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49)
248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26)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마침내 시작된 세 번째 시도!
마지막이길 바라는 이번 시도의 진행은 시작부터 과거와 전혀 달랐다. 해신 섬으로 움직이긴커녕 청성 그룹으로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늦은 시간까지 은솔 누나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세운 해결 시나리오에 따르면 두 장소 모두 갈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인원이 분산되는 것이 더 위험하다.
아리가 불안해하며 말했다.
“이 계획, 이미 하기로 했으니까 새삼 따질 생각은 없지만…. 정말 해신의 딸들이 가진 피리 챙길 필요 없겠어? 엘레나 봉인도 풀지 않을 생각이야?”
누나는 제법 자신감 있게 말했다.
“시간이 엄청 빡빡해서 해신 섬에 다녀올 시간이 없어. 또, 이번 계획에선 원본 피리도 엘레나도 꼭 필요하지 않아. 너도 어제 동의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어차피 우리가 갈 장소에 ‘대체 피리’가 있으니 상관없어.”
그렇다. 지금 우리가 향하는 장소에 관리국이 직접 만들어낸 피리의 대체품이 있다. 리무진이 곧장 연구소를 향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각, 할아버지는 박진성 부장과 통화 중이었다. 이미 부장이 뭐 하는 인간인지 파악한 후다. 그의 머릿속이 ‘프로젝트’의 보안 유지라는 단어로 가득 차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부장이 의심할만한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은 후, 해신 섬으로 갈 테니 지원해달라고 부탁했다. 곧 부장은 우리를 숙청하기 위한 부대를 해신 섬으로 보내며 연구소의 전력을 약하게 만들겠지.
물론, 우린 해신 섬에 갈 생각이 없다. 관리국이 추적할 것을 염려해서 각자 가지고 있던 핸드폰 등도 전부 처분했다.
여전히 아리는 불안해했다.
이해가 가는 면이 없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가 취해왔던 기본적인 스탠스와 여러모로 다를뿐더러, 우리가 그간 이야기해왔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상당 부분 무의미해지는 해결방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최대한 내려놓고 생각했다. 마치 게임을 깨는 느낌으로 기계적인 해결을 추구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한 발짝 떨어져서 시나리오를 보자. ‘해피엔딩’으로 향하는 길은 대체 무엇일까?
그때쯤, 리무진이 연구소 근처에 도착했다.
“아니, 수상쩍은 실험을 한다는 연구소가 저렇게 대놓고 요란하게 있어도 되는 거냐?”
황당해하는 진철 형의 반응에 대한 할아버지의 답은 간단했다.
“너 바보냐? 어차피 관리국 팻말 달아놓으면 아무도 들어오질 않아.”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너무 큰 규모의 실험이니 시설 자체를 숨기긴 어려웠겠지. 잠시 리무진 내부에서 연구소 인근을 바라보며 대기했다. 20분쯤 후, 다수의 차량이 연구소에서 출발했다. 박 부장이 부리는 ‘진보된 인간’들로 이루어진 타격대가 해신 섬을 향해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아무리 주력 병력이 빠져나갔다 해도 저 장소는 다름 아닌 관리국의 중요 시설. 보안을 위해 적지 않은 병력이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지금의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현상이 발생할 때까지!
이윽고 지표가 흔들리며 해일이 몰아닥쳤다.
제아무리 관리국이 대단하다 한들 이곳은 한국이다. 대한민국이 무슨 지진 청정 지대까진 아니겠지만, 바다 건너 일본처럼 주기적인 지진과 해일에 시달리는 국가는 결코 아니다. 아무리 보안이 엄중한 연구소라 한들 해일 대비가 제대로 되어있을 턱이 있겠는가?
예상대로 몰아닥친 해일은 삽시간에 연구소 주변을 휩쓸었다! 직원이고 연구원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극도로 당황한 티가 관찰하는 우리에게도 느껴졌다.
이제 시작이다.
“흐읍!”
긴장감이 감돈다. 일행은 대부분 뒤쪽에 있다. 이 계획에서 ‘선봉장’ 역할을 맡기에 나만 한 사람이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방호복은 입고 있지만 피부가 저릿하게 느껴질 정도의 긴장감이 샘솟았다.
연구소로 다가가자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힘겹게 다가왔다.
“지금 연구소 상태가 엉망입니다만…. 입고 계신 것은 강화복입니까? 관리국 분이시라면 신분증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나는 대답 대신 손에 흉성이 깃든 책을 불러냈다.
“대체 무슨 -”
“네 몸, 잘 빌리겠습니다!”
*
– 이은솔
맨 앞에 나선 가인이가 연구소의 경계 근처에서 삽시간에 연구소에 대혼란을 불러왔다. 군인들은 순식간에 자기들끼리 총을 쐈다가 주먹을 휘두르며 난리가 났다.
그 광경을 본 동료들이 손짓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끼어든 아리가 손을 허공에 휘젓고, 송이의 팔찌가 번뜩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 20명이 넘는 군인들이 무력해졌다. 여기에 페로가 끼어들어 몇 번 울부짖자 상황은 매우 깔끔해졌다.
이 지경이 되도록 연구소 쪽에선 제대로 된 대응이 나오지 않았다. 박 부장을 비롯한 주력 부대의 이탈, 여기에 지진해일이 더해지자 완전히 오합지졸이 된 것이다.
곧 상현 씨와 할아버님이 군인들이 입고 있던 장비를 챙겼다.
뒤쪽에서 느긋하게 걸어가며 상황을 지켜본다. 전황은 괜찮아 보였다. 애초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반 이상 무너진 상황인데, 여기에 우리가 크게 한술 떴을 뿐!
아리는 요전에 보였던 붉은 안개를 다시 불러내서 10명이 넘는 군인을 한 번에 쓰러트렸다. 어느샌가 방탄복을 구해 입은 상현 씨는 감탄이 나올 정도의 정교한 사격 실력을 발휘했다. 할아버지나 진철이의 전투력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여기에 페로를 얹은 송이는 일당백이나 다름없지!
…
감탄하다 보니까 살짝 초라한 나 자신을 발견했네. 난 사실 그냥 따라가는 것 말고 하는 게 없어. 다행히 옆에 있는 승엽이도 별로 하는 건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더 우울해. 얘는 중학생이잖아. 그때쯤, 누군가 내 쪽으로 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군인은 아니었다.
“대체 네놈들은 누구냐! 이런 짓을 하고도 -”
모자를 고쳐 쓰며 시원하게 고함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다가오던 직원은 내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더니 엎드려 뻗쳤다. 옆에서 승엽이가 어처구니없어했다.
“저 사람은 엎드려 뻗치라니까 진짜 뻗치네요?”
“그러게.”
지휘자 루다흐가 있다는 비밀 공간, 그 장소를 가기 위해선 이멜다나 부소장을 찾아야 한다고 했지? 어디 있을까?
그때, 대화창이 번쩍였다.
김묵성 : 이 뚱땡이가 부소장인 것 같은데? 다들 입구 쪽으로 와봐라.
혼란스러운 물살과 쓰레기를 헤치고 입구 쪽으로 달려가자 할아버지가 푸짐한 몸매의 남자 한 명을 붙들고 있었다.
“야! 야! 너 부소장 맞지?”
“아, 아닙니다. 부소장이라니요. 전 말단 -”
“이 사람 명패 있는데요? 부소장 맞아 보이는데? 아저씨! 왜 거짓말해요?”
“이 새끼 보소? 너 여기서 흙탕물 한 바가지는 마셔야 정신 차릴래?”
아니, 할아버님은 왜 꼭 이런 상황만 되면 저렇게 조폭처럼 구는 거야? 상현 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할아버지의 팔을 붙잡았다.
“물러나시죠. 어차피 험한 수단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가인이가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지. 그 말대로 곧 가인이가 부소장의 몸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진철이가 가인이의 몸을 업고, 방호복은 자연스럽게 아리가 입었다.
“으~! 움직이기 불편하네요.”
“뭐 문제 있냐?”
“이 사람, 너무 몸 상태가 안 좋아서 한 걸음 한 걸음 떼기만 해도 숨이 찬데 대체 어떻게 살았나 몰라요.”
“이멜다인가 뭔가 하는 여자 본 사람!”
아리가 대답했다.
“아까 차 한 대 출발하더라. 아마 이멜다가 측근 몇 명 데리고 도망갔나 봐.”
“참 자기 목숨 하나는 잘 챙기는 양반일세.”
연구소를 가로지르며 생각했다. 엘레나는 이 장소를 인세에 재현된 마경처럼 묘사하곤 했지. 워낙 끔찍한 광경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이 장소는 실로 사악한 창의력의 정화가 발현된 장소였다. 비록 인간은 아닐지언정, 고도의 지성을 갖췄다고 여겨지는 초자연적 생물을 쥐처럼 다루는 연구소. 이것으로도 모자라 다수의 사람까지 희생해가며 ‘살아있는 피리’따위를 만들어내는 광기의 소산.
어젯밤에 모두와 회의하며 정리했던 202호의 시나리오를 되새겨보자.
생각건대, 202호에서 벌어진 모든 참극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저주의 근원이니 대적자니 하는 단어에 집착하지 말고 한 발 떨어져서 시나리오 자체를 보면 명확히 보인다.
모든 사태의 원흉은 관리국이다.
대양의 신은 애초에 무얼 하고 있었는가? 그냥 어인이라는 말 잘 안 듣는 신도들을 구슬려가며 섬 하나 붙들고 잘살고 있었잖아? 심지어 그 섬은 멀쩡히 사람이 살던 섬을 빼앗은 것도 아니고 해신이 직접 바다에서 만들어낸 땅이다.
가난한 어부들이 살려달라고 빌었기에 축복을 내려 굶주림에서 해방해줬다. 그런 주제에 정작 바다에서 살긴 싫다며 이런저런 꼼수를 부리는 것도 무려 800년이나 눈감아줬다. 800년이 넘도록 그 어떤 문제도 없었다. 관리국이 이상한 망상에 빠져서 해신의 권속을 납치해가기 전까지는!
이 깨달음이 뇌리를 강타하던 그 순간, 나는 해신이 전했던 ‘왜 너는 어인인가’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왜 이 방에서 엘레나에게 ‘어인’이라는 역할을 줬을까?
애초에 어인은 어떤 존재지? 어인은 인간과 루다흐의 융합에서 태어난 존재다. 온전한 인간이라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온전한 이종족이라 볼 수도 없는 경계선에 선 자들.
그러므로 특정 집단의 관점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존재들.
인간의 입장, 인간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발 떨어져서 ‘회색의 위치’에서 상황을 돌아보아야만 누가 문제의 근원인지 이해할 수 있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문득 생각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아직 경계를 넘지 못한 내 눈에 비치는 동료들은 어떠한 존재인가.
누군가는 가벼운 잽으로 콘크리트를 부수고 허리에 총을 맞고도 불평 한 번으로 버텨낸다. 누군가는 손짓 한 번에 사람의 오감을 휘두르고 말 한마디로 괴수나 다름없는 새를 부린다. 누군가는 피 한 컵으로 수십의 인간을 무너트리고, 누군가는 책 한 권으로 만인의 육신을 희롱한다.
지금의 우리 또한 사람의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생각했다. 호텔은, 해신은 우리에게 ‘사람의 입장’에서 벗어나서 생각해보라고 전하려는 게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우리는 이 방에서 –
관리국의 그릇된 야망을 으스러트릴 것이다.
*
– 한가인
자신감 있게 나아가던 일행의 발걸음은 마침내 가장 위험한 장소에서 멈추어 섰다. 계획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존재가 갇힌 공간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엘레나가 말했던 ‘지휘자’가 눈앞의 저 루다흐임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일단 덩치부터 너무 달라.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달팽이보다도 압도적으로 컸다.
아리가 머리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이런 걸 이식하면 어지간해선 다 죽겠지? 엘레나를 데려와서 나방을 소환했다면 편했으려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소환하기 어려울걸? 불길한 상상에 대해선 내가 좀 아는데, 그 능력도 꽤 일관성이 없어. 본인의 정신상태에 영향을 제법 많이 받거든.”
“말하자면 절망과 광기에 휩싸여야 진짜 엄청난 괴물이 나온다는 이야기지?”
“맞아. 첫 번째 작품인 애벌레야 아무 때나 척척 만드는 것 같긴 하지만, 훨씬 강한 나방은 지금 같은 상황에선 엘레나가 우리 옆에 있어도 만들지 못했을 거야.”
지금은 동료도 많고 연구소도 이미 다 개작살이 난 상태다. 해신의 강림까지도 꽤 시간이 많이 남았고. 쉽게 말해 충분히 절망하고 미치기 쉽지 않다.
물론 이 상황은 우리 또한 예상했다.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한 답도 준비되어있지. 진철 형이 긴장된 표정으로 다가왔다. 옆에는 의사 선생님이 따라왔다.
“차진철 군, 상황이 이상하다 싶으면 제가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뭐, 내가 몸 하나 튼튼한 게 최고 장점이니 괜찮을 겁니다. 만약 실패하면….”
아리가 싱긋 웃었다.
“그땐 해신 섬에 달려가서 엘레나 데려와서 나방 소환하라고 해야지.”
“흐읍! 흐읍! 정신일도 하사불성!”
뭔 소리야? 이거 무슨 기합인가?
의사 선생님이 달팽이를 붙들고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진철 형의 몸 내부에 심었다.
…
심장이 덜컹거린다. 정말 이게 맞을까?
어젯밤, 은솔 누나가 세운 계획은 사실 간단하다. 인간의 입장, 관리국의 입장에서 해신의 강림을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상 ‘피해자’에 해당하는 해신의 입장에서 해신이 강림할 이유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 심하게 말하면 우리가 해신 대신 복수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복수 대상을 우리가 대부분 조져두면 해신의 분노도 상당 부분 풀리지 않을까?
진짜 이게 계획이다!
“으으윽…. 이거 좀 아픈데?”
갑자기 진철 형의 입에서 거품이 새는가 싶더니 입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침묵 속에서 형을 향했다. 서서히, 차진철의 거구가 몸을 일으켰다.
착각인가? 잠깐 사이에 형의 덩치가 더 커진 듯했다.
“리링가노르가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네?”
“비명이 들리는구나.”
“형, 괜찮으세요?”
“이게 옳은 방향이라는 확신이 든다. 온 세상에 가득한 루다흐의 비명을…. 멈춰야겠지. 출발하자.”
방에 들어오기 전, 충분한 마음의 각오를 했을 텐데도 몇몇 사람들이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이제, 우린 본격적으로 서울에 있을 관리국 한국 지부와 싸워야 한다. 새삼스레 전투 자체가 두렵진 않았다.
관리국이 무섭다고 한들 그간 만나왔던 혼돈의 존재들에 비해 특별히 더 무서울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의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지는 까닭은 상대의 강함 때문이 아니다.
상대가 인류를 수호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리라. 우리를 돌아보던 형이 설핏 웃었다.
“오늘 밤, 관리국이 지배하는 세계의 질서가 무너질 것이다!”
긴장을 풀어주는 말에 누나가 피식 웃었다.
“진철아, 그건 좀….”
“자신감을 가지자는 의미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괴전파가 차진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혼란으로 가득한 연구소, 살아있는 피리들이 드디어 통제에 따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 관리국의 꿈, ‘도약한 자’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머리를 감싸 쥐기 시작했다.
저들 또한 오래 버티지 못 하리라. 루다흐는 더 강한 자에게 복종하는 군체 생물이며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루다흐를 품은 자는 차진철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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