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45)
244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22)
– 박승엽
난데없이 창문을 깨트리며 날아든 앵무새는 순식간에 괴물로 변신하더니 벽 근처에 있던 음식점 직원 둘을 으스러트렸다.
“으아아앗!”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을 때,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음식점에 있던 직원들의 허리춤에서 총이 튀어나왔다! 아니, 요즘 음식점 직원들은 총도 가지고 다니나?
당황 속에서 테이블 건너편을 보자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침착한 표정의 부장님이 품에서 총을 꺼내서 나를 겨눴다. 나는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권총의 방아쇠가 당겨지려는 그 순간을 멍하니 지켜보는 –
— 쿵!
몸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찰나의 순간, 그로테스크가 ‘박치기’로 날 튕겨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장님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음식점 직원들이 일제히 그로테스크에게 총구를 겨눴다.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 내 마음과 달리 내 손은 꽤 똑똑했다. 이미 여러 차례 겪은 페로와 함께하는 싸움 경험 덕에 두 손이 자연스레 내 귀를 막았으니까!
— 크라라라라라!
건물을 뒤흔드는 용솟음치는 포효!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귀를 막았는데도 순간적으로 격렬하게 흥분하며 다리로 테이블을 걷어찼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몸을 돌려 바깥을 향해 뛰었다.
적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관리국은 지금 내 적이다!
어째서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늑대를 피해 도주하는 토끼가 된 기분으로 정신없이 부장님과 있던 방을 나와서 가게의 홀 쪽으로 튀어 나갔다.
— 덜컥!
좀 전에 지나쳐온 문이 열리려 한다. 벌써? 페로의 포효에 휩쓸렸으면서 이렇게 빨리 정신을 차렸어?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어떻게 –
— 촤아악!
“앗 뜨거워! 시발 시발 시발 왜 이렇게 뜨거워!”
“끄아아아아아아악!”
“죄송합니다!”
전혀 죄송하지 않은데 죄송하다는 말이 본능적으로 나왔네!
마침, 눈앞에 펄펄 끓는 해물 뚝배기가 있었다. 그걸 맨손으로 잡아 던졌더니 잠깐 사이에 손이 녹아버릴 것 같았다. 당연히 뚝배기를 뒤집어쓴 부장님은 아예 바닥에 넘어져서 데굴데굴 굴렀다.
정신없이 달렸다. 사방에 넘치는 의자나 탁자를 마구 밀쳐내며 달리고 또 달려서 가게 문을 향해 달렸다. 우선 가게 밖으로 나왔으니 사람들이 많은 장소로 가서 –
— 탕!
아….
사람이 벼락을 맞으면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아주 뜨겁게 달군 쇠꼬챙이가 내 몸을 마구 헤집은 것 같았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권총 한두 발 맞고도 붕대로 감싸고 온갖 액션을 했던 것 같은데 난 주인공이 아닌가 봐. 어깨 쪽을 맞은 것 같은데 다리까지 포함해서 온몸의 힘이 사라지고 미끈거리는 바닥에 쓰러졌다.
— 쏴아아!
하늘에선 비가 오고 있었다. 음식점 쪽에서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죽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지금의 고통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제발, 제발 이 고통이 끝나기만 간절히 빌었다….
“엄마….”
“…”
“엄마…. 엄마…. 흐으윽….”
“미안하구나. 곧 편하게 해주마.”
그때, 가로등의 불이 꺼졌다. 죽음이 다가온 내 눈이 이제 빛을 볼 수 없게 된 걸까?
다음 순간, 이번엔 건너편의 가로등이 또 꺼졌다. 그다음엔 주변에 있던 모든 광원이 사라졌다. 불길할 정도로 인적이 없는 외진 골목,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 또각!
어둑한 밤하늘, 쏟아지는 비바람 소리를 뚫고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이상하게도 이 순간만큼은 온몸을 번갯불로 지지는 듯했던 통증마저 숨죽인 채 다가오는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다.
“또 무슨 괴이한 -”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오던 부장님의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누군가가 다가온다. 체구는 기껏해야 나와 비슷한 정도. 옷차림은 비옷인가? 걸음도 그리 빠르지 않다. 기껏해야 작은 소녀가 아닌가 싶다.
“안녕하세요?”
“…”
대답할 기운이 없었다. 어둠을 뚫고 나타난 소녀는 돌처럼 굳은 부장님을 바라보았다.
“아! 아저씨. 어젯밤, 꿈에서 봤답니다. 수호 오빠는 아저씨를 꽤 무서워했어요.”
소녀의 시선이 조금 위로 향했다. 부장님의 위쪽, 비에 젖은 음식점 간판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저는 이런 허름한 음식점 간판을 보다 보면 항상 생각했답니다. 간판이 갑자기 떨어지면 어떡하죠? 터무니없는 일은 아니잖아요? 매년 한국에선 떨어지는 고드름 때문에 다치는 사람도 나오는걸요.”
— 끼익!
이상하다. 분명 음식점 내부에도 관리국 직원이 있었고 이 주변에도 배치했을 것 같은데…. 그들 중 그 누구도 가까이 오는 사람이 없었다. 소녀에게 뿜어져 나오는 ‘불온한 상상’이 어둑한 거리를 덮었기 때문일까?
가게의 낡은 간판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장님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걸 본 소녀는 느릿하게 걸어가서 돌처럼 굳은 부장님의 얼굴을 ‘위로’ 움직였다.
“잘 봐두세요. 갈 때 가더라도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알고 가야 답답하지 않잖아요?”
천천히, 기울어지던 간판이 마침내 떨어지며 부장님을 고깃덩이로 다져버리는 그 순간까지도 – 부장님은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 또각!
“안녕!”
“…”
“말할 기운 없어? 승엽이는…. 음. 살아나긴 어렵겠다. 아쉽네요. 바로 병원에 갔으면 살았을지도 몰랐는데.”
“…”
“어젯밤에 꿈을 꿨어요. 아주…. 아주 오래된 꿈. 목소리를 들었어. 온 세상에 가득한 동포들의 비명을 들었어. 그리고 새로운 귀를 얻었어.”
“…”
“이상한 일이야. 꿈에서 깨자마자 내 귀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을 알았어. 진짜 들어야 할 소리는 하나도 듣지 못했으니까. 그런 당연한 사실을 왜 여태 몰랐을까? 그래서 쓸모없는 귀를 뜯어버렸어. 이제…. 이제야 들려. 승엽아, 너에게도 목소리가 들리니?”
그제야 소녀의 양쪽 귀가 뜯어져 있음을 알았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우리의 기도가 들리시나요? 저는 이제야 당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제게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이수호에게 그러했듯이, 저에게도 은혜를 베푸소서.”
그 말과 함께 소녀의 양손이 자기 눈으로 향했다. 나는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곧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리링가노르는 ‘들을 수 없던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뜯어냈다. 이제 ‘볼 수 없던 무언가’를 보기 위해 눈을 뽑은 걸까?
발걸음 소리가 내게 멀어진다. 그때쯤, 슬슬 모든 소리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끝이 찾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
대체 정체가 뭘까? 이 방의 마지막 시련? 이수호의 실패를 대비한 해신의 마지막 패? 모르겠다.
동시에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다. 리링가노르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첫 번째 시도 때 우린 위기에 빠진 부산의 사람들을 구하며 꽤 친해졌었는데…. 그 모든 건 단지 연기였을까?
아니면 이수호가 실패하기 전엔 본인도 자신의 역할을 모를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건 단지 나의 헛된 희망일 수도 있다.
이쯤 생각하다 그만뒀다. 모든 예측은 우리에게 다음 기회가 있을 때나 의미 있는 이야기니까.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나는 내게, 우리에게 ‘다음’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
– 엘레나
이른 새벽, 갑자기 누군가 날 흔들어서 몽롱한 기분으로 깨자마자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연구소의 실질적인 총 책임자인 박진성 부장이 황당하게 죽었다는 사실!
“에…. 그러니까 뭐 하다가 죽었다고요?”
“임무 도중 음식점 간판이 떨어져서 죽었답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물론 사람이라는 게 원래 죽을 때는 밥 먹다 체해서 죽기도 하고 길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죽기도 하는 법이지. 하지만 관리국 고위직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몰랐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세레나데 언니와 황당하다는 감정을 공유하며 상황을 살피던 중, 정말이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루다흐가 괴전파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따님분들이 빨리 손써주셔야 합니다!”
허둥대며 다가온 직원의 다급한 외침에 연구소의 세 해신의 딸, 나, 세레나데, 이멜다는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한 채 달팽이들이 갇혀 있는 수조 근처로 다가갔다.
과연 루다흐들은 단체로 기이한 음파를 내며 꿈틀거리고 있었고 그 음파는 연구소에 가득한 ‘진보된 인간’들에게 격렬한 고통을 유발했다.
더 이상한 일은 루다흐에 대한 우리의 통제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 중 루다흐에 대한 통제에 가장 능숙한 이멜다조차도 루다흐가 괴전파를 뿜어내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멈추긴커녕 괴전파는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슬슬 피부 아래의 살갗에서 ‘무언가’가 들고일어날 듯한 끔찍한 감각이 느껴지던 그 시점이 되었을 때.
마침내 파멸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수호의 죽음으로 해신의 강림이 멈췄는데도 해결이나 탈출이 뜨지 않은 이유가 뭐겠는가?
해신에겐 아직 한 발의 탄환이 남아있었다. 알 수 없는 모종의 수단, 강림을 위해 남겨둔 한 수가 더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한 발의 탄환이 지금, 세상 전체를 꿰뚫었음을 알았다.
루다흐가 우리의 통제에서 벗어난 이유 또한 명백하다. 더 강한 통제력을 가진 무언가가 저들을 통제하고 있겠지.
…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눈치 볼 필요 없다는 이야기네.
“대체 이게 왜 이리 말을 안 듣지?”
“이멜다. 비상 상황을 대비한 뭔가 없나요? 설마하니 이런 수상쩍은 초자연적인 생물을 가지고 온갖 실험을 하면서 최후의 수단 같은 것 하나 준비하지 않은 건 아니죠?”
“물론 있단다. 하지만, 그건 연구소 책임자들끼리 회의해서 -”
“엘레나, 그 수단이 뭔지 내가 대충 알아.”
세레나데가 이멜다의 말을 딱 끊으며 날 바라보았다. 며칠 사이에 나만 이 연구소를 탐색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세레나데도 무언가하고 있던 걸까?
세레나데의 의미심장한 눈길이 날 향했다. 나도 어딘가 재미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무슨 -”
다음 순간, 이멜다는 마치 돌이 된 것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이멜다, 대단한 결단력을 발휘해서 관리국과 내통했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허술해요? 안전한 연구소에 너무 오래 있으면서 바보가 되셨나?”
관리국에 급습당해서 기절한 채 끌려오던 당시의 앙금이 남은 걸까? 세레나데는 이멜다의 발을 잘근잘근 짓밟았다.
— 탕!
한 발의 총성. 오랜 시간 악몽에 고통받으며 평온하고 안전한 삶을 바라왔던 전대 성녀의 결말은 생각보다 허무했다.
“엘레나, 이 연구소에서 준비해둔 ‘최후의 패’라는 거 보게 되면 의외로 익숙한 물건이라 웃길걸?”
“익숙한 물건?”
“응. 너도 잘 아는 물건이야. 그 물건을 관리국이 크게 ‘개량’했을 뿐이지. 난 이 사람들의 창의력에 감탄했어.”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연구소 전체에 가득한 괴전파 속에서 ‘진보된 인간’, ‘인류의 미래’, ‘호모 사피엔스의 희망’등을 자처하던 존재들 전체가 마치 벌레처럼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슬슬 두 번째 시도 또한 끝이 다가옴을 직감했다. 아마도 나는 최후의 생존자겠지. 탈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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