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55)
254화 – 선택의 시간 (2) Fin
– 이은솔
상현 씨가 제시한 ‘유산의 어두운 활용법’에 대해 고민한 후,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의견을 낸 사람은 할아버님이었다.
“역시 피리가 좋아 보이는구나. 완벽에 가까운 정신 회복이라는 효력도 그렇고, 무엇보다 밖으로 가지고 나간다면 이 물건은 그야말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이다.”
세상의 이면에 숨은 악마와 괴물들과 오랜 기간 싸워온 조직이 관리국이다. 투쟁 속에서 악마들의 광기에 휩쓸려 돌아버린 피해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피리는 이 희생자들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물건이다.
반면, 사람을 어인으로 변이시켜서 조종할 수 있는 루다흐는 여러 가지 의미로 현실에 악영향을 끼칠 소지가 많아 보였다.
송이는 여전히 루다흐 쪽에 미련이 남은 듯했다.
“루다흐의 악용 가능성이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일지 모르겠어요. 가인 오빠나 엘레나 언니는 자체적인 능력으로 통제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까 했던 말이긴 하지만 우리끼리는 이식받지 않는 방법도 있죠.”
“송이야. 차라리 서로를 믿고 이식받은 후 악용하지 않는 방향이라면 모르겠지만, 악용이 두려워서 이식 자체를 피한다? 이건 딱 구더기 두려워서 장 못 담그는 식의 발상이다. 보아하니 여왕 루다흐의 능력은 크게 두 가지 아니냐? 우리의 신체 강화와 NPC 통제지. 이중 첫 번째를 아예 포기할 거라면 그냥 이 유산 자체를 포기하고 피리를 고르는 쪽이 맞다.”
이런 느낌의 대화가 둘 사이에서 오가는 사이 나도 한 가지 중요한 점에 생각이 닿았다.
“호텔 특성상 위험은 모든 사람에게 분산될 필요가 있어. 온갖 이상한 데서 뜬금없는 사고가 터지는 일이 일상이잖아? 의문사가 넘쳐나는 장소지. 뜬금없이 누군가 죽기도 하고 갑자기 악마에게 몸을 빼앗기는 식의 위험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어.”
옆에 있던 엘레나도 동의했다.
“봉인이 좋은 예시죠. 저만 해도 처음 봉인 해제됐을 때는 여러분을 해칠 뻔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루다흐는 꽤 위험해. 여왕 루다흐 소유자가 꼭 나쁜 마음을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외부의 힘에 조종당해서 우릴 해치려 드는 경우가 생길 수 있잖아? 이 경우 우리가 모두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있지.”
엘레나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부작용이 두려워서 다른 사람은 루다흐를 이식받지 않으면 유산의 잠재력을 우리 스스로 깎아 먹는 셈이죠. 저도 피리를 고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결국 모두의 의견이 피리로 좁혀지자 송이도 알겠다며 물러섰다. 그때, 상현 씨가 의외의 의견을 냈다.
“저도 피리 쪽에 한 표 던집니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이유를 추가하고 싶군요.”
아까의 대화 때문에 상현 씨가 입을 열자마자 모두가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
“제 생각에 여러분은 언젠가 미로님을 부활시킬 듯하군요. 아마도 다음 티켓을 얻는다면 말이죠. 아닙니까?”
“…”
잠시 주변이 조용해졌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미로가 꼭 필요하냐 아니냐는 어찌 보면 부차적인 문제다. 티켓이 지금처럼 없다면 모를까, 티켓이 결국 생겼고 미로의 정신적 문제도 극복할 방법이 생겼는데 미로를 부활시키지 않겠다?
이건 미로의 부활을 위해 호텔로 돌아왔다는 아리와 싸우자는 이야기겠지. 아리뿐만이 아니라 할아버지 또한 돌아설 가능성이 너무 크다.
또, 요전에 한빙지옥에서 기도한 이후로는 가인이도 은근히 미로의 부활에 찬성하는 듯했다. 종종 어린 미로의 성품에 그리 큰 문제는 없어 보이며 어릴 때부터 무척 똑똑했다는 이야기를 꺼냈으니까.
“막을 생각 없습니다. 그게 모두의 뜻이라면 저도 기꺼이 따를 생각입니다. 다만…. 그분이 ‘약간’ 불안한 면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군요. 이 피리가 그분의 능력 또한 견제할 수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어째 들으면 들을수록 이놈의 피리는 저주의 방을 진행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끼리의 분쟁에 쓰기 위한 도구처럼 들려서 꺼림칙하다.
하지만, 상현 씨의 말대로 피리의 힘이라면 미로가 사용한다는 ‘힘이 실린 말’ 또한 막아낼 수 있겠지. 듣고 있던 승엽이가 다른 방향의 생각을 떠올렸다.
“미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신이 좀 이상하다는 부분이잖아요? 그걸 피리로 회복할 수 없을까요?”
그건 아닐 것 같다.
“해봐야 알겠지만 피리 하나 믿고 미로를 부활하는 건 반대야. 아무래도 미로의 광기는 ‘거울의 방’이라는 기묘한 장소와 닿아있는 문제 같으니까. 분명, 해답 또한 그 방에 있겠지.”
어떤 유산을 택할지는 정해졌다. 유일하게 루다흐를 바라는 듯했던 송이도 의견을 굽혔으니까.
이제, ‘누가’ 얻을지의 문제가 남았다.
상현 씨가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금방 물러섰다.
“저는 팔찌를 연습하는 데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우리끼리는 유산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다음 유산이 주어지는 게 좋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봉인’이라는 시스템이 이를 위한 좋은 명분이 되고 있기도 하고.
이거 뭔가 공산주의적 사고방식 아니야? 재벌 집 딸이 이런 생각 하니까 웃기긴 하네.
물론, 그 덕분에 순서가 내게 돌아오는 느낌이니까 조용히 있자.
“제 축복과 그리 어울리지 않아 보여요.”
승엽이의 말은 충분히 예상했다.
‘행운’의 특성상 승엽이는 조금 제멋대로 행동하는 편이고 자연스럽게 탈출 담당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피리는 철저히 팀플레이를 위한 유산이라 독자적 행동과 어울리지 않는다.
또, ‘행운’의 가장 큰 약점이라면 사용자인 승엽이 본인이 어린 소년이라 여러모로 나약하다는 점인데, 피리는 그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 개인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물건이 아니니까.
…
나와 할아버지가 미묘한 분위기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전부 한발 물러섰다. 끼어들 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크흠. 아무래도 내 축복이 소통 아니냐? 뒤에서 지원하기 위한 축복이라 피리와 제법 잘 어울리는구나.”
“부귀도 비슷하죠. 뒤에서 여러분이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거나 다양한 도구들을 쓰는 편이니까. 또, 제가 우리 중 나름대로 지낭 역할 아닐까요? 역시 위험의 전면에 나서진 않으니 지원형 유산과 어울리네요.”
“… 너도 알다시피, 소통을 강화하면서 ‘영상 또는 소리’를 대화창에 올릴 수 있게 됐거든. 이게 피리와 어울릴 것 같지 않냐? 예컨대 피리의 소리만 대화창에 올려서 원격으로 모두의 정신을 회복하는 식이지!”
“에이~! 그건 좀 억지다. 피리의 초자연적인 치유 능력이 단순히 소리만 따라 한다고 재현할 수 있겠어요? 그게 됐으면 202호의 관리국이 피리를 복제하려고 ‘살아있는 피리’를 만들 필요가 없었죠. 피리 소리 녹음해서 틀면 그만인데.”
“해보기 전엔 모르는 거지!”
“뻔한 건 충분히 알 수 있죠. 피리는 오히려 제 ‘투명 배지’와 제법 어울리지 않아요? 아무도 모르게 숨어있다가 피리로 모두의 멘탈을 케어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으세요?”
“내가 관리국 요원 아니냐? 관리국에 광증의 피해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니? 내가 저걸 가지고 돌아가면 그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생각해봐라.”
“선배님. 제가 나가서 관리국 들어가면 될 문제 같네요. 어차피 우리가 관리국과 무관하게 살아가긴 글렀잖아요? 참,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이 돈이 좀 많아요. 피리를 연구하는데 그 돈이 제법 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야! 그게 니네 집 돈이지 네 돈이냐?”
“하! 이 장소에서 나가기만 하면 그런 사소한 문제는 -”
“두 분 다 커피 한잔하셔요….”
엘레나가 어디선가 커피 두 잔을 가져와서 나눠줬다.
…
헛! 이 분위기 좀 위험한데?
나랑 할아버님 사이에 불똥이 너무 튀잖아? 게다가 불필요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왔어! 대양 그룹 이야기는 뭘 하다가 나온 거야?
어느새 주변의 동료들도 불안한 눈으로 우릴 보고 있다. 끼어들기 힘든 문제라 느꼈는지 말 한마디 하는 사람도 없었다. 좋지 않은 흐름이다. 그걸 느낀 나와 할아버님은 대화를 멈춘 채 잠시 커피를 마시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크흠. 조금 전에 내가 이상한 소리를 한 것 같구나. 이 나이가 되어서도 물건이 앞에 있으면 마음이 흔들린다는 말이지.”
“아니에요.”
조금 분위기가 가라앉았는지 할아버님은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이 호텔에서 나는 다른 물건에는 별 욕심이 없다. 애초에 내 목적은 단순하거든.”
할아버님의 목적이라…. 할아버님은 사사로운 이유로 호텔에 들어온 게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현실을 안정화하기 위한 수단. 기억나지?”
“예~전에 들었던 것 같아요. 할아버님과 아리, 나아가서 관리국이 이 장소에 요원을 집어넣은 이유였죠?”
“그것만 얻으면 다른 건 필요 없다. 분명 그렇게 생각해왔는데도 조금 전 추한 모습을 보였구나.”
“…”
“오히려 다음에 ‘얻어야만 하는 물건’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물건이 아닌 다른 것의 소유권을 다퉈야 할 상황에선 물러섬이 정도에 맞겠지. 따라서 물러서마. 대신 한 가지 약속이나 해 주거라.”
“나중에 원하시는 무언가를 얻을 상황이 오면 도와달라?”
“역시 넌 눈치가 빠르구나.”
“흐름을 보면 당연한 이야기니까요. 또, 할아버님 말대로라면 관리국에서 바라는 무언가는 분명 세상 전체를 위한 물건이겠죠. 굳이 이렇게 약속을 말씀하시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두가 협력할 거라고 생각해요.”
슬슬 나와 할아버님 사이의 대화가 일단락된다고 느꼈는지 엘레나가 대화에 살짝 끼어들었다.
“그러면 피리를 은솔 언니가 얻는 거죠?”
주변이 조용해진다.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말없이 피리가 둥둥 떠 있는 장소로 서서히 다가갔다.
눈앞의 물건이 시야에 다가오자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이리 두근거려? 따지고 보면 내가 처음도 아닌데! 이미 호텔 동료 여러 명이 거쳐온 과정 아닌가!
이걸 붙잡으면 이제 내게도 –
— 턱!
“으아앗! 사, 상현 씨?”
“죄송합니다. 순간 놓친 게 생각나서요.”
“놓쳐요?”
“생각해보니, 은솔 양이 그 피리를 잡으면 유산 소유권이 정해지면서 이 공간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그… 렇겠죠?”
“그런데, 우리 한 가지 잊은 것 아닙니까?”
“잊어요?”
“은솔 양, 방이 소멸할 때 메시지 보셨죠? 은솔 양이 떠올린 해결 시나리오가 호텔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아리도 호텔 취향에 맞는 답일 거라고 예상하긴 했죠.”
“덕분에 메시지에 따르면 ‘추가 보상’이 있다고 하더군요.”
상현 씨가 내 어깨를 잡은 이유를 깨달았다.
202호에서 만들어낸 해피엔딩의 대가로 호텔이 약속한 ‘추가적인 보상’. 상현 씨는 그 보상이 지금 이 공간에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 삑!
/추가적인 보상은 선택의 시간이 끝나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아니네.”
“아니군요. 호텔이 하도 뭘 숨기는 경우가 많아서 혹시나 했습니다.”
다시 한 걸음을 나아가서 주저 없이 피리를 잡아챘다. 이번엔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자열, ‘피리의 사용 방법’이 머릿속에 쏟아짐을 느낀다. 이와 함께 내 오른손에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잡힘을 느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8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으윽!”
휘청거리는 다리를 붙들며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해결 한 건가? 설마 또 한 번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아니다!
뒤돌아서 동료들의 표정을 보자 즉시 깨달았다. 저주의 방을 한두 번 나와본 게 아니라 이젠 사람들의 표정만 봐도 팍 느낌이 온다. 은솔 누나의 손에 낡고 길쭉한 막대가 들려있는 광경을 보자 무슨 유산을 누가 얻었는지도 즉시 알았다.
“누나! 축하해요!”
모두가 생글생글 웃으며 누나에게 다가가던 그 순간, 누나는 당황스러운 눈으로 자기 손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나?”
“… 이거.”
“네?”
“이게 추가적인 보상이었어.”
당황했기 때문인지 누나의 손에서 팔랑거리는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서 떨어지는 종이를 잡았을 때, 내 손에는 ‘반으로 쪼개진 티켓’이 있었다.
“… 반토막 티켓? 설마 두 개 모으면 온전한 티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