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30)
229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7)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동굴을 나와 관공서로 올라온 후, 우리는 다시 회의를 위해 리무진으로 돌아왔다.
“아 쉬이발 진짜 으아! 선생님, 팔 상태 괜찮은 것 맞습니까?”
… 그리고 나는 진철 형이 생각보다 고통을 견디는 인내심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축복 강화를 통해 얻은 재생력이 있다고 해도 바닥에 떨어진 팔을 찰흙 붙이듯이 척 붙이길래 저게 되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 자리에서 재생이 끝난 건 아니었다. 단지 ‘적’이 앞에 있으니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고통을 참았을 뿐.
“피부, 뼈, 신경 모두 대충 붙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대충’ 붙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으으으….”
“이대로 회복이 끝나면 양쪽 팔 길이가 달라지겠군요. 괴물에게 잘린 팔이라면서요? 아무려면 괴물이 도로 붙이기 편해지라고 깔끔하게 잘라줬겠습니까?”
“개 같은….”
“참으시라는 말밖에 드릴 말이 없군요. 어찌 됐든 이 방을 나가면 호텔이 잘 고쳐줄 겁니다.”
의사 선생님이 형의 팔을 다시 살피며 환부를 다듬는 동안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누나가 피로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많이 알아낸 듯싶으면서도 모르겠네. 엘레나의 위치를 다시 알 수 없게 됐어.”
나도 궁금한 점을 말했다.
“사실, 아까부터 한 가지가 궁금합니다. 대체 202호의 저주는 정체는 뭐죠?”
모두가 고민에 빠졌다.
“설마하니 이수호 씨가 누군가에게 암살당했다. 이걸 가지고 저주라고 하진 않을 텐데요.”
“그간 경험에 따르면 ‘저주의 방’에서 저주는 보통 인간 문명 전체를 위협하는 무언가였어. 사람 한둘 죽는 정도는 호텔에서 저주라고 부를 일은 아닐 텐데.”
“그래서 이해가 안 갑니다. 대체 이 무대에서 누가 세상을 위협하고 있죠?”
할아버지가 끼어들었다.
“뭐, 세상을 위협하는 무언가가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이미 초월적인 존재의 이름 정도는 알아내지 않았느냐.”
“카다루다흐 말씀이신가요?”
송이가 아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인족의 문자를 알고 있다고 했지? 혹시 아는 것 없어?”
“전혀. 내가 아는 그 어인과 이 무대의 어인은 너무 달라. 내가 알던 현실의 어인들은 그냥 지성이 있는 물고기였어. 잘 쳐줘야 매너티를 닮은 정도지 지금 무대의 어인들처럼 비늘 달린 인간 형태가 아니야.”
“문자가 똑같다며?”
“호텔은 원래 문자나 언어는 그냥 마음대로 재구성하잖아. 편의상 내가 아는 문자로 맞춰줬을지도 모르지.”
“그런가….”
잠시 리무진에 침묵이 감돌았다. 모르겠다. 무언가 정보는 많이 모았고, 이런저런 가설도 세웠지만 정작 방의 핵심적인 요소는 전혀 모르겠다.
202호의 저주는 대체 뭘까? 해신의 딸, 나아가서 해신이 감춘 비밀은 뭐지? 애초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엘레나는 어디 있지?
…
슬슬 피로감을 느끼던 그 순간, 모두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박승엽 : 제 말 들리세요? 더 가까이 가야 하나?
지금 부산에 있어야 할 승엽이가 대화창의 범위로 들어왔다!
*
– 박승엽
쓰나미로 모든 게 쓸려가는 혼돈의 부산, 태연하게 몰려오는 파도 건너편의 피리를 가져와달라는 리링가노르의 말을 듣고 나는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저 타이어에 낀 피리를 가져오면 되는 거지?”
“맞아요!”
“기다려. 곧 가져오지.”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해보겠다고 질렀다. 천운을 믿고 뛰어들면 기다렸다는 듯이 물 밑에 거북이가 있어 주지 않을까?
소녀의 기대에 찬 눈빛에 부응하기 위해 돌아서서 물 위로 뛰어들려던 바로 그 순간, 비극적인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내 몸에 깃들었던 우주의 가호가 빠져나간다. 마음 가득히 차올랐던 고양감이 성냥불 꺼지듯 사그라들었다.
천운이 끝났다!
덕분에 나는 충격에 빠져서 속으로 비명 질렀다. 왜 하필 지금이냐고오오오! 자신 있게 가져오겠다고 말까지 했는데 여기서 이러기야? 한 5초만 더 있었어도 뭔가 했을 타이밍인데!
“…”
“…”
“…”
“고수님? 빨리 달려가셔야 하지 않을까요? 자동차가 점점 멀어지고 있어요.”
절체절명의 위기! 이 상황에서 믿을만한 존재는 하나뿐이지! 그로테스크의 목을 강하게 붙들고 귀에 속삭였다.
“피리 보이지? 가져와가져와가져와가져와가져와가져와가져-”
— 바붕멍퉁이!
잘못 들었나? 평소의 삑삑거리는 소리랑 너무 다른데? 아니겠지?
결국 그로테스크가 짜증 섞인 소리를 내며 우리를 근처의 건물로 밀어 넣은 후 ‘앵무새’로 변신해서 날아서 장애물 너머의 피리를 향해 날아갔다.
눈앞에서 자동차만 한 거대 새가 앵무새로 변신하는 놀라운 장면을 본 리링가노르는 눈이 동그래졌다.
“저! 저! 저! 저렇게 신기한 새는 처음 봐요! 관리국에서 기르는 새인가요?”
“아닐걸.”
“고수님의 문파에 대대로 내려오는 새인가요? 신조(神鳥)의 전설?”
“그건 진짜 아니야.”
해신의 딸이라는 신분도 그렇고, 사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왠지 반말해야 할 분위기라서 편하게 불렀다. 리링가노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조금 전에는 죄송해요.”
???
“대체 무슨 죄송할 일이 -”
“생각해보니, 고수님께서도 허공답보(虛空踏步) 수법을 연달아 쓰신데다가 신비한 새를 부리며 도력을 많이 소진하셨을 텐데 또 일위도강(一葦渡江)의 기예를 쓰실 수는 없었겠지요! 다행히 저 신비로운 새가 피리를 가져오고 있네요.”
아까부터 네가 쓰는 단어의 뜻을 모르겠어! 허공다포는 뭐야? 이리도강? 아까는 무슨 어기춘소?
혼란 속에서 페로가 피리를 가져오자 소녀는 싱긋 웃었다.
“관리국 분이시라면 어차피 사람을 구하러 오셨겠죠? 절 도와주세요!”
*
이후 거의 반나절 동안 소녀를 도우며 생각했다.
대체 내 ‘천운’은 왜 쓰인 걸까?
처음에는 갯지렁이에 잡아먹힐 위기라 쓰였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내가 그 지렁이 위에 타서 사람들을 구출 중이다. 즉, 지렁이가 덮치는 상황은 위기가 아니었다.
천운을 쓰지 않았다고 해도 리링가노르가 우리를 구출해줬을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콩이’의 위로 올라타자 놀란 리링가노르가 갯지렁이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없던 위기가 생긴 상황에 가까웠다.
실제 위기는 아니었지만 내가 위기라고 생각했으니까 쓰였다?
잠시 고민했다가 이 가능성은 멀리 밀어두었다. 내가 직접 쓸 때는 내 착각에 휘둘리는 때도 있겠지만, 아까처럼 천운이 저절로 발동할 때는 내 인식과 무관하다. 심지어 내가 축복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101호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저절로 작동했던 것이 천운이니까.
…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지금 나와 함께 사람을 구하고 있는 이 소녀, 해신의 셋째 딸 리링가노르는 나를 관리국에 속한 초인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막상 천운은 진작에 끝나서 딱히 대단한 능력을 보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미 그녀 눈앞에서 하늘을 날고 허공에서 몸을 뒤집는 기적을 보인데다가, 신비하기 그지없는 새가 날 돕고 있다는 상황은 그녀가 쉼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했다.
여전히 그녀가 쓰는 ‘방로한동’이나 ‘황골탈태’같은 단어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눈치는 챘다. 리링가노르는 내가 정체를 숨기고 있거나, 페로를 부리기 위해 ‘도력’을 써서 다른 재주를 쓸 수 없다고 착각 중인 것 같다.
어찌 됐든 한번 신기한 관계가 생겼고 반나절 동안 리링가노르를 도와 사람을 구하며 우리는 제법 친해졌다. 결국 ‘천운’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해신의 딸과 나 사이에 생긴 이 친한 관계인 것 같다. 이걸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
…
고민하던 중, 아까부터 열심히 고생하던 갯지렁이가 지쳤는지 물속으로 들어갔다. 우리 또한 자연스럽게 조금 안전해 보이는 높은 건물에서 쉬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신기했는데 그 피리는 뭐야? 해신이 준 성물?”
“비슷하죠.”
“그 피리로 동물을 부릴 수 있어?”
“에…. 아무 동물이나 되는 건 아니고, 카다루다흐의 은총을 받은 특별한 바다의 아이들에게만 통해요.”
“이 갯지렁이처럼?”
“네. 그런데 피리의 원래 용도는 이런 동물 조종과 상관없어요. 이런 건 그냥 우리 자매가 피리를 오래 쓰면서 개발한 용도에 가까워요.”
“원래 용도?”
“원래 용도는 악몽을 진정시키는 거죠.”
악몽. 무언가 중요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몽을 누가 꾸길래 성물씩이나 필요해?”
갑자기 말문을 멈춘 리링가노르는 어딘가 아득한 표정으로 바다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모두가요.”
“모두?”
“모든 어인은 밤마다 악몽을 꾼답니다. 대체 왜 우리가 이런 고난을 겪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어린아이와 노인, 남성과 여성,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나이와 성별,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어인은 언제나 악몽에 시달리죠. 심지어 우리가 모시는 신께서도 악몽에 시달리십니다. 이는 우리가 영원히 감내해야 할 시련이에요.”
“너도 악몽을 꿔?”
“어젯밤에는 물고기가 된 채 육지에서 파닥거리다가 죽는 꿈이었어요. 당연하지만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아무리 파닥거려도 물로 갈 수 없었죠. 결국 폐, 아니 아가미가 터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었어요.”
익사하는 고통? 이 경우는 그 반대인가? 여하튼 내용이 너무 끔찍하잖아!
“3일쯤 전이었나? 그때는 산채로 상어에게 잡아먹히는 악몽이었어요. 도망 다니고 또 도망 다녔는데 결국 먹혔죠.”
“그런 악몽을 모든 어인이 매일 꾼다고?”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랬다면 어인은 다 같이 정신병에 걸렸겠죠? 대부분은 그냥 내용도 두루뭉술하고 불쾌한 느낌 정도만 받아요. 평범한 사람의 악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물론, 그 정도 악몽이라 해도 매일 매일 밤마다 겪는 건 상당한 고통이지만요.”
“그러면 왜 너는 그렇게 생생하게 -”
“정확히는 제가 아니라 ‘해신의 딸’들이죠. 바로 그게 해신의 딸의 조건이기도 하고요.”
대체 무슨 말일까?
내 의문을 느꼈는지 리링가노르가 살짝 웃으며 말해줬다.
“저도, 세레나데 언니도, 엘레나 언니도 -”
“엘레나?”
“네?”
“… 아니야. 아는 이름이 나와서. 계속 말해줘.”
“해신의 딸은 딱히 혈통으로 계승하는 직위가 아니랍니다. 제 부모님은 평범한 공무원이셨어요.”
“어떻게 계승하는데?”
“어인족이 겪는 이 끝없는 악몽, 우리는 이 악몽의 정체를 머나먼 선조들이 겪은 기억이라고 해석해요. 실제로 대부분의 악몽의 내용은 물고기가 겪는 고통이니까요.”
선조의 기억.
“대부분은 선조의 기억 중 극히 일부만을 받아들여 애매모호하고 어설픈 악몽만 꾸면서 살아가요. 그러나 가끔씩 태고의 기억 중 많은 부분을 떠올리는 어인이 나타나죠. 그렇게 선조와 더 가까워진 존재들은 그 대가로 여러 가지 힘을 얻어요. 그리고 그 힘을 얻은 어인은 무리의 추앙을 얻죠.”
여기까지 말한 리링가노르가 설핏 웃었다. 조금씩 안정된 기후, 가라앉아가는 쓰나미, 그리고 슬슬 물기가 말라가는 신의 딸.
재난의 끝을 알리듯 구름을 밀어낸 태양 아래의 리링가노르는 놀라울 정도로 신비로웠다.
“이제 의문이 많이 풀리셨나요? 관리국의 절세고수(絕世高手)님? 이 정도면 절 도와주신 대가는 치른 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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