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35)
234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12)
– 유송이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내 몸 또한 모래사장의 물거품이 사그라들듯이 으스러지고 말겠지. 심연과도 같던 어두운 밤바다, 그 한복판에서 불가해한 존재가 일어서는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차라리 아까 눈을 뽑아내던 은솔 언니처럼 돌아버리는 게 나았을 텐데. 본능적으로 발현한 팔찌의 힘 덕에 내 정신은 아직도 이토록 생생하다. 그래서 그냥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기로 했다.
무책임한 태도처럼 느껴지겠지만, 아까 대화창을 봤다. 엘레나 언니가 가인 오빠만 불러내서 어디론가 데려간 것 같아. 설마하니 이 와중에 둘이 데이트 할 리는 없으니까 당연히 탈출했겠지? 그렇게 믿기로 했어.
— 출렁!
어둑한 심연 아래에서 ‘무언가’가 내게 다가옴을 느꼈다. 비틀어지고 뒤틀린 추악한 형상이 내게 다가온다. 마침내 힘들었던 202호의 첫 번째 시도의 끝이 다가옴을 느꼈다.
“이왕이면 머리부터 한입에 부탁해! 내 머리는 작으니까 너 정도면 한 입 컷 가능!”
얌전히 머리를 괴물 쪽에 들이댔다.
— 출렁!
나는 내 축복이 ‘친화’였다는 사실을 꽤 오랜만에 자각했다.
*
“토토! 너 이런 거 붙이고 다니면 간지럽지도 않아?”
— 그르르!
— 탁!
“땠지! 머리 좀 가만히 못 있겠니? 언니가 시원하게 해줄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순서대로 돌이켜보자. 이수호를 막기 위해 항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때는 늦었고 도착하자마자 대양의 마신이 일어서서 모든 것을 끝장내고 말았지. 나는 마신이 불러일으키는 광기를 팔찌의 힘으로 버티며 죽음을 기다렸다.
그리고 초대형 바다 거북이가 나타나서 날 등에 올린 채 어디론가 헤엄치기 시작했다.
이게 말이 되냐고? 나도 모르겠어.
사실 호텔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 상식적으로 이렇게 가겠지? 이런 예측은 거의 다 빗나간다.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런 식으로 진행되겠지? 이런 예측도 거의 다 빗나간다.
1, 2, 4. 다음엔 뭐가 와야 할까?
언뜻 보면 8이 오고 다음엔 16이 와야 할 것 같다.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7이 오고 다음엔 11이 오는 수열 같기도 하다. 이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적인 진행’이다.
그리고 호텔은 ‘2와 4 사이에 3이 빠졌잖아!’라고 외치면서 3을 빼먹었다는 이유로 우리를 몰살시키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예측을 포기하고 그저 생각의 흐름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토토(조금 전에 내가 이름 붙인 거북이의 이름이야.)의 온몸에 붙은 따개비를 보고 있으니까 견디기 힘들어져서 따개비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토토도 평소에 간지러웠는지 다리들을 들어 올리며 여기도 따개비가 있다고 보여줬다.
온 세상을 뒤흔들 기세로 일어섰던 마신은 먼 장소로 떠나갔다. 육지를 향한 건가? 모를 일이다. 마신의 다음 행보 따위보다는 지금 내 옆에 나타난 뱀 한 마리가 더 신경 쓰였다.
— 할짝!
“혀 대지 마! 변태야. 나 인기 좋은 여자야.”
내 말을 바다뱀이 이해하는 느낌은 아니었어. 사실 바다뱀은 그냥 거북이의 몸 위에 자신도 올라타려던 것 같다.
바다가 올라온다. 출렁이는 파도가 해신 섬의 흔적을 하나하나 집어삼켰다. 폭풍우 속에서도 들려오던 어인족들의 비명은 어느 시점부터 들리지 않았다. 그때쯤, 꽤 거창하게 생긴 요트가 내 근처로 다가왔다. 요트에는 반신을 비늘로 두른 청년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세상이 망한 것 같은데 요트 좀 같이 타죠!”
“넌…. 관리국 요원인가? 섬에 들어왔다는 정보를 -”
“요원이요? 그런 무서운 사람들 몰라요!”
“…”
“전 거북이 몸에서 따개비 떼어내는 일을 잘한답니다!”
그 말과 함께 토토의 앞발을 들어서 흔들자 청년이 입을 딱 벌렸다.
“올라오시게. 오늘 별 희한한 구경을 다 하는군.”
— 탁!
거북이의 등 위에 올라타서 바다를 유랑하는 일도 나름대로 재밌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거북이 등 보다는 요트가 낫지. 요트에 올라오자마자 편안해졌다.
“토토 안녕! 퓨퓨도 다음에 봐!”
“토토? 퓨퓨?”
“거북이가 토토고 뱀이 퓨퓨에요.”
“저들의 이름은 아스달리오스와 키오른이라는 이름이 -”
“토토랑 퓨퓨가 낫네.”
“… 그런 셈 치지. 그래, 관리국 아가씨. 붕괴해가는 섬을 보시며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
“먹을 것 좀 얻을 수 있을까요?”
“…”
*
테이블 위에 올라온 통조림을 보자 이 와중에도 식욕이 동했다. 이수호로 추정되는 이 남자도 꽤 웃기는 사람이네. 이 와중에 밥을 달라니까 진짜 주는 것만 해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아.
“변변찮은 식사 대접이긴 하지만 -”
“진짜 변변찮네요.”
“… 이런 장소에서 아무려면 스테이크가 나올 수는 없지 않겠어?”
“청성 그룹 회장님 장남씩이나 되시는 분이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호화 요트에 계실 줄 알았는데요.”
“그런 요트는 너무 커서 숨기에 적합하지 않아.”
“평소엔 쥐새끼처럼 숨어계시는군요.”
“말이 험하군. 세레나데가 날 산채로 회 뜰 기세로 쫓으니 숨을 수밖에.”
잠깐의 대화로 한 가지 알았다. 세레나데는 이 남자를 쫓아왔다.
통조림 속의 불어 터진 밍밍한 밀가루 덩어리를 한참 동안 씹으며 생각했다. 탈출은 가인 오빠가 했다고 믿자. 나는 뭔가 알아내야 한다. 대체 어떻게 알아내야 할까? 팔찌로 환각을 보여봐?
일반인도 아니고 악신을 일으켜 세운 대사제 같은 존재인데 통할지도 모르겠고 통한다 해도 그런 걸로 내게 두려움을 느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냥 정공법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 그냥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 게 어때요?”
“…”
“오빠, 그냥 속마음 확 다 열어봐요.”
“대체 내가 왜 네 오빠냐?”
“그러면 잘생긴 아저씨?”
이수호가 한숨을 한번 크게 쉬었다.
“뭐, 아무래도 좋지. 어차피 결말이 다가오고 있으니 피차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결말?
“이렇게 하자. 관리국 아가씨, 너도 내게 궁금한 게 많겠지만 나도 당신들에게 궁금한 게 있거든. 질문을 하나씩 나누자. 어차피 다 끝나간다는 걸 너도 알고 있을 테니 불필요한 심리전으로 시간 낭비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예상과 다르다. 마신이 지배하는 세계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 뭐 이런 걸 노리는 게 아닌가 했는데. 방금의 대화를 되새겨보면, 이수호는 자기 죽음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좋아요. 제가 먼저 물어볼게요. 대체 왜 이 지랄 염병을 떠는 거야 이 미친 호로새끼야!”
나도 모르게 말이 좀 세게 나갔어. 오늘 하루 너무 고생했거든.
“시작부터 템포가 세군. 별것 아니네. 어인족이 저지른 죄악의 대가를 치르게 했을 뿐.”
“최초의 -”
“아가씨, 이젠 내 차례지. 약속하지 않았나?”
“…”
“엘레나는 잘 있었나? 어떤 상태였지?”
“이 난리를 벌였으면서 엘레나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군요.”
“질문에 답해주게.”
“세레나데가 엘레나를 가둔 채 마약을 투입해서 아예 깨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어요. 지금은 우리가 구출했지만, 당신이 이 난리를 일으켰으니 지금쯤 죽었겠죠.”
내 대답을 듣고 이수호는 어딘가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제 차례죠? 당신이 말하는 죄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최초의 어인들이 저지른 죄 아닌가요? 그 어인들이 죽은 지 700년 800년이 흘렀는데 손자의손자의손자의손자의 하여튼 먼 후손에게 따지는 게 말이 되나요?”
나는 이 지점부터 이해가 가질 않았다. 차라리 카다루다흐, 마신이야 누가 봐도 너무 다른 존재니 그러려니 했다.
사람이 개미가 자신을 물어뜯었을 때 개미의 개체를 구분해가며 죽이던가? 그냥 약을 뿌려서 개미집 전체를 없애버린다. 마신도 비슷한 이치로 죄악을 저지른 자가 어인족의 조상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카다루다흐를 일으켜 세운 이 남자는 인간이다. 적어도 인간 ‘이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하군.”
“네?”
“난 조상의 죄 때문에 어인족을 벌한 적이 없다.”
“예?”
“어인족이 ‘현재’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르게 했을 뿐. 물론 부활한 카다루다흐에게는 과거의 일도 문제였을지 모르겠군.”
어인족에게 두 개의 대죄가 있다. 선조들이 저지른 최초의 죄악. 더해서 후손이 저지른 또 다른 죄악. 이수호는 자신이 응징하려 한 것은 전자가 아닌 후자라고 말했다. 물론 부활한 카다루다흐는 전자도 문제 삼을 수 있겠지만 이는 이수호 본인의 의도는 아니다.
“이제 내 차례군. 개인적인 호기심인데, 조금 전에 아스달리오스와 키오른을 어떻게 통제했지? 내 말도 잘 듣지 않는 카다루다흐의 권속들인데?”
“토토와 퓨퓨?”
“… 토토와 퓨퓨를 어떻게 통제했나?”
“음. 호텔에 계신 위대한 분이 제게 내린 축복의 힘이죠.”
“그것 참 성의 있는 대답이군. 사실상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은 느낌인데.”
“오해에요. 진짜 다 말해준 건데.”
“그런 셈 치지. 나도 첫 번째 질문은 대강 넘어가긴 했으니.”
그 말을 끝으로 이수호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가 내게 궁금했던 점은 엘레나의 안부와 내 축복, ‘친화’에 대한 정보 뿐이었던 것 같다.
나도 많이 지쳐서 멍하니 불어 터진 국수를 마저 집어 먹었다. 이수호는 잠시 어딘가 떠나더니 새로운 통을 가져왔다.
“고추장 고기볶음?”
“이것과 같이 먹으면 그래도 좀 먹을만해. 하나 남아있는 걸 깜빡했군.”
“일찍 좀 가져오시지.”
“미안해.”
확실히 고추장 고기볶음과 치킨 누들을 같이 먹으니까 아까보다는 훨씬 먹을 만했다.
그때쯤, 갑자기 하늘이 밝아졌다!
“아아…. 이제 결말이 다가왔군.”
“저, 저, 저게 뭐죠!”
놀란 나를 보고 이수호가 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관리국 아가씨가 그걸 내게 묻나? 돌아가는 꼴이 망했다 싶을 때 관리국이 쓰는 병기 아닌가? 이름이 아마 터미네이터던가?”
“터미네이터?”
하늘에서 빛이 내려온다. 무슨 핵미사일이야?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속도가 느린 데다가 미사일 같은 물리적인 실체가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빛의 덩어리가 천천히 바다를 향해 내려왔다. 기이하게도 아까 전 마신을 보았을 때나 느꼈던 형언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감각을 저 빛에서 느꼈다.
차분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온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인 법. 결국 오래 사는 것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뜻있게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쁘지 않은 삶이었어.”
이수호 이 인간! 너 혼자 무슨 도 닦냐! 마음대로 해탈이라도 했어? 순간적으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마디 해줬다.
“아저씨.”
“유언이 있으신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게. 우린 또 만날 거야. 그리고 그때는 당신의 생각처럼 이루어지진 않을 걸?”
빛이 내려온다. 천지를 뒤흔드는 휘광, 헤아릴 수 없는 마(魔)에 맞서 세계를 지켜온 조직의 저력이 담긴 무언가가 수면을 강타했다.
— 번쩍!
마지막 순간에 내가 느꼈던 감각은 우습게도 기쁨이었다. 70억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 쌓아 올린 문명의 정화, 그 모든 것이 단 하나의 빛줄기에 담겼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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