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31)
230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8)
– 박승엽
이 정도라면 충분히 말해주지 않았느냐는 듯 물러서려는 리링가노르의 팔을 붙잡았다.
“아니지. 악몽 이야기는 재미있긴 했지만, 정작 지금 제일 큰 사태는 따로 있잖아.”
“…”
“모른 체 하지 마. 해일! 해일! 우리가 사람을 제법 구출하긴 했지만, 이 재해로 죽은 사람이 몇 명일까? 최소한 수천 명이겠지! 재산피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클 테고.”
“자연재해 아닐까요?”
“장난치지 마. 쓰나미가 덮칠 때 분명히 봤어! 바다에서 물이 오는 정도가 아니라 땅이 갈라지면서 물이 솟아오르던데,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 맞아? 게다가 너! 쓰나미가 시작하고 10분 만에 이런 괴물을 -”
“콩이요.”
“- 콩이를 타고 사람을 구출하러 온다는 게 말이 돼? 쓰나미가 덮친다는 걸 미리 알았어야 가능한 반응이잖아. 내가 잠깐 보고 떠올린 증거만 이 정도야. 관리국에서 조사하면 어차피 다 나오니까 그냥 속 시원하게 밝혀!”
“… 숨기려는 게 아니에요. 저도 잘 모를 뿐이죠. 일찍 반응한 건 제가 바다 생물과 교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쓰나미가 일어나기 15분쯤 전에 바다에선 이미 반응이 있었거든요.”
“빠르게 반응한 건 그렇다 치자. 땅이 갈라지면서 물이 솟아오르는 건 뭐라고 설명할 거야?”
“분명히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긴 하죠.”
“그러면?”
잠시 말을 고르는 듯 조용히 있던 소녀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만약에, 이 재해에 어인족이 개입했다면 그건 결코 어인족 전체의 의사가 아닐 겁니다.”
이 말은 내 귀에는 변명보다는 자백에 가깝게 들렸다. 리링가노르가 보기에도 해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며, 바다에서 이 정도 초자연적인 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나 집단으로는 어인족이 떠오른 것 같다.
“어인족 전체의 뜻이 아니라면 누구의 뜻이야?”
“세레나데 언니는 언젠가부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기 시작했죠….”
세레나데. 아까 전 은솔 누나가 해줬던 설명을 되새겼다. 심해의 성녀, 해신 섬의 지도자라고 했었지?
“원래도 우리 중 연장자였고 냉정하고 똑똑해서 성녀의 자리가 어울린다는 평이 있긴 했지만,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두 달쯤 전, 갑자기 엘레나 언니가 사라지고 이에 항의하던 수호 오빠가 쫓겨났죠. 심지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가 죽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왔어요. 이 사실에 의문을 품자 저도 육지로 쫓아냈죠.”
“수호 오빠? 청성 그룹 회장의 아들 말이지? 그 사람이 왜 엘레나가 사라졌다고 항의해?”
“… 본래는 비밀이었지만, 이미 오빠가 죽었는데 비밀을 지켜봐야 의미 없겠죠. 수호 오빠와 엘레나 언니는 연인이었거든요.”
“에엑! 그런 설정이야?”
“예? 설정?”
“아, 아니야. 당황해서 그래. 더 말해줘.”
해신의 둘째 딸, 엘레나와 이수호는 연인이었다고 한다. 이런 중요한 정보를 왜 청성 그룹에선 보내주지 않았을까? 답은 금방 깨달았다.
항구의 소유권이라는 중대한 이해관계에서 충돌 중인 해신 섬과 청성 그룹.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해신의 딸과 회장 아들이 연인이라는 사실은 서로에게 마냥 달가운 일은 아니었겠지. 어쩌면 이수호 본인이 이 사실을 숨겼을지도 모른다.
… 어차피 설정이라지만 NPC와 연인이라니. 나중에 깨어난 엘레나 누나가 놀라겠다. 아니면 원래 배우 출신이라 일종의 연기처럼 생각할지도?
“하여튼 제 말의 핵심은 세레나데 언니가 언젠가부터 이상하다는 점이에요. 피가 이어지진 않았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던 우리에게 이렇게 모질게 굴 사람은 아니었어요.”
해신의 세 딸 중 장녀, 해신 섬의 지도자, 심해의 성녀. 세레나데의 폭주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리링가노르를 데리고 해신 섬으로 들어가자!
해신 섬에 가본 적이 없어서 섬에 간 동료들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번 시나리오에서 세레나데가 빌런인 것 같다. 빌런의 피해자인 리링가노르를 섬에 데려가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리링가노르, 나랑 같이 해신 섬으로 가자.”
“예? 제 말 못 들으셨나요? 언니가 절 쫓아냈다니까요!”
“그 언니는 지금 섬에 간 내 동료들이 조사하고 있어. 더 이상 예전처럼 폭군처럼 행동하진 못할 거야.”
“… 지금 당신들 관리국을 도와서 언니를 위기에 빠트리라는 말인가요?”
“리링가노르! 주변을 봐.”
부산은 망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사방에는 둥둥 떠다니는 차와 사람의 시체로 가득했다.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란 건물에는 죄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체 몇 명이 죽었을까? 재산피해는?
“이런 짓을 정말 너희 어인족이 저질렀다면 관리국은 이 대가를 반드시 피로 받으려 할 거야. 불가침조약은 휴지 조각이 된 상태라고.”
“…”
“내 생각엔 지금 너도 네 언니를 범인으로 의심 중인 것 같은데. 아니야?”
잠깐의 대화로 느꼈다. 이미 리링가노르는 언니가 모종의 이유로 돌아버렸거나 폭주 중이라고 믿는 상황이다.
“네 언니를 몰아내는 게 어인족 전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 그러지 못한다면 이 재난의 책임은 어인족 전체가 치러야 할걸?”
와! 솔직히 말하고 놀랐다. 이 대사 뭐야? 너무 멋있지 않았음?
“에잇! 협박하듯이 말씀하시지 마세요! 우리가 했다고 은근슬쩍 확정 짓지 마시고요.”
“그래서 갈 거야 안 갈 거야?”
“갈게요. 간다고요! 아무래도 오랜만에 언니 얼굴을 볼 때가 됐나 봐요.”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난데없이 대화창에서 나온 승엽이에 한 번 놀랐고, 다음으로 내 시나리오 이해가 갱신되며 ‘해신의 딸 리링가노르의 도착’을 알려서 두 번 놀랐다. 다행히 직접 만난 승엽이는 우리의 의문을 해소해주었다.
“… 이렇게 됐어요. 이제 다 이해하셨죠?”
섬에 도착한 승엽이는 한참 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설명했다. 요약하면 탈출하려다가 해신의 셋째 딸, 리링가노르를 만났고 그녀에게 여러 정보를 들은 후 함께 초대형 갯지렁이를 타고 섬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다.
승엽이의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요소는 세 가지였다.
첫째, 모든 일의 발단, 이수호는 해신의 둘째 딸 엘레나의 연인이었다.
둘째, 부산에서 해일이 발생해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고 그 원인은 해신 섬에 있는 듯하다.
셋째, 어인족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악몽에 시달린다.
“승엽아, 리링가노르는 지금 어디 있어?”
“섬에 본인만의 은신처가 있더라고요. 세레나데의 눈을 피하고 있겠대요. 주소는 들었어요.”
“그럼 바로 가자. 그 애에게 이것저것 물어봐야겠어.”
리무진으로 향하던 중, 은솔 누나가 약간 불안한 투로 승엽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승엽아. 원래 네 역할은 탈출 아니었니? 물론 리링가노르를 데려온 일은 무척 잘하긴 했어. 하지만 네가 여기로 와버리면 탈출 쪽이 불안해져 버린 셈인데.”
잠시 움찔거리던 승엽이는 바로 답했다.
“제가 마음대로 행동한 게 아니라 행운 때문이에요.”
“행운?”
“부산에 남아있는 건 무언가 불안하다는 직감이 들었거든요? 이후에 해일이 덮친 걸 보면 예리한 감각이었죠!”
“잘했어.”
“그래서 장소를 옮기려고 고속버스를 예약했어요. 그런데 버스에 타려는 그 순간!”
“그 순간?”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생겨서 버스를 타지 못했어요. 곧 해일이 덮쳐서 버스가 물에 떠밀려갔죠.”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네. 수고했어~!”
은신처는 리무진을 타고 30분 정도 움직이자 도착했다.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다. 은신처에 도착한 우리는 리링가노르와 대화하며 몇 가지 사실을 추가로 알아냈다.
우선, 세 딸이 모두 섬에서 활동하던 시기에도 실권은 대부분 세레나데에게 있었다고 한다. 사실 직접 만난 리링가노르의 나이는 고작해야 10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섬의 통치와 같은 일을 하기에 적합해 보이진 않았다.
그나마 엘레나는 이런저런 일에 많이 참여해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고 지지층도 있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주의 깊게 듣던 아리가 물었다.
“우리가 엘레나를 찾아내면, 세레나데를 견제할 수 있을까?”
“예? 엘레나 언니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내 질문에 대답해줘.”
“엘레나 언니는 저와 달리 일을 많이 해서 발언권이 커요. 지지층도 있었고요. 말하자면, 섬사람들이 보기에 세레나데 언니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죠.”
“이 피리. 해신이 너희에게 준 성물이라고 했지?”
“정확히는 대대로 물려받은 -”
“다른 해신의 딸에게도 같은 물건이 있어?”
“네.”
“잠깐만 기다려. 우리도 우리끼리 해야 할 말이 있어.”
잠시 옆 방으로 이동한 아리가 말했다.
“이게 알맞은 시나리오 진행인 모양인데? 아직 세레나데에게 무슨 비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그녀가 대적자에 가까워 보여. 또, 그녀는 단순히 사악한 힘을 휘두르는 존재가 아니라 국가 행정에 기반한 권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에 가깝지.”
은솔 누나가 답했다.
“엘레나를 데려와서 세레나데의 위치를 흔든다?”
“지금 상황에선 아무리 세레나데를 공격하고 그녀의 잘못을 비난해도 한계가 있어. 해신의 딸만 지도자로 받아들이는 해신 섬 주민으로선 ‘대안’이 없는 상황이니까. 리링가노르는 너무 어려서 대안이라 보기 어렵지. 지지층도 있는 엘레나를 데려온 후에 세레나데의 악행을 밝힌다면 그녀의 위치를 흔들 수 있을 거야.”
할아버지도 동의했다.
“방 내부 시나리오를 넘어서 ‘호텔 적 관점’으로 보면, 봉인된 참가자를 깨우는 일은 시나리오 해결과 직결되어있다. 그래서 아리의 추측이 맞아 보이는데? 이 방에서 엘레나의 역할은 세레나데의 카운터인 셈이지.”
은솔 누나도 같은 생각인 듯하다.
“어쩌면 엘레나가 아직 우리는 모르는 세레나데의 약점이나 악행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그걸 알아챈 세레나데가 입막음을 겸해서 엘레나를 어딘가 가둔 거지.”
정리하듯이 아리가 결정했다.
“마침 엘레나의 위치를 찾을 방법도 생겼네. 해신의 딸들에겐 모두 같은 피리가 있다고 하잖아? 리링가노르의 피리를 추적할게. 그러면 나침반이 두 개의 방향을 가리킬 테고, 세레나데 쪽의 방향을 빼면 다른 방향이 엘레나야.”
계획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리는 리링가노르의 피리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리링가노르는 언니를 구출한다는 말에 자신도 참여하겠다며 같이 리무진에 탑승했다.
*
어둑한 밤길, 해신 섬의 도로를 달려 나가는 리무진.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엘레나가 봉인 당했을까?
봉인 대상은 랜덤이 아니다. 해당 저주의 방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을 갖춘 존재가 봉인 당한다. 예컨대, 201호에서 내가 봉인 당한 가장 큰 이유는 ‘0차원의 눈’이 거하는 장소에 페널티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상태창의 정신 보호를 받는 나였기 때문이다.
엘레나가 봉인 당한 이유는 뭘까? 정의? 적이 인간인지부터가 불확실하다. 불길한 상상? 불길한 상상이 가장 중요한 힘인 이유가 있을까?
무언가 말을 만들자면 다 가능하게 느껴지면서도 ‘이거다!’ 싶은 건 없었다. 또, 리링가노르에게 들은 ‘악몽’에 대한 이야기도 신경이 쓰였다. 같은 해신의 딸인 엘레나도 그 악몽에 노출되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잠시 엘레나를 깨우는 게 실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만두었다. 이런 식의 추측은 호텔이 정한 규칙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참가자의 봉인 해제가 방의 해결과 직결된다는 점은 그 누구도 아닌 시나리오를 구성한 호텔이 직접 정한 규칙이다.
“앗!”
침묵을 깨트리는 리링가노르의 목소리.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그녀는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 것 같아요. 저도 가본 장소 같은데….”
“어디인데?”
그녀의 답변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장소였다.
“정신병원이요. 자주 가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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