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29)
228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6)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아리를 따라서 관공서를 뒤지기 시작한 후, 새삼스럽지만 우리가 ‘관리국 요원 신분’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수도 없이 느꼈다.
객관적으로 우리 파티를 보자. 섬 바깥에 있는 승엽이와 어인족 관찰을 위해 이탈한 의사 선생님, 봉인 당한 엘레나를 제외하고도 6명이다. 6명이 몰려다니는 행동 자체가 이목을 끌 수밖에 없는데, 심지어 맨 앞에 있는 소녀는 정체불명의 우주복 같은 기괴한 복장을 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런 그룹은 길가에 걸어 다니기만 해도 자동으로 포토존이 형성되어서 시민들이 열심히 찍어서 SNS에 올리지 않을까? 숨어서 뭘 하기엔 최악의 조합이다. 하지만 우리는 관리국 요원이며 이 세계는 ‘통제 계파’ 관리국이 공개적으로 움직이는 무대이다. 따라서 마패나 다름없는 배지가 있는 이상 대부분 상황에선 숨을 필요가 없다.
대놓고 배지를 내밀며 관공서 직원들을 몰아내고 지하로 향했다. 청성 그룹의 인명피해를 조사하러 왔다는 명분도 있다 보니 어인족 직원들은 우릴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너무 요란하다 싶었는지 누나가 불안해했다.
“할아버님, 아무리 그래도 조금은 숨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은솔이 네가 보기엔 가능해 보이냐? 무엇보다 저 방호복이 숨겨질 수 있다고 생각하냐?”
“… 그렇긴 하죠.”
“애초에 온 섬사람들이 우릴 감시 중인데 숨긴 어딜 숨냐? 오히려 이럴 때는 ‘권위’를 휘둘러서 막 나가는 게 맞다. 경찰이나 형사가 항상 숨어다니든?”
송이도 입을 열었다.
“직원들은 그렇다 쳐도 세레나데가 나타나면 어쩌죠? 성녀에겐 정체불명의 초능력도 있는 것 같던데.”
아리가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도지사는 지금 섬 외곽에서 기도 중일 거야.”
“기도?”
“아까 물어보니까 ‘카다루다흐’가 악몽을 꾸는 시기엔 신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성녀가 기도한다고 하더라고. 섬 내에선 매우 중요하고 신성한 의식 취급이더라.”
이렇게 대화하면서 관공서의 지하 1층에 도착한 후, 우리는 잠시 갈 길을 잃었다.
“아리야?”
“… 나침반은 더 밑으로 가라고 하네.”
“지하로 가는 문이 없는데? 구조도에서도 지하 1층 말고 없어. 지하 주차장은 위치상 아닌 것 같고.”
분명 아리의 나침반은 더 아래로 가라고 지시 중인데 아래층으로 가기 위한 길이 없다. 잠시 뱅글뱅글 돌며 시간을 낭비하던 우리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자네, 이리 오게.”
“…”
“내가 끌고 와야겠나?”
할아버지가 아까부터 불안함을 감추지 않은 채 주변을 맴돌던 어인족 직원 중 직급이 높아 보이는 사람을 골라냈다.
“속 시원하게 털어놔. 밑으로 가는 길!”
“오,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도청 건물은 지하 1층이 끝이고 -”
“야! 어차피 털면 다 나오는 것 몰라? 밑에 더 있는 것 알고 왔으니까 당장 주둥이 열어!”
직원은 나름대로 강단이 있었는지 아리와 할아버지의 협박에 저항하는 듯했다. 하지만, 송이가 손짓하는 순간 직원의 입이 딱 벌어졌다.
“아! 아! 아…!”
“송이야, 직원에게 뭘 보여준 거야?”
“바닥이 무너지는 환상. 여차하면 우리가 부수고라도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달까?”
그 의지에 굴복했는지, 아니면 송이가 휘두르는 초자연적인 힘의 위압감에 굴복했는지는 모르겠다. 직원은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으로 우릴 끌고 어딘가로 이동했다.
“성녀님이 돌아오시면 결코 그냥 넘기시지 않을 겁니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당신은 시키는 대로 해.”
엉뚱하게도 지하 1층 아래로 향하는 길은 2층과 연결되어있었다. 이러니까 우리가 지하 1층을 아무리 뒤져도 더 밑으로 가는 통로를 찾지 못했다.
어둑한 통로의 계단을 따라 쭉 내려갔을 때, 직원은 어딘가 두려운 표정으로 물러섰다.
“… 다 알려드렸지요? 이만 떠나겠습니다.”
“가봐라.”
직원이 떠나자 진철 형이 물었다.
“그냥 보내도 되겠습니까?”
“데려가서 어쩌게? 원래 이런 ‘강압 수사’는 나름대로 선을 지키는 게 핵심이거든. 사실 지금도 선을 좀 넘었어. 성녀가 없으니까 가능한 행동이지.”
“그런가요?”
관리국의 권위를 내세우기 시작한 이후로는 모두가 할아버지와 아리의 판단을 따라야 했다. 요원이 해도 되는 행동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감이 나머지 사람들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지하 2층, 혹은 그 아래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동시에 모두가 말문을 잃었다.
*
— 찰박! 찰박!
“대체 도청 지하에 어떻게 이런 장소가 있을까요?”
— 찰랑!
습기 가득한 돌바닥, 발이 바닥에서 떨어질 때마다 물소리가 들려온다. 해신의 딸이 입었던 옷을 추적해서 도청 지하로 들어온 우리는 난데없는 지하 동굴을 마주해야 했다.
“순서상 그 반대지. 도청 지하에 동굴이 있는 게 아니라, 동굴 위에 도청을 건설했다고 봐야 한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도청이 핵심이 아니라 이 동굴이 핵심일 거라는 이야기다.”
— 철벅!
으슬으슬한 분위기, 습기 가득한 동굴. 사방에 이끼가 가득한 데다가 여기저기서 꿈틀거리는 달팽이를 닮은 생물들.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장소다. 그나마 나 혼자 내려온 게 아니라 모두와 함께 내려와서 견딜 만했다. 맨 앞의 아리가 입은 방호복에 장착된 헤드램프의 불빛 덕에 시야는 확보할 수 있었다.
한참 동안 걷던 아리의 입이 열렸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나침반에 따르면 바로 이 근처야.”
“이건 무슨 냄새냐?”
갑작스러운 진철 형의 말에 잠시 멈춰서서 후각에 정신을 집중하자 내게도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한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곧, 다른 동료들도 냄새를 맡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생선 비린내인가?”
“아주 장기간 씻지 않은 노숙자에게 나는 냄새 같기도 한데?”
“상한 고기 냄새 아니에요?”
내 코에는 동료들이 말하는 이 모든 냄새가 뒤섞인 듯했다. 생선 비린내와 장기간 씻지 않은 냄새, 상한 고기와 심지어 배설물 냄새까지 뒤섞인 지옥에서나 느낄만한 지독한 후각 테러!
이 정도면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일종의 정신 공격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였다. 모두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발을 떼지 못하고 휘청이던 그 순간 –
[조언 : 1 -> 0] [즉시 허리를 숙이세요!]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내 허리는 이미 숙였다. 동시에 뒤편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으악! 크아아악!”
모두가 경악해서 고개를 돌리자 진철 형의 손목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손! 진철 형의 손이 어디로 간 거지?
“모두 내 뒤로 숨어!”
아리의 날카로운 외침, 그제야 다들 이성을 찾고 정신없이 ‘방호복’ 뒤로 숨었다.
— 팅!
방호복에서 울리는 요란한 소음. 그제야 조금 전 공격의 실체를 깨달았다. 어두운 동굴 저편에서 보이지 않으면서도 무척 예리한 무언가가 우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동시에, 사방에서 끔찍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우오오오! 키리리릭!
헤드램프가 비추는 방향 바깥쪽에서 헤아릴 수 없는 움직임이 발생했다. 귓가를 찌르는 탁한 소음, 바닥을 기는 질척한 무언가, 동굴 벽면을 타고 오르는 수백 개의 발. 생각만으로 머리를 무겁게 만드는 끔찍한 생물들의 형상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긴장감이 차올랐다.
모두가 전투 태세를 갖추는 와중, 문득 생각했다. 대체 나는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존재들의 움직임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미로의 지옥에서 처음 겪었던 초감각의 일종인가?
“천장! 천장에서 엄청 커다란 녀석이 오고 있어!”
어둠 속의 움직임을 감지한 누나의 외침과 동시에 아리가 팔을 휘저었다.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기세가 천장에서 다가오던 무언가를 갈랐다.
동시에 질척한 액체가 쏟아지며 모두가 한 걸음 물러섰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저 괴물들에게 빙의라도 해야 하나? 하지만 내 눈에는 괴물들의 형상이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나는 내가 저 괴물들의 움직임을 ‘무슨 감각’으로 느꼈는지도 모른다.
옆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뻗었다! 목표는 누구지? 눈으로 보지 않고도 상대가 송이를 노리고 있음을 느꼈다. 찰나의 순간에 배꼽이 확 당기는 감각과 함께 나와 송이가 동시에 바닥에 나뒹굴었다.
“꺄아악! 오, 오빠? 갑자기 – 순간이동이에요?”
나는 대답 대신 불투명한 촉수가 날아온 허공을 노려보았다.
“Dóminus técum. óra pro nóbis peccatóribus.”
뒤편에서 알 수 없는 노래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음색이 전운이 감돌던 동굴을 가득 메웠다. 처음엔 노래, 다음엔 피리인가? 신비로운 음악이 동굴을 채워나가자 조금 전까지 우리를 위협하던 괴물들이 갑자기 말 잘 듣는 애완동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장내의 혼란이 서서히 가라앉을 때쯤, 처음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뒤에서 들려왔다.
“정말이지 대책 없는 분들이군요. 안내해달라고 해서 정말 안내해준 직원도 심각하고.”
세레나데다. 할아버지가 어딘가 겸연쩍은 듯한 말투로 답했다.
“도지사님, 내가 조금 강압적으로 대했으니 직원은 봐주시게나.”
“그것 참 고마운 이야기네요.”
“하지만 우리가 나눌 이야기가 적지 않은 듯하군. 이 괴물들은 다 뭐지?”
“일단 제 쪽으로 오시죠. 참, 차진철 요원이라고 하셨나요? 잘려 나간 팔은 빨리 집어서 – ”
세레나데의 말이 끝나기 전에 바닥에 떨어진 팔목을 주운 형은 별것 아니라는 듯 환부에 팔을 다시 붙였다. 세레나데뿐만 아니라 우리까지 설마 저게 붙어? 하는 표정으로 형의 팔을 바라보았다.
물론 팔은 자연스럽게 달라붙었다. 형이 그 팔을 멀쩡히 움직이기까지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뭐야? 다들 왜 이리 놀라? 내 재생력 처음 보냐?”
세레나데는 감탄인지 경악인지 알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
“이야~! 아주 대단하신 분들이네요. 더 난리 치지 말고 제발 좀 이쪽으로 오세요.”
뭔가 사고 치다가 부모님에게 걸린 아이가 된 기분이다. 도청의 직원들 상대로는 자신감 있게 막 나가던 할아버지나 아리가 세레나데에게는 꽤 조심스럽게 대하는 게 느껴졌다. 저게 아무리 관리국 요원이라 해도 지켜야만 하는 선인 걸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왠지 선배 요원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후배가 된 기분이 들었다.
“도지사님, 우리가 실례했다는 점 인정하지. 하지만, 도청 지하에 숨겨둔 괴물들에 대해선 설명을 듣고 싶은데?”
세레나데는 모여든 우리를 한번 보더니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제가 여러분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
“보나 마나 또 비슷한 짓을 하시겠죠. 제가 건물을 비웠다 하면 직원들을 겁박하시겠네요. 아, 이제 겁박도 필요 없나? 동굴로 오는 길을 알아내셨으니?”
“잘 아네.”
세레나데는 아리의 뻔뻔한 대답에 기가 찬 표정을 지으며 한숨 쉬었다.
“이 장소가 어떤 장소인지 알려드리죠. 이곳에 갇힌 사람들은 단순히 괴물이 아니에요. 이들은…. 우리의 불운한 가능성, 바람직하게 성장하지 못한 동포들이죠.”
불운한 가능성. 바람직하게 성장하지 못한 동포.
어떤 의미일까? 궁금증을 견디다 못해 할아버지가 물었다.
“거 도지사님, 조금 자세히 설명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세레나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까지 들으시고도 모르겠나요? 어인족으로의 각성에 실패한 사람들이에요. 섬 전체에서 매년 3, 4명꼴로 나오죠. 장기간 지하에 보내다 보니 이렇게 많이 모였네요.”
대체 무슨 이야기지? 난데없이 ‘어인족으로의 각성’이라는 단어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무슨 ‘각성’이 필요하던가? 그리고 그 각성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이런 비참한 괴물이 될 일이 있던가?
설마 어인족은 태어날 때부터 어인족인 게 아닌 걸까? 그러고 보니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들은 지성을 대부분 상실했음에도 여전히 우리의 동포입니다. 그 증거로 지금 내 통제를 따르는 것을 들 수 있죠.”
“당신의 통제를 따른다?”
“네.”
그 순간, 누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당신의 통제를 따르는 게 아니라 ‘해신의 딸’을 따르는 것 아니야? 저 상자에 담긴 물건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 저 상자라니 대체 무슨 -”
“내 눈에 뻔히 보이니까 모른 체 하지 마. 동굴 벽에 붙은 저 상자 말이야. 상자 안에 든 거 뭐야? 삐져나온 것들이 흡사 옷가지처럼 보이는데?”
“…”
“추측 하나 해볼게. 이 괴물, 아니 ‘동포’들은 해신의 딸을 본능적으로 따르지? 냄새라도 맡는 거야? 아니면 너희 몸에서 무슨 페로몬이라도 나오나? 여하튼 이 동포들을 동굴에 가두기 위해 너희 자매의 물건을 저 상자에 담아둔 것 같은데.”
“정말 눈이 좋으시군요. 여하튼 이제 상황은 이해하셨을 겁니다.”
세레나데는 더 설명하지 않고 뒤로 돌아섰다. 그녀를 따라서 동굴 밖으로 나가던 중, 세레나데가 동굴의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 친절히 설명해준 이유를 깨달았다.
성녀는 자신이 이 괴물을 사악한 용도로 부리는 게 아니라고 ‘관리국’에게 변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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