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32)
231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9)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 끼익!
별이 뜬 깊은 밤, 날짜도 넘어가고 조언의 횟수도 다시 찼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병원에 도착했다.
위치부터가 섬에서도 한 구석인데다가 팻말도 없다. 대체 영업을 어찌한단 말인가? 도착하자마자 갱신된 시나리오는 이 질문에 답을 간단히 알려줬다.
이 병원은 다름이 아니라 해신의 딸들을 돌보기 위한 시설이다.
해신의 딸은 어인족 중 그 누구보다도 ‘선조의 기억’에 가까이 다가선 존재들이다. 이에 따라 다채로운 초능력을 얻었다지만, 대가 또한 참혹했다. 그녀들은 매일 밤 헤아릴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악몽 속을 허우적거린다.
섬의 지도자가 정신이상자라는 사실을 반기는 사람은 없으므로 해신의 딸들은 ‘비밀스럽게’ 치료받을 필요가 있었기에 이 병원이 만들어졌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병원의 시설은 깔끔했다. 벽면에 걸린 고풍스러운 그림들과 바닥에 깔린 푹신한 카펫, 빛날 정도로 깨끗한 벽면 등은 이 병원에 적지 않은 돈이 투입되었음을 증명했다. 하기야 섬의 절대 권력자들이 본인을 위해 만든 시설이니만큼 신경 썼겠지.
애초에 해신의 딸에게 봉사하기 위한 병원인 만큼 리링가노르가 나타나자 소수의 직원과 의사들은 거의 왕족을 대하듯이 조심스럽게 대했다. 우리 또한 리링가노르의 일행으로 여기는지 제지하지 않았다.
곧, 우리는 엘레나가 있는 병실에 도착했다.
“엘레나 언니가 왜 깨어나지 못하고 있죠?”
“아가씨, 엘레나 님의 광증이 날로 악화하여 성녀님께서 특별한 처방을 하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처방이요? 그게 뭐죠?”
“… 성녀님의 허락은 받고 오셨습니까?”
의사는 진실을 숨기려는 듯했으나 별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우리 쪽에 탁월한 신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뭘 투여 중인 거지? 모르핀? 이건 펜타닐인가? 마약과 수면제를 끝없이 투여해서 아예 깨어나지도 못하게 만들었군. 원인이 악몽이니 아예 꿈조차 없는 잠에 취하게 했나? 이럴 바엔 그냥 안식을 취하게 두는 게 맞아 보이는데.”
“이, 이봐! 당신! 누구 허락을 맡고 설비를 -”
김상현이 태연하게 설비들을 헤치고 들어가 엘레나에게 진행 중인 ‘치료’의 실체를 알아내자 의사는 당혹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제가 허락했어요.”
“아가씨…!”
“그냥 언니를 깨워주세요.”
“아가씨, 이건 성녀님의 특명으로 -”
“저는 엘레나 언니에 대해 알아요. 불과 3개월 전 까지만 해도 멀쩡한 사람이었죠. 엘레나 언니가 해신의 딸로 각성한 건 거의 10년 전이고요.”
“…”
“당신들은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10년 넘게 악몽을 잘 견디며 약혼자를 만들 정도로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몇 주 만에 돌아버려서 마약으로 하염없이 잠만 재워야 하는 상태가 됐다고요?”
“그건.”
“돌아버린 사람은 엘레나 언니가 아니라 세레나데 언니야. 틀림없어요. 그러니까 깨워!”
의사는 대답 대신 주변 사람들에게 눈을 끔뻑거렸다. 뻔한 개수작이다. 결국 같은 해신의 딸이라고는 해도 어린 리링가노르와 잠든 엘레나보다 세레나데 쪽의 권력이 월등히 강하다는 방증이겠지.
지켜보던 은솔 누나가 ‘셰프의 모자’를 썼다.
“이거, 지금 한번 쓸 타이밍이네.”
조용히 귀를 막았다.
“야! 이 애미뒤진 개 호로새끼가 진짜 어디서 눈알 땡그랗게 굴리면서 개수작이야? 척추를 뽑아서 감자탕 끓여줘?”
“갑, 갑, 갑 갑자기 무슨 -”
“그 주둥이 산채로 뽑아서 손질해서 튀김기에 처넣기 전에 내가 시키는 대로 해. 3초 준다. 엘레나 깨워. 3, 2, -”
“기, 기다리세요. 3초 만에 깨울 수 없단 말입니다!”
“와 이 개 지랄병 걸린 거 봐라? 이번엔 애비없는 소리 지껄이는 거 보소? 너 이 -”
“으, 은솔언니. 이미 기계 조작 중이에요.”
“… 그래?”
시원한 욕설 타임이 지나갔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놀랍다. 누나가 ‘특급 셰프의 카리스마’라고 이름 붙인 저 모자의 성능은 간단하다.
걸쭉하게 욕설을 섞은 말을 마구 토해내면 잠깐 초자연적인 위압감이 발생해서 일반인은 홀린 듯이 그 말을 따른다.
강력한 정신력을 갖춘 사람, 예컨대 관리국 요원 같은 사람에게 통할 힘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긴 했다. 하지만 일반인 상대로 일시적인 명령권을 얻는 힘이라 생각하면 충분히 쓸모 있다.
— 삐이이이이이
잠시 후, 병실에 기묘한 기계음이 가득 차며 엘레나의 몸에 연결된 호스들이 떨어졌다. 마침내 엘레나의 봉인이 해제되었다.
“언니! 절 알아보시겠 -”
[조언 : 3 -> 2] [당장 무릎을 꿇으세요!]— 콰직!
벽면의 ‘그림’에서 상어가 튀어나와서 내 위쪽을 스쳐 지나간 후, 멍하니 있던 의사의 머리통을 한입에 으깨버렸다.
*
숨이 막힌다. 한 모금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견딜 수 없는 격렬한 고통이 호흡기를 강타했다. 그 자리의 모든 인간이 단 한 호흡에 무너졌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지? 호스가 떨어졌다. 엘레나가 깨어났다. 그리고….
세상이 바다가 되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일까? 그 어떤 전조도 없이 공기가 마치 물처럼 걸쭉하게 코를 넘어와서 폐를 고통스럽게 쥐어짰다. 심지어 공기에서 지독한 짠맛과 바닷냄새까지 느껴졌다.
바다란 이 별에서 가장 많은 생명을 품은 공간. 당연하다는 듯, 도저히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그리고 ‘상어’가 나타났다. 병원 벽면의 그림을 뚫고 튀어나온 상어가 단 한입에 의사를 으깨고 우리를 돌아보는 순간, 숨을 쉬지 못하는 통증에 허우적거리던 동료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빙의라도 해야 하나?
내가 반응하기 전에 덜덜 떨던 송이가 느릿하게 앞으로 헤엄쳐서 다가가 상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딘가 혼란에 빠진 표정을 짓던 상어가 결국 송이 주변을 빙그르르 돌며 나름대로 애교인지 뭔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했다.
…
상어가 입 안에서 씹고 있던 의사의 머리통을 송이 손에 올렸다. 나름대로 ‘맛있는 음식’을 선물한다고 하는 걸까? 친화가 통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심지어 송이는 그 와중에 사람 머리통을 고맙다는 듯 받아들기까지 했다!
급박한 위기를 벗어나자 간신히 시선을 돌려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엘레나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모든 호스가 떨어졌는데도 엘레나는 여전히 기묘한 신음만 토해내며 침대에서 꿈틀거렸다. 그제야 지금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의 원인이 그녀의 악몽임을 알았다.
마약과 수면제가 의식을 아예 강력하게 마비시켜 꿈조차 없는 잠에 빠져들었을 때는 차라리 괜찮았겠지. 하지만 호스들이 떨어져 나가 의식이 어설프게 깨어나니까 이런 사고가 터진 게 아닐까?
찰나의 순간,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엘레나의 몸에 빙의라도 해서 사태를 수습해야 하나?
아니다. 너무 위험하다. 지금 엘레나는 어인족의 선조의 기억으로 인해 광증이 도진 상태! 내가 저 몸에 빙의하면 이번엔 내가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타인의 몸에 빙의할 때는 상태창의 정신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언 : 2 -> 1]‘어떻게 해야 하지!’
[침착하게 기다릴 것. 곧 끝난다.]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
– 엘레나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아무것도 없는 공허. 허무 속을 헤엄치던 정신이 천천히 하강한다. 의식이 서서히 돌아올 때쯤, 나는 바닷속에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아아….
일찍이 최초의 생명은 바다에서 잉태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바다의 아이들이다. 생명으로 들끓는 세계, 그 안에서 끝없이 순환하는 거대한 흐름을 느꼈다.
생태계란 곧 순환이다. 누군가는 먹고 누군가는 먹힌다. 상어는 문어를 잡아먹고 문어는 게를 먹는다. 그러나 이 또한 결국 순서의 차이일 뿐. 언젠가 상어의 몸도 썩어들어가며 바다의 심연에 그 몸을 내려놓고, 그때는 게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리라.
순환을 받아들이라.
순환을 받아들이라.
순환을 받아들이라.
이것이 곧 바다의 아이들이 지켜야 할 단 하나의 율법이노라.
나의 아이들아, 너희 또한 거대한 순환에 포함된 일부임을 알라. 그리하여 –
[명경지수가 발동합니다!]누군가 소파에서 낮잠을 자던 내게 차가운 얼음물을 한 바가지 부은 것 같다. 몽롱한 감각으로 이상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내 정신이 한순간에 맑아졌다.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지?
…
나는 엘레나 이바노바, 호텔 파이오니어의 참가자. 정의와 불길한 상상의 주인.
간신히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눈을 찌르는 듯한 밝은 조명과 고급스럽고 편안한 침대. 내 몸 주변에 널려있는 복잡한 기계들과 팔에서 떨어져나온 호스.
이게 대체 뭐야?
내 궁금증을 풀어줘야 할 동료들은 무슨 춤이라도 추는 건지 방에서 양팔을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송이는 황당하게도 한 손에는 그림을 붙잡고 다른 한 손에는 –
“으아! 송이야, 오른팔에 그거 뭐야!”
“…”
“송이야?”
“엘레나 언니, 깨어났네요. 이건 신경 쓰지 마세요.”
“사, 사, 사람 머리인데?”
“별일 아니에요. 약간 사고가 있었거든요.”
“엘레나 언니? 다들 엘레나 언니를 이미 알고 계세요?”
“아, 실수.”
“예?”
귀여운 인상의 소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날 알아보는 동료들을 의아하게 여기는 듯하다. 저 아이는 누구지?
다른 동료들도 마치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는 듯 내게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네. 그리-”
그 어떤 전조도 없이 머릿속에서 마치 폭탄이 터지듯이 정보들이 물결처럼 쏟아졌다. 혼란 속에서 내가 온몸을 바르르 떨자 동료들이 당황하며 내 몸을 붙잡았지만, 대답할 틈조차 없었다.
쏟아져 내린다. 정보가 마치 장대비처럼 쏟아지며 내 머리에 내려와 꽂힌다.
‘해신의 딸 엘레나’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았다. 세레나데가 왜 나를 이 장소에 가두었는지 알았다. 이 섬에 닥쳐오는 절망이 무엇인지 알았다.
“당장 출발해야 해요! 지금 당장! 지금도 너무 늦었어요!”
“엘, 엘레나 언니? 갑자기 무슨 말이야? 우리 세레나데 언니를 만나러 가야 -”
할아버지가 즉시 앞에서 앵앵거리는 여자아이를 한 손으로 치웠다.
“어딜 가야 한다는 말이냐?”
“항구!”
몸이 휘청거린다. 장기간 투약된 마약과 수면제가 내 몸을 완전히 망쳤음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날 한 손으로 들어 올린 채 달리기 시작했다.
…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 그 잠깐 사이에 다시 정신이 흐리멍덩해졌다. 목소리. 목소리. 목소리. 또 귓가에서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다.
‘순환을 받아들이라. 삶의 끝에 죽음이 있음을 알라. 그 죽음의 끝이 또 새로운 생명의 시작임을 알라.’
머리가 아프다. 다급한 표정으로 가인 씨가 내 손을 붙들었다.
“엘레나! 지금 상태가 좋지 않아요? 그래도 한 가지는 말해주셔야 해요! 항구에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죠?”
“… 이수호.”
“예? 죽었다는 회장 아들?”
“아직 살아있어요.”
“네?”
삶의 끝에 죽음이 있듯이, 죽음의 끝에 새로운 생명이 있음을 알라. 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 쏴아아아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주 짜고, 비린내가 느껴지는 비가 쏟아진다.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너무 늦었다. 유사 이래 최초로 태어난 ‘해신의 성자’가 이미 목표를 전부 이루고 말았다. 이윽고 모든 이의 운명이 뒤집히리라. 먹는 자들이 먹히고, 먹히던 자들이 먹는 세계가 도래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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