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40)
239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17)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해신은 어인족의 죄에 분노했는데 정작 어인족은 왜 해신이 분노했는지 알지 못한다. 참으로 기묘한 상황이다. 혹시 환경파괴의 문제 아니냐는 송이의 견해는 세레나데가 부인했지만, 아리는 다시 한번 확인을 부탁했다.
“원래 이런 문제일수록 뻔한 게 답일 때도 많아. 현대 문명이 환경파괴 없이 유지되긴 어렵잖아. 정말 아니야?”
“아니에요. 당연히 우리도 그 문제부터 떠올려서 20년 전부터 문제가 될만한 공장이나 설비는 전부 뭍으로 옮겼습니다.”
“… 육지로?”
“말하자면 환경파괴의 외주화를 완성했다고 볼 수 있죠.”
환경에 해로운 시설은 전부 육지로 옮겼다. 명쾌한 대답이다. 물론 환경파괴의 장소가 옮겨졌을 뿐이긴 하지만, 설마하니 해신이 지구 전체의 환경파괴에 대한 죄를 어인족에게 물을 것 같지는 않다.
분노한 시점이 중요하지 않을까?
“20년 전부터 해신의 분노를 감지했다고 했죠? 그 시점에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반복 중인 일이 아닌가 싶은데….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죠?”
“당연히 그 생각도 했죠. 하지만 정말 모르겠네요. 20년 전에 아무 일이 없었다는 게 아닙니다. 이 섬은 그때도 인구가 50만이 넘었거든요. 당연히 매일 다양한 일이 발생합니다. 그중 뭐가 신을 분노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슬슬 이야기가 헛도는 듯하다. 애초에 해신의 분노를 20년 전부터 감지했다는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해신의 딸들이 20년째 원인이 무엇인지 연구 중인 문제라는 의미다. 그런 문제를 우리끼리 2, 3분 대화해서 알아낼 수는 없다.
비슷하게 생각한 아리가 끊었다.
“이 문제는 이쯤 하자. 신의 사고방식은 인간과 달라서 인간이 보기엔 너무나 하찮은 이유로 인류를 몰살하겠다고 하는 때도 있으니 우리끼리 회의해서 알아내긴 어려워. 그리고….”
“그리고?”
“아니야. 어찌 됐든 당장 문제는 이수호가 이 섬에서 진행 중인 정체불명의 의식이니까. 그를 몇 달째 추격해왔지?”
“네. 이미 아시는 듯하지만 엘레나가 순간의 감정에 흔들려 큰 실수를 했죠. 그 후 항상 5인 이상의 훈련 받은 어인이 그를 쫓고 있습니다.”
“좋아. 이미 확인한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서 줄 수 있어? 조금 후에 관리국 드론이 섬과 그 일대를 수색할 텐데 시간을 절약할 필요가 있을 테니까.”
세레나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몇 가지 데이터를 전달했다. 아리가 데이터를 검토하는 사이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부터 우리는 엘레나를 데리러 갈 겁니다.”
“… 너무 당당하시네요. 여러분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여행 전에 이미 엘레나랑 만나보신 모양이죠?”
“그렇죠. 그녀가 꼭 필요합니다.”
“그러면 같이 갑시다. 바로 출발하실 생각이죠? 병원에서 만나도록 하죠.”
이 정도로 세레나데와의 정보 교환을 마치고 도청 건물에서 나와 엘레나가 있는 병원으로 갈 채비를 시작했다.
“800년 전의 비사나 어인족의 정체, 루다흐의 생태. 다 흥미롭고 가치 있는 정보 같기는 한데, 정작 당장 진행 중인 카다루다흐 강림 위기에 대해선 알아낸 게 없네. 카다루다흐가 분노한 이유도 알아내지 못했고 이수호의 위치도 가늠하지 못한 상태잖아. 조언을 써봐야 하나.”
“아껴둬. 아까 세레나데에게 즉사 당할 뻔한 것 잊었어? 오늘 우리에겐 위기가 많을 거야.”
리무진에 들어오자마자 송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리야. 아까 무슨 이야기 하려고 하지 않았어? 카다루다흐가 화난 이유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멈췄잖아.”
“… 이건 내 생각인데.”
“그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응?”
“그냥 해신 입장에서 생각해봤어. 해신은 주로 꿈의 형태로 해신의 딸과 소통하잖아?”
“그렇지.”
“그러면 굳이 그 꿈으로 ‘나 화났다!’라고 알릴 필요가 있을까? 그냥 ‘너희가 하는 무언가가 날 분노하게 했다.’라고 직접 신호를 주면 될 텐데.”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진 않았다. 호텔에 들어온 후 접한 ‘신’이라는 존재들은 말이 신이지 악마나 괴물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리의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카다루다흐는 그간 경험해온 악마들처럼 필멸자와 소통하지 않는 불가해한 악마가 아니다. 꿈을 통해 소통하기도 하고 엘레나의 말에 따르면 ‘순환’어쩌고 하는 기이한 이야기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그다음 생각이 떠오른다. 그 뛰어난 소통 능력으로 그냥 왜 화가 났는지 알려주면 그만 아닌가!
아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어. 어쩌면 알려주는 게 의미가 없어서는 아닐까 하고.”
“의미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20년 전에 일어난 거야. 20년의 세월은 카다루다흐가 분노를 토해내기 위해 힘을 모으던 시기였던 셈이지.”
불길한 이야기다. 이 추측대로면 분노한 이유를 분석하는 건 의미가 없다.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까. 앞에서 운전하던 형이 의견을 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냐? 화난 이유야 어찌 됐든 강림하지 못하게 만들면 그만이지. 이수호를 찾아내면 되겠지. 난 하늘을 보니까 마음이 좀 놓인다.”
난데없이 하늘?
무슨 말인가 싶어 나와 송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마치 격자 무늬의 푸른 선들이 흡사 하늘 전체를 바둑판으로 만든 것처럼 쭉 뻗었다.
“저게 뭐야? 관리국 드론이야?”
드론 20여 대가 날아다니면서 섬을 뒤지는 것 아니었어? 아리가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설마 드론이 직접 카메라 들고 섬을 돌아다닐 거라고 생각했니? 그런 식으로 제주도만 한 섬을 뒤지려면 2,000대가 동원되어도 모자라. 심지어 드론이 들어갈 수 없는 장소도 많은데.”
“그러면?”
“대충 사람 몸속을 X레이로 찍는 것과 비슷해. 몸에 직접 카메라 넣지 않잖아. 뭐, 나도 공학적인 원리까진 모르지만.”
장관이다. 22대의 드론들은 하늘에 푸른 선으로 만들어진 바둑판을 만들고 그 바둑판이 움직이며 흡사 스캔하듯이 섬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곧, 드론들이 보이지 않는 장소로 날아갔다.
송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런 식이면 금방 다 뒤지지 않을까요?”
“그래도 빠듯해. 시간이 워낙 부족하잖아. 내일 새벽에서 오전 사이에 모든 게 끝이니까.”
“운이 필요하겠네. 먼저 탐색하기 시작한 장소에 이수호가 있어야 할 텐데.”
그때쯤, 다른 동료들에게 문자가 왔다.
“곧 섬에 도착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부산에 해일이 들이쳤답니다.”
“승엽이가 말한 그 재해 말이지?”
“네. 부산이 난리가 났답니다. 지금이…. 2시 30분이군요. 4시쯤엔 또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외부와 연락이 끊길 겁니다. 병원으로 오라고 했어요.”
“그 전에 연락해서 다행이군.”
병원에 도착하자 희한하게 우리가 먼저 출발했을 텐데 세레나데는 이미 도착해있었다. 해신의 딸만 이용하는 지름길이라도 있는 건가?
“오셨군요. 들어가실까요?”
진철 형이 한 발짝 나섰다.
“곧 우리 동료들이 도착하니 같이 들어갑시다.”
엘레나는 봉인에서 풀려난 후 명경지수에 의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아주 위험한 상태다. 우리끼리 들어가는 것보다는 다른 동료를 기다리는 게 나아 보였다.
우리의 이런 걱정은 별 의미가 없었다.
*
흡사 낮잠에서 깨어나듯, 엘레나는 평온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예전처럼 깨어남과 동시에 불길한 상상이 폭주하며 괴현상을 만들어내거나 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우리가 데려온 세레나데와 외부에서 조금 전 들어온 동료들이 데려온 리링가노르, 그 둘이 피리를 불었기 때문이다. 해신의 딸들에게 주어지는 이 피리에는 태고의 기억에서 기인한 광기를 억누르는 공능이 있다고 한다.
다만 이 평온한 깨어남이 꼭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로 잠에서 깨어난 엘레나는 그 어떤 추가적인 정보도 얻어내지 못한 상태로 깨어났다. 아무래도 피리의 힘은 해신의 딸과 카다루다흐의 연결을 일시적으로 억제하는 듯했다.
엘레나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음번에는 -”
한가인 : 대화창. 옆에 리링가노르.
엘레나 : 다음번에는 피리 없이 깨워주세요.
벌써 ‘다음번’이라니…. 너무 불길한데?
“지금 박 부장에게 연락이 왔다. 타격대는 밤 11시는 되어야 투입할 수 있겠다는데?”
“더 빨리는 안 됩니까? 아시다시피 새벽이면 -”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그 말이야 했지만, 남들이 듣기엔 내일 새벽에 세상이 망한다는 소리는 그냥 호들갑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게다.”
아리가 답했다.
“타격대는 오면 좋고 제때 오지 못하면 별수 없다고 생각하자. 드론은 이미 왔잖아.”
이제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끝낸 느낌이다. 가장 중요한 이수호 찾아내기는 이미 우리 손을 떠나서 저 하늘 위의 드론들에 달렸다.
도착한 은솔 누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도 같이 찾아볼까?”
아리는 고개를 저었다.
“의사가 치료 중인데 옆에서 문외한이 거들면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방해가 되지. 그냥 드론에 맡겨. 하필 우리는 단체로 초능력자들이라 드론에 혼란을 주기 딱 좋아.”
결국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그동안 서로 모은 정보를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단연 모두가 관심을 가진 주제는 ‘카다루다흐가 분노한 이유’였지만 아무도 그럴듯한 정답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4시 20분, 섬 전체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며 외부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더 이상 박 부장이라는 사람과도 연락할 수 없었다.
6시 40분, 드론이 약 94.3%의 확률로 혼돈 현상이 발생 중인 장소를 알려줬다.
모두를 태운 리무진이 섬 북서쪽의 ‘농장’으로 향했다. 세레나데 또한 어인족들을 데리고 오겠다고 알려왔다. 은솔 누나가 다소 황당해했다.
“지도 보면 이 장소는 감귤 농장이라는데? 이런 장소에서 대체 뭔 의식?”
“무려 해신의 성자 아닙니까. 해신의 딸들도 하나같이 초능력자들이니 성자도 뭔가 이상한 힘이 있겠죠. 그것으로 숨겼을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장소에 가서도 찾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7시 10분, 마침내 농장에 도착했다. 슬슬 저녁 시간이 되자 모두의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카다루다흐의 강림까지 기껏해야 8시간이나 남았을까?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허공에 있던 신기한 외견의 드론이 우릴 ‘문’으로 안내했다.
“이건….”
사람이 없는 황량한 농장. 사방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는 식물들과 그 사이에 있는 쓰러져가는 작은 집. 드론은 그 집 내부의 ‘거실’로 향하는 문을 가리켰다.
모두가 침음성을 흘리며 문을 바라보았다. 지금, 나는 저 문 뒤에 ‘거실’따위가 아닌 정체불명의 이공간이 있으리라는 사실에 내 손모가지도 걸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하필 이런 식인가…. 물리적인 시설에 의존하는 놈이었으면 세레나데에게 폭탄으로 날려버릴 수 없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기이한 이공간이라니. 저 뒤에 지옥 같은 공간이 있을 게 너무 뻔하지 않냐.”
의외로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선 사람은 의사 선생님이었다.
“살다 보면 함정인 걸 알아도 들어가야 하는 때가 있게 마련이죠. 그게 지금인가 봅니다. 들어갑시다. 시간도 촉박하지 않습니까.”
—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는 신기할 정도로 불길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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