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44)
243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21)
– 박승엽
“승엽 요원님, 문의 사항이 있으신가요?”
“어제 제가 올린 요청사항을 다시 확인하러 왔는데요.”
“그 부분은 보안 사항으로 처리된 상태라 열람이 어렵답니다.”
“… 알겠습니다.”
또 이런 식이네.
형, 누나들과 헤어져서 혼자 서울의 본부로 올라온 후 벌써 4일이 흘렀다. 첫날은 마음 편히 쉬었다. 이제 딱히 내가 할 일도 없는 것 같았고, 본부에선 나 또한 ‘요원’이라는 이유로 화려한 호텔 같은 숙소에 머무르게 해줬으니까.
잠이나 한숨 자다 보면 동료들이 202호를 해결해서 바깥으로 나가 있지 않을까? 이런 속 편한 기대를 하던 순간도 있었지.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다음 날 오전이 되도록 카다루다흐가 강림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서도 관리국 내에서도 한 마디도 나오지 않길래 동료들이 잘 막은 줄 알았는데.
3일째 되던 날, 멍하니 본부의 회의실 근처에서 쉬다가 지나가던 아저씨가 갑자기 내 어깨를 붙잡더니 ‘힘내라, 동료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야 한단다.’ 같은 황당한 소리를 했다!
그제야 돌아가는 꼴을 대충 이해했다. 나를 제외한 호텔 동료 상당수가 죽었다. 어쩌면, 살아남은 사람은 나 혼자일지도 모른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기 위해 동료들이 왜 죽었는지에 관한 질문을 두 차례 올렸지만 모두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보안 사항’
한마디로 묻었으니 묻지 말라는 이야기네. 뒤늦게 바삐 움직이며 정보를 수집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제오늘 사이에 관리국 본부에서 내 취급은 ‘특별한 초능력이 있어 요원 대접은 해주지만 그래봐야 꼬마’라는 사실만 여실히 깨달았을 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카다루다흐의 강림을 막은 걸 보면 동료들이 뭔가 성공한 것 아닌가? 설령 강림을 막는 과정에서 날 제외한 전원이 죽었다 해도 호텔의 시스템을 고려하면 해결판정이 떠야 한다.
…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니까 정답이 떠올랐다. 해결이 뜨지 않는 이유? 해신의 강림을 막지 못했으니까. 탈출조차 뜨지 않는 이유? 해신의 강림이 그리 멀지 않았으니까.
또, 관리국 본부에 도착했는데도 탈출이 뜨지 않는다는 사실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암시했다. 해신이 강림한다면 관리국 본부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 이 사실은 사실상 지구 어디로 가도 소용없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관리국 본부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면 굳이 여기 있을 필요가 없지. 부산으로 돌아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자.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 직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요원님? 또 요청사항 있으세요?”
“네. 작전 경비 좀 주시겠어요.”
“예? 작전이요? 갑자기 무슨 -”
“요원에겐 현장 상황에 따라 ‘혼돈 재해 대응 작전’을 단독적으로 수립할 권한이 있다고 하던데요.”
“그, 그러면 일단 상세 내용을 적어서 -”
“보안 사항입니다.”
“…”
“…”
“얼마가 필요하세요?”
“1,000만 원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택시 타고 가야지!
*
“부장님, 요전에 언급한 그 어린 요원 기억하십니까?”
“아, 박승엽 군이라고 했던가?”
“조금 전에 부산으로 출발했답니다.”
“… 해신 섬의 상황에 대해선 잘 모를 거라고 보고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나이도 어리고 해서 별문제 없을 줄 알았습니다.”
“괜찮네.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이지. 차 준비시키게.”
“직접 가실 생각입니까?”
“자네가 두 번 실수하는 꼴을 보고 싶진 않군. 또, 그 요원에게 기묘한 능력이 있다고 들었네.”
*
택시에서 내린 소년은 한 걸음을 떼자마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어~이! 자네가 승엽 군인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부산에 있다는 사실 자체에 당황하며 승엽이 고개를 돌렸다. 길 건너편에는 예리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있었다.
“누구세요?”
“난 박진성이라고 하네.”
“아하! 할아버지께 들었어요.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고 들었습니다.”
“허허…. 얼마 전 일이지. 그…. 묵성 요원의 일은 안타깝게 되었네. 나 또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네. 그들은 분명 관리국의 자랑스러운 -”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는 소년의 표정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소년이 생각하기에 저주의 방 내에서의 죽음은 ‘진짜 죽음’이 아니라 ‘게임의 로그아웃’정도의 느낌일 뿐이었으니까. 소년 본인이 살아있는 한, 호텔 파티는 끝나지 않았다.
“… 정말 괜찮은가?”
“괜찮다니까요. 혹시 하실 말씀 있으세요?”
박진성은 잠시 혼란스러웠다. 임무 수행 도중 죽었는데도 이 정도로 마음의 동요가 없다는 사실은 ‘숙청’당한 요원들과 이 소년 사이의 감정적 교류가 깊지 않다는 의미다. 즉, 이 소년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닐까?
곧, 그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시 정리했다. ‘프로젝트’에 관한 일은 언제나 완벽함을 도모해야 한다. 단 한 점의 위험도 남겨둘 수 없다.
“자네에게 전할 말이 좀 있네. 건너편에 리무진을 대기해뒀는데 거기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군.”
“알겠습니다.”
…
박진성은 길을 걸어가며 소년을 살폈다.
무슨 고민이라도 하는 중일까?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그 모습은 제법 귀여우면서도 순수해 보여서 박진성은 잠시 죄책감을 느꼈다.
‘내 손으로 이 어린 소년을 베어야 한다는 말인가.’
순간적으로 강렬한 회의감이 치밀어오른다. 지금이라도 부하들에게 명령해 불필요한 희생을 늘리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목 밑까지 차올랐다.
‘내가 대체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어린아이까지 해치게 됐을까?’
한숨을 연거푸 내쉬며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프로젝트’는 특정한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다. 인류의 오랜 절망, 태생적인 호모 사피엔스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한 원대한 이상이리라.
문득, 자신이 내쉬는 한숨이 소년에게 이상하게 비치리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박진성은 비명 질렀다!
“으아아아악! 승엽 군! 야! 이 미친 새끼야!”
수십 대의 차가 미친 듯이 경주하며 너에게 끼어들기를 당하느니 그냥 뒤지겠다고 외치는 부산의 6차로, 제한속도 규정 따위는 실력이 부족한 운전자나 지키는 것이라 믿는 혼돈의 도로 한복판에서 – 소년이 도로를 ‘느릿하게’ 횡단하고 있었다!
근처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직원들이 뒤늦게 뛰어오자 박진성은 분노가 치미는 걸 느꼈다.
“대체 그 개눈깔은 왜 달고 있나? 도로로 뛰어드는 걸 왜 붙잡지 않은 거야!”
“부, 부장님! 방금 무슨 일이 생겼는지 보셨습니까?”
“무슨 일?”
“아니, 저 꼬마가 길 가다가 주머니에서 엉뚱하게 주사위가 떨어졌거든요? 그러니까 아주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주사위를 쫓아서 도로로 뛰어들었습니다.”
더 이상 화낼 기운도 없어서 멍하니 도로를 바라보던 박진성은 감탄했다.
소년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넋 놓고 바닥만 내려다보면서 그놈의 ‘주사위’를 찾아다녔고, 자동차들은 무슨 일 있냐는 듯 자연스럽게 소년을 스쳐 갔다.
“… 저 요원, 어떤 초능력이 있다고 했지?”
“‘희대의 행운아’라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승엽 군을 ‘조용하게’ 만들려 하자 능력이 발현된 모양이군. 이런 식으로는 어렵겠는데.”
“본인을 조용한 장소로 유도하는 게 어렵다면 아예 주변의 민간인을 철수시키는 건 어떨까요?”
“글쎄, 저 정도라면 대놓고 총을 쏴도 어려울 수 있어 보이는데.”
“예?”
“자네가 권총을 꺼내서 쐈는데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손에 힘이 풀려서 총알이 옆에 있는 친구에게 향하는 거지.”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럼 6차선을 땅바닥의 주사위만 보면서 산책하듯 걸어서 상처 없이 지나가는 건 말이 되나?”
“…”
“그, 부장님. 듣기로 저 능력에도 ‘약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
– 박승엽
“아! 갑자기 왜 튕겨 나가는 거야!”
후원자와 만난 이래로 항상 챙겼던 주사위가 난데없이 바닥에 떨어질 줄은 몰랐네. 놀라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죽어라 주사위를 쫓아다닌 끝에 간신히 다시 주울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주사위를 집어 들고 뒤늦게 정신 차리고 보니 옆에서 걷던 부장님이라는 분이 보이지 않았다. 왠지 그분은 사라진 동료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 따르릉!
갑자기 주머니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승엽 군. 갑자기 어딜 간 거야? 놀랐다네.”
“헛! 죄송합니다. 제가 아끼는 주사위가 갑자기 바닥에 떨어져서요.”
“그래? 뭐 아끼는 물건이면 어쩔 수 없지.”
“죄송합니다. 계시는 곳으로 -”
“승엽 군, 전화 끊지 말고 잠깐 내 말 들어보게.”
그 후, 부장님은 난데없이 어린 요원이라면 꼭 알아야 하는 지식이라면서 ‘복잡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혼돈체의 본질이 어쩌고 하더니 나중엔 요즘 러시아의 정세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까지 나와서 머리가 대박 아파졌다!
진짜 요원은 이런 것도 다 알아야 하나? 원래 현실로 돌아가면 나도 요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다시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
기나긴 대화는 부장님이 나와 다시 합류한 후로도 끊이지 않았다. 부장님은 진짜 전형적인 말 많은 아저씨처럼 온갖 이야기를 다 꺼냈다. 심지어 자신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이랬다는 둥 세상 쓸모없는 이야기까지 해서 정신이 멍해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내가 정신을 놓는다 싶으면 본인이 방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되묻기까지 했다.
“부, 부, 부장님!”
“내가 작년에 프랑스에 다녀올 때만 해도 – 음? 질문이 있나?”
“너무 머리가 아파서 그런데요, 해주실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인가요?”
“아하하! 승엽 군, 인내심을 기르게.”
“죄송합니다….”
“당연히 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지. 혹시 해신 섬의 이야기가 궁금한가?”
“네!”
“그 이야기는 밥이나 먹으면서 하면 딱 좋겠군.”
그제야 우리가 자그마한 음식점 앞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관리국 고위직이라 돈도 많은데 이렇게 외진 장소로 온 이유는 또 뭘까?
식당에 들어선 후로도 흐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부장님은 내 얼굴만 뚫어져라 보면서 하염없이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승엽 군.”
“네?”
“지금 머리가 많이 아픈가? 복잡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네에에…”
이상하다. 부장님의 분위기가 어딘가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분위기가 싹 사라지더니 얼음처럼 냉엄한 분위기가 깃들었다.
부장의 손이 양복 안쪽으로 들어갔다. 뭔가 꺼낼 물건이 있는 걸까?
— 쨍그랑!
창문이 터져가는 소리와 함께 한 마리의 앵무새가 날아들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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