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26)
225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3)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새삼스럽지만, 이 해신 섬은 정말 터무니없는 장소다.
처음 부산 앞바다의 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울릉도 정도의 크기인 줄 알았다. 지도를 보는 순간 나를 포함한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해신 섬의 크기는 어처구니없게도 제주도보다도 컸다!
이 무대의 사람들에게야 평범한 상식일 테니 도리어 우릴 보면서 웬 호들갑이냐는 반응이었지만, 우리로선 충격 그 자체였다. 부산 앞바다에 무슨 제주도보다 큰 초대형 섬이 있다는 말인가? 당연하게도 이 섬은 자연적인 지형이 아니다. 이 무대의 역사에 따르면 거의 800년 전, 무려 고려 말 대양의 신이 창조한 섬이라고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무대의 세계와 우리가 아는 역사를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말만 대한민국이지, 사실상 이세계 수준으로 다른 장소다.
저녁 무렵, 우리를 안내했던 어인이 돌아와서 성녀와의 면담 시간이 잡혔다고 알려왔다. 우리는 어떤 논리를 펼쳐서 무엇을 따질지 간략히 정리한 후 출발했다. 출발 직전, 송이가 당황하며 말했다.
“페로가 사라졌어요!”
“무슨 말이야? 페로는 원래 자유롭게 다니는 편 아니야?”
페로는 기본적으로 새다. 우리 중 활동이 가장 자유로운 생물이다 보니 얌전히 송이 어깨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여기저기 날아다니곤 했고, 우리도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필요할 때는 귀신같이 합류해있으니까.
“보통은 그리 멀리 날아가지 않아요. 기껏해야 하늘 공기나 맡는 정도죠. 그런데 20분쯤 전에 정말로 ‘멀리’ 갔어요.”
모두가 잠시 주변을 뒤졌지만 사라진 앵무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필요한 때 알아서 찾아오겠거니 믿으며 성녀와 면담하기 위해 움직였다.
*
성녀의 거처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
“…”
“생각하던 그런 느낌은 아니네요.”
“무슨 성녀니, 어인족이니 하길래 상당히 오컬트적이고 신비주의적 공간에 있을 줄 알았는데.”
성녀는 평범하게 섬 중앙의 현대적인 관공서에 있었다. 심지어 성녀의 방 위에는 다음과 같은 명패가 붙어있었다.
[해신 특별자치도 도지사 세레나데]“도지사네.”
“도지사네요.”
비서의 안내를 받아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신비한 외견이다.
솔직히 섬을 거닐며 보았던 대부분의 어인족은 인간의 관점에선 꽤 흉해 보였다. 이 때문에 성녀 역시 걸어 다니는 잉어가 아닐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목이나 귀 뒤편, 손목 등 몸 여기저기 돋아난 비늘과 귀의 독특한 모양새는 그녀가 인간이 아님을 증명했지만, 세레나데는 분명 대단히 아름다운 생물이었다.
“뭍에서 오신 관리국 분들, 환영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심해의 성녀를 뵙습니다.”
“그냥 도지사라고 불러주시길. 그게 저의 대외적 직함입니다.”
“좋습니다. 서로 바쁠 테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좋아요. 피차 아는 상황이니까요. 먼저 이야기하시죠.”
누나는 천천히 들고 온 자료를 하나하나 펼치며 청성 그룹과 관리국의 주장을 전달했다. 성녀에게 책임을 묻는 측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피해자 이수호의 시신을 검시한 바에 따르면 살인 수단은 분명 초자연적인 저주 혹은 마법이다. 또한 이수호는 사망 직전 해신 섬에 방문했다가 떠났다.
둘째, 이수호를 살해한 초자연적인 힘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대단히 강력하고 사악한 수단임은 확실하다. 바로 그 ‘강력함’이 살인자의 범위를 극도로 한정한다. 이 정도 수단을 쓸 수 있는 존재는 대한민국 내에 일곱 미만이며, 그중 이수호를 살해할 동기가 있는 존재는 심해의 성녀인 당신뿐이다.
말없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세레나데는 차 한잔 마신 후 반박하기 시작했다.
“거창한 이야기 같지만 결국 수호 씨가 강력한 마법에 당해 죽었고, 그 정도 강력한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존재 중 수호 씨를 죽일 동기가 있는 사람은 나 뿐이다. 이 말이 전부 아닌가요? 주장의 전제부터 틀린 것 같은데.”
“전제가 틀렸다니요?”
“사악한 마법을 쓸 수 있는 존재가 일곱 미만이라는 이야기부터 틀렸죠. 리스트 보니까 참사랑교 교주, 일곱 번째 재림 예수, 지리산의 검은 목자 등, 유명한 이름은 다 넣어두셨으면서 정작 제일 유명하고 강력한 집단을 쏙 뺐네요.”
제일 유명하고 강력한 집단?
“당신들 관리국이죠. 이 리스트에 있는 존재들 전부가 눈치 보는 게 당신들 아닙니까. 관리국 내에는 이수호 씨 정도는 손가락 하나로 죽일수 있는 기괴한 존재들이 들끓을 텐데.”
“그게 반박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대체 왜 이수호 씨를 -”
“그러면 내가 이수호 씨를 죽일 이유는 있어요? 죽여서 제가 본 이득이라도 있나요? 그 사람이 죽은 덕에 당신들이 이렇게 쳐들어와서 난리를 치는 중인데. 설마 ‘홧김에’ 같은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내가 그런 머저리라고 생각하진 않으리라 믿어요.”
듣고 있던 할아버지가 픽 웃었다.
“홧김에 일을 벌일 정도로 막 나가는 분은 아니시다?”
세레나데의 예리한 눈동자가 할아버지를 향했다.
“그런 것 치고는 일찌감치 우릴 잡아 죽이려고 트랩을 깔아두셨던데?”
“대체 무슨 -”
“말이 험하게 나가는 걸 이해하시길. 내 목에 칼을 들이댄 족속들에게 친절하게 말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말이지.”
“대체 무슨 말이에요? 무슨 트랩?”
이번엔 아리가 나서서 우리가 아까 전 경험했던 사악한 주술, ‘루 다 바 흐 리’라는 주문에 대해 전했다. 세레나데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그녀는 비서를 불러 오늘의 남은 일정을 전부 취소한 후, 몇몇 직원을 보내 해상도로를 확인하라고 시켰다.
그 상황을 지켜보는 우리의 표정도 동시에 굳었다. 세레나데가 마치 우리에 대한 공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굴며 당연하다는 듯 직원을 해상도로로 보냈기 때문이다.
조금 전, 아리는 우리가 공격받은 장소가 ‘해상도로’라는 말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김묵성 : 속지 마라. 거짓말 중이다.
이은솔 : 개수작이네.
모두의 마음속에서 세레나데에 대한 의심이 한층 커질 때쯤 비서가 돌아왔다. 보고받은 세레나데는 우리에게 사과하며 공격에 대한 피해보상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물론, 그 건과 별개로 살인사건과 자신은 무관하다는 의견 역시 굽히지 않았다. 심해의 성녀와의 첫 번째 면담은 서로의 주장이 평행선을 유지하며 끝났다.
정리해보자.
결국 우리 주장의 핵심은 이수호를 죽인 사악한 힘을 부릴 수 있는 존재는 대한민국에 극소수고, 그 존재 중 죽일 동기가 있는 존재는 세레나데 뿐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이 주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내가 느끼기에도 이 주장은 단순한 정황을 근거로 한 주장에 불과하니까. 세레나데 또한 자신에게 이수호를 죽일 이유가 있겠냐며 반박했다.
하지만 이 섬에 들어오면서 우리가 겪은 공격과 그 사실을 밝히자 세레나데가 보인 수작질까지 더하자 모두의 마음속에서 의심의 불길이 타올랐다.
심해의 성녀, 저 여자는 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고민이 깊어질 때쯤, ‘시나리오 이해’에서 다음 시나리오가 떴음을 알려왔다.
/시나리오 : 저주의 방 – ‘인어공주’
호텔 일행은 세레나데와 면담을 마쳤다. 안타깝게도 심해의 성녀가 감춘 비밀과 이수호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은 그 실체를 드러내는 대신 더 많은 수수께끼 속으로 숨어들었다. 성녀를 흔들기 위해선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마침, 호텔 일행은 섬에 떠도는 성녀에 대한 불온한 소문을 접하게 되는데…./
“불온한 소문?”
“시나리오에 무언가 떴어?”
“성녀에 대한 소문을 찾으라는데? 다음 내용도 그 소문을 찾아야 나올 모양이네.”
우리의 다음 목표가 정해졌다.
*
– 박승엽
탈출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기로 마음먹고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의 표도 끊었다. 가장 빠른 표를 끊었지만 거의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어떻게 보낼까?
마침, 시간을 보내기에 적절한 장소가 터미널 3층에 있었다.
‘소환사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딱 두 판만 하자! 시원하게 2연승하고 승리의 기운을 받으면 분명 큰 행운이 찾아올 것 같아. 아마 그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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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이이발~!!!”
달려라! 미치겠다! 늦었잖아? 와 시발 롤 하다가 버스 놓치게 생긴 거 실화야? 진짜 짜증 난다! 딱 2연승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왜 내 팀에 또 병신들만 걸리는데!
분명 내 잘못이 아니다. 틀림없어. 나는 그냥 두 판, 정확히는 개꿀잼 2연승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내 승리를 가로막은 팀원들이 문제야.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내가 타야 하는 서울행 고속버스의 출발 시간에서 5분 지난 상태!
기사님, 5분 정도는 기다려주실 수 있죠? 그 정도는 별일 아닌 것 맞죠?
넋이 나간 채 정류장이 내려다보이는 2층 창가에 주저앉았다. 이미 출발한 고속버스가 터미널을 나가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 나 진짜 미쳤나 봐. 진짜 오늘은 뭔가 이상해. 아무리 롤을 좋아해도 이게 맞아? 저주의 방에서 탈출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맡아놓고 게임에 빠져서 계획을 흔들었다고? 이거 진짜 혀 깨물고 자살해야 하는 것 아닐까?
급속도로 찾아온 엄청난 죄책감과 자괴감에 허우적거리며 정신이 자살 직전까지 달려 나가던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 콰아아!
파도가 내리친다. 대지가 쪼개지며 솟아오른 바다의 물결이 조금 전 출발한 버스를 내동댕이쳤다. 삽시간에 육지에서 해일이 갑자기 솟아나며 터미널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 쿠르릉! 쾅! 철퍽~!
사방에서 쏟아지는 물결은 흡사 분노에 찬 거인의 손짓처럼 매섭게 몰아치며 주변의 모든 사람과 물건을 흙탕물 속에 묻어버렸다. 엄청난 굉음 속에서 시민들이 내지르는 비명조차 사라졌다.
달리고 또 달렸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하염없이 달렸다. 오른쪽으로 뛰자마자 등 뒤에 광고판이 떨어졌다! 쓰나미가 몰려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위로 가야 한다!
정신없이 터미널의 3층, 4층을 향해 올라갔다. 이미 직원이나 다른 사람들이 열었는지 4층에서 옥상으로 향하는 문도 열려있었다. 수많은 사람과 함께 정신없이 옥상으로 달려 나갔다.
넋이 나간 채 옥상에서 멍하니 주변을 돌아본 후에야 옥상의 모든 이들이 깨달았다.
부산은 지옥이다. 파멸의 순간이 도래했으니, 이 도시에 더 이상 그 어떤 희망도 남지 않았다.
— 고오오오오!
지표를 가르며 일어선 초대형 갯지렁이가 옥상에 모인 사람들을 한입에 집어삼키려 다가오는 순간 만큼은 흡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스펙터클한 광경을 보며 넋이 나갔을 때, 알림이 떴다.
[천운 발동! 이제부터 당신에게 우주의 기운이 깃듭니다.]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