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51)
250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28)
– 한가인
정신을 차리자마자 제일 먼저 주변을 살폈다. 문 건너편의 알 수 없는 장소. 대체 정체가 뭘까?
일단 내가 깃든 몸은 10대 중반 정도의 남자아이로 보였다. 그리 잘 먹지 못했는지 빼빼 말랐지만, 옷은 제법 고급스러운 비단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흐릿하게 보였던 목재 건축물은 자그마한 집으로 보였다.
딱 여기까진 비교적 평범한 풍광이다. 하지만, 나머지는 전부 이상했다. 마치 흑백 영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주변은 온통 잿빛 풍광뿐이었으니까. 분명 아직 해가 떠 있는 시간인데도 이 장소는 기묘하게 어두컴컴했다. 그렇다고 밤인 것 같지도 않았다.
아리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문 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두 걸음.
“… 역시 쉽게 가는 법이 없네.”
호텔에 처음 들어왔던 시절의 나라면 그냥 속았겠지. 조금 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몸은 문이 아니라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아리가 절대 가지 말라고 했던 집의 뒤편, 알 수 없는 불빛이 보이는 통로를 향해 몸이 움직인 것. 고심 끝에 한 발짝을 떼자 이번에도 뒤편의 통로로 몸이 움직였다.
대체 무슨 조화일까?
분명 문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데 왜 터널로 이동 중이지? 감각의 왜곡? 공간 자체가 뒤틀렸을까? 너무 많은 가능성이 떠올라서 무엇이라 단정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감각의 왜곡이나 신체의 통제 과정에서 생긴 문제라면 화신의 힘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의식이 다시금 떠오른다. 육신의 한계를 넘어선 정신이 부유하듯 ‘높은 영역’에 도달했다. 검은 실이 쭉 뻗어서 몸에 닿았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소년의 몸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은 채 올바른 방향, 문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두 공간을 갈라놓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 스르륵!
“음?”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 흐르는 소리. 알 수 없는 액체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소리. 부슬거리는 물방울이 돌바닥을 적시는 소리.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
“수고 했어. 이제 네 몸으로 돌아와도 될 거야.”
극도의 불안감이 엄습하는 이 순간, 아리는 신기할 정도로 태연한 태도를 보였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2호 – 저주의 방 ‘인어공주’
현자의 조언 : 3]
“… 돌아왔어.”
동시에 조금 전까지 내가 깃들어있던 소년의 몸이 풀밭에 풀썩 쓰러졌다. 서서히 꿈틀거리는 소년을 지켜보던 아리는 말 없이 다가섰다.
소년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여긴…. 어딘가요? 지금은 -”
“수고하셨습니다.”
“네?”
“그동안 아주 고생 많으셨어요. 아마도 본인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며 살아왔겠지만. 저는 김아리라고 해요. 다시금 감사합니다.”
“대체 무슨 -”
소년의 목이 꺾이기까지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고통이 깃들었던 눈은 곧 편안하게 감겼다.
“… 누구야?”
아리는 대답 대신 소년의 눈을 감겼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눈가에 장난기가 느껴지곤 했던 아리는 이 순간만큼은 무척 진지했고, 죽은 소년에 대한 태도는 공손하기까지 했다.
“가인아.”
“응?”
“궁금한 것 많지?”
“그야 -”
“지금 물어봐. 지금부터 우리가 죽을 때까지 네 질문 한두 개는 받아줄게.”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
그제야 세상이 어딘가 이상하게 변해감을 느꼈다. 하늘이 잿빛으로 변해간다. 바닥의 풀은 죄다 말라붙고 공기에선 매캐한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살아남기는 무리인 모양이지?”
“너랑 내가 소리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면 살아나갈 수 있어.”
죽었다는 이야기다. 정말 살아날 방법이 없는 모양인지 위기 알림조차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때, 바닥이 꿈틀거렸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미리 이야기해줬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나도 저 안에 뭐가 있을지는 열어 보기 전엔 몰랐거든. 후보가 꽤 여럿이라. 지금의 우리라면 살아서 도망갈 수 있는 녀석들도 많아. 그런데 하필 살아나갈 방법이 없는 녀석이 있었네. 미안.”
“저 문은 뭐야? 괴물을 격리해둔 감옥?”
“그 비슷해.”
— 쉬이이익!
허공에서 천을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비슷하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는 없어? 요즘 드는 생각인데, 내가 어차피 밖에 나가면 관리국에서 일할 것 같거든. 예습하는 셈 치고 후배에게 좀 가르쳐줘.”
아리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시선을 따라가자 하늘에 알 수 없는 검은 균열이 생각났음을 느꼈다. 서서히, 느릿하게 벌어지기 시작한 균열, 그 틈새엔 형상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우리는.”
“…”
“우리는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결말을 고쳐왔지.”
“그게 무슨 -”
“때로는 절망의 시작점을 관찰해 사건을 예방했고, 어떤 때는 파멸을 가속할 사람들을 미리 제거했어. 이것도 저것도 어렵다 싶으면 결말 직전에 방향을 억지로 틀기도 했지.”
“…”
“하지만, 이 세상엔 ‘피할 수 없는 결말’이라는 것도 있더라고. 아무리 많은 돈과 인력을 들이부어도 도무지 바꿀 수 없는 결말. 저 문은 바로 그런 결말을 가둬 둔 장소야. 말하자면, 배드 엔딩만 모아둔 쓰레기통이지.”
모르겠다. 동시에 알 것 같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아리가 해주는 이야기가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런 쓰레기통은 매우 많고 우린 그중 하나만 열었을 뿐이니까. 이 정도면 한국 지부 선에서 막을 수 있어. 다만…. 막기 위해 아주 많은 자원을 투자하겠지. 그 틈에 은솔이나 진철이는 목적을 이룰 테고. 다 잘 될 거야. 그러니까 이만 같이 쉬자.”
아리가 서서히 내게 다가온다. 그녀의 손끝에서 은빛 섬광이 번쩍였다.
이게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이은솔
남자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무릎을 꿇은 채 기도했다. 당연히 도로 한복판에서 무슨 짓이냐며 경적을 울려야 했을 자동차들은 주변에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수십 대에 달하는 군용차에 무장한 군인 수백을 태운 채 이동 중이기 때문이다.
차진철이 무릎 꿇고 기도하기 시작하자 같이 멈춰선 채 불경한 기도를 내뱉은 군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현실감이 사라질 지경이었다.
“언니, 또 팔찌 쓸까요?”
주기적으로 진철이에게 팔찌의 보호를 걸던 송이는 이제 그 행위의 의미가 있는지 고민했다.
“이젠 별 의미 없어 보이네.”
“… 그래도 조금 전까지 말은 통했어요.”
“지금도 말을 걸면 대답은 할걸?”
애초에 완전히 선을 넘어갔던 이수호를 떠올려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다. 훨씬 오랜 시간 루다흐에 침식당했던 이수호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과거의 연인이던 엘레나에 대한 묘한 감정이 남아있었다. 침식당한다고 해서 인간의 자아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하진 않는다는 의미다. 다만, 가치관이 조금씩 이동할 뿐.
지금 진철이는 누구에게, 무슨 기도를 올리고 있을까?
“언니, 주변 사람들이 보이세요?”
송이의 말대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강남역에서 서초역으로 향하는 번화가,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는데도 거리엔 숫자를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누군가는 십자가나 묵주를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누군가는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며 미친 듯이 고함질렀다.
조금씩, 조금씩 무언가가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누군가 세상이라는 캔버스에 탁한 물감을 흘리기라도 한 것처럼, 회색의 빛이 하늘부터 지상을 느릿하게 물들였다.
하늘에서 푸른 빛이 사그라든다. 불경한 오로라가 일렁거리며 모두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바닥에선 이상한 돌들이 자꾸 솟아났다. 단단한 아스팔트를 밀쳐내며 솟아오른 돌 내부엔 알 수 없는 붉은 살점이 있었다.
— 쿠르릉!
기도하던 이들이 갈망하던 구원은 천둥과 함께 찾아왔다. 서쪽 하늘, 회색빛의 반대편으로부터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명의 힘’이 날아왔다.
— 삐이이이이익!
귀를 찌르는 듯한 거친 음색. 피부부터 내장까지 진탕 시킬 듯한 강렬한 파동을 느끼며 휘청거리자 옆에 있던 송이가 날 붙들었다.
머리가 아프다. 아까부터 ‘눈’으로 머나먼 하늘에서 발생 중인 괴현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일까? 바늘로 머리를 헤집는 듯한 두통을 느꼈다.
이상한 싸움이었다.
미사일이 날아다니지도 않았고 총알이 발사되지도 않았다. 애초에 가인이와 아리가 해방한 것으로 여겨지는 저 ‘적’이 대체 어떤 존재인지부터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관리국은 분명 ‘저것’과 싸웠다.
파괴할 수 있는 적은 파괴한다. 이해할 수 없는 적에겐 이해할 수 없는 수단으로 맞선다.
조금, 아주 조금. 세상이 올바른 빛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순간이 되어서야 관리국과 싸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또한, 202호의 상황에 대해 관리국의 책임을 논했던 내 말을 아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이유를 절감했다.
이들은 진실로 세상을 지켜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들이 지켜온 거대한 방벽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숨이 멎을 것 같다. 심장이 격하게 뛴다. 나는….
“언니.”
“어, 어?”
“현재 상황에 집중하세요. 조금 전, 진철 오빠가 고함지르며 달려갔어요. 오빠의 역할이 곧 끝나겠죠.”
“…”
“우리도 해야 할 일을 해야죠. 그리고 -”
무언가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듯하던 송이가 한 마디 얹었다.
“방 내부 일에 너무 감정이입 하지 마세요. 또, 저 사람들이 세상을 지켜온 것과 별개로 해신과 관련된 문제에선 잘못된 판단을 거듭한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렇다. 송이의 말에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금 저들이 보여주는 영웅적인 면모와 202호의 시나리오는 별개의 문제다. 냉정해질 시간이다. 나와 송이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있으니까. 지금쯤, 리무진을 타고 이동 중인 사람들에게 그들의 역할이 남아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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