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54)
253화 – 선택의 시간 (1)
– 이은솔
중앙에 선 엘레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설명하기 시작했다.
“루다흐부터 말씀드릴게요. 일단 이 개체가 어떤 개체인지부터 확인해야겠죠? 아시다시피 루다흐는 크게 세 종류의 개체가 있습니다. 첫째, 일반 어인들의 몸에 있던 ‘일반 개체’. 둘째, 해신의 딸들에게 깃들어있던 ‘여왕 개체’. 마지막으로 관리국이 각종 실험을 통해 만들어낸 ‘지휘자 개체’로 분류되죠.”
“얘는 지휘자는 아닌 것 같네.”
“네. 그 크기가 아니죠. 애초에 지휘자 개체면 받아들이자마자 진철 씨 빼고 전부 죽을 테니 의미도 없어요. 이 개체는 ‘여왕 개체’입니다.”
두 가지 유산 중 하나, 루다흐의 정체는 여왕 개체였다.
“그렇다면 루다흐를 이식받으면 어떤 능력이 생기는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어요. 첫 번째는 전반적인 신체 능력의 강화죠.”
할아버지가 물었다.
“혹시 202호의 관리국이 만들어냈던 강화 인간들과 비슷한 수준이냐?”
“비슷해요. 수명연장, 질병에 대한 강한 저항, 강한 근력 등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전반적인 강화죠. 다만 폭발적인 정도는 아니에요. 그리고 두 번째로 루다흐 중에서도 얘처럼 여왕 개체를 이식받은 자는 다른 어인에 대한 지배력을 얻죠.”
“그게 의미가 있어? 202호 바깥에 어인이 없을 텐데.”
엘레나의 표정이 어딘가 의미심장해졌다.
“루다흐의 생태적 특징이 벌이나 개미와 닮았다는 이야기 하지 않았었나요?”
“… 설마!”
“여왕 루다흐 개체는 하위 개체를 만들어낼 수 있죠. 물론, 루다흐 나름의 ‘생식 행위’는 필요하지만.”
거기까지 말한 후 엘레나는 꿈틀거리는 여왕 루다흐에게 다가갔다.
“이 개체는 이미 ‘준비’가 다 끝난 상태네요. 얻기만 하면 즉시 하위 개체를 만들 수 있겠네요.”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그 루다흐를 다른 방의 NPC에 이식하면 되겠구나.”
“그렇죠.”
듣고 있던 승엽이가 손을 들었다.
“해신의 딸들은 모두 초능력이 있지 않았어요? 그런 능력은 얻을 수 없나요?”
엘레나가 살짝 웃으며 답했다.
“좋은 지적이야. 네 말대로 해신의 딸이나 심해의 성자는 모두 특별한 초능력을 얻었지.”
202호에서 해신의 딸들과 심해의 성자에겐 각기 다채로운 초능력이 있었다.
시선이 닿는 자를 마비시키던 세레나데, 기이한 문자를 쓰던 이수호. 엘레나의 불길한 상상 역시 시나리오적으로는 같은 취급이었다. 리링가노르는 개체 자체가 해신의 마지막 보험 비슷한 역할이었기 때문에 위 3종류 능력 모두를 얻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엘레나는 곧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안타깝지만 ‘특별한 초능력’ 부분은 루다흐가 주는 힘이 아니야. 여왕 루다흐보다 더 강한 루다흐인 지휘자를 얻은 진철 씨가 딱히 특별한 초능력을 얻지 못했던 점, 루다흐만 보면 나나 세레나데와 별 차이 없던 리링가노르가 모두의 초능력을 얻었던 점이 그 증거지.”
아무래도 초능력은 해신이 내린 힘이었던 것 같다.
202호가 무너진 지금, 우주 어디에도 해신은 없다. 덕분에 저 유산을 얻었다 해서 해신이 사용자의 정신에 개입할 일은 없겠지만, 특별한 초능력을 추가로 얻을 일도 없어졌다.
여기까지 듣자 ‘여왕 루다흐’를 얻을 때의 능력이 정리되었다.
첫째, 수명, 질병 저항, 힘 등 전반적인 신체 능력이 소폭 상향된다. 솔직히 이건 그리 유의미한 장점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수명이나 질병 저항은 호텔을 탈출한 후에나 의미 있을 문제고, 힘은 차진철만큼 강해지면 모를까 ‘소폭’ 강해지는 건 별 티가 안 나는 장소가 호텔이다.
둘째, 하위 루다흐를 만들어내고 통제할 수 있다. 하위 루다흐를 저주의 방 내부의 NPC에 이식한다면 종복처럼 부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거야말로 이 유산의 핵심 능력이리라.
“엘레나, 부작용은 뭐가 있을 것 같으냐?”
“에…. 이식받는 루다흐 자체가 지성과 영성을 지닌 생물이라는 점일까요? 내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길 수 있죠. 이것 말고는 모르겠어요.”
루다흐의 약점은 202호 내부에 있을 때보다 더 줄어든 느낌이다. 202호 내에선 ‘더 강한 루다흐에 의한 통제’라든지 ‘해신의 개입’과 같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둘 다 밖에선 의미 없기 때문이다. 202호 바깥엔 더 강한 루다흐도 없고, 해신도 없다.
루다흐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후, 이번엔 피리에 관한 이야기로 주제가 옮겨갔다.
“피리는 요전에 한 번 말씀드렸지만, 해신이 직접 하사한 물건입니다. ‘안식의 피리’라고 불렀죠. 효력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제 명경지수와 비슷하죠. 정신적인 고통 또는 피해 회복을 위한 도구입니다.”
“중요한 차이가 있긴 하지. 네 명경지수나 가인이의 상태창이 ‘본인에게만’ 유효한 힘이라면 이 피리는 타인에게 써줄 수 있어 보이는구나.”
“그게 제일 큰 장점이죠. 또 이 피리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엘레나의 표정에 ‘신기하다’라는 감정이 실렸다.
“이 물건의 효력은 무려 신에게도 통한다는 거죠.”
생각해보면, 피리는 애초부터 해신이 ‘본인’을 위해 만든 물건이다. 신적인 존재에게도 유효함이 이미 입증되었다. 꽤 긴 설명이 필요했던 여왕 루다흐와 달리 피리의 효력은 단순명쾌했다.
약간의 신체 능력 상승과 NPC 통제라는 권능을 가진 루다흐. 파티원이 입은 정신적 피해를 회복해줄 수 있는 피리. 이 정도로 두 유산의 힘을 정리한 후, 본격적으로 어떤 유산이 유용할지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신기한 눈으로 피리를 살피던 할아버지가 의견을 냈다.
“피리 쪽이 괜찮지 않냐? 체감상 이 호텔에서 겪는 공격의 절반 이상이 정신을 뒤흔드는 힘인데. 물론 엘레나의 명경지수나 가인이의 상태창, 송이의 팔찌 등 저항 수단은 있지만 이중 팔찌 말고는 다 본인을 위한 힘이지. 아리의 피는 아무 때나 쓰긴 힘들고.”
나는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님, 뒤집어서 보면 피리의 효과는 비슷한 효력을 낼 수 있는 수단이 이미 꽤 여럿 갖춰진 셈 아닐까요? 엘레나의 명경지수, 가인이의 상태창, 송이의 팔찌, 여차하면 아리의 피까지 다 비슷한 용도로 쓸 수 있는 셈인데. 반면, 루다흐의 가장 큰 능력은 NPC 통제거든요.”
“그건 다른 수단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그렇죠.”
“하지만 은솔아. 넌 피리의 효력이 무려 ‘신에게도’ 통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간과한 것 아니냐? 보통 인간이야 평생 가도 만날 일이 없는 게 신이지만 우리는 이놈의 호텔에서 신을 무슨 동네 아저씨처럼 매번 만나고 있는데 말이지.”
그 말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할아버지 말마따나 사악한 신이나 악마를 일주일이 멀다 하고 만나고 있는 우리다.
물론 그간의 진행을 돌이켜보면 죄수와 싸우지 않고도 저주의 방은 모두 해결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하지만 진행이 항상 술술 풀리는 건 아니지. 이미 돌아버린 신적인 존재와 부딪힌 경험이 꽤 많지 않은가! 102호에서 만났던 나방, 202호에서 강림했던 격노한 해신이 좋은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피리는 마지막 보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에서 모두가 머리를 맞대며 고민할 때쯤, 말없이 지켜보던 상현 씨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아무래도 제가 말씀드리지 않으면 다들 깨닫지 못하실 것 같군요.”
“뭐?”
“사실, 처음엔 다들 알고 계시면서 언급을 피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군요. 여러분은 아예 ‘그런 쪽’의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듯합니다. 솔직히 좀 감탄했습니다.”
‘그런 쪽?’
“솔직히 두 유산의 설명을 듣자마자 소름이 돋았습니다. 호텔에서 이 유산들을 준비한 의도가 너무 보였거든요.”
“거, 상현아. 너 머리 좋고 학벌 좋은 우주비행사인 거 잘 아니까 고만 잘난 척하고 -”
“그런 의도는 정말 아닙니다.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두 유산이 모두 ‘파티 내부의 주도권 잡기’를 노린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순간적으로 모든 사람이 조용해졌다.
“우선 이 루다흐. 너무 뻔하군요. 여왕 루다흐로 만들어낼 새끼 개체를 왜 NPC에게만 이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헛!”
“당연히 우리에게도 이식할 수 있겠죠.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약간의’ 신체 능력 상승이 생각보다 대단한 힘입니다. 우리 모두의 신체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셈이니까요. 그리고 신체 능력 향상을 위해 모두가 새끼 개체를 이식받고 나면, 여왕 개체를 얻은 분은 우리 사이의 왕이 되실지도 모르겠군요.”
여왕 루다흐가 제공하는 신체 능력 향상의 혜택은 유산 소유자 본인만을 위한 힘이 아니다. 다른 참가자 전원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이다.
송이가 당황하며 말했다.
“조종당할까 봐 두렵다면 다른 사람은 이식받지 않으면 될 문제잖아요? 또, 우리는 결코 그런 식으로 쓰지 않을 텐데….”
“송이 양. 그 짧은 문장에 벌써 모순이 느껴지는군요. 우리끼리는 루다흐를 결코 동료를 조종하는 데 사용하지 않으리라 믿는다면서 왜 ‘두렵다면 다른 사람은 이식받지 않으면 된다’라고 합니까?”
“…”
“가정해봅시다. 여러분은 서로를 믿으시는군요. 저도 믿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믿으니 의심할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 중 누군가 여왕 루다흐를 얻었습니다. 의심할 필요가 없는 상황인데,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신체 능력의 강화를 마다할 이유가 있습니까? 모두가 루다흐를 이식받겠지요. 이제 여왕 루다흐를 얻은 분은 다른 참가자 전원의 심신을 뒤흔들 수 있는 능력을 얻었군요.”
조용한 장내, 상현 씨가 말을 이어갔다.
“루다흐만 이야기했습니다만, 저는 피리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피리의 능력은 대단히 단순하지요? 정신의 회복. 능력 자체가 단 하나에 집중된 유산입니다. 게임 같은 표현이긴 한데, 이렇게 ‘특정 분야에 집중된 능력’을 갖춘 물건들은 ‘그 분야’에 한정해선 다른 물건을 능가하기 마련이죠.”
피리의 효력은 정신 회복 단 하나지만, 그 분야에 한정한다면 ‘신적인 존재’에게도 통할 정도로 막강하다. 슬슬 상현 씨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는 피리가 여러분이 소유한 유산 상당수를 무력화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송이 양의 환각을 깨트릴 수 있을 테고, 가인 씨의 빙의를 쫓아낼 수 있을 겁니다. 엘레나 양의 불길한 상상은 시전 과정에서 본인이 광기에 휩쓸림이 필수적이니 발동 자체가 차단되겠군요.”
모두의 머리가 점차 복잡해진다. 주변을 살피던 상현 씨는 대화를 간단히 마무리했다.
“이 말을 꺼낼지 말지 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가능성 자체를 전혀 생각지 않으신 듯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르고 있다가 얻은 후에 깨닫기보다 미리 알고 고르는 게 나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잘 말했어. 상현 씨 말대로 알 건 알고 골라야지.”
“저는 이번 유산 선택에서 빠지겠습니다.”
할아버지가 약간 당황한 듯 말했다.
“상현아?”
김상현은 모두에게 살짝 웃어 보이면서 물러섰다. 그가 물러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직도 우리 중 다수는 그를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으니까.
다음화 보기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