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58)
257화 – 파티 타임 – 축복의 성소, 탐색 (3)
– 박승엽
내게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주려는 듯, 후원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수정을 어루만졌다.
“이해했어? 필연성에 관한 이야기?”
“네.”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을 다시 던져볼게. 행운의 본질이 무엇일까? 양자역학이니 불확정성 원리니 하는 말은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내가 해준 말에 집중해봐.”
후원자가 했던 이야기들을 되새겼다. 초월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에 진정한 의미의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제 복권에 당첨된 남자는 자신이 복권을 샀을 때 운이 좋았다고 믿으리라. 그러나 전지(全知)한 자가 보기에 그 남자가 복권에 당첨되는 운명은 천지가 창조되는 그 순간 결정된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운’의 본질은 결국 ‘모름’이다. 모든 것이 결정된 세상에서 무엇이 결정되었는지 알지 못하기에 다음 일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단어가 ‘운’이다.
“모름? 무지?”
“바로 그거야! 결정론적 세상에서 운이란 곧 무지야.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지식의 공백을 우리는 운이라고 말한다. 이 무지에서 비롯된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너에게 유리하면 행운이고, 불리하면 불운인 셈이야.”
조금씩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 딱!
소년이 손가락을 튕겼다. 사방의 풍광은 순식간에 원시의 지구로 변모했다.
“일찍이 세상에 어둠이 있었다. 태고의 땅, 지성이라는 불길을 처음으로 태우기 시작한 영장류가 보기에 삼라만상은 불가해였다. 아무것도 알 수 없기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을 본다. 이 어둠은 태양광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식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어째서 태양이 뜨고 지는지 모른다. 왜 밤에는 달이 뜰까? 저 거대한 생물은 왜 저렇게 강하지? 왜 이 식물을 먹으면 죽을까? 이 돌은 왜 반짝이며, 이 물은 왜 짠가?
아무것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단지 운이 좋기를 빌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길 빌었다. 날씨가 지나치게 뜨겁거나 춥지 않기를 빌었다. 지금 입에 집어넣는 식물에 독이 없기를 빌었다. 바닥에 내리치는 돌 내부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길 빌었다.
“이것이 네가 얻은 축복, ‘행운’의 본질이다. 믿어라. 그저 믿어라.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무지의 장막, 그 아래에서 네가 경험할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그저 네게 유리하길 빌어라. 알려 하지 마라. 행운의 본질이란 곧 무지이니….”
호흡 한 번에 100년, 1000년의 세월이 흐른다. 눈 몇 번 감았다 뜨자 주변엔 어느새 그럴듯한 건물과 보드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걸어 다녔다.
“도약이 있었다. 위대한 현자가 있었다. 일찍이 1643년, 영국에서 어쩌면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할지 모르는 인간이 태어났으니, 만인(萬人)이 그를 아이작 뉴턴이라 불렀다.”
거대한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 그 앞을 걸어가는 남자가 있었다.
“빛이 뻗었다. ‘앎’으로 가득한 빛이 온 세상을 향해 뻗었다. 세상에 가득했던 불가해(不可解)의 그림자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는 분명 인류에게 크나큰 축복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무지에서 비롯된 힘은 그 성세를 잃고 말았다.”
소년이 있었다. 아니, 소년이 맞을까?
내 앞에 선 자에게 수없이 많은 그림자를 보았다.
어떤 그림자는 태고의 땅을 거닐던 주술사와 닮아있었다. 어떤 그림자는 폭우 속에서 흘러넘치던 황하의 치수를 간언하던 제사장을 닮아있었다. 어떤 그림자는 중세 시대, 십자가를 피해 거리를 거닐던 연금술사와 닮았기도 했다.
“이제 알았냐? 네가 다루는 힘이 무엇인지? 세상이라는 동굴, 인간이 수만 년간 쌓아 올린 지식의 정화가 그 동굴을 밝히는 빛이라면…. 행운이란 그 빛의 공백. 동굴의 심연에서 발생하는 ‘알 수 없는 일’이 너에게 유리해지도록 유도하는 힘.”
“모, 모르겠어요. 아까부터 혼란스러운 광경을 너무 많이 보고 있어서.”
“태초의 순간으로 돌아가라. 내가 내리는 힘을 받아들인다면, 너는 모든 빛을 잃고 어둠으로 돌아가리라. 무지의 베일 속에서 세상을 걸어라. 물론, 무작정 ‘돌아가 버리면’ 그때의 네가 무슨 짓을 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겠지. 그러니까 돌아가기 전에 너에게 명령을 내려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쪼개지더라도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후원자와 헤어질 때가 왔음을 깨닫고 다급히 외쳤다.
“그래서 대체 무슨 힘인데요! 전혀 모르겠는데 -”
“나는 다 설명해줬어. 써보면 즉시 알게 될 거야. 참고로, 가능하면 동료들이 주변에 없을 때 쓰도록 해. ‘명령’은 최대한 명료하게 내리고.”
“예?”
“강력한 강화가 ‘예측 가능성’을 늘려줄 거라고 했지? 핵심이 ‘명령’이니까 이 부분을 최대한 신경 써!”
“뭐라고?”
“다음에 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야! 야! 설명을 더 하라고!”
정신이 하강한다. 의식을 잃기 직전에 생각했다.
내 후원자는 분명 신적인 존재가 맞긴 한 것 같지만 정신이 좀 이상한 신임이 분명하다고!
*
[박승엽(행운) -> ‘태초의 인간’을 얻었습니다.]*
– 김아리
“폼 한번 거창하게 잡는군.”
“네?”
“애 같은 놈이 꼭 자기 같은 꼬마 상대로 요란하게 구는구나.”
“네?”
“아니다. 네게 한 말은 아니니 하던 말을 이어가도록 하지.”
오랜만에 만난 축복, ‘비밀’의 후원자는 이번에도 깔끔한 사무원 같은 복장이었다. 사방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시계들은 그의 취향일까?
“잘 풀려서 다행이다.”
“202호 말씀이신가요?”
“거기서도 괜찮았지만, 내가 말하는 부분은 더 이전 이야기다. 네가 숨기는 사실이 지혜의 주인에게 들키면서 피곤한 일이 생길까 걱정했거든.”
“…”
“거기서 거짓말을 더 늘렸으면 서로 피곤해졌을 텐데, 적절하게 말해줄 건 말해주는 정공법적 대처가 괜찮았다. 여하튼, 네 가장 큰 위기는 지나간 셈이지.”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나는 솔직히 네가 금방 탈락할 줄 알았다.”
“…”
“너라는 개인은 뛰어난 편이지만, 파티가 분열할 가능성이 커 보였거든. 또, 네 바람으로 인해 내 축복이 다소 왜곡되기도 했고.”
“축복이 왜곡되었어요?”
“느끼지 못했나? 네가 얻은 ‘비밀’의 효력을 되새겨봐라. 저주의 방 내에선 거의 아무 쓸모가 없고 오직 호텔의 비밀을 탐색하는 데에만 최적화된 힘이지. 이제 와선 별 의미도 없는 동료 견제 기능이 붙은 건 덤이고.”
“성능이 애매하다는 생각은 가끔 하긴 했는데….”
“네가 어머니의 부활을 바랐기에 숨겨진 요소를 찾아내는 힘이 된 셈이다. 또한, 동료와의 분쟁을 염려했기에 견제하는 힘을 얻었지. 뭐, 이것도 나름의 장점은 있겠지.”
나름의 장점?
“재미있는 힘을 주마. 네 성향과 꽤 어울리기도 하고, 저주의 방 내부에서도 제법 유용할 능력을 준비했다.”
“고마워요. 그런데….”
“그런데?”
“아마도 다음번엔 203호에 들어가겠죠?”
“…”
“하지만 생각해보셔요. 사실, 호텔에서 방을 들어가는 순서는 마지막 방인 관문의 방만 빼면 상관없잖아요? 204호를 가든 205호를 가든 문제없다는 말이죠.”
“…”
“201호에서 승엽이가 들었다는 정체불명의 목소리나 승엽이의 후원자는 모두 203호의 위험성을 경고해주더군요. 아마도 승엽이에게 제법 위험할 수 있는 방인 모양인데…. 물론 아닐 수도 있어요.”
“알다시피 진행에 관한 질문은 답해줄 수 없다.”
“그러면 그냥 제 혼잣말인 셈 치죠. 아예 203호를 건너뛰자는 말을 해볼 생각이에요. 굳이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방을 갈 필요 있을까요? 204호, 205호, 206호! 207호는 이번에도 관문의 방인 것 같으니 제외한다 쳐도, 방이 3개나 더 있는 -”
“1층.”
“네?”
“1층 이야기나 하자.”
“…”
“1층 구성이 어땠더라? 105호는 휴식을 위한 공간. 106호는 미션의 방이었지?”
“그랬죠.”
“다 저주의 방은 아니었군.”
“그렇네요.”
“104호가 저주의 방 중 마지막이었지?”
“네.”
“좀 어렵지 않았냐? 다른 방에 비해서?”
“어려웠죠. 죄수가 좀 교활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1층의 방 중 104호만 포기했네요.”
“그래. 마지막 문제라 좀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 정도면 해줄 이야기는 끝났다. 이만 내려가거라.”
후원자는 탁자 위의 컵을 탁하고 내리쳤다. 서서히 감겨가는 눈을 느끼며 생각했다.
두 가지 사실을 알았다.
첫째, 2층의 남은 방 중에서 저주의 방이 아닌 방이 있다.
둘째, 마지막 저주의 방은 특별히 어렵다.
*
[김아리(비밀) -> ‘존재감 없는 소녀’를 얻었습니다.]*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9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그래도 형이 바로 깨어나서 다행이네요.”
진철 형은 성소에서 즉시 깨어났다.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기에 상황은 바로 이해했다. 강력한 강화를 위해 기여도를 쓰지 않은 모양이다.
“강력한 강화를 준다는데, 어떤 능력인지 벌써 궁금하다! 허 참, 후원자인지 뭔지 하는 놈이 설명을 애매하게 해서 말이지.”
“어우~! 형이 늦게 깨어났으면, 남은 사람들끼리 기절한 사람을 옮겨야 하잖아요? 승엽이나 아리야 쉽지만 형은….”
“이 자식이! 인마! 나는 널 세 번이나 옮겼어!”
웃고 떠들며 강화를 위해 기절한 승엽이와 아리를 105호로 옮긴 후, 나머지 사람은 다 함께 로비로 모였다. 누나가 제법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알지? 대충 놀고먹으면서 틈틈이 탐색도 해봐. 탐색이 꽤 중요하긴 하지만 휴식도 잊지 말고.”
물론이다. 호텔에서 해야 할 일은 언제나 넘쳐나지만, 그 일만 하다간 언제 쉬겠는가? 인간은 심지어 전쟁터에서조차 쉴 때는 쉬어야 하는 생물이다.
… 그리고 1시간이 흘렀다.
분명히 오전에 동료들과 헤어질 때만 해도 충분히 쉰 후에 탐색에 나설 생각이었는데, 막상 헤어지고 보니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2층으로 올라와서 호텔을 뒤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2층 복도, 사방에 걸린 그림을 뒤적이다 보니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림 뒤에 무언가 숨어있을 것 같으십니까?”
제법 공손한 존대, 하지만 이 말투의 주인은 죽어있던 기간은 빼더라도 나보다 20살 가까이 많은 사람이다.
“호텔이니까 뭔가 있을 것 같아서요. 참, 의사 선생님. 너무 부담스럽게 말하지 않으셔도 -”
“제게는 이게 편합니다. 더군다나 생명의 은인 아니십니까.”
본인이 더 편하다니 더 할 말이 없었다.
“거울의 방. ‘거울’이라는 단어로 미뤄보면 어딘가 투명한 것 뒤편에 있지 않을까 싶긴 하죠?”
“축복의 성소가 정문을 통해 연결되었던 것처럼 비슷한 방식이 아닐까 생각 중이에요.”
“가능성 있습니다. 한번 같이 그림이나 뒤져봅시다.”
곧 옆에서도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걸 제일 잘 찾는 게 아리인데 하필 지금은 기절해있네요.”
“축복 ‘비밀’때문입니까?”
“네. 축복의 성소도 아리가 찾았어요. 그때는 우연인가 보다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축복의 힘이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