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41)
240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18)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 찰박!
습하고 짭짤한 공기가 코를 간지럽히고,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질척한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 틱!
내 다리가 돌에 가볍게 부딪히자 그 소리가 넓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수호를 쫓아서 드론이 찾아낸 황량한 농장 내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 너머에서 우릴 반긴 장소는 다름 아닌 해안가의 동굴이었다. 새삼 가정집 문 너머에 어떻게 동굴이 있을 수 있는가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보다 아까부터 이상할 정도로 ‘내 몸에서 나는 소리’만 크게 들리는 것이 신경 쓰였다.
“저…. 다들 근처에 계시죠?”
송이가 불안해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언뜻 생각하면 아무도 흩어진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그 마음을 이해했다. 이 동굴은 어딘가 이상해서 나 역시 아까부터 동굴에 나 혼자 남은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광원이 없어 사방이 어두웠다. 분명 방호복을 입은 아리가 근처에 있고, 방호복의 헤드램프에서 불빛이 발생 중일 텐데 이상하게도 빛이 우리에게 오다가 마는 느낌이다.
“흠. 큼. 죄송하지만, 제가 주기적으로 소리를 내겠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자 모두 비슷한 감각을 느끼는 중임을 알았다. 작은 박수 소리가 리듬감 있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 짝! 짝! 짝!
… 세 번째 박수 소리와 네 번째 박수 소리의 크기가 너무 다르다. 조금 전, 나와 의사 선생님 사이의 거리가 갑자기 벌어졌다.
바로 그 시점에 대화창이 반응했다.
이은솔 : 정지! 정지! 내가 갈 때까지 전원 정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기다렸다. 모두가 멈춘 채 은솔 누나가 오기만 기다렸다. 누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고 데려왔다. 누나의 손을 잡고 걷다가 그제야 아까부터 느낀 기묘한 현상의 정체를 깨달았다. 갑자기 내 몸이 왼쪽으로 향하는가 싶더니 위로 솟구치고 다음에는 아래로 향하는 듯하다가 다시 왼쪽으로 꺾였다.
날 끌고 가는 누나가 혼란스럽게 걷고 있는 걸까?
아니다. 이 경우엔 누나는 올바른 방향으로 직진 중인데 내 감각이 착란을 일으켰다고 보는 게 맞겠지. 이 동굴은 사람의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3분 후, 모든 동료가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고 살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붙었다. 은솔 누나가 브리핑하듯이 빠르게 설명했다.
“아무래도 동굴이 모두의 감각을 속이는 듯해. 특히 시각. 다들 아까부터 마치 춤추듯이 여기저기 몸을 흔들면서 걷길래 긴장해서 그러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가면 갈수록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이더니 갑자기 모두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더라.”
할아버지가 빠르게 판단했다.
“넌 멀쩡하구나. 네 눈이 성능이 좋아서 가능한 모양이다. 네가 방호복 입고 앞장서거라. 그리고 다들 찰싹 붙어서 가자.”
“가능하면 다들 일부러라도 소리를 냅시다. 아무래도 긴장하면 서로 말소리가 줄어들고 주변의 소리만 듣게 되는데, 그런 행동을 하니까 오히려 감각이 흐트러지는 듯합니다.”
어차피 이수호 역시 우리가 들어온 사실을 모를 리가 없으므로 조용히 움직일 이유 따위는 없다. 곧 대열을 재배치하고 모두가 마치 호텔에서 회의할 때처럼 대화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이수호가 만들었겠죠? 대체 무슨 비법일까요? 해신이 내린 마법?”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겨우 우리가 길을 잃게 만드는 게 다는 아닐 것 같다.”
“나는 좀 다른 게 궁금한데. 묵성, 박 부장에게 어디로 와야 할지는 연락했어?”
“아니. 연락이 끊어진 후에 드론들이 장소를 찾아냈으니 못했지. 하지만 그 사람도 도착하는 대로 드론을 확인할 테니 어차피 이 장소로 오지 않겠냐?”
“그건 그렇네.”
“문제는 그놈들이 우리처럼 길을 찾을 수 있겠느냐는 거지. 사실 밤이 되어야 온다는 타격대보다 걱정스러운 건 세레나데 쪽이다.”
워낙 시간이 부족해서 도착하는 대로 우리끼리 진입했지만 세레나데와 어인 족들도 곧 도착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들이 올바른 길을 찾아서 올 수 있을까? 어쩌면 지원군들은 이 동굴에서 헤매다가 도움을 주지 못할지 모르겠다.
진철 형이 안심시키듯 답했다.
“우리가 언제는 NPC들의 대단한 도움을 기대하면서 진행했습니까? 어차피 우리끼리 처리해왔죠.”
문득 나에게도 질문이 있음을 깨달았다.
“엘레나!”
“네. 조금 더 작게 말씀하셔도 들려요.”
“아냐. 뭐 말할 때는 무조건 크게 말해. 그래야 서로 존재감이 더 잘 느껴지니까.”
“그럼 더 크게 말씀하시는 게 좋겠네요.”
“아까 엘레나를 깨우기 전에 세레나데와 대화했거든요? 그런데 세레나데가 다짜고짜 저를 죽이려 하더군요.”
“그런! 제가 나중에 혼내줄까요?”
“… 그건 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세레나데가 어떤 능력을 쓰려고 했는지 모르겠네요. 엘레나의 기억에 있나요?”
‘언니’의 능력에 관한 정보니까 엘레나가 알고 있지 않을까? 예상은 반쯤 맞아떨어졌다.
“해신의 딸은 각자 다른 능력을 깨우쳤죠. 리링가노르는 바다에 있는 특별한 동물들을 다루는 능력을 깨달았고 세레나데는 석화의 눈을 얻었어요.”
석화의 눈.
“석화의 눈이라 해서 물리적으로 정말 돌이 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마치 돌이 되듯이 전신이 마비되어서 움직일 수 없게 되죠.”
아리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전신 마비? 가인이의 위기 알림이 동작했던 걸 보면 아예 즉시 사망하는 것 같던데?”
“심장도 마비되거든요. 참고로 제 ‘불길한 상상’ 또한 이 시나리오에선 해신이 내린 능력이라는 설정이에요.”
세레나데의 능력인 석화의 눈은 황당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그냥 눈으로 한번 보면 전신이 굳고 심장이 멈춰서 죽는다는 소리 아닌가?
진철 형이 빠르게 질문했다.
“뭔가 허점 같은 건 없습니까? 한 번에 여럿에게도 쓸 수 있을까요? 힘으로 이겨낼 만합니까?”
“힘으로 이겨내긴 힘들어요. 한 번에 여러 명에겐 쓸 수 없어요.”
아리도 바로 얹었다.
“세레나데와 눈을 서로 마주쳐야 해? 아니면 설마 세레나데가 우릴 바라보기만 해도 발동 가능한 건가?”
“미안하지만 그 부분은 모르겠어.”
아직 세레나데가 완전히 우리 편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동료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여차하면 그녀와 싸울 때를 대비해서 ‘석화의 눈’이라는 위협적인 초능력에 대해 나름대로 대응법을 고민하는 듯했다.
쉽지 않다. 빙의? 여러 번 경험했듯이 만능열쇠가 아니다. 저주의 방 내에서 격이 높은 존재들에겐 내 빙의가 통하지 않음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세레나데나 이수호는 당연히 여기에 해당할 것 같다.
세레나데의 시선을 피한다? 우리 중 가장 빠른 차진철에게도 불가능하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지만, 몸 전체의 움직임이 시선 이동보다 빠를 수는 없다.
하지만 결국 능력 발동의 트리거가 ‘시선’이라면 그 부분에 특화된 사람이 우리 중 있다.
“여차하면 제가 팔찌를 쓸게요.”
아예 세레나데에게 환각을 보여주는 게 좋은 해결책 같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바로 그 순간, 다시금 알림이 떴다.
[조언 : 2 -> 1] [있는 힘껏 소리치세요!]“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말 그대로 목청이 터지라 고함질렀다.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우렁찬 소리에 동료들이 다들 기겁하며 내 쪽을 돌아보던 중, 내 고함에 휩쓸린 기묘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라 카 시 트 – 어떻게 알았어?”
즉시 할아버지가 품에서 조그마한 물체를 꺼내서 천장을 향해 던졌다. 이윽고 주변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조명탄? 이런 물건은 또 언제 챙기셨지?
탁 트인 거대한 공동, 답답해 보이는 복장을 한 남자가 공동 반대편의 자그마한 다리 위에서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하! 이것 참, 이렇게 얼굴 맞대게 될 줄은 몰랐군. 관리국에서 오신 손님분들, 환영합-”
“아가리 닥쳐! 이 새끼가 보자마자 ‘또’ 저주를 걸어?”
“거, 곧 뒤지실 것 같은 노인 분이 입이 험하시네. 그리고 ‘또’라니?”
“야 임마! 섬에 들어오는 다리에서의 저주도 네가 한 짓이지?”
“그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뭐, 아무래도 좋지. 피차 웃으며 대화할 관계는 – ”
— 탕!
권총을 쥔 의사 선생님의 요란한 총성이 싸움의 시작을 알렸다. 같은 시각, 동굴 전체를 메우는 아득한 존재감이 우리를 엄습했다.
*
— 퉁!
좁아터진 동굴에서 몸을 한 차례 뒤집자 옆에 있던 무언가가 짜부라졌다. 이걸로 세 마리째인가? 갑자기 머리에서 약간의 통증이 느껴져서 이번엔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질척한 액체가 터졌다.
옆구리에서 무언가가 물어뜯었다. 그래봐야 코끼리를 고양이가 무는 수준의 덩치 차이! 비웃으며 몸을 한 바퀴 옆으로 굴리자 벌레를 손가락으로 눌러 죽일 때의 감각이 느껴졌다.
하하하! 설마하니 이렇게 쉬운 싸움이 될 줄은 몰랐는데?
아까 전 까지만 해도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크게 느껴졌던 동굴이 이제는 좁아터진 개미굴처럼 느껴진다. 인간을 꼬리 끄트머리로 눌러 죽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바다뱀의 몸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런 개 시이이발! 아브라타스! 대체 무슨 짓이냐?”
분노에 가득한 이수호의 외침을 듣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상대가 화내서 내는 소리만큼 기분 좋은 말이 또 있을까?
내가 마도서를 얻은 이후로 지금처럼 즐거운 순간이 흔치 않았다! 내 앞에 힘만 강한 괴물을 데려다 놓는 것은 사실상 나에게 강력한 무기를 조공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 콰지직!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살면서 뱀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몸을 통제하기가 좀 어려웠다. 대충 팔다리를 쓰지 않고 움직이는 감각으로 꿈틀거리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수호가 불러낸 다른 괴물들을 전부 눌러 죽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수호가 답이 없음을 느꼈는지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두 번째 문제를 느꼈는데, 뱀의 몸을 다루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 추격이 쉽지 않았다. 빙의를 풀어야 할까?
[42:43]불안하다. 지금이야 내가 이 괴물의 몸을 빼앗았으니 우리의 엄청난 전력이지만, 내가 원래 몸으로 돌아가면 이 괴물을 우리가 상대해야 할 텐데 그건 정말이지 쉽지 않아 보였다.
다음 순간, 머리 위로 무언가가 툭 하고 올라왔다.
“한~ 가~ 인!!! 내 말 들리냐?”
들렸지만 대답할 수는 없다. 뱀은 사람의 말을 할 수 없으니까. 이해했다고 느끼게 하기 위해 머리를 까딱했다.
“우리가 네 몸 챙겨서 쫓아갈 테니 넌 이 뱀을 어떻게든 처리하고 와라! 무작정 빙의 풀지 말고! 동굴에서 괴수와 뒹구는 건 사절이니까!”
그 말과 함께 동료들이 이수호를 쫓아 달려갔다.
… 잠시 혼자 남은 채 고민에 빠졌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 괴물 뱀의 몸으로 ‘자살’할 수 있을까? 박치기라도 열심히 해야 하나? 그러다가 동굴이 무너지면 동료들이 다 죽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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