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34)
233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1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대화창 메시지를 보자 순간적으로 안도했다. 최소한 두 사람이 살아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메시지를 보낸 엘레나, 대화창을 유지하는 묵성 할아버지. 둘은 아직 살아있다.
정신이 없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물살에 휩쓸려 떠밀려가는 방호복을 붙드느라 엘레나의 대화창에 반응할 정신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하지? 방호복의 무게는 족히 200Kg이 넘는다!
나에게 한 가지 수단이 남아있음을 알았다. 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주저할 때가 아니다. 어깨의 깃털 문신에 정신을 집중했다. 배꼽이 휙 당기는 느낌과 함께 아찔해졌던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방호복 내부에 들어온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한가인 : 성공!
엘레나 : 네?
한가인 : 아님. 어디로?
엘레나 : 물속에서 노란색 불빛을 따라오세요.
자연스럽게 넘어가려다가 순간적으로 위화감을 느꼈다. 보통 대화창을 쓸 때는 ‘활자 절약형’ 말투를 쓰지 않나? 물론 엘레나 본인의 상황도 정신이 없어서 평소 대화처럼 문장이 나오는 중일 수도 있다.
방호복을 입은 채 불빛을 천천히 따라갔다. 안타깝게도 방호복에 산소 생산 같은 기능은 없었기에 주기적으로 물 밖으로 나와 산소를 채워가며 따라가야 했다. 워낙 사방이 혼란으로 가득 찬 데다가 물속에 기괴한 해양 생물들이 넘쳐나서 빛을 따라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15분 정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움직인 끝에 나는 이상한 문을 발견했다. 바다의 마신이 일어서며 육지가 모조리 바다가 되어버리는 혼돈 속에서도 이 문은 멀쩡했다. 지상의 건물의 입구에 붙어있는 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빛이 인도한 장소는 다름이 아니라 해저의 동굴이었고 문은 엉뚱하게도 동굴에 붙어있었다.
내부엔 일종의 에어 포켓이 형성되어 공기가 남아있었다. 심지어 정체를 알 수 없는 환기 시설까지 있는 듯했다.
“여긴 대체….”
“오셨네요. 늦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엘레나?”
“이쪽으로 오세요.”
동굴의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알던 엘레나의 목소리가 많이 달라졌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엘레나에게 방호복을 입혔던 건 카다루다흐가 일어선 여파로 내리기 시작한 비가 어인족의 몸을 끔찍하게 망가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이를 막던 방호복은 이제 내가 입고 있다.
엘레나는 지금 대체 어떤 상태인 걸까? 최소한 그녀의 육신이 정상이 아니리라는 사실은 짐작했다.
…
또 한 가지 사실도 떠올랐다. 다름 아닌 ‘명경지수’의 특징이다. 광기로부터 정신을 보호하는 능력 자체는 호텔 파티 중 갖춘 사람이 적지 않다.
송이는 팔찌의 힘으로 제한 시간 동안 우리 중 누구보다 강력한 정신 방어력을 갖출 수 있다. 나는 상태창을 통해 팔찌보다 강도는 약하지만 시간 제약 없는 정신 방어력을 갖출 수 있다. 아리는 피를 소모해가며 나와 비슷한 정도의 정신 방어력을 일시적으로 갖출 수 있다.
그렇다면 엘레나는 어떤 유형이지?
셋 모두와 다르다. 명경지수는 애초에 광기를 막는 능력이 아니라 광기로 무너진 정신을 회복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송이나 나, 아리의 힘이 정신을 지키는 방패라면 명경지수는 무너진 정신의 치료제처럼 작동한다.
엘레나는 병원에서 처음 정신 차릴 때 명경지수라는 치료제를 이미 먹어버렸다. 그 덕택에 당시엔 우리가 아는 ‘호텔 엘레나’로 돌아왔었지만….
지금은 대체 어떤 상태일까?
모르겠다. 불안감이 엄습하며 움직이는 게 두려워졌다. 하필 이 순간 의지하고픈 조언의 숫자도 남지 않았다. 상어가 덮칠 때 한번, 엘레나를 깨울 때 한번, 방호복을 잡기 위해 한번. 세 번의 조언도 다 써버렸다.
…
— 찰박!
“가인 씨? 시간이 많지 않아요.”
결정을 내렸다. 애초에 여기까지 온 이상 내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 뒤로 돌아간다 해서 탈출할 방법이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은 ‘저 엘레나’가 내가 아는 엘레나에 가깝기를 빌도록 하자.
“갑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뗄 때마다 방호복의 헤드 램프가 보고 싶지 않던 끔찍한 광경을 비추었다. 온 사방에 뼈가 가득했다. 살점이 잘 발라진 뼈들이 어떤 생물의 것인지도 쉽게 알 수 있었다. 해저의 동굴에 어째서 이렇게 사람 뼈가 가득할까?
…
“가인 씨, 제 말 들리시죠? 아직 알아들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엘레나의 발음이 조금씩 이상해진다. 성대가 뒤틀리고 있는 걸까?
“아마 제가 왜 여러분을 악신이 깨어나는 항구로 인도했고, 당신은 왜 이 동굴로 불러냈는지 이해가 어려우실 것 같아요.”
“사실 그렇습니다.”
“안타깝지만 제가 깨어난 시점이 너무 늦었기 때문이에요. 깨어나기 직전에 카다루다흐의 목소리를 들었답니다. 해신의 딸로서 악몽을 10년도 넘게 꿨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입니다. 그래서 전 카다루다흐의 각성이 임박했음을 깨달았죠.”
“… 우리는 202호에 들어오고 24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엘레나를 깨웠을 텐데요?”
“그런가요? 놀랍게도 호텔 기준으론 하루조차도 너무 늦었나 보네요.”
“바깥에 나가서 계획을 철저하게 고민해야겠군요. 하루가 지나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말이니까요.”
“여하튼 카다루다흐의 각성은 이미 막을 수 없었어요. 그렇다면 악신이 부활한 상태에서 여러분을 대체 어떻게 탈출시켜야 하는가. 이 고민이 제 머릿속에 생겨났죠.”
탈출을 위한 방법이 있기는 있다는 이야기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 놓였다.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가인 씨, 당신이 어인이 되어야 해요.”
바로 두 걸음 물러섰다.
“미친 소리로 들리시겠죠. 하지만 진정하시고 들어주세요. 지금 카다루다흐는 인간에 대한 증오를 원동력으로 일어섰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어인이 되면 그의 목표에서 벗어난다는 이야기죠.”
세 걸음 더 물러서면서 답했다.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 오면서 어인족이 고통스럽게 죽는 걸 수도 없이 봤는데 -”
“그들은 죄인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어인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대죄를 저질렀고 카다루다흐는 그 죄의 대가를 후손에게 묻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죄인의 후손이 아니죠. 당신이 어인족이 되면 카다루다흐는 당신을 양자로 여길 겁니다. 이수호처럼.”
이상하다. 저 여자는 내가 아는 ‘그 엘레나’가 아니다. 틀림없다. 이미 해신의 딸의 자아가 저 몸을 차지했음이 틀림없다.
머릿속에서 다채로운 불온한 상상이 떠올랐다. 세레나데는 관공서의 지하에서 어인족으로 각성하지 못한 실패한 존재들을 조종했었지. 해신의 딸은 어인족을 통제할 수 있다. 저 여자는 날 어인족으로 만들어서 조종하려는 것이 아닌가?
바깥에서는 섬 전체의 어인족을 끔찍하게 죽이는 참극이 발생 중이고, 동굴 반대편의 여인은 어인족을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 이 상황에서 나보고 어인족이 되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즉시 동굴 밖으로 나가서 –
“가인 씨, 예전에 관문의 방에서 있었던 일 기억하세요?”
“…”
“첫 번째 방, 도플갱어 열차였나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곤 해요.”
“…”
“아니! 멀쩡히 열차 타고 잘 가고 있는데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절 죽이겠다며 오는 거 있죠? 그 순간 머리가 하얘졌어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어요. 마침 예전부터 좋아하던 드라마 속 장면들이 떠올랐죠.”
“…”
“드라마에서는요, 뭔가 애매하거나 임팩트가 부족하다 싶을 때 딱!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바로 뺨 후려치기죠. 시나리오에 긴장감이 없어? 시어머니가 여주인공 뺨 후려치는 게 최고죠.”
“10년 가까이 도망 다녔다면서 그런 건 언제 또 봤어요?”
“도망 다녀도 핸드폰은 있었어요. 게다가 어딜 가도 TV는 다 있었죠. 참, 제가 한국 와서 굉장히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있어요. 손으로 뺨 후려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코드라서 많은 드라마에서 봤지만 김치로 뺨을 후려치는 건 -”
“으악! 그런 건 대체 어디서 봤어요!”
“살다 살다 배추로 뺨을 후려치는 드라마가 세상에 있을 줄은 -”
“그만! 그마아안! 믿을 테니까 이쯤 하죠.”
“참고로 한국 드라마는 된장과 김밥, 미역과 파스타로도 싸대기를 후려쳐요.”
어처구니없는 대화였지만 엘레나가 무슨 의도로 꺼낸 대화인지는 이해했다. 이런 대화는 ‘해신의 딸’이라면 할 수 없는 대화 같다. 엘레나는 내게 ‘나는 당신이 아는 호텔의 엘레나랍니다.’라고 말했다.
… 그나저나 K 드라마는 뺨 후려치기에 왜 이렇게 진심이야?
동굴을 가로질러 한참을 걸어가자 공간을 가르고 새하얀 문어 다리 같은 것이 다가왔다.
“더 오지 않으셔도 돼요.”
짐작이 간다. 지금 엘레나의 형상은 인간에게서 많이 벗어났으리라.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다가온 문어 다리의 끄트머리엔 알 수 없는 이상한 생물이 있었다. 이건 대체 뭐지? 대형 달팽이인가? 민달팽이? 꿈틀거리는 살덩이는 촉수? 생전 처음 보는 생물이다. 미묘하게 달팽이를 닮은 듯했지만 절대 달팽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다.
“이게 ‘루다흐’에요.”
“루다흐?”
“모든 것의 시작이 된 생물. 800년 전, 최초의 어인이 되었던 어부들이 심해에서 발견한 신의 자손들.”
그 말과 함께 촉수가 서서히 내게 다가왔다. 나는 방호복을 벗고 ‘무언가’를 기다렸다.
…
두렵다. 혐오스럽다. 지금이라도 저 달팽이를 밟아서 죽이고 싶다. 다가오는 촉수, 그 끝에 올라탄 정체불명의 생명체. 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호텔에서 온갖 일을 겪으며 초자연적인 일에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느끼는 생리적 혐오감만큼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눈을 감아버렸다.
“조금 아플 겁니다. 참으세요.”
이 말은 거짓말이었다. 고통은 결코 ‘조금’이 아니었으니까.
*
몸이 산채로 회 쳐진다면 이런 감각일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지? 촉수가 내 몸통을 꿰뚫었다는 사실 까지는 인지했다. 직후에 무언가가 내 몸 안에서 꿈틀거렸다.
변이를 느꼈다. 내 몸이 인간의 형상에서 조금씩 벗어남을 느꼈다. 이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고통이나 분노가 아니었다.
혐오감이다!
나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이형의 존재로 변해간다.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혐오감이 내 마음을 덮쳤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이 끔찍한 202호를 나갈 수만 있다면 모든 고통은 물거품처럼 사라지리라. 고통의 끝, 혐오감으로부터의 해방. 이 모든 구원을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
‘탈출’
그것만을 고대하며 견디고 또 견뎠다.
손이 사라졌다. 다리가 사라졌다. 폐가 사라졌다. 아니다. 그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단지 ‘다른 형태’가 되었을 뿐이다. 나는 내 몸을 두 눈으로 지켜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의식이 흐려지기 직전에 – 거대한 안광을 보았다.
‘그대, 바깥에서 온 자.’
“…”
‘고통의 끝을 다오.’
그것이 내게 남은 마지막 기억이었다.
/당신은 탈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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