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38)
237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15)
– 박승엽
“이상하다? 여기라고 한 것 같은데?”
“…”
두 번째 시도에서 나와 의사 선생님이 맡은 임무는 세레나데에게 추방당해 부산에 머무르던 리링가노르를 찾아내는 일이다. 하지만 리링가노르와 대화하며 들었던 ‘평소에 머물렀던 집’을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솔직히 내 책임이 아니다. 애초에 리링가노르가 무슨 자세한 주소를 알려준 게 아니기 때문이야. ‘콩이’라는 거대 갯지렁이를 타고 이동하다가 ‘저 건물이죠!’ 하면서 폐허가 된 건물을 가리켰을 뿐이라고.
쓰나미로 초토화된 도시에서 봤던 건물을 아직 멀쩡한 부산에서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그때, 옆에 있던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승엽 군! 혹시 저 빌라 아닙니까?”
“예?”
선생님이 가리키는 빌라를 보자 저절로 무릎이 딱 쳐졌다. 여긴가? 저긴가? 하면서 애매했던 기억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어떻게 찾으셨어요? 직접 들은 저도 헷갈렸는데.”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대낮인데 베란다부터 창문까지 죄다 꽁꽁 닫아서 암실처럼 해놨군요. 아마 어인족이니 외부에 들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지만 저 행동 덕에 더 눈에 띕니다.”
“아하!”
그래도 금방 찾아서 다행이다.
*
– 이은솔
“응. 응. 잘했어!”
승엽이에게 보고가 들어왔다. 금방 끝난 모양이다.
“셋째 딸을 찾았다고 하냐?”
“네. 금방 찾았고 해신 섬으로 가자는 설득도 끝낸 모양이네요.”
“설득도 이렇게 빨리? 언니가 쫓아냈으니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부릴 줄 알았는데.”
“섬에 엄청난 위기가 닥쳤다고 설득했다네요.”
“틀린 말은 아니네. 그러면 이제 이쪽이 문제군.”
상현 씨와 승엽이가 맡은 역할이 리링가노르를 찾아내고 포섭하는 일이라면, 나와 할아버지의 역할은 청성 그룹 쪽 상황을 살피고 이수호를 찾아낼 방법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수호를 대체 어떻게 찾아내야 할까? 제주도보다 거대한 섬을 사람 9명이 반나절 뒤져서? 불가능하다. 애초에 섬의 지배자인 세레나데도 이수호를 찾아내지 못한 판이다. 이수호가 초자연적인 수단을 써서 은신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그래서 우리가 떠올린 생각은 간단했다. 관리국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
더 많은 사람을 쓰거나 탐색용 인공위성을 동원한다면 어떻게든 찾아낼 방법이 있겠지. 다만, 정작 관리국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아리와 할아버지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찌 됐든 계획이 세워진 만큼 할아버지는 아까부터 반복적으로 관리국 측 사람과 통화 중이다.
“이번에도 어렵다고 하나요?”
“쉽지 않다. 이유도 똑같아.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는구나.”
우리야 이미 첫 번째 시도를 통해 오늘 당장 이수호를 찾아내지 못하면 카다루다흐가 강림해서 대재해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시나리오 내부의 사람들에게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근거랍시고 우리는 사실 바깥 세계에서 왔어요~! 할 수도 없는 판인데.
관리국은 이 세상 대부분의 집단과 비교를 불허하는 인적, 물적 자원을 보유한 조직이다. 그 말이 관리국의 자원이 남아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들은 또한 별 전체를 보호해야 하는 집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원은 항상 모자라므로 추가적인 지원 요청은 근거가 필요하다.
나와 할아버지가 설마 두 번째 시도는 이수호를 찾아내지 못해서 망하는 거냐며 한탄하던 그 순간, 의외의 방향에서 도움이 찾아왔다. 갑자기 할아버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관리국 부산 지부를 담당 중인 박진성 부장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탐색 드론 22기와 타격대 1팀 지원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김묵성 요원, 맞습니다. 부족할 수 있겠지만 이 정도가 제 최선입니다.”
“오히려 고맙다고 전하고 싶군요. 이 정도 자원을 빼내기도 쉽지 않았을 터인데…. 시점은 언제?”
“드론은 즉시 출격시킬 수 있지만 타격대는 저녁 무렵에나 해신 섬에 진입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도 갑니다.”
“음?”
옆에서 듣던 나도 당황했다. 부장 본인이 해신 섬에 와? 현장에서 뛸만한 신분은 아닌 것 같은데?
“김묵성 요원, 사실 요원의 지원 요청은 근거가 매우 빈약합니다. 본인의 직감과 추측에 적당히 살을 붙인 것에 불과하죠.”
“… 인정하지요.”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첫 번째 시도를 통해 얻어낸 정보들은 시나리오 내부의 NPC들이 보기엔 그냥 상상력을 발휘해서 짜낸 시나리오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나도 예전에 비슷한 직감을 느꼈지요.”
?
“지원 요청에 ‘이수호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지요?”
“그렇습니다만….”
“나는 지난 몇 년간 이수호를 4번 정도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충동을 느끼곤 했죠.”
“충동?”
“요원, 나는 내가 사람 보는 눈이 밝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겠지. 그러니까 관리국 같은 조직에서 부장씩이나 하고 있겠지.
“이수호 그자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충동을 열댓 번은 느꼈습니다. 참고 또 참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죽었다는 보고가 들어오길래 안심했지만, 동시에 목덜미가 서늘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식으로 쉽게 죽어 나갈 종자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 요원의 보고를 듣자 다시 목덜미가 서늘하군요.”
그 말을 끝으로 박진성 부장은 지원을 약속하며 연락을 끊었다.
“할아버님,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요?”
“사악한 신을 부활시키려는 놈이니 예전부터 어딘가 돌아있던 모양이지.”
“그냥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관리국 고위층이 저놈을 죽일까 말까 고민한다고요?”
“으음…. 사실 나도 살면서 몇 번 느낀 직감이다. 저 새끼는 반드시 언젠가 사고를 친다 이런 거지. 하지만 부장 그 사람이 직접 온다니 당황스럽긴 하군. 개인적인 원한이라도 있는 게 아닐지?”
숙련된 형사는 길 가는 사람의 걸음걸이만 보더라도 범죄자의 ‘촉’을 느끼곤 한다고 한다. 이런 현장 전문가의 직관은 단순한 감이라기보다는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운 다양한 정황증거에 대한 순간적인 판단에 가깝겠지.
그 비슷한 직관을 박 부장이라는 사람이 느꼈던 걸까? 혹은 할아버지의 추측처럼 ‘개인적 사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알았다. 이수호는 해신의 성자가 되기 전부터 어딘가 광기가 느껴지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것으로 우리가 할 일도 마친 느낌이다. 상현 씨와 승엽이는 리링가노르를 찾아내서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도 청성 그룹을 탐색하고 관리국의 지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우리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만 남았다.
한가인, 차진철, 김아리, 유송이. 이들은 세레나데를 설득하고 엘레나의 봉인을 풀 수 있을까?
할아버지가 옆에서 날 채근했다.
“저쪽 건물 앞에 상현이가 온 것 같구나. 이제 우리도 해신 섬으로 출발하자. 리무진은 대기시켰다.”
승엽이는 이번엔 진짜 탈출하기 위해 리링가노르에게 얻은 정보를 보고하겠다는 핑계로 서울에 있는 관리국 지부로 이동 중이다. 그 장소야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니까.
하지만 사악한 신이 부활하는 상황에서도 안전한 장소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 한가인
“방금 누나에게 보안 문자 왔어.”
옆에 있던 아리가 귀를 쫑긋했다.
“뭐래?”
“리링가노르는 찾아서 의사 선생님이 데려오고 있어. 청성 그룹에 대한 탐색도 대충은 한 모양이고, 무엇보다 관리국에서 탐색용 드론들과 특수부대를 투입해주겠다고 했대.”
그 사이에 아리도 이미 핸드폰을 꺼내서 누나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용케 탐색용 드론까지 얻어냈네. 한국 전체에 200대 미만인 물건인데.”
“보통 드론과 다른 거지? 겨우 20대 정도로 반나절 만에 해신 섬을 뒤질 수 있을까 싶어서.”
“충분하고도 남아. 다만 이수호가 어마무시한 은신 마법이라도 썼으면 그건 또 다른 문제긴 하지….”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임무를 끝낸 모양이지만, 우린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아직 해신 섬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다. 리무진은 이제 막 해신 섬으로 향하는 해상도로로 들어섰다.
앞좌석을 툭툭 쳤다.
“형, 조심하세요.”
“알고 있다.”
곧 해상도로 중앙쯤에서 리무진이 멈췄다. 예전처럼 도로 중앙까지 불길한 안개가 쭉 뻗었다가 사라졌다.
“이건 대체 누가 부린 수작일까? 이수호? 세레나데?”
“글쎄…. 그것도 알아봐야겠지.”
곧 리무진이 다시 해상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뒷좌석의 사람들은 침묵에 잠겼다. 어떻게 설득할지 대략적인 계획은 짜두긴 했지만 가능할까?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믿기 힘든 이야기들인데.
내 표정이 불안해 보였는지 옆에서 아리가 한 마디 얹었다.
“자신감 있게 행동해. 원래 이런 일은 자신감이 반이니까.”
“나머지 반은?”
“운이지. 그래서 승엽이를 우리 쪽에 넣어서 데려가고 싶었는데.”
점심 무렵, 첫 번째 시도 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해신 섬에 도착했다.
*
“뭍에서 오신 관리국 분들, 환영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심해의 성녀를 뵙습니다.”
“그냥 도지사라고 불러주시길. 그게 저의 대외적 직함입니다.”
여기까진 예전에 했던 대화 그대로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도지사님, 우리의 방문이 갑작스럽게 느껴지셨을 겁니다.”
“… 사실 그래요. 면담 시간을 정해드렸는데 당장 만나야 한다고 워낙 강하게 나서시니 별수 없이 앞의 일정을 취소했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길 바랍니다.”
말없이 한 걸음 다가서며 시선은 천장과 창문 사이로 살짝 이동! 최대한 뭔가 있어 보이는 분위기를 잡았다. 이거야말로 호텔에서 기른 내 개인기지.
내 동작을 본 페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와서 어깨에 올라오더니 우수에 찬 앵무새의 표정까지 만들었다. 비슷한 타이밍에 진철 형이 뒤로 움직여서 방의 문을 강하게 닫았다.
“대관절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
“도지사님, 지금부터 제 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두 번째로 만나는 중입니다. 제가 관리국이 가진 특수한 수단을 써서 시간을 돌렸거든요. 사라진 시간대에서 해신 섬은 이수호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세레나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세레나데님께서는 섬의 미래를 우리에게 맡기시고 후일을 기약하셨습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