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50)
249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27)
– 이은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물경 300에 달하는 사람들, 그 앞에 선 차진철의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로운 음악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대체 어떻게 이런 소리가 입이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걸까? 차진철 본인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꽤 많은 수가 할아버지의 계략으로 인해 해신 섬으로 이동했는데도 불구하고 연구소에 있던 소위 신인류의 수는 적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이 지금, 전부 차진철을 따르는 군대로 변하고 말았다.
차진철의 통제로 인해 ‘도약한 인간’들은 그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무기와 장비를 챙겨 연구소에 있던 차량에 탑승한 채 서울로 이동 중이다. 이런 때는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미묘하게 부럽기도 했다.
우리의 마음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불안하고 복잡했으니까.
새로운 계획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해신의 분노를 풀어주는 것. 이렇게 말하면 쉽지만, 사실 상당히 심각한 문제들이 다수 포진되어있다.
첫 번째 문제는 차진철이 버틸 수 있는가다. 해신 섬에 다녀올 시간이 없어서 엘레나의 봉인 해제를 포기한 시점에서 지휘자 루다흐의 침식을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갖춘 신체의 소유자는 진철이뿐이다. 그러나 루다흐의 침식은 심신 양면으로 이루어진다.
그 결과, 루다흐를 이식받은 시점부터 현재까지 진철이는 끝없이 ‘목소리’가 들린다며 중얼거렸다. 송이가 바로 옆에 붙어서 쿨타임이 돌 때마다 팔찌를 써주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두 번째 문제는 해신이 만족할 수 있을까다. 복수를 ‘대행’하는 우리에겐 해신처럼 인류 종말을 불러올 능력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관리국을 조진다는 것도 본부에 한방 크게 먹여서 ‘프로젝트’를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지 무슨 말단부터 고위층을 몰살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정도의 복수에 해신이 만족해줄까? 해신이 생각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복수가 아닐까?
세 번째 문제는 관리국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 자체다. 고작해야 해안가의 연구소 하나를 터는 것과 서울에 소재한 관리국 한국 지부와 붙으러 가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이길 수 있을까?
가장 염려스러운 존재는 다름 아닌 무인 병기다. 호텔 파티가 소유한 능력의 상당수가 관리국의 무인 병기 앞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 빙의할 수도 없고, 환각을 보일 수도 없으니까.
이런 문제들에 대한 우리 나름의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문제의 답은 단순한데, 진철이가 버텨야 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계획의 특성상 도약한 자들과 함께 관리국에 돌격할 차진철은 어차피 산화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만 버틸 수 있으면 된다. 그때까지 송이가 최대한 도와주고.
두 번째 문제의 답은 ‘해신 스스로 끝을 바라는 듯하다’로 정리된다. 가인이가 첫 번째 시도에서 들은 이야기, 엘레나가 두 번째 시도에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해신은 이 방의 끝을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가 최소한의 복수를 해준다면, 호텔이 인정할 만한 답을 제시한다면 해신도 받아들이지 않을까.
가장 큰 문제는 세 번째다. 이것만큼은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관리국이 수백 수천 대의 드론을 살포해서 우릴 죽이려 들면 답이 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을 만들기 위해 아리와 가인이가 다른 장소로 떠났다. 결국 그 애들의 손에 달렸겠지. 만약 그쪽에서 실패한다면….
“다 같이 도망 다니다가 해신이 강림하면 피리라도 불어야 하나?”
“네?”
“아니야.”
불길한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다른 동료들이 모두 서울을 향해 진격하는 이 시점, 대체 나는 왜 아리와 등산이나 하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
“뭘?”
“은솔이가 세운 계획.”
“그것보다 우리가 왜 등산 중인지가 더 궁금한데?”
“나는 잘 모르겠어. 은솔이가 말한 ‘관리국의 잘못’이라는 게 대체 뭐야? 인류를 생물학적으로 개선해보려는 노력? 그게 틀렸을까?”
“아니, 여긴 대체 어디야?”
“결과적으로 실패일 수는 있지. 내가 봐도 202호의 관리국은 크게 오판했어. 루다흐의 군체 생물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셈이야. 진철이가 강력한 루다흐 개체 한 마리만 통제하니까 신인류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손에 넣었잖아?”
“주변에 길 자체가 없는데? 등산로를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조난한 수준 아니야?”
“하지만 이건 다 회차 플레이로 답을 알고 있는 우리의 시점에 불과해. 관리국으로선 겪어보기 전엔 알기 어려운 문제였지. 이런 실패한 시도들이 쌓여서 결국 사람의 한계를 – 발 조심해!”
“으악! 얘는 또 뭐야?”
“산에는 원래 뱀이 있어. 그리고 내 말 좀 들어봐.”
“너도 제발 내 말 좀 들어봐라!”
잠시 주변에 침묵이 감돌았다. 한숨이 나왔지만, 이번엔 내가 아리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그래그래. 네 말대로 관리국도 생각이 있었겠지. 나도 호텔에서 고생하면서 종종 생각했거든. 이 세상에 이렇게 괴물이 넘쳐흐르는데, 인간은 정말이지 너무나 약한 생물이구나.”
“관리국의 오랜 고민이지. 계파를 떠나서.”
“그걸 극복하기 위한 노력, 의도는 이해해. 그 과정에서 달팽이를 실험 용도로 마구 썼다. 그것도 이해해. 우리부터가 끼니마다 소 돼지를 잡아먹으니까. 소 돼지도 나름대로 똑똑한 동물이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하지만, 나는 근본적인 방향이 이상하다고 봐.”
“근본적인 방향?”
“주술이나 마법, 초자연적인 생물과의 교합. 이런 것보다는 ‘과학’의 길에 집중하는 게 맞지 않을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확실히 그 부분은 격리 계파와 통제 계파의 근본적 차이 중 하나지. 하지만 어디까지가 과학이고 어디까지가 마법이냐는 사실 애매한 구분이지. 천문학의 시작은 점성술이었어.”
이 말은 이해했다.
신과 악마, 마법과 초능력이 살아 숨 쉬는 세계에서 마법과 과학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관점에 따라선 우주를 구성하는 힘 중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과학이라 부르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마법이라 부르는 중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대화, 어제의 회의를 떠올리다 보니 새삼스러운 의문이 생겼다.
“보아하니 아리 너는 지금도 누나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은데.”
“맞아.”
“그러면, 왜 하자고 한 거야? 사실 네가 아니었으면 누나 계획은 그냥 묻혔을 텐데.”
어제저녁, 누나가 ‘관리국을 공격하자’라는 계획을 꺼냈을 때 우리 중 다수는 반대했다. 가치관의 문제를 떠나서 관리국을 이길 자신이 없었으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무인 병기 군단’을 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 묻힐 뻔했던 누나의 계획이 현실화한 것은 의외로 아리 때문이었다. 아리가 갑자기 한국 지부에 한정한다면, 관리국을 무너트릴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잠시 침묵하던 아리는 무언가 복잡한 생각이 깃든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학생이 바라는 답과 출제자가 바라는 답은 다를 수 있지.”
출제자가 바라는 답이라…. 호텔이 바라는 답?
“은솔이가 생각해낸 답은 인간의 틀에서 벗어난 답이지. 그리고 호텔을 만든 존재는 최소한 인간은 아니고.”
“…”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답이지만, 호텔에서 좋아할 만한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우습게도 이 말을 듣는 순간 강력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거 뭔가 대한민국 학원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말 아닌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라!
시험을 푸는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아니라 출제자가 좋아하는 답을 적어야 할 때가 있다. 아리는 바로 그 심리였던 것 같다.
“거기에 약간 더하자면.”
“더 하자면?”
“이제 슬슬 이 방을 끝낼 때도 됐지. 끝낼만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때쯤, 아리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여기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리에게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갑자기 아리가 내 손을 잡아끌어서 본인 옆에 세웠다.
“뭔가 느껴지지 않아?”
“… 답답한데.”
“답답해? 청량하거나 시원한 게 아니라 답답해?”
“무언가 아주 묵직하게 짓누르는 느낌이야.”
산에 오르는 내내 장난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던 아리의 표정이 처음으로 조금, 어두워졌다.
“그래….”
“내가 뭔가 이상한 걸 느꼈어?”
“아니야.”
아리가 무언가 이상한 발음을 중얼거리며 허공을 건드렸다. 다음 순간, 허공에 뜬금없이 불투명한 문이 나타났다!
기묘하다. 문 건너편엔 알 수 없는 자그마한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집 같은 장소가 있었다. 집 뒤편에 어둑한 통로가 보였다.
문에는 그 어떤 손잡이도 없었다. 우리가 있는 방향에선 열 수 없고 건너편에서만 열 수 있는 문으로 보였다.
“이건 무슨 주술? 저 사당은 뭐야? 내부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아리는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계속해서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
…
슬슬 끝난 걸까? 어느새 조용해진 아리가 나를 바라본다.
“예전에 나와 할아버지가 했던 말, 기억해? 호텔에 들어온 이유.”
“현실을 안정화하는 힘을 찾는 게 목적이라고 했었지.”
“그 말에 관해 생각해본 적 있어?”
“그냥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 생각해서 넘겼는데.”
“현실을 안정화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말은, 뒤집어서 보면 우리가 살아온 현실은 안정되어있지 못하다는 의미지.”
듣고 보니 그렇다.
“그 의미를 알려줄게. 문 건너편의 사람 보이지?”
그 말대로 문 건너편의 목제 건축물 근처엔 망부석처럼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비교적 작은 체구, 여성은 아니다. 그 이상은 문이 불투명해서 알아내기 어려웠다.
“저 사람에게 빙의해서 문을 열어. 그러면 끝이야.”
지시대로 문을 향해 다가가던 중, 아리가 한 마디 얹었다.
“터널 절대 건너가지 마.”
“음?”
“문 너머에 집 보이지? 저 집 뒤쪽에 터널은 ‘절대’ 건너가지 마. 네가 건너가면 여러 가지 의미로 모든 게 끝이니까.”
서서히 의식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이미 수십 번은 해본 빙의를 다시 한번 할 뿐일 텐데…. 이번 빙의는 평소와 미묘하게 달랐다. 이상하게도 멀리 있는, 아-주 멀리 있는 몸에 빙의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문 건너편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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