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37)
236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14)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터미네이터’라는 단어가 송이 입에서 나오자 아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주지사가 나오는 영화 제목 말하는 건 아니지?”
송이는 자신이 경험한 ‘터미네이터’라는 엄청난 병기에 관해 설명했다. 최후의 순간에 해신 섬이 있던 장소에 떨어졌으며, 이수호의 말에 따르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을 때 관리국이 쓰는 최종 해결책이라고 한다.
외견상 미사일과 같은 물리적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조그마한 별이라도 되는 듯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빛의 덩어리와 같다.
이 설명을 들은 아리와 할아버지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걸 개발했다고? 벌써?”
“최소한 50년쯤 후에야 가능한 것 아니었나?”
“나는 100년 후에나 나올 줄 알았는데.”
대체 무슨 병기길래 이런 반응일까? 모두가 궁금해하자 아리가 간단히 설명해줬다.
“관리국이 연구하는 궁극적인 병기 중 하나라고 보면 돼. 이론적으로 물리적인 존재뿐만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존재에 대해서도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다고 하지.”
할아버지가 옆에서 말을 이었다.
“관리국은 보통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를 섬,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거하는 장소를 바다에 비유하곤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악마나 괴물이 들끓는 상태는 육지가 지나치게 ‘습해진’ 상태지. 이 습기를 압도적인 열량으로 증발시키는 병기라고 하면 이해 가냐?”
“뭔가 알 듯 모를 듯하네요.”
“사실 나도 그렇구나.”
두 사람이 관리국의 최신 병기의 원리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아리도 할아버지도 일종의 현장 요원이다. 현대전에서 군인들 역시 자신들이 쓰는 최신 병기의 원리를 정확히 모를 텐데, 두 사람도 다르지 않겠지.
하지만 두 사람이 당황한 이유는 그게 아닌 듯했다.
“문제는 내가 알기로 터미네이터는 아직 실전에서 쓰일 수 없는 연구 단계의 병기란 말이지.”
은솔 누나는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였다.
“어차피 우리가 살아온 세계와 202호의 무대는 다르잖아요? 202호 내부 세계 쪽의 문명이 조금 더 발전한 모양이죠.”
“은솔이 네 말도 그럴듯하다만 위화감이 느껴지긴 하는구나.”
아리는 그 위화감을 간단히 정리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갑자기 궤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있는 느낌? 문명이 엄청나게 발전해서 궤도 엘리베이터를 만들어낼 정도라면 다른 부분에서도 티가 나야 하잖아. 202호는 다른 면에선 그냥 내가 아는 지구의 문명과 그리 다르지 않았어.”
“그런가?”
더 말해도 답이 없는 이야기다 보니 모두가 조용해졌다. 이 주제가 202호의 해결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리와 할아버지의 반응을 미뤄볼 때, ‘터미네이터’는 우리 세계에선 50년에서 100년은 지나야 완성할 수 있는 공상과학적 무기인 듯하다. 이런 무기가 202호에서 대단히 빠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방의 시나리오와 연관이 있을까? 잠시 고민해보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엘레나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질문했다.
“저는 어떻게 될까요? 이미 봉인은 풀렸잖아요? 시작하자마자 저도 리무진에서 시작할까요?”
201호에서 나의 경우 봉인이 풀린 회차에서 바로 방을 해결했지만 엘레나는 봉인에서 풀려나고도 더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선이 아리 쪽으로 쏠리자 아리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예전 파티는 2층에서 얼마 못 가서 막혔어. 애초에 주요 인물이 봉인 당한 걸 보고 더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거든.”
잠깐 고민해봤지만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둘 중 하나일 듯합니다. 첫째, 엘레나는 바로 합류해있고 ‘둘째 딸’ 역할에는 다른 NPC가 투입된다. 둘째, 다시 봉인된다. 후자여도 큰 문제는 아닐 것 같네요. 엘레나의 위치를 이미 알잖아요? 병원에 다시 가면 되죠.”
더 말해봐야 답이 없다. 직접 경험해봐야 알 문제다. 이후에도 해결을 위한 계획을 늦은 시간까지 차근차근 세우며 시간을 보냈다. 중간쯤 방을 바꿔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기각되었다.
1층을 진행할 때는 호텔의 시스템에 대해 잘 몰라서 여기 들어갔다 저기 들어갔다 했지만, 어느 정도 이해한 현재 시점에서 보면 방을 도중에 바꾸는 일은 의미가 없다. 어차피 어느 방을 들어가도 위험은 넘쳐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202호는 나름대로 많은 정보를 알아냈지만 다른 방은 정보가 하나도 없으므로 다른 방이 더 위험하다고 봐야 한다. 방의 교체는 첫 시도에서 알아낸 정보도 거의 없고 도저히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혹은 시도 횟수가 5회가 되어서 방이 비틀어지기 시작했을 때나 고려할 일이다.
다음 날 아침, 다시금 모두가 모였다.
“다들 어제 했던 이야기 기억하지? 속전속결로 진행해야 하는 방이니까 각자 잘 기억해둬야 해.”
예상대로 승엽이가 조심스레 손을 들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질문했다. 다행히 승엽이가 할 일은 명확해서 긴 설명이 필요하진 않았다.
엘레나가 불안한 듯 말했다.
“가인 씨의 조언을 쓰지 않고 들어가도 될까요? 불안한 점이 많은데.”
내가 대답했다.
“불안하긴 한데 해신 섬에 들어갈 때부터 있었던 저주를 생각해보세요. 아마도 이수호가 설치했겠죠? 그런 저주가 더 있을지도 모르니 아껴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202호의 두 번째 시도가 시작되었다.
*
– 이은솔
“부장님, 청성 그룹에서 보낸 자료 읽으셨나요?”
“읽긴 했는데 대체 무슨 주장을 하려는 건지 원!”
“아무래도 대외적인 견해와 실제 입장이 다소 다른 듯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놈의 회장 상판대기를 보려고 직접 가는 중 아니냐. 허 참 그놈이 -”
“부장님, 그래도 청성 그룹에선 조심해주세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회장 아들이 참변을 당한 상황입니다.”
— 삑!
이미 한 차례 경험한 대화가 지나가고 모두가 정신을 차리자 차가 멈췄다. 주변을 돌아보아도 엘레나는 보이지 않았다. 가인이가 대화창으로 엘레나를 불렀다.
한가인 : 엘레나?
잠시 기다렸지만 대화창 반응 또한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엘레나는 다시 그 병원에 잠들어있는 모양이네.
“엘레나는 병원에 있나 보다. 애초에 이걸 고려해서 계획을 짰으니 문제는 없어. 다들 각자의 역할 기억하지?”
다행히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할아버님은 제일 먼저 차에서 내렸다.
“화이팅!”
“화이팅!”
202호의 진행에 있어서 핵심 키워드는 뭘까?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청성 그룹도 캐봐야 하고, 천운이 인도한 리링가노르도 데려와야 하고, 해신 섬에 가서 세레나데에게 정보도 캐고 이수호도 찾아야 한다.
이 모든 일을 늦어도 오늘 밤 이전에 다 끝내야 한다!
결국 핵심 키워드는 ‘시간 절약’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모여서 진행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대기업의 행동 방식에 익숙한 나와 연배가 있는 할아버님이 청성 그룹 쪽을 살펴보기로 했다. 회장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샘솟는 걸 느끼며 말했다.
“할아버님, 진짜 괜찮을까요?”
“은솔이 네가 이렇게 자신감 없이 굴 때도 있구나. 평소엔 뭐든 아는 사람처럼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하더니.”
“이번엔 제 역할이 좀 과격하잖아요.”
‘모자’를 가리키며 말하자 할아버님이 끄덕였다.
“엘레나가 있었으면 편할 일을 꽤 피곤하게 진행하게 된 셈이긴 하지. 뭐 걱정하지 마라. 원래 요원이 하는 일은 절반은 깡패야.”
“…”
“나는 국회의원 면상도 때려 봤어.”
“그걸 지금 기운 내라고 하시는 말이에요?”
“대통령도 아니고 재벌 회장이 뭐 대수라고 그러냐? 자신감을 가져.”
저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뒤 문장은 동의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감 있게 행동해야지.
— 띵!
회장실에 도착했다.
잠시 할아버님과 회장 사이에서 익숙한 대화가 진행되었다. 청성 그룹 회장 이문춘은 예전에 들었던 항구 이야기도 꺼내고 아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드러내기도 하며 대화를 이끌어갔다.
회장의 아들이 어인족에게 살해 당했다면 관리국과 어인족이 맺은 불가침조약의 문제로 항구와 관련한 협상이 유리해지리라는 이야기도 또 나왔다. 어느 정도 진실을 알아낸 상태로 이 대화를 다시 듣고 있으니 저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을 본 회장이 반응했다.
“뒤쪽의 아가씨는 아까부터 조용하시군요. 혹시 하실 말이 있으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듣다 보니 좀 웃겨서요.”
“… 우스운 내용이 있는 줄은 몰랐군요. 저는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내 아들이 살해당한 이야기를 하는 중인데 어떻게 웃을 수 있냐고 비꼬는 기색이다. 물론 그 반응을 보니 더 큰 웃음이 나왔다.
당신 아들 멀쩡히 살아있다고 이 양반아!
“슬플 이유가 있나요?”
“…”
“아 죄송. 회장님 아들이 돌아가셨다고 했었나? 혹시 회장님은 시체는 보셨나요?”
“그걸 여러분이 제게 물으시니 이상한 일이군요. 시신을 검시한 건 관리국 아닙니까?”
그런 설정이었나?
조금 신기한 일이다. 이수호는 현재 악신의 대사제쯤 되는 위치이니 가짜 시체 정도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그런 수작에 일반인도 아닌 관리국도 속았을 줄은 몰랐다.
— 탈칵!
슬슬 때가 되었음을 느낀 할아버님이 회장실 문을 잠갔다. 당연히 회장은 크게 당황했다.
“가,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 자는 자기 아들이 해신의 둘째 딸과 연인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지금 확인해보면 될 일이다.
“이문춘.”
“무슨 -”
‘특급 셰프의 카리스마’ 발동!
“너 이 애미없는 호로 새끼! 니 면상을 보니까 부모님은 진작에 다 돌아가셨겠네! 이제부터 그 주둥이에서 개소리가 튀어나오는 일은 없길 빈다. 응? 니가 우릴 속여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대, 대, 대체 이게 무슨 짓 -”
“눈 안 깔아? 내가 포크로 눈을 찍어줘? 니가 관리국과 척지고도 이 좆만 한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냐?”
“제발 진정 좀 하시지요…. 이유라도 말씀해 주시고-”
“이유? 겁나 많지. 니 아들이 해신의 딸과 붙어먹었다는 소문이 나라 전체에 떠들썩한데 이걸 숨겨? 설마 ‘몰랐다’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길 바라. 그 말이 나오면 정말 실망할 것 같으니까.”
그 말을 들은 회장은 흡사 벼락에 맞은 듯 온몸이 굳었다. 이 정도면 모자의 위력이 힘을 발휘했다 싶어서 슬쩍 모자를 벗었다.
잠시 후, 회장은 숨겨왔던 비사에 대한 이실직고를 시작했다.
*
“예상과는 좀 다르네요. 조금 더 거창한 이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세상일은 때로는 단순한 법이지.”
회장이 아들과 해신의 둘째 딸의 관계를 숨긴 이유는 정말 별것 없었다. 이수호와 해신의 딸 사이에 좋은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관리국이 불쾌하게 여길 것 같았다나? 진짜 이게 끝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다시 한번 모자를 쓰고 윽박질렀지만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아들의 생존에 대해선 자신을 놀리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
“혹시 회장이 심신을 통제해서 우릴 속였을까요? 요전에 모자 가지고 실험할 때 할아버님과 아리는 무난히 버티시던데.”
“은솔아, 회장이라고 해봐야 일반인인데 우리랑 비교하는 게 말이 되냐? 심지어 마지막엔 오줌까지 지리던데 그 모든 게 연기면 그놈은 오스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런가요.”
“오히려 난 다른 부분이 이상하다.”
“네?”
“지금 이 세계는 통제 계파, 그 순진한 몽상가들이 집권 중인 세계 아니냐.”
할아버지는 통제 계파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그놈들은 입만 열면 이종족과 인간은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하거든. 전형적인 몽상가들인데, 여하튼 그놈들이 보기에 이수호와 둘째 딸의 연애는 불쾌하게 여길 문제가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 통제 계파의 눈에 보기에 재벌 집안의 장남과 이종족 지도자의 결합은 불쾌한 일이긴커녕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의 일이겠지.
“회장이 관리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아닐까요?”
솔직히 난 내가 살던 세계의 관리국이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 따위는 전혀 모르고 살았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래서 그 부분은 굳이 따지지 않았다.”
다음 장소로 향하기 전,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들이 보기엔 관리국 요원이 재벌 회장을 겁박해서 혼절시킨 상황인데…. 진짜 괜찮은 것 맞죠?”
“…”
“할아버지?”
“너 그 모자 현실로 돌아가면 절대 함부로 쓰지 마라.”
“에? 에에에? 자신감을 가지라면서요!”
“그 정도일 줄은 몰랐지. 무슨 놈의 욕설이 그렇게 물 흐르듯이 나와?”
*
– 박승엽
“아, 여기가 아닌가?”
“…”
점점 옆에 있는 의사 선생님의 눈초리가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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