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59)
258화 – 파티 타임 – 궁극의 소녀 (4)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09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늦은 시간까지도 탐색의 성과는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로도 나와 의사 선생님, 뒤이어서 합류한 할아버지와 은솔 누나 등은 2층의 모든 그림이나 장식품을 뒤적거렸지만 별다른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애초에 이 호텔, 너무 넓잖아!”
“그러게. 뭔 놈의 호텔이 이렇게 하염없이 넓은지 원….”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호텔이 더럽게 넓다. 그나마 1층은 그럭저럭 걸어 다니면 10분 내외로 모든 장소를 훑어볼 만한 넓이였지만, 2층은 존재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빈방까지 대량으로 생겨나서 1층보다 확연히 넓어졌다.
제일 심각한 건 지하다. 이제 와선 따지기도 우습지만, 호텔 파이오니어의 지하는 실시간으로 공간이 넓어지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방의 숫자 자체를 셀 수가 없는 장소다.
“우리 너무 미리부터 힘 뺀 것 아닐까?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아리가 깨어날 텐데.”
“그래. 은솔이 말대로 오늘은 그냥 쉬자. 내일 아리가 깨어나면 축복으로 띠용! 하면서 찾아주겠지. 참, 가인이 넌 조언 써봤냐?”
“아예 반응이 없네요. 선을 너무 넘는 질문이다 싶으면 아예 반응하지 않던데.”
“선을 너무 넘는 질문? 예를 들어?”
“예전에 몇 번 주워들은 ‘부처’가 어떤 존재냐고 물었더니….”
“인마! 그건 딱 봐도 선 넘었네. 아주 우주의 진리를 물어보면 더 좋았겠는데?”
“거울의 방의 위치를 물어봐도 똑같아요. 아예 답이 없어요.”
듣고 있던 누나가 질문했다.
“좀 돌려서 물어볼 수는 없을까?”
“돌려서요?”
“예를 들어 ‘신비한 장소’.”
“당연히 안될 것 같은데요.”
혹시나 해서 시도해봤지만 이런 뻔한 수작은 통하지 않았다. 그때, 건너편에서 엘레나가 다가왔다.
“가인 씨!”
“네?”
“송이가 아까부터 보이지 않네요. 위치 좀 확인해주시겠어요?”
별다른 걱정은 들지 않았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호텔에 무슨 강도가 침입할 일도 없는데 뭘 걱정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아무 긴장감 없이 상태창의 동료 위치정보를 확인했다.
[동료 위치정보(*)유송이 : 거울의 방]
— 쨍그랑!
마시고 있던 커피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에에? 가인 씨?”
“뭐하냐?”
… 아주 긴 밤이 되겠구나.
*
– 유송이
— 쏴아아아!
“으~ 좋다! 아, 이러면 너무 할머니 같나? 하지만 좋은데 어떡해?”
“삑!”
“… 너랑 있으면 자꾸 혼잣말하게 돼. 내 말 이해 중인 것 맞지?”
“삑!”
“앗! 해바라기 씨 물고 욕조로 들어오지 마!”
얘는 왜 이렇게 상식이 부족해? 페로를 재빨리 욕조에서 끄집어냈다.
…
생각해보니, 앵무새가 상식이 부족한 건 당연해. 애초에 욕조로 데려온 내 실수인가?
하지만 오늘의 페로는 이상할 정도로 내게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호텔에선 내게 붙어 다니는 편이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거의 껌딱지 같아.
억지로 떼어내도 떼어내려는 내 손가락을 붙잡은 채 대롱대롱 매달리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서 욕조까지 데려오고 말았어.
“페로~! 혹시 수컷인 건 아니지? 그러면 깃털을 다 뽑아버릴지도 몰라.”
“삑!”
기어이 해바라기 씨를 욕조로 물고 들어오고 말았다. 그나저나 앵무새는 성별을 어떻게 구분하지? 기억하기로 일부 종은 깃털 색깔로 구분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페로의 경우 아무 의미 없다. 비교할만한 다른 개체가 없기 때문이다. 알을 낳으면 암컷이겠지만 페로는 아직 알을 낳진 않았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등 구애 활동을 하면 수컷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행동도 본 적 없어.
둥지를 지으니까 수컷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내 방엔 페로가 만든 하얀색 털 뭉치가 있긴 한데, 사람의 머리털로 만들어져있어서 무척 부담스러웠지만 페로가 워낙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그냥 내버려 뒀다.
…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이네. 애초에 앵무새 성별 따위가 무슨 상관이람.
“이제 말려야 하니까 나가 있어.”
동물에게 위험한 것이 한두 개는 아니지만, 습기 가득한 욕실에서 전기가 흐르는 물건을 쓰면서 동물까지 옆에 두는 것은 미친 짓이다. 사실, 애초에 사람이 목욕할 때 동물과 같이 들어오는 것부터가 문제 있는 행동이지만.
“대체 왜 이렇게 안 떨어져? 후회 집착 피폐 앵무새야? 내게 그만 집착해!”
말하고 나니까 왠지 쪽팔려졌다. 괜찮아. 어차피 아무도 내 말을 듣지 못할 테니까. 아예 머리를 묶는 끈으로 페로를 돌돌 묶어서 침대 쪽으로 휙 던졌다. 페로의 애처로운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간단히 몸을 말리고 머리 모양을 잡은 후, 상반신 전체를 비추는 큰 거울 앞에 서서 나 자신을 돌아봤다.
… 조금, 아쉽다.
코가 조금 오똑하면 어떨까? 눈이 살짝 커진다면? 눈동자 색이 특별했으면 좋겠다. 이 잡티는 뭐야?
예전엔 이런 생각을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 솔직히 학교에선 고백도 많이 받아봤는걸?
호텔이다. 호텔에 온 후로 이런 생각에 자주 빠져들었다. 어쩔 수 없다. 매일 엘레나를 보고 아리를 보니까.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본다.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뺨에 흐릿하게 있던 잡티가 사라졌다. 코는 조금 더 오똑해졌고, 눈동자에 황금의 불길이 깃들었다. 거기에 몸매도 살짝 터치해서….
“… 103호의 별빛 고래 선생님, 혹시 하늘나라에서 절 아직 보고 계시나요? 팔찌로 ‘환각 성형 놀이’를 한다고 해서 절 너무 바보같이 여기진 말아주세요.”
하지만 이건 솔직히 너무 재밌어.
수 많은 사람이 자기 사진 가지고 포샵질하는 이유가 있다. 어린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옷 갈아입히기 놀이를 하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랄까? 애초에 그 인형이 자기 자신이니까!
뭐? 요새는 영상까지 딥페이크로 수정 가능하다고? 완전 허접인데? 내 팔찌는 실시간으로 내 상상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데?
“페로야. 나 왠지 자살하고 싶어졌어.”
“삐이익!”
“나랑 같이 욕조에 들어가서 숨 참을래?”
“…”
“어? 대답 안 해? 그러면 너만 부리 묶고 욕조에 들어갈래?”
“삐이익….”
“페로야. 호텔에 더 예뻐지는 방법도 있을까?”
“끼리링?”
“많이는 안 바라고 아리만큼만. 아, 이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욕심이다. 좋아. 보석 같은 색깔로 빛나는 눈동자까진 포기할게.”
이런저런 말을 하던 사이에 자연스럽게 몸이 다 말랐다. 마지막으로 거울 쪽을 한번 돌아봤을 때, 재미난 생각이 떠올랐다.
“페로, 내가 재밌는 것 보여줄게!”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마침 화장대 근처에 자그마한 거울이 있었다.
“봐봐. 커다란 거울하고 작은 거울 두 개 보이지?”
두 개의 거울이 서로를 마주 보도록 움직인 후, 그사이에 내가 섰다.
거울이 있다. 거울 속에 거울이 있다. 그 거울 속에 또 거울이 있다. 무한히 불어난 거울 속에는 무한한 숫자의 내가 있었다.
무한히 불어난 나를 본다. 그 속에서 무한히 불어난 불완전성을 보았다.
미묘한 잡티가 보이는 피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범함을 상징하는듯한 눈동자의 빛깔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은 빈약해 보이는 신체의 선이 탐탁지 않았다. 어딘가 내성적인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완전하다. 나의 수많은 불완전함이 무한한 거울 속에서 더욱 불어난 듯 느껴졌다.
… 급격한 불쾌함을 느끼며 거울을 치우려는 순간, 생각했다. 불완전성을 극복할 수 있을까?
유송이라는 인간의 수많은 약점을 넘어설 수 있을까?
그 순간, 무한한 거울의 저편에서 ‘무언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물론이죠! 호텔 파이오니어에서 당신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으니까요!/
의식이 흐릿해짐을 느낀다….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거울로 가득한 기묘한 공간에서 깨어났다.
— 팅!
시선이 닿는 모든 장소에 거울이 있다. 심지어 발이 닿는 바닥이나 천장조차도 거울이었다. 그 모든 거울이 전부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극도로 당황해서 주저앉자 알림이 떴다.
/유송이 참가자,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호텔의 숨겨진 비밀, ‘거울의 방’을 발견하셨습니다!/
“… 거울의 방? 여기가?”
/거울의 방은 소원을 비는 장소. 물론 소원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지요. 소원을 빌기 위해선 ‘티켓’이 필요합니다./
티켓은 없다. 107호를 통과하면서 얻은 티켓은 의사 선생님을 되살리며 소모했고, 201호에서 얻은 티켓은 아직 반토막이니까.
/하지만 가장 먼저 거울의 방을 찾아낸 사람에게 특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기뻐하시라! 대출혈 서비스! 첫 번째로 거울의 방을 발견하신 분은 그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 한 개의 소원을 빌 수 있답니다. 안타깝지만 두 번째 소원부터는 티켓을 쓰셔야 합니다./
이 장소에서 소원을 빌기 위해선 티켓이 필수적이다. 다만, 처음으로 거울의 방을 찾아낸 나는 대가 없이 1회의 소원을 빌 수 있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소원이라고? 무려 소! 원! 이라고?
이건 무슨 별똥별이 떨어질 때 가족들과 비는 소원 따위와 차원이 달라! 이 장소는 호텔이라고? 정말 무엇이든 이루어줄 수 있는 장소다!
— 쿵! 쿵! 쿵!
무슨 소리야? 아하! 내 심장이 뛰는 소리다. ‘소원’이라는 단어를 들은 시점에서 이미 내 마음은 도저히 진정할 수 없는 단계로 들어섰다!
뭘 빌어야 해? 빌고 싶은 게 진짜 너무너무 많은데?
돈? 세상에서 제일 비싼 사과 회사를 살 정도면 될까? 에이~ 돈 따위는 별것 아니야. 불로불사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 미국 대통령은 어떨까? 종신 대통령 각인가? 좀 과했나? 아니다. 대통령은 일하는 시간이 너무 많고 욕도 많이 먹으니까 별로야.
모든 이가 나에게 매혹될 정도의 매력은 어떨까? 아름다움? 혹은 초자연적인 카리스마?
조금 더 대승적으로 생각하자! 세상을 위하는 것도 괜찮을 거야. 아리나 할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알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것 같으니까! 굳이 이 호텔에서 걱정거리를 늘리고 싶지 않아서 다들 모른 체 하고 있을 뿐이야.
욕망이 끓어오른다.
거품처럼 끓어오르는 욕망이 무한대로 발산했다. 인간은 곧 욕망의 짐승이니, 무한한 욕망의 잔을 다 채우기에는 바닷물조차도 부족한 법.
거울을 본다. 사방에서 나를 비추는 거울을 본다. 그 안에서 무한한 ‘나’를 보았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 위에서 헤엄치는 부유한 소녀가 있다.
하얀 건물 중앙에 서서 수많은 사람의 사열을 받는 권력을 쥔 소녀가 있다.
화려한 도시, 그 중앙의 디스플레이에 자기 모습을 새긴 슈퍼스타 소녀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욕망의 궁극을 보았다.
‘완벽한 나’의 환영을 보았다. 모든 이를 무릎 꿇릴 수 있는 나. 모든 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 그렇기에….
나 자신조차도 매혹할 수 있는 ‘궁극의 나’를 보았다.
홀린 것처럼 나아간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멍하니 허공을 뻗은 손이 아지랑이처럼 끓어오르는 ‘나’의 무한한 가능성에 닿으려는 그 순간 –
알림이 떴다.
/소원을 비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