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48)
247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25)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던 엘레나가 정신을 차리기까진 30초 정도면 충분했다. 어색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아리에게 사과한 엘레나의 말에 따르면, 탈출 직전에 워낙 끔찍한 광경을 봐서 정신이 나간 듯했다.
이후, 우린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파티가 쪼개지기도 했고, 승엽이나 엘레나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각자 다른 정보를 얻기도 했다. 모두가 수집한 정보가 매우 난잡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리하는 데 시간이 제법 필요했다.
두 번째 시도의 후반 부분은 사실상 엘레나 혼자서 진행했다. 그 내용을 듣던 우리는 곧 입을 벌리고 말았다. 호텔에서 기괴하고 흉측한 일은 거의 모든 방에 있긴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엘레나가 겪은 일은 참 쉽지 않았다.
난잡한 정보들 속에서 모두가 잠시 가벼운 혼란을 느낄 때쯤, 고민하던 누나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내 생각엔 202호의 시나리오는 거의 다 파악한 것 같아. 각자 경험한 이야기를 하는 건 이쯤 하고 202호에서 일어난 사건을 시간대 순으로 배열해보자. 이러면 명확하게 보일 거야.”
곧 발생 사건이 시간순으로 적히기 시작했다.
1. 800년 전, 해안가의 가난한 어부들이 해신의 권속인 루다흐를 받아들여 어인이 됨. 이후, 어인화의 부작용이 해양 생물로 변하는 것임이 드러남.
어인들은 이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함. 군체 생물인 루다흐의 고위 개체를 품은 자들, 즉 해신의 딸들이 본인의 능력으로 어인들이 육지에 남아있을 수 있게 함.
2. 20년 전, 오랜 악몽에 시달리던 전대 심해의 성녀, 이멜다는 관리국과 계약해서 루다흐를 실험체로 팔아넘김.
관리국은 루다흐를 이용해 인간을 개량하겠다는 계획을 세움. 이 배신행위에 해신은 크게 분노해서 어인들이 겪는 악몽이 훨씬 가혹해짐.
3. 현대, 해신은 심해에서 몸을 일으켜 죄악을 심판하기 위해 이수호와 리링가노르를 준비함. 정황상 이수호가 먼저 나서며 실패할 때 리링가노르가 나서는 구조로 보임.
대략적인 큰 사건들은 다 적힌 것 같다. 누나는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202호의 중요 포인트였던 ‘죄악’을 중심으로 생각해봐도 될 거야. 1번은 어인이 저지른 최초의 죄, ‘바다의 삶에 대한 거부’와 관련된 내용이니까. 2번이 두 번째 죄, ‘신의 권속을 실험체로 넘긴 행위’야. 마지막 3번은 이에 대한 해신의 대응이고. 혹시 이해 안 가는 포인트 있으면 빨리 말해봐.”
진철 형이 먼저 손을 들었다.
“두 차례나 겪어서 이번에도 궁금한 부분인데, 해신 섬에 들어가는 다리 말입니다. 그 다리에 걸린 안개의 저주, 그거 누구 소행일 것 같습니까?”
“그 안개의 목적을 생각해봐야겠지. 명백히 우릴 죽여버리려는 저주였어. 그런 힘을 쓸만한 세력은 시나리오 내에 몇 없어. 세레나데와 관리국, 더해서 이수호와 리링가노르 정도.”
“관리국은 아니겠군요. 그 시점의 우리는 ‘프로젝트’에 대해 몰랐으니까 숙청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레나데도 아니야. 해신 섬으로 향하는 관리국 요원이 난데없이 몰살당하면 관리국이 어떤 반응을 보이겠어? 그 후폭풍이 무서워서라도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아니야.”
“이수호나 리링가노르겠군요. 그 둘로선 어차피 내일 해신이 강림할 테니 후폭풍 따위는 고려할 필요가 없죠. 목적은 해신 강림 직전에 관리국 세력이 개입하는 것 자체를 막는 건가?”
“그렇겠지. 어쩌면 부산에 일어나는 해일의 목적도 똑같을 거야. 우리가 해일에 휩쓸리기 전에 섬으로 들어가서 느끼지 못했을 뿐.”
리링가노르 이야기가 나오자 승엽이가 바로 손을 들었다.
“리링가노르는 자신의 운명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까요?”
무슨 의미의 질문인지 승엽이의 표정만 봐도 알 것 같다. 첫 번째 시도, 승엽이는 리링가노르와 꽤 친해진 것 같았으니까. 그 인연은 시도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사라졌지만, 기억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누나 대신 아리가 답해줬다.
“알 수 없어.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 애가 큰 위험 요소인 건 똑같아. 아마도…. 죽여야겠지.”
비슷한 생각이다. 처음부터 자신이 해신 부활을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알았을 수도 있고, 이수호가 죽은 다음에 해신이 꿈을 통해 그 애를 일깨웠을 수도 있겠지. 어느 쪽이든 우리로선 대단히 위험한 아이다.
엘레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해신이 전달한 메시지 기억나시죠? 첫 시도에서 가인 씨가 들었다는 ‘고통의 끝을 달라’, 두 번째 시도에서 제가 들은 ‘한 번 더’, ‘거의 다 왔다. 왜 너는 어인인가’. 이 말들은 어떤 의미일까요?”
할아버지가 의견을 냈다.
“고통의 끝을 달라. 이건 관리국이 루다흐를 가지고 실험하는 행위를 멈춰달라는 이야기 아니겠냐? 혹은 아예 이 방을 해결해서 본인을 쉬게 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겠지.”
103호의 죄수가 그러했듯, 그 역시 안식을 바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한 번 더, 거의 다 왔다. 이거야 이제 해결까지 거의 왔지만 살짝 부족하니 조금 더 해보라는 말이겠죠. 마지막 문장이 제일 수수께끼네요. 왜 너는 어인인가. 어떻게 들리세요?”
잠시 주변에 침묵이 감돌았다.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맥락상 ‘너’는 당연히 엘레나죠? ‘왜 엘레나는 어인인가.’라….”
왜 네가 어인이냐? 그래서 끝낼 수 없으며 인간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일까?
아니면, 엘레나가 어인이라는 사실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고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할까?
쉽지 않다. 주변에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 이번엔 화이트보드 앞에 있던 누나가 손을 들었다.
“사실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게 하나 있거든. 피리, 이것 너무 이상하지 않아?”
피리는 제법 많은 수수께끼를 품고 있다.
엘레나가 두 번째 시도에서 정신이 해신과 가까워지며 깨달은 바에 따르면, 피리는 해신 본인의 광기나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만든 ‘편안한 자장가’같은 느낌의 물건이라고 한다. 피리의 선율이 울려 퍼지자 해신이 이성을 되찾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엘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이상하신가요? 본인의 고통을 덜기 위한 물건을 본인이 쓰지 않고 어인에게 내린 점?”
누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건 쉬워. 피리는 해신을 위한 물건이지만, 어인족에게도 유용했잖아? 악몽을 약하게 만들어줬다며? 신도들에게도 유용한 보물이니까 내려줄 수야 있지. 내가 이상하게 느낀 부분은 ‘시기’야.”
“시기?”
생각을 충분히 정리하기 위함인지 누나는 잠시 주변을 걸어 다녔다.
“해신은 고통을 겪고 있어. 이 점은 명확하지. 본인이 가인이에게 ‘고통의 끝을 달라’라고 말하기도 했고. 그 고통의 원인은 뭘까?”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루다흐가 관리국에 잡혀가서 실험당하는 일 아니냐? 자신의 권속이 관리국에 끌려가서 실험용 쥐가 됐으니 신이라면 당연히 매우 고통스러운 일일 것 같다만.”
“아마 그렇겠죠? 실제로 정신이 인간보다 루다흐에 가까워졌다는 이수호는 엘레나에게 복수해달라고 했다면서요? 또, 해신 섬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20년 전부터 악몽이 거세지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음을 해신의 딸들이 느꼈다고 하죠.”
“누나, 그래서 뭐가 이상한데요?”
“해신의 고통은 20년 전에 관리국이 루다흐를 실험체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시작됐어. 그런데 피리를 내린 시점은 대체 언제지? 엘레나?”
엘레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정확히 모르겠어요. 대대로 물려받았으니 수백 년은 된 것 같은데.”
20년 전에 시작된 해신의 고통, 그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피리. 어떻게 치료제가 병보다 먼저 만들어질 수 있는가? 그제야 누나가 인지한 시간대의 모순을 느꼈다.
그때쯤, 아리가 탁자를 ‘탁’하고 쳤다.
“너무 지엽적인 부분에 파고든 것 같은데? 방을 해결하기 위해 202호에 있는 모든 수수께끼를 다 풀어야 할 필요는 없어. 나는 이미 알아낸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 보이는데.”
할아버지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결국 해신의 강림을 저지하면 되는 문제 아니냐? 해신이 준비한 패가 뭐냐의 문제였는데 이제 다 알아냈지. 첫 번째, 죽은 줄 알았지만, 멀쩡히 살아있는 이수호. 두 번째, 얌전한 아이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터무니없는 괴물이던 리링가노르. 이 둘을 처단하면 될 문제다.”
아리나 할아버지의 생각도 이해가 간다. 우리에게 시간이 한 달쯤 있다면 틈날 때마다 토론해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이야기해봤겠지만 우리는 내일 다시 들어가야 한다.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하염없이 매달릴 시간이 없다.
이젠 내일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해볼 때가 되었다.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나갔다.
해신 섬에서 흉계를 꾸미는 이수호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이야기, 다채로운 초능력을 부리는 리링가노르를 처리하기 위한 이야기.
이 모든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관리국이 만들어낸 대량의 ‘살아있는 피리’를 사용하는 최후의 탈출 방법까지!
마지막 피리와 관련한 논의에선 필연적으로 ‘살아있는 피리’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해신의 딸들이 가지고 있던 피리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살아있는 피리는 결국 관리국이 흉내 낸 짝퉁이다. 원본은 해신이 내린 물건이지. 해신이 내린 피리가 더 강력하지 않겠냐?”
엘레나의 생각은 좀 다른 듯했다.
“제가 느끼기에 꼭 그렇진 않아요. 관리국이 만든 살아있는 피리는….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대량 생산’이 가능했으니까요. 해신이 내린 원본에 비해 질적으로 못 미쳤지만, 숫자로 질을 메꾸고도 남았달까?”
“여하튼 원본 피리도 확보할 수 있으면 꼭 챙기자꾸나. 상황이 최악으로 돌아가도 피리를 써서 해신의 분노를 잠재우면 그게 곧 탈출인 셈이니까 아주 귀한 물건이지.”
만약 원본 피리의 확보에 실패하면 ‘살아있는 피리’를 써야 한다. 엘레나에게 물었다.
“원본 피리야 쓰기 꽤 쉬운 것 같지만, 관리국이 대량 생산한 살아있는 피리는 쓰는 방법이 꽤 어려워 보이던데요? 지휘자 달팽이를 부려야 하는 모양인데…. 엘레나, 또 그 나방 괴물을 만들어낼 수 있겠어요?”
엘레나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
순간적으로 부담스러워서 시선을 내렸지만 내린 장소는 더 부담스러웠다.
“절대.”
“예?”
“절대 다시 만드는 일 없어요.”
“아.”
“절대. 절대. 절대!”
“아, 알겠어요.”
아리가 피식거렸다.
“그래. 가능하면 원본 피리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행하자. 통제가 어려운 괴물을 굳이 또 만들 필요는 없지. 리링가노르에게 하나, 세레나데에게도 하나 있지? 엘레나에겐 없어?”
이런 식으로 한참 동안 계획의 디테일을 채워나갔다.
문득, 은솔 누나가 아까부터 조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나? 무슨 생각을 그리 열심히 하세요?”
“음…. 갑자기 뭔가 번뜩해서.”
“번뜩?”
“나, 방금 해신이 했던 마지막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 같아.”
“왜 너는 어인인가. 말이죠?”
“가인이 너, 조언 다시 찼지?”
…
…
…
다음 날, 우리는 세 번째 시도를 위해 202호로 다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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