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3)
22화 – 102호, 저주의 방 – ‘공포의 저택’(8)
22화 – 102호, 저주의 방 – ‘공포의 저택’(8)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8일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2호(저주의 방 – 공포의 저택)
현자의 조언 : 3]
생각보다도 더 힘들다.
빗속에서 등산이 힘든 건 당연한 일이지만, 생각보다도 장난이 아니다.
좀 약해졌다고는 해도 폭풍우 수준에서 약해졌을 뿐.
여전히 제법 굵은 빗살이 시야를 흐릿하게 하는 데다가, 지반이 습기로 인해 발이 푹푹 빠지는 통에 한걸음 내딛기도 힘들었다.
더군다나 발이 빠지는 걸 피해서 단단한 바위를 밟았더니, 흠뻑 젖어 미끄러져서 한바탕 구르기까지 했다.
반면, 저 앞을 나아가는 집사는 무슨 경공술이라도 쓰는 걸까?
아무리 나보다 등산 경험이 많고, 이 산의 지형을 잘 안다고 쳐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비가 쏟아지는데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
심지어 내가 허우적대기 시작하니 친절하게 세워주고 흙을 털어 주기까지 했다.
중턱에 도착할 때가 되자 체력이 바닥나서 허덕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잠시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 죄송합니다. 제가 체력이 모자라네요.”
“아닙니다. 비 속에서 산을 오르려니 힘든 게 당연하지요. 이쪽, 나무 아래로 오시지요.
제법 잎도 가지도 우거져서 비가 덜 들이치는 편입니다.”
집사는 전혀 힘들지 않은 표정으로 힘든 게 당연하다고 말하면서 날 나무 아래로 이끌었다.
“어제, 아리를 성당에 데려가셨지요.”
“찾을 것도 좀 있고… 확인할 것도 좀 있더군요.”
“잘 찾고, 잘 확인하셨는지요.”
“나름대로, 찾을 건 찾고, 확인할 건 확인했습니다.”
미묘하게 긴장감이 감도는 걸 느낀다.
“아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들으셨습니까.”
종소리를 듣더니, 뭔가 다르게 바뀌었다거나, ‘찬송가’를 들은 것.
대답해야 하는 걸까?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 하고 있자, 집사는 더 대답을 구하지 않은 채 출발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였지요. 어릴 때 부모님을 잃은 후로 잘못된 길에 빠질 법도 한데…
항상 바른길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을 잃은 티가 전혀 안날만큼 활발하고 착하긴 하더군요.”
“감사합니다. 또… 손녀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제법 고운 아이가 아닙니까.
하지만 얼굴보다도, 마음이 더 고운 아이였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전달하면, 모두가 받아들여 주리라 믿는 순수한 아이였죠.”
“진심을 보인다. 이것만큼 누군가를 설득하기 좋은 방법이 없죠.”
“그치만, 세상에는 진심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통하지 않는 사람을 보신 모양이군요.”
집사는 입을 닫았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정상까지 30분 정도일까? 계속 비가 와서 속도가 느려지다 보니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보다도… 궁금하다. 집사는 무언가 아리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말을 끌어낼 수 있을까? 내 쪽에서 조금 찔러 봐야 하나?
“조금만 더 힘을 내시지요. 이제 슬슬 정상이 다가옵니다.
정상까지 올라가면, 아래 경로를 쭉 훑어보면서 안전한 길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겝니다.”
“그건 좀 다행이네요. 사실 이젠 진짜 다리가 많이 후들거리거든요.”
“성당에서 종은 찾아보셨습니까?”
아까의 대화의 연장. 이번에는, 좀 더 대답해보자.
“네. 종탑 위에 잘 있더군요. 요전에도 그랬지만, 성당에 아무도 안 사는것치고는 관리가 잘 된 것 같습니다. 종도 상태가 좋았고…”
“사는 사람은 없지만 건물 자체의 용도가 없진 않습니다. 저택의 배도 정박해 둔 상태고…”
“그래서, 성당을 그간 관리하신 겁니까?신부님?”
다시금, 잠깐의 침묵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듣는 말입니다. 아리가 이야기해주던가요?”
“아리는 딱히 그런 이야기는 안 했는데…
그냥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는데, 그것치고는 성당이 깔끔하구나.
누가 관리를 계속 하나? 할 사람은 집사님 뿐이구나.
그런데 저택 관리하나만으로도 힘들 텐데 왜 성당까지 그렇게 관리를 하실까.”
“겨우 그것 하나로 추측하신 겁니까?”
“사실 저도 어릴 때 교회를 다녔거든요.
성당하고는 다를 수도 있는데, 솔직히 어린 마음에 교회가 딱히 재밌진 않았네요.
그나마 애들하고 만나는 게 재밌었다 정도…
그런데 아리가 어릴 때부터, 친구도 없는 곳에서 혼자 성당을 열심히 다녔다니, 문득 든 생각입니다.
사실은 성당을 다닌 게 아니고, 그냥 할아버지와 함께 산 게 아닌가.”
“그것도 대단한 근거가 있는 추측이라기보다는 그냥 넘겨짚기군요. 결국은 그냥 한번 떠보신 느낌입니다.”
“사실 그렇긴 한데… 맞춘 모양이네요.”
빗줄기가 다시금 굵어지기 시작했다.
속도도 더욱 느려졌고, 이젠 정말 다리가 너무 후들거려서 움직이기 쉽지 않다.
빗줄기를 뚫고 선명한 말이 들린다.
“어르신은 잔인한 사람이었다.처음에는 터무니없는 요구로 시작됐다.
땅을 내놓아라, 한 번만 더 종을 치면 종탑을 무너트리겠다.
개의치 않았다. 어르신이 타락한 믿음에 빠져들었다는 걸 안 후에도 개의치 않았다.
하늘에 주께서 계시니, 무엇을 두려워하랴.
시간이 흐를수록 일대가 황폐해졌다.
저택 근교의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거나, 사라졌다.
아리는 그걸 견디지 못했다.”
“진심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혹시…”
“아리는 혼자 저택을 찾아갔다.진심을 담아서, 어르신이 세상에 대한 상냥함을 가지시길 바랐다.
아아… 그 아이는 어렸다. 정녕 어렸다.
세상에는 진심이 통하지 않는 자가 있음을 내 미리 가르쳐 주지 못한 탓이다.
저택에 다녀온 이튿날부터 열병에 시달렸다.
넋이 나간 것처럼, 제대로 대화도 하지 못했다.
그저 벌벌 떨면서, 어르신이 ‘친절하게’ 무언가를 보여줬다고만 했다.
이상한 노래. 이상한 시. 그 아이는 더 이상 주를 찾지 않았다…”
산 정상이 다가온다.
집사는 더 이상 나에게 존대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집사가 아니다. 손녀를 저당 잡힌 신부일 뿐이다.
“저택에 가서 빌고 또 빌었다. 소송도 포기했고, 성당도 포기했다.
그저 무릎 꿇고 엎드렸다. 단지 어르신의 자비가 있기만을 바랐다.
내가 모든 걸 내려놓고서야 아리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나는 내 손녀를 지켜야 한다…”
“신부님이라는 입장도, 그때 내려 두셨습니까.”
“어찌하란 말이냐? 나는 평생을 주께 바쳤다.사탄이 나와 아이를 덮쳤을 때, 주께서 손길을 내미시지 않았다.
너는 제법 마음이 강하다. 그게 네 불행이다.
그냥 저택에 남은 아이들처럼 울면서 기다리다 보면 끝났을 일을 힘들게 만드는 구나.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고민했다. 내가 손을 쓸지, 어르신께서 널 바치시도록 내버려둘지 말이다.
그러나… 여섯이면 충분하다. 이미 셋을 바쳤고, 저택에 둘이 남았으니,
마지막엔 늙은 내 목으로 충분하다. 너까지 어르신이 직접 손 쓸 필요는 없겠지…”
정상에서, 신부가 돌아섰다.
아아… 정말로 일이 힘들게 돌아가는구나.
등산 시작할 때만 해도, 위험천만한 빗길 등산속에서 쉬운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내가 내 한 몸 못 가누는 사이 신부는 한없이 앞서가서 틈 따위는 없었고…
정상에 도착하고야, 다 지친채로 이 꼴이 나는 구나.
이를 악물고 단검을 꺼내 들었다.
“역시, 미리부터 준비를 했구나. 나를 경계했느냐?아니면, 나를 해칠 생각이었느냐? 아무래도 좋다.”
다음 순간, 신부는 날아오르듯이 나에게 덤벼들었다.
[즉시 좌측으로 3걸음!]‘공포의 저택’에 진입한 이후, 사람들이 죽어 가는 순간조차 한 번도 반응하지 않던 ‘현자의 조언’이 처음으로 작동했다.
알림을 보자마자,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저절로 좌측으로 3발을 떼자-
움직인 내 위치와 신부 사이의 경로의 바닥에 깔려 있던 썩은 나무둥치가 무너져 내렸다.
신부는 발을 디딘 나무둥치가 무너지자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지금인가? 즉시 단검을 빼어 들고 달려드는 그 순간
[뒤로 물러서세요!]1초 만에 또 알림이 뜨고 반사적으로 물러났다.
거의 같은 시점에, 신부의 품에서 솟아오른 꼬챙이 또는 송곳 같은 물체가 내 몸을 스쳤다.
“이건 또 뭡니까?”
“너도 무기를 챙겼는데, 나라고 빈손으로 왔겠느냐?”
싸움을 시작하고 5초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조언이 두 개가 소모됐다.
명확하다. 이 신부는 나보다 명백히 강하다.
하지만… 신부의 신체 능력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건 첫날부터 알고 있었다.
당연히 한수를 더 준비해 왔다.
그러나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상태에서는 쓸 수 없다. 위치를 바꿔야 한다.
생각이 길어졌나? 그새 균형을 잡은 신부가 다시 달려들었다.
아까부터 느끼지만, 저 노인은 무슨 무공이라도 익힌 게 틀림없다.
다 삭은 나무와 미끈거린 바위, 흘러내리는 흙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어떻게 이렇게 흔들림 없이 달릴 수 있는 거지?
미끄덩-
결국, 내가 먼저 발을 헛디뎠다. 신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황급히 다시 상체를 들어 올리자 기회를 잡은 신부가 달려드는 게 보였다.
[오른편 바위를 잡아당기세요!]3번째 조언. 이번만큼은 찰나의 시간 동안 당황했다.
어디로 뭘 피하라는 게 아니고 난데없이 바위를 당기라니?
그러나 이런 생각하는 순간에조차 팔은 저절로 움직여서 바위를 잡아당겼고,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잡은 바위는 왼편의 뿌리가 반쯤 썩은 나무를 지탱하고 있던 것이다!
나무를 지탱하던 바위를 당겨 버리자, 즉시 썩은 나무가 무너지며 달려오던 신부를 덮쳤다.
신부가 나무를 피하고자 급격히 방향을 틀었지만, 평범하게 걷다가도 균형을 잃기 딱 좋은 환경.
결국 균형을 완전히 잃고 쓰러졌다.
달려들까?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까 겪지 않았는가? 섣불리 다가가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힌 것도 아닌데, 무기도 들고 있는 신부를 근접해서 이길 자신이 없다.
주변을 돌아보자, 가지와 잎사귀가 우거져서 비를 차단중인 나무가 보였다.
저기서라면 비장의 수를 쓸 수 있다.
나무쪽으로 뛰어가며 가슴 한 켠에 숨겨두었던 물건을 움켜쥐었다.
도착하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그 짧은 시간에 일어선 신부가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치이이익!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허어어억!!!!!! 이 개새끼가 대체 무슨 짓을 !”
폭풍우도, 비바람도, 험한 산세도 무너트리지 못했던 신부가 흡사 어린아이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날카로운 촛대를 갈아서 만든 듯한 꼬챙이도 어딘가 떨어트린 채 정신없이 흙바닥을 구르며 얼굴을 비비느라 정신이 없는 게 보였다.
102호 진입 이틀 전, 수영장에서 나온 괴물이 사람들을 덮쳤을 때,
은솔누나는 HP 마켓에서 캡사이신 액상을 사는 기지를 발휘해서 괴물을 물리쳤다.
그때, 모두가 생각했다. 저건 너무 뛰어난 무기라고.
총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액체 캡사이신은 어떤 의미로는 단도보다도 훨씬 훌륭한 무기인 셈.
안타깝게도 괴물에게 아낌없이 퍼부어서 남은 건 통 바닥에 남은 소량 뿐.
호텔에서 은은한 향을 뿌리던 스프레이 통의 바닥만 겨우 채우는 양이었다.
그걸 간신히 두 개 만든 후, 누나는 고민 없이 하나를 나에게 주었다.
왜 나에게 줬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이미 나를 나름대로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됐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드디어… 비가 내리치는 산간에서 벌어지던 이 혈투를 끝낼 때가 됐구나.
단도를 단단히 움켜쥐고 아직도 파들거리는 신부에게 다가 갔다.
푹-
무언가 내 허리춤을 찔렀다
아, 조언이 하나라도 남아 있었으면 피하라고 했을 텐데 아쉽네.
한계에 달했던 내 몸이 허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