 ‘다양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예컨대, 인류에게 호의적인 외계 신을 찾아낼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든든하겠느냐? 물론 절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차피 관리국이 하려는 일 중 쉬운 일은 없다.”
여기까지 들은 누나가 간단히 정리했다.
“그러니까 지금 202호는 ‘통제 계파’가 주도권을 잡은 세상이다. 그 말이죠?”
“맞아.”
“대충 무슨 소리인지 알겠네. 이종족은 다 죽이라고 하면 파괴, 각자의 영역에서 나눠서 살자고 하면 격리, 함께 살자고 하면 통제. 맞지?”
“아주 거칠게 말하면 그래.”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할게. 내 생각에 관리국이라는 집단이 무슨 ‘모든 지성체에겐 인권이 있다.’ 이런 우아한 소리를 하면서 이종족이 지구에 살게 허락해줬을 것 같지는 않거든?”
“솔직히 그런 사람들은 아니지.”
“왜 지구에 살도록 했을까? 막을 방법이 없어서? 나는 그쪽도 아닐 것 같아. 인류가 막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세력이면 반대로 저쪽에서 지구를 정복하려 들었을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 점 또한 이제부터 우리가 알아내야겠지. 이만 나가자꾸나.”
리무진 밖으로 나와서 청성 그룹 소유의 빌딩으로 걸어가던 중, 나는 ‘통제 계파’가 만들어낸 이종족과 인간이 섞여 사는 세상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점점 체감하기 시작했다.
번화가의 중심, 전광판에선 대놓고 인간형 도마뱀 같은 존재가 무어라 떠들어댔다. 빌딩 1층에는 거대한 조인(鳥人)의 깃털을 관리하는 가게가 있었다.
주변을 정신없이 구경하다가 문득, 무언가와 툭 하고 부딪혔다.
“인간, 위를 똑바로 보고 다녀야지!”
“예? 어? 어? 죄송합니다.”
“대체 정신을 어디에 – 헛, 관리국 분이시군요. 겹눈이라 복장을 알아채는 게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6개의 다리를 가진 대형 거미 비슷한 존재가 불퉁한 표정 – 아마도 그런 표정일 것 같다. 사실, 겹눈이라 무슨 표정인지 모르겠다. – 을 지으며 내게 잔소리하려다가 뜬금없이 사과하고 지나갔다.
…
기묘한 세상이다.
솔직히 좋은 세상인지는 모르겠다. ‘이 무대’의 가치관에선 내가 편협한 생각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202호의 이종족들 조차도 관리국 요원은 꽤 조심스럽게 대하는 듯했다. 적어도 길 가다가 거미와 시비가 붙을 일은 없겠구나.
청성 그룹 18층, 회장실이 있는 장소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후에야 다들 긴장을 풀고 서로를 돌아봤다. 모두가 뭐라 할 말을 잃은 채 이 기묘한 세상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아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느꼈지? 어떤 느낌의 무대인지?”
“…”
“혹시나 해서 말인데, 괴물처럼 보인다고 다른 방에서처럼 다짜고짜 때려죽이면 안 돼. 거미 괴물처럼 생겼지만 어처구니없게도 한국 체류증이나 영주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세상이니까.”
“…”
거미의 손에 들린 대한민국 영주권을 상상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
청성 그룹의 회장, 이문춘에 대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가 약속 시간에 늦었음에도 그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또, 현재 청성 그룹과 해신 섬이 어떤 분쟁을 겪고 있는지 무척 조리 있게 설명해서 우리는 빠르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부동산에 미친 나라다!
결국 재벌과 관리국, 대양(大洋)의 신과 심해의 성녀가 얽힌 초자연적인 갈등의 근원엔 부동산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전면에 나선 은솔 누나가 깔끔히 정리했다.
“회장님, 그러니까 청성 그룹 입장에선 해신 섬의 항구 기반 시설의 소유권은 명백히 청성 그룹에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법리적 분석은 이미 세 개 이상의 로펌을 통해 전문적인 검토를 거쳤으며, 경력 20년 이상의 법조계 전문가 다수가 -”
“회장님, 알건 다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시나요? 이 분쟁에서 법이 별 의미 없다는 사실을 모르시나요?”
“… 모르지 않습니다. 법대로 돌아가는 구조였으면 내 아들이 죽을 일도 없었겠지.”
“어차피 인간의 법 전문가 데려와서 아무리 말 해봐야 해신의 종복들에겐 쇠귀에 경 읽기입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엔 해신 섬은 바다의 신이 ‘만들어낸’ 신성한 땅일 테니까요. 당연히 신성한 땅의 항구, 그 항구에서 파생될 무수한 경제적 효과들도 자신들 소유라 믿을 겁니다.”
“…”
“오해하지 마세요. 그쪽 입장이 그렇다는 말이고, 그들 주장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일 생각이면 우리가 여기까지 왔겠어요?”
회장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요원님, 묘안이 있으십니까?”
“항구의 소유권에 대한 법리적인 이야기야 어인족들에겐 개소리 이상의 의미는 없겠지만, 불가침조약은 다릅니다. 그 조약은 그들의 신이 직접 맺고 신의 피로 도장까지 찍은 계약이니까.”
신의 피로 도장을 찍은 계약. 그 신의 종복들이 이런 위상을 가진 계약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
“결국 회장님 아드님이 놈들에게 죽은 게 확실하다면, 우리가 그 부분의 증거를 밝혀낸다면 이후의 협상은 우리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접 해신 섬을 찾아가실 생각입니까? 놈들은 아주 무식한 놈들입니다.”
“그걸 제게 주의하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 관리국 요원 되는 분께 불필요한 말을 드렸군요. 최선을 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누나가 다소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회장님이 진실로 바라시는 바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무슨 질문이신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처벌입니까? 아니면 항구의 소유권입니까?”
“…”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쩌면 상대가 아드님의 죽음, 불가침조약의 위반을 덮는 대가로 항구의 소유권을 포기하겠다고 할지도 모르니까요.”
어딘가 아득한 표정을 짓던 회장은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 항구. 항구입니다.”
“이해합니다. 요전에 받은 이 번호로 연락드리면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대략적인 이야기를 전달받고 회장실에서 나왔다. 보아하니 해신 섬에 가서 회장 아들이 어인족에게 살해당했다는 증거를 찾아내면 되는 모양이다.
*
회장실을 나와서 리무진으로 돌아오기까지 조용했던 파티는 리무진에 돌아오자마자 시끄러워졌다.
“와! 언니 뭐예요? 아까 아리, 할아버지랑 회의하는 것 같긴 했는데 이런 내용까지 다 이야기한 거예요?”
“은솔이 순발력 엄청 좋네~! 그 많은 문서를 척척 읽어내는 것도 그렇고, 아들보다 항구를 중시하는 회장의 심리를 집어낸 것도 좋았어.”
“전 솔직히 A4 용지가 거의 200장 분량이 오길래 천장만 봤어요. 그걸 어떻게 그렇게 빨리 읽으세요?”
송이와 아리 등이 연달아 칭찬했다. 솔직히 구경하던 나도 대단하다고 느끼긴 했다.
200장이 넘는 문서를 말 그대로 휘리릭 10여 분 만에 읽어서 핵심을 이해하고 법리적인 이야기, 경제적인 이야기도 막힘없이 이야기하다가 회장의 복심까지 툭툭 집어내는 건 어떤 의미에선 묘기에 가깝게 느껴졌다.
모두가 칭찬하는 분위기, 누나는 오히려 어색한 듯 중얼거렸다.
“얘들아 나 원래 대양 그룹 이사야….”
참, 이 누나 원래 재벌 집 높으신 분이었지?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리무진은 도로를 달려 나간다. 그때쯤, 할아버지가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슬슬 그놈의 해신 섬이 보이는구나.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봐야겠지? 한 사람은 탈출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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