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42)
241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19)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내 머리를 골치 아프게 했던 ‘대형 뱀’의 자살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독사들은 대체로 자신의 독에 대한 내성이 없다는 내용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나서 독니를 꺼내서 내 혀를 한번 물자 즉시 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즉시 몸 전체를 여기저기 깨물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전신을 불로 태우는 듯한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물론 그 통증에 계속 시달릴 생각은 없다.
“엇차!”
“돌아왔구나. 뱀은?”
“처리했어요.”
동굴의 상황은 여전히 괴물들이 날뛰어 혼란스러웠다. 아마도 ‘카다루다흐의 권속’인 것 같았다. 리링가노르에게 저 괴물들을 통제하는 힘이 있다던데, 이수호에게도 비슷한 능력이 있는 건가?
다행히 내가 빙의했던 뱀만큼 강한 존재는 없기도 했고, 괴물 다수가 동시에 덮칠 수 있을 만큼 동굴이 넓진 않아서 한 번에 상대해야 하는 수는 다섯을 넘지 않았으므로 견딜 만했다. 일행의 다양한 초능력이 더해지고 평소와 달리 방호복을 입은 은솔 누나까지 그냥 몸을 내던지며 밀어붙이자 길은 금세 열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마음에 불안이 깃들었다. 시간 낭비가 심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모두 뒤로!”
결단을 내린 아리의 품에서 ‘헬스 호텔 키친’의 상품으로 얻었던 ‘피 여유분 500mL’를 보관하는 병이 튀어나왔다. 뚜껑이 열리고 피가 흡사 살아있는 생물처럼 흘러나오자 아리는 그 피에 자기 몸에 있는 피까지 더했다.
대체 무슨 기술이지? 저 정도 분량이면 다 합쳐서 피 1L는 쓴 것 아닌가?
과연, 엄청난 피 소모에 걸맞게 정말이지 ‘마법’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대단한 현상이 일어났다. 동굴의 1/3을 덮을 정도의 붉은 안개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독가스처럼 앞으로 나가며 전방의 괴물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
“진철아, 나 좀 업어줘.”
굉장한 마법의 위력 덕에 우린 5분 정도 저항 없이 직진할 수 있었다. 대충 훑어봐도 30에서 40마리가 넘는 괴물들이 안개에 휩쓸린 후 껍질만 남고 쪼그라든 상태로 죽어있었다. 하지만 동굴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고 이수호가 준비해둔 괴물의 수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견디다 못한 할아버지가 짜증을 토해냈다.
“대체 이수호 이 개새끼는 이 동굴에 무슨 군대를 차려둔 거냐? 이 많은 괴물에게 밥은 어떻게 준 거야?”
이미 죽인 숫자만 해도 100마리는 되는 것 같은데….
그 순간, 모두의 표정이 확 밝아지게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 탕! 탕! 타타 탕!
요란한 총격 음이 동굴 뒤편에서 들려왔다! 지원군이 도착했다. 일행이 잠시 대기하자 1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뒤편에서 30명 이상의 관리국 타격대가 도착했다. 처음으로 본 202호의 관리국의 정예 병력은 외견부터 심상치 않았다. TV에서 흔히 봤던 특수부대와는 전혀 달랐다. 일단 입고 있는 옷부터 보통 생각하는 군복이 아니었다.
“저건 대체 무슨 갑옷이지? 강화복인가? 영화에서나 봤는데.”
“진철아, 쪽팔리니까 입 너무 크게 벌리지 마. 아무렴 사람이 괴물을 맨몸으로 상대하겠어?”
곧 뒤쪽에서 박 부장과 세레나데까지 도착했다. 이미 우리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으므로 잠시 숨도 돌릴 겸, 뒤에서 온 사람들과 약간 대화를 나누었다. 관리국 군인은 이 상황을 예견했는지 초콜릿 바 같은 물건을 우리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깔끔하고 온전한 상태로 도착한 관리국 정예부대와 달리 세레나데 쪽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던 것 같다.
사방이 피 칠갑인데다가 심지어 ‘혼자서’ 온 세레나데를 보자 무슨 일을 겪었는지 짐작이 갔다. 우리의 걱정대로 세레나데와 어인족들은 이 동굴에서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서로 분산된 채 엄청난 고초를 겪은 게 아닐까? 아마도 세레나데를 제외하면 다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엘레나가 걱정스럽다는 듯 다가가서 물었다.
“언니, 리링가는요?”
“아직 어려서 두고 왔어. 다행이지. 데려왔으면 그 아이까지도….”
그 사이, 박 부장과 할아버지도 잠시 대화했다.
“묵성 요원, 오면서 굉장한 전투 흔적들을 봤습니다. 요원분들 솜씨가 대단하시군요.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왔습니다.”
“칭찬은 됐네. 시간이 촉박하니 중요한 이야기부터 하지. 전방에 이수호가 준비한 괴물이 더 많을 거야.”
“이제 쉬셔도 될 겁니다. 길을 잘 뚫어두셔서 우리가 편하게 왔으니 아낀 무기들을 쓸 타이밍입니다. 바로 출발합시다.”
“그거 시원시원하군. 한데, 밤에나 도착한다고 하지 않았나?”
“너무 빨리 와서 불쾌하십니까?”
“고마워서 하는 말이지 이 친구야!”
이제는 우리를 믿으라던 박 부장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전방의 괴물들이 나타나기가 무섭게 타타 탕! 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자 괴물들이 그대로 터져나가는 광경을 보니 누가 괴물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대체 무슨 장비지?
같이 달리면서 관리국 정예가 쓰는 장비를 계속해서 살폈다. 우선 겉에 입은 강화복은 흡사 딱정벌레처럼 미끈거리면서도 둥근 느낌이다. 중간중간 바닥의 괴물을 밟을 때의 각력을 보면 신체 능력도 강화하는 듯한데, 호텔의 방호복만큼 강력한 근력을 주는 느낌은 아니었다.
내구성이나 내부의 사람 보호라는 면에선 되려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아까 전에 전투라는 분야에 대해 아예 문외한에 가까운 은솔 누나는 방호복만 믿고 괴물의 할퀴기나 박치기 등 온갖 공격을 맞아가며 싸웠다. 그렇게 무식하게 싸워도 흠 하나 나지 않았던 방호복과 달리 관리국 정예가 입은 강화복은 훨씬 약한 공격에도 외부가 뚫렸고 내부의 사람이 고통스러워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비교 대상이 방호복이라 나오는 이야기다. 방호복은 기적과 기술을 구분할 수 없는 영역에서 만들어진 물건일 테니까.
약간 실망스러운 강화복과 달리 총은 볼수록 놀라웠다. 처음에는 내가 아는 그 돌격소총 부류에 속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는데, 동굴 벽면에서 튀어나온 거대 지네의 몸이 말 그대로 폭발하는 광경을 보고서야 뭔가 다른 물건임을 알았다.
총알 하나하나가 전부 일종의 유탄인가? 소형 유탄을 고속으로 연사하는 무기인 듯했다. 이외에도 몇 가지 신기한 장비들을 살피며 30분쯤 직진하자 마침내 동굴의 끝이 다가왔다.
– 쿵!
“크흡!”
“이게 무슨 -”
– 쿵!
“다, 다들 정지!”
– 쿵!
고동 소리가 들린다. 거대한 – 아주 거대한 심장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직전까지 관리국 타격대의 든든한 전투력을 보고 솟아났던 자신감이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그라들었다.
아아….
잠시 잊었다. 이곳은 호텔 파이오니어.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병기라 해도 장난감처럼 여길 수 있는 존재들이 득실거리는 장소가 아니던가. 옆에서 박 부장이 한탄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엄청나구나! 아직 깨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이 정도란 말인가! 깨어나면 더 엄청나겠지. 정지할 때가 아니다. 직진!”
정확한 판단이다. 하지만 인간에겐 본능이라는 게 있는 법. 저 앞에 있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기에 모두의 움직임이 저절로 느려졌다. 공동의 끝, 건너편엔 가만히 서서 천장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이수호!”
“…”
“내가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죽여야 한다고 여겼는데! 그때 무리해서라도 죽이지 못한 것이 내 한이다!”
– 탕!
연달아 격발음이 울렸지만, 이수호와 우리 사이엔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벽이 있는 듯했다. 곧 우리는 벽에 다가섰지만 총은 물론이고 진철 형의 펀치로도 벽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뒤에서 농성이라도 할 셈이냐? 이런 걸 철거할 수단이 없을 줄 알아?”
그 말대로 박부장이 손짓하자 뒤에서 날렵한 체구의 군인이 무언가 복잡한 장치를 가져왔다. 그때, 이수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다. 어차피 그리 오래 갈 결계가 아니니까.”
“그러면 지금 열지 그래?”
물론 이수호가 무슨 말을 하든 군인들은 결계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 이렇게 끝인가.”
이 말투는 흡사 자신의 패배를 직감한 듯하다. 그동안 말없이 따라오던 세레나데가 한 발 앞으로 움직였다.
“그래요. 이렇게 끝입니다. 이왕이면 대체 왜 이 난리를 일으켰는지 설명이나 해주면 좋을 텐데요.”
“바보 같구나.”
“네?”
“세레나데. 네가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들을 따라왔는가?”
“당하다니 무슨 -”
“쓸데없는 말을 하는군.”
[조언 : 1 -> 0] [즉시 우측으로 순간이동!]– 탕!
내가 있던 자리에 총탄이 스쳐 간다. 동시에 내 눈앞에서 송이의 머리가 터졌다.
상황이 잘 돌아간다며 ‘후배’들에게 여유 있게 장비 사용에 대해 코치까지 하던 할아버지의 뒤통수에 총알이 박혔다.
이번엔 좀 편하게 가는 모양이라며 목을 펴던 진철 형의 가슴팍에 머리통만 한 구멍이 뚫렸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리에게 이제 괜찮냐고 묻던 상현 씨는 죽는 순간까지도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1초. 혹은 그 미만의 시간. 숨 한번 쉬고 나자 네 명이 죽었다.
…
즉시 격렬한 분노가 끓어오르며 분노의 사자후를 토해내거나 하진 않았다. 무슨 생각 자체를 할 겨를이 없었다. 거의 본능의 영역에서 시야에 들어온 다른 군인의 몸을 빼앗았다. 즉시 내 손의 총구를 돌려서 –
– 탕! 탕!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조금 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관리국 정예부대는 내 원래 몸은 물론이고 내가 빙의한 ‘자신들의 동료’조차도 0.1초의 망설임 없이 죽여서 ‘나’를 완벽히 사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최후의 순간 떠올린 감정은 분노나 슬픔이 아니라 ‘감탄’이었다.
*
“됐다! 가장 위협적인 능력자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긴장 풀지 말고 진행해라.”
아까 전에 바다뱀의 왕 아브라타스를 조종하며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기묘한 소년이 물 한 모금 마시기도 전에 죽었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정리’가 일어났다. 숨 한번 쉬고 나자 사방에 시체들이 널브러진다. 그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바라보며 이수호는 헛웃음을 지었다.
“너희들도 진짜 어지간하구나. 같은 관리국 아니었나? 심지어 이 정도 능력이면 꽤 귀한 인재들이었을 텐데 이런 개죽음을 시키다니.”
“이수호, 그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군. 이 자리에 개죽음당한 사람 따위는 없다. 오직 위대한 도약을 위한 필연적 희생이 있을 뿐.”
아아…. 익숙한 광경이다. 이들은 이런 집단이었지. 보나 마나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그 순간까지 일반인은 물론이고 대다수 관리국 요원들조차 알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 지랄을 했으리라.
그리 생각하자 지금 쳐들어온 군인들이 어떤 놈일지도 짐작이 갔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이 아닌 존재로 변해가는 존재들. ‘도약’의 수혜자들.
신체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 전신 강화복을 입고 온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겠지. 변이 중인 몸을 들켜서는 안 될 테니까!
“그 위대한 도약, 이왕이면 난 빼고 진행해달라고.”
“이수호, 이제 끝났다. 이멜다가 안부 전해달라고 하더군.”
이멜다. 잊고 있던 이름이 귀에 들리자 이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강하게 깨물었다. 선대 해신의 성녀, 그 여자가 욕심부리지만 않았다면!
비극으로 가득한 동굴. 박진성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선언했다.
“오늘의 비극 또한 위대한 도약의 거름이 될 것입니다. 일찍이 암스트롱은 이 걸음은 나에게는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 했지요. 오늘 우리는 다시금 그 도약을 -”
이수호는 그만 귀를 막아버렸다. 이 와중에도 폼 잡는구나. 내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나?
그 순간, 그의 눈에 건너편에서 세레나데와 엘레나가 모종의 수단으로 기절한 채 ‘수집’당하는 광경이 들어왔다.
번뜩이는 깨달음이 이수호의 머리에 내리쳤다. 이 자리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엘레나와 세레나데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관리국의 계획에 해신의 딸이 꼭 필요하니까!
기묘한 문자가 허공에 나타났다. 의혹에 가득한 눈을 보내는 박진성을 보며 이수호는 처음으로 웃었다.
아직 이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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