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39)
238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16)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첫 번째 시도 때 이미 느꼈지만, 세레나데는 우리에게 상당한 경계심을 품고 있다. 정확히는 관리국에 대한 적대심이라 볼 수 있겠지. 이런 상황에서 그녀를 끌어들이고 정보를 얻어내려면 어떤 말을 해서 설득해야 할까?
어제저녁에 동료들과 여러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세레나데에겐 해신 섬, 나아가서 어인족 전체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렇다면 그 정보를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문제가 생긴다.
이 설명을 위해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바로 ‘시간을 뒤로 돌렸다’라는 시나리오다. 사실 관점에 따라선 아주 거짓말도 아니다. 우리가 진입할 때마다 202호의 시간은 시작 시점으로 돌아가니까.
내 말을 들은 세레나데는 잠시 입을 딱 벌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죠? 관리국 분들이 절 놀리려고 이러시는 건 아닐 테고 -”
몰아쳐야 한다. 세레나데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시간을 돌리기 전, 우리가 파악했던 사실을 알려드려야겠군요. 참고로 ‘이수호’가 팔팔하게 살아있고 도지사님이 그를 추격 중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세레나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수호의 목적은 카다루다흐의 강림입니다. 또, 도지사님이 징계 차원에서 섬 서쪽 구역의 해신의 딸만 이용할 수 있는 병원에 가둬두신 엘레나는 -”
“그만.”
주변에 침묵이 감돈다. 세레나데는 말없이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시간을 돌렸는지까진 모르겠지만 여러분이 심상치 않은 정보를 모으긴 했나 보군요.”
“…”
“그래도 한가지 확인은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확인?”
그녀는 대답 대신 지긋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확인을 하려고 –
[조언 : 3 -> 2] [세레나데에게 몸통 박치기!]알림을 보는 순간, 배꼽이 확 당겨지는 감각과 함께 세레나데를 들이받았다. 난데없이 공간을 격하며 날아간 내 몸통 박치기에 당한 세레나데가 거의 2M 이상 날아가서 벽에 부딪혔다!
동시에 사무실에 있던 송이와 진철 형이 경악했다.
“에에엑! 오빠?”
“가, 가인아?”
나 자신도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는 상황이라 대답해줄 수 없었다. 벽면에 부딪힌 세레나데는 피로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쿵!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경호원이나 비서일까?
“성녀님! 무슨 일이십니까? 당장 문을 열고 -”
“그만! 나는 괜찮으니 사무실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 정말 괜찮으십니까?”
“그래.”
잠시 후, 세레나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서서 우릴 돌아보았다.
“뭔가 있긴 있으시군요. 그러니까…. 시간? 좋아요. 시간을 돌리기 전에 ‘내 능력’을 이미 경험해보신 모양이네요. 그렇다고는 해도 신기하네요. 내 능력은 전조가 없는데.”
상황을 이해했다. 방금 세레나데는 해신의 딸로서 가진 초자연적인 힘을 우리에게 쓰려했고, 나는 몸통 박치기로 그 힘을 사전에 막아냈다.
… 위기 알림은 ‘생명이 위험한 순간’에만 동작한다. 이는 세레나데가 조금 전 나를 죽이려 했다는 의미이다. 저절로 표정이 굳었다.
동시에 상당한 위협을 느꼈다. 세레나데에겐 그 어떤 전조도 없이 즉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 대체 능력의 정체가 뭘까?
“방금 우릴 죽이려 했습니까?”
세레나데는 무슨 문제냐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시간을 돌리실 수 있다면서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한 분 정도는 죽어도 살아날 수 있으시겠네. 또, 제 능력을 이미 알고 계실 테고. 실제로 알고 계셔서 막았잖아요? 아무 문제 없죠.”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이 여자도 돌았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우리의 분노를 잠재울 셈인지 세레나데가 바로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믿겠습니다. 이런 신비한 이야기를 숨기시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제 도움이 필요하신 모양이죠?”
“물어보고 싶은 게 아주 많습니다.”
“물어보시죠.”
저번 회차에서 우리는 꽤 많은 정보를 얻었다. 저주의 근원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수호에 의한 카다루다흐의 강림이라는 사실도 알았고, 우리가 손 쓰지 못하면 강림은 내일 새벽 ~ 오전 사이에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정보 하나가 빠져있다. 대외적으로 카다루다흐는 어인족의 신이다. 대체 어인족의 신이 강림하자마자 어인족을 몰살하는 이유가 뭘까? 이수호는 어인들이 두 가지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800년 전, 최초의 어인이 저지른 죄와 현대의 어인이 저지른 죄.
우리는 이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카다루다흐의 동기일 테니까.
죄악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히 요약해서 전달했다. 세레나데는 뭔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무슨 의미입니까?”
“두 질문 중 한 가지는 저도 답을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하지만 아는 것부터 대답드리죠. 최초의 어인이 저지른 죄악 말입니다.”
202호의 가장 수수께끼 중 하나가 지금 풀리기 시작했다.
“어인의 시조가 본래 가난한 어부들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신 것 같네요. 그들은 800년 전, 해저 동굴에서 ‘루다흐’라고 칭하는 신비한 생물을 발견했습니다.”
“거대한 달팽이처럼 생긴 동물 말씀이시군요.”
“… 그것도 이미 봤나요? 우리는 루다흐를 신의 권속으로 여깁니다. 카다루다흐, 이 말은 ‘루다흐의 아버지’라는 뜻이지요. 선조들은 해저 동굴에서 루다흐를 조우했고 곧 카다루다흐 또한 인지했습니다. 그리고 어부들이 카다루다흐를 받들며 루다흐를 자신들의 신체 내부에 집어넣음으로써 최초의 계약이 이루어졌죠.”
최초의 계약. 그 말과 함께 세레나데는 잠시 책상 서랍을 열더니 두꺼운 노트를 한 권 꺼냈다.
“438년 전, 그 시대의 해신의 딸이 접촉했던 태고의 기억에 대해 남긴 자료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해신은 어부들에게 ‘자식이 되어 순환에 참여할 권리’를 주었다고 해요.”
“그게 무슨 의미죠?”
“천천히 들어보세요. 당시 선조들도 계약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선조들은 계약을 단순히 ‘해신을 숭배하면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게 된다.’ 정도로 이해했거든요. 이 해석이 아주 틀리진 않았습니다. 선조들은 계약의 대가로 상당히 많은 어획을 거둘 수 있었죠. 물고기가 섬에 아주 미어터졌다고 해요.”
혜택을 받았다면 그에 따른 대가가 필요한 법.
“세월이 흐르며 선조들은 비로소 계약의 진의를 이해했습니다. 10년이 지나기 전에 선조들의 몸이 수중 생활에 적합해지기 시작했죠. 계약에 참여했던 이들 중 몇몇은 폐가 오그라들고 아가미가 솟아나듯이 형성되어서 육지에선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변했다고 하더군요.”
“말 그대로 ‘어인(漁人)’이 되는 거군요.”
“이형의 종족이 되어 영원히 바다에서 살아가는 것. 이게 바로 해신과 선조들이 맺은 계약의 참된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선조들은 이 운명을 거부했죠.”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아리가 물었다.
“무슨 방법을 쓴 거야?”
“그걸 이해하려면 먼저 루다흐라는 생물을 이해해야 합니다. 루다흐는 간단히 말해 ‘군체 생물’입니다. 꿀벌과 유사한데, 초자연적인 영성을 품은 상태로 바다에서 살아가는 꿀벌이죠.”
“초자연적이면서 바다에 사는 꿀벌?”
“그리고 그 루다흐에는 ‘여왕’개체가 있어요. 군체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존재죠. 여왕벌처럼.”
여기까지 듣자 한 가지 사실을 이해했다.
“그 여왕벌 개체가 해신의 딸이군요.”
“맞아요. 최초의 어인들이 루다흐를 받아들인 이래로 모든 어인은 태어날 때부터 루다흐를 신체 내에 품고 태어납니다. 이 과정에서 ‘여왕 루다흐’ 개체를 품고 태어나면 여러 초능력을 각성하고 태고의 기억에 접촉할 수 있는 해신의 딸이 되죠.”
갑자기 초자연적인 생물의 생태에 대한 강의를 듣는 듯했다.
“한데, 이 여왕 루다흐가 가진 능력 중에선 다른 루다흐의 ‘성장’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루다흐의 성장 조절?
“아마 본래는 한 루다흐 개체군 내에 지나치게 많은 여왕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힘일 겁니다. 먼저 태어난 여왕 개체가 다른 개체는 자신만큼 성장해서 여왕의 자리를 위협할 수 없도록 성장을 막는 능력인 거죠. 그리고, 이 능력이 엉뚱하게도 선조들을 구원했습니다.”
아리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여왕 루다흐’ 보유자인 너희 해신의 딸이 다른 루다흐의 성장을 싹 억제한 결과가 지금의 어인들이라는 거야?”
“다른 루다흐 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성장도 멈췄습니다. 그래서 해신 섬 어인들 체내의 루다흐는 전부 유체 상태에서 더 성장하지 못합니다. 이에 따라 신체의 변이 또한 비늘이 좀 생기는 선에서 멈춥니다.”
복잡한 ‘초자연 생물 생태 연구’ 느낌의 이야기를 한참 들은 결론은 간단했다.
쉽게 말해 루다흐는 바다의 꿀벌이고 여왕벌이 일벌을 통제하듯이 해신의 딸이 다른 어인은 물론 본인들의 신체 내 루다흐가 각성하는 것을 강제로 막은 결과가 지금의 어인이라는 것.
이렇게 말하면 무슨 독재 같지만, 그 ‘성장’을 막은 덕에 어인들은 여전히 사람의 형상으로 육지에서 살아갈 수 있다. 물고기로 변해서 바다로 들어가고 싶은 어인 따위는 없겠지. 결국 해신의 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어인을 구원한 셈이다.
“그게 최초의 죄악이군요. 최초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죄악이라고 해야 하나?”
“제가 알고 있는 중요한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젠 저도 한 가지 여쭙고 싶네요.”
세레나데가 우리에게 질문을 돌렸다.
“대체 해신이 왜 분노했을까요?”
“예? 그….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대로라면, 여러분이 해신에게 혜택은 받고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 아닙니까? 대가를 치렀다면 물고기로 변해서 바다에서 살아가야 했을 텐데요.”
세레나데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토록 큰 죄라면 왜 ‘지금’ 응징하려는 건가요? 800년이나 시간이 있었을 텐데요.”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맞는 말이다. 루다흐의 생태적 특징을 활용해서 육지에 남아있는 게 죄라면, 대체 왜 카다루다흐는 이제야 응징하는 걸까? 80년도 아니고 800년째 반복해온 일이다.
세레나데는 자문자답하듯이 대답했다.
“사실, 해신 섬에선 이 ‘첫 번째 죄’는 이미 용서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용서받았다?”
“물론 일종의 희망 사항이죠. 하지만 근거는 있습니다. 첫째, 사는 장소가 육지긴 하지만 우린 여전히 카다루다흐를 신으로 모십니다. 둘째, 여전히 어인들은 바다와 함께 살아갑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섬에서 살아가고, 죽은 후에는 바다에 묻히죠. 셋째, 카다루다흐는 지난 800년간 악몽을 내린 것을 제외하면 우리를 벌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어인은 지금도 바다에 붙어살아가며 해신을 숭배하고 있고, 카다루다흐는 800년째 악몽을 내린 것을 제외하면 벌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닷속에서 살아감을 거부한 어인족의 첫 번째 죄는 이미 용서받았다는 것이 이들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죄’는 대체 뭘까?
내 의문을 짐작했다는 듯 세레나데의 입이 다시 열렸다.
“문제는 두 번째 죄겠죠.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죄를 지은 것은 확실합니다. 이 점은 우리도 알고 있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뭡니까?”
“그 죄가 뭔지를 모르겠다는 거죠.”
“예?”
“농담이 아니에요. 대략 20년 전부터 카다루다흐는 엄청나게 분노했고 해신의 딸들은 그 분노를 어렴풋이 감지했거든요? 그런데 해신이 화가 난 이유를 20년째 아무도 모릅니다. 이게 바로 두 번째 죄악의 제일 큰 문제입니다.”
멍하니 듣고 있던 송이가 말했다.
“에…. 환경파괴 아닐까요?”
세레나데는 코웃음으로 답했다.
“설마 우리가 그 정도 생각도 안 해봤으리라 생각 중인 건 아니겠죠?”
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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