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52)
251화 – 202호, 저주의 방 – ‘인어공주’ (29)
– 박승엽
— 덜컹!
“으읏, 괜찮으세요?”
“괘, 괜찮아요!”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좁아터진 리무진에서 나와 리링가노르는 벌써 세 번이나 부딪혔다. 그때마다 내가 사과하기도 하고, 앞에서 운전 중인 할아버지가 사과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리링가노르는 밝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참 착한 아이야. 머릿속까지 착한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런데…. 제가 정말 궁금증을 참기 힘들어서 그런데요.”
“…”
“이 기계들은 대체 뭔가요? 이것 때문에 사람이 셋밖에 없는데도 리무진이 이렇게 좁아졌는데.”
“좁아서 죄송해요.”
“아니, 좁은걸 따지는 게 아니라 이 장치들이 뭔지 궁금해요.”
궁금증을 이해했다. 애초에 이 리무진, 섬에 봉인 당한 엘레나 누나를 제외한 8명이 타고도 여유로울 정도로 거대했으니까.
한데 지금은 할아버지와 나, 여기에 리링가노르까지 고작 세 명이 탔는데도 미어터질 지경이다. 의자까지 전부 눕힌 후 빈 곳에 아주 섬세하고 중요한 장치를 채웠기 때문이지.
“정말 뭔지 모르겠어요?”
“네? 제가 알아야 하는 건가요?”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당연히 알아챌 줄 알았거든요. 관리국의 기술력이 대단한가 보네요.”
운송용 장치가 해신의 딸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 딸은 자신의 옆에 뭐가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새삼스럽지만 관리국의 기술력이 기적의 영역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일어서서 백미러를 통해 뒤쪽을 보자 거대한 트레일러가 잘 따라오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저런 차도 운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
10분쯤 후, 마침내 해신 섬으로 향하는 해상도로에 진입했다. 리링가노르는 어느새 주변의 기계 장치들이 뭔지 묻지도 않고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이 해상도로에 처음 진입할 때마다 우릴 덮쳤던 저주를 준비한 존재는 누구일까?
이미 리링가노르가 유력하다는 분석은 나왔다. 이런 짓을 할 능력이 있는 집단은 세레나데와 관리국, 이수호와 리링가노르 정도인데 세레나데와 관리국은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첫 번째 시도 때와 두 번째 시도 때는 해상도로의 저주를 우리가 미리 발동시켜서 소멸시킨 후에야 리링가노르를 해신 섬에 데려왔지만, 지금은 저주가 멀쩡히 작동 중이다.
“저, 저기요!”
“…”
“저기요!”
“왜 그러세요?”
“잠깐 차 좀 세워주실 수 있어요? 제가…. 제가 화장실이 급해서요!”
“풋!”
할아버지가 참기 힘들었는지 결국 웃어버렸다.
“저기요?”
“꼬마야, 다리에 준비해둔 저주가 피아식별은 불가능한 모양이지? 어차피 중간쯤에서 멈출 예정이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
한순간, 리링가노르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조금 전까지 나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던 소녀는 어디론가 사라진 듯했다.
“…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요.”
“이상한 짓을 네가 해둔 건 아니고?”
“전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중인지 모르겠네요. 분명, 해신 섬에 위기가 닥쳐서 상황을 살피러 간다고 해서 따라왔을 뿐인걸요? 그나저나, 이렇게 약한 도로가 저런 무거운 트레일러를 지탱할 수 있을-”
“에잇! 너 이상한 힘 쓰려는 거지? 입 좀 다물어! 그 능력의 원본인 엘레나 누나도 이렇게 마구잡이로 쓰진 못하는데 너는 대체 왜 이래?”
“읍! 읍! 이 손 당장 떼지 못해!”
“으아아아악! 물지 마! 물지 마! 너랑 싸우러 온 게 아니라고! 그 반대야. 네가 모시는 신께 사죄하러 왔어!”
얘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그 잠깐 사이에 리링가노르가 내 손을 이 악물고 물어뜯어서 잠깐 사이에 피가 줄줄 흘렀다. 동시에 내 마음 한편에 남아있던 리링가노르에 대한 무언가 애틋했던 불꽃이 삽시간에 꺼졌다!
이거 사람 맞아? 아, 애초에 사람 아니라 어인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냥 개 아닐까?
“해신께 사죄하러 와? 대체 무슨 -”
백문이 불여일견인 법.
이러쿵저러쿵 100만 번을 떠드는 것보다 한번 눈으로 보게 만드는 게 확실하겠지. 즉시 리무진에 있던 운송 장치를 일부 열었다. 내용물을 본 리링가노르는 아예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해신 섬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은 아주 조용했다.
*
할아버지의 긴 설명을 들은 세레나데는 자신의 감정을 단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하는 건가요?”
솔직히 황당한 이야기긴 하다. 누가 말해준다 해도 믿기 쉽지 않다.
전대 심해의 성녀가 해신의 권속을 관리국에 팔아넘겼고, 관리국은 20년 이상 권속을 생체 실험에 소모해왔다. 이에 따라 분노와 절망에 사로잡힌 해신이 이수호와 리링가노르를 통해 대재앙을 일으키려 한다.
물론, 리링가노르를 설득했던 ‘증거’를 세레나데에게도 보여주면 될 문제겠지.
세레나데는 반신반의하면서도 할아버지를 따라 리무진 쪽으로 왔다. 운송 장치가 세레나데의 눈앞에서 열리는 순간, 세레나데는 말문을 잃었다.
불투명한 수조와 복잡하게 엉킨 여러 전선과 수조 내부에서 부유하는 내 주먹보다 작은 크기의 달팽이들. 넋이 나간 세레나데가 멍하니 손을 뻗자 루다흐들은 마치 구원을 요청하든 그 팔에 올라타서 꿈틀거렸다.
그 사이, 트레일러를 몰고 온 의사 선생님은 세레나데의 눈앞에서 훨씬 더 많은 운송 장치를 열었다. 대략 200여 체의 루다흐를 본 세레나데가 결국 침묵을 깨트렸다.
“더 있나요?”
“도지사님, 이 개체들은 극히 일부일세. 관리국은 수십 년 동안 루다흐를 대량으로 복제하고 배양해왔지. 안타깝게도 우리가 그 모두를 구해올 수는 없었네.”
“그렇다면 나머지 개체들은….”
“우리가 연구소로 안내하겠네. 지금 이 정도 크기의 트레일러가 최소한 20대는 더 필요할걸세. 루다흐 자체야 작지만, 이 운송 장치들이 생각보다 거대해서 말이지.”
“… 잠시만요.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네요. 제게 약간의 시간은 있겠죠?”
“그건 내게 묻기보다는 동생 분에게 물어보시는 게 좋겠군. 리링가노르 양,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해신의 권속을 참극으로부터 구해온 것이 해신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겠는가?”
“…”
충격적인 정보를 연신 받아들이며 정신이 혼란해졌던 세레나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리링가노르를 바라보았다.
세레나데가 생각하기엔 어리고 미숙한 동생이라고만 생각했던 존재.
그런 아이가 알고 보니 자신보다도 한 발짝 더 나아간 해신의 수족으로서 그 분노를 대행하는 존재였다. 세레나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배신감? 슬픔? 아니면 기특함?
두 자매가 어딘가 알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응시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도지사님, 우리는 바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걸 가져가세요. 섬 외곽의 – 참, 당신들 말대로면 위치는 이미 알겠군요. 병원에 가서 이 패를 보여주면 엘레나를 깨울 수 있을 겁니다.”
— 탈칵!
“가족의 일인 듯하니 스스로 해결하게 둡시다.”
의사 선생님은 세레나데에게 받은 나무로 된 조각을 만지작거리며 엘레나를 깨우러 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할아버지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흐으으….”
“할아버지?”
“둘 다 이리 와서 봐라.”
하늘의 색이 이상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탁한 색. 회색의 빛이 마치 하늘을 물들이듯이 서서히 뻗어나갔다.
“어르신. 저게 어제 아리 양이 말한 ‘관리국을 흔드는 수단’입니까?”
“… 그렇겠지.”
“불길하기 짝이 없군요. 혹시나 해서 말인데, 저걸 막지 못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바람에 실패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말은 아니겠지요?”
“글쎄….”
“할아버지?”
“둘 다 내게 그만 묻거라. 승엽이 너도 슬슬 알지 않으냐? 나랑 아리는 경력 차이가 제법 난단 말이지. 아리가 아는 사실이라고 내가 다 아는 게 아니다. 저게 대체 뭔지 모르겠구나.”
윽! 아리 누나의 ‘경력’ 이야기가 나오자 움찔했다.
나도 바보가 아니라고! 대놓고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직도 아리 누나의 경력과 나이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모를 수는 없지.
“저기…. 할아버지.”
“음?”
“아리 누나 혹시 바깥에서 결혼도 했어요? 호, 혹시! 알고 보면 저보다 나이 많은 아들이 있다거나!”
“… 직접 물어보거라. 그리고 넌 좀 네 또래를 찾아라 제발. 가능하면 인간을 찾으면 더 좋고.”
“…”
*
“어르신, 은솔 양과 송이 양이 잘 해낼 것 같습니까?”
“뭐, 불안하냐?”
“솔직히 그렇습니다. 준비한 마지막 수단이라는 게 그냥 관리국에서 독하게 나가면 소용없지 않나 싶어서.”
“어려울 거다. 그렇게 할 수 없도록 판을 깔았으니까.”
“판?”
“관리국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면 외부에서 그 어떤 반대를 해도 이겨낼 수 있는 조직이지. 하지만.”
“하지만?”
“이젠 자기들 스스로 ‘프로젝트’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게다. 그토록 믿어왔던 신인류가 진철이의 손에 휘둘려서 자신들을 공격하는 충격적인 상황을 마주했으니까. 그런 상황에선 은솔이와 송이가 하려는 일이 제법 유효하지.”
“그렇습니까?”
“게다가.”
“게다가?”
“애초에 지금 관리국이 외부의 수작질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노인의 손가락이 향한 방향, 불길한 잿빛으로 썩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상현은 그 말을 이해했다. 정상적인 관리국이라면 모를까, 지금 저 정체불명의 재해를 막고 있는 관리국은 이은솔과 유송이가 펼칠 ‘막타’를 막아내기 힘들겠지.
문득, 상현은 이런 식으로 진행된 끝에 결말에 도달하면 유산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갈 것인가에 생각이 미쳤다. 생존자의 수도 제법 많은 데다가 특정 1인만 활약해서 해결한 것도 아니다. 유산의 소유권을 주장할만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
상현은 피식 웃었다. 이런 문제로 새삼스레 분열할 파티가 아님을 깜빡 한 것이다. 적절히 잘 정해지겠지. 최소한 그 문제로 분쟁을 일으킬 사람들은 아니다. 그랬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저녁 무렵, 봉인에서 풀려난 엘레나까지 모인 세 명의 해신의 딸은 섬의 어인들과 함께 진혼제를 올렸다. 고통 속에서 죽어간 해신의 권속들이 안식을 찾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 또한 이 방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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