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60)
259화 – 파티 타임 – 거울의 방의 비밀 (5)
– 유송이
/소원을 비시겠습니까? ‘네’를 누르시면 당신의 소원은 이루어집니다./
휘몰아치는 갈망. 그 모든 것을 이루어줄 수 있는 문장이 내 앞에서 반짝였다. 홀린 듯 뻗은 손길이 당연하다는 듯 ‘네’를 누르기 위해 알림을 향해 움직였다.
감각의 한계에서 벗어나라.
누군가 내게 차가운 물을 들이붓는 감각을 느꼈다.
정명한 이성을 품어라.
찌릿한 번개가 머리끝부터 발끝을 일격에 내리쳤다.
그걸 위해 내가 너에게 팔찌를 내렸노라.
103호에서 나온 이래 내 팔목을 떠난 적 없는 나의 유산. ‘다양한 관점’에서 하얀 섬광이 일어났다.
시야에서 거울이 사라진다. 뇌리를 맴돌던 수 없이 많은 또 다른 나의 환영이 서서히 흐릿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던 차가운 유리의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피부로 느껴지던 선선한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두뇌가 받아들이는 모든 종류의 감각 정보를 팔찌가 차단하자 ‘육체’라는 것 자체가 느껴지질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의 세계에 ‘유송이’라는 인간의 자아만 실존했다.
마침내, 그 순간이 되어서야 정명한 이성이 깨어났다. 이성이 내게 경고했다.
이 장소에는 위험이 있다. 숙련된 요원이었던 미로조차 이겨낼 수 없었던 위험!
위화감.
거울의 방에 도착하고 지금까지 겪었던 일에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의 결락.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로 당연한 것의 부재.
거울의 방은 단 한 번도 내게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묻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기묘한 거울들로 날 비추며 각양각색의 욕망을 확인했으면서도 그 다채로운 욕망 중 ‘무엇을 이루길 바라냐?’라고 묻지 않았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원을 이루어준다면서 소원이 무엇인지 왜 물어보지 않았지?
물어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거울의 방은 참가자의 마음속에 웅크린 욕망 ‘전체’를 들어주는 장소니까!
설령, 그 소원들이 상호 모순적이거나 한 없이 어두운 내용을 품고 있다 해도.
확인해야 한다.
지금 내 이성이 경고한 거울의 방에 숨겨진 위험성이 사실인지 알아내야 한다. 서서히, 느릿하게 팔찌로 차단했던 감각을 되돌렸다.
제일 먼저 발바닥에서 차갑고 단단한 유리가 느껴졌다. 다음으론 입과 코를 통해 움직이는 공기의 유동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금 내 주변의 빛나는 거울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거울들은 아까와 다른 광경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어떤 거울엔 피곤한 일에 지쳐서 하염없이 잠만 자는 소녀가 있었다. 어떤 거울엔 인간관계에 지쳐서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사색하는 소녀가 있었다.
차마 떠올리기 부끄러운 광경들이 있었다. 내면에 숨겨진 짐승이 꿈꿔온 음습한 생각들이 불쾌한 영상이 되어 내 눈을 현혹했다.
지나쳤다. 거울들이 비추는 내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던 욕망을 지나쳤다. 지나치고 또 지나친 끝에 비로소 찾아냈다.
한 거울은 내게 ‘인간의 삶’을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에는 보통 학교에 다니지. 성인이 되고 20대 초반엔 보통 대학을 다니면서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이 많다. 그 단계가 지나면 이제 직장을 얻고 사회에 나갈 시간이다.
앞서 과정 중 자연스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인생에 큰 행복이 깃들게 될 거야. 이러다 보면 누군가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겠지?
어쩌면 그 아이는 내 말을 생각보다 잘 듣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랑하는 이와 아이를 기르는 순간은 행복하리라. 또 언젠가는 그 아이조차 내게 독립하고,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다. 거울 속의 나는 이런 과정을 거쳐 행복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그 옆의 거울을 본다.
앞서 말했던 모든 것들을 그저 ‘하찮다’라고 말하는 또 다른 나를 본다. 또 다른 나는 호텔을 서둘러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인간을 능가할 가능성! 불멸의 삶과 초월의 길이 바로 호텔에 있는데 대체 왜 섣불리 나가려 하지?
취업? 직장? 결혼? 이 모든 인간적 욕망을 ‘무가치하다’라고 말하는 내가 있었다.
옆의 거울이 비추는 나는 전혀 다른 무언가를 추구했다. 호텔을 오르고 또 올라서, 2층 너머의 3층, 그 끝에 도착한 내가 있었다.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초자연적인 물건들, 사람의 상상을 벗어난 초현실의 능력들. 그 사이에서 위대한 자로의 승천을 꿈꾸는 내가 있었다. 승천 이후엔 대체 무엇이 있을까? 알 수 없다.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삶이 기다리겠지.
사람은 본디 모순적인 생물이다.
크나큰 성공을 바라면서도 종일 뒹굴뒹굴하는 게으른 삶을 바란다.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길 바라면서도 때로는 모두에게 잊힌 채 사색하는 시간을 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소박한 삶을 바라면서도 ‘초월성에 대한 동경’을 쉬이 버리지 못하는 것 또한 인간이다.
거울에 비추는 나의 무한한 가능성 중 무엇이 ‘진짜’ 나일까?
의미 없는 이야기다. 저 모든 것이 곧 나를 이루는 수많은 파편이기 때문이다.
문득 생각했다.
거울의 방은 참가자가 품은 다채로운 욕망을 이루어주는 장소다. 물론 소원을 이루어주는 힘에도 한계는 있겠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힘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가 아니다.
애초에 모순적인 소원이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모두의 사랑을 받는 소녀와 인간관계에 지친 소녀를 대체 어떻게 동시에 만족시켜? 현실로 나가 소박한 삶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송이와 호텔에서 신이 되고 싶어 하는 송이를 대체 어떻게 동시에 만족시키냐고!
… 알 것 같았다.
사방에 솟아있는 거울 뒤편에서 일렁이는 각양각색의 가능성이 조금씩, 느릿하게 실체를 갖추고 있었으니까.
“됐어. 이런 식으로 이뤄줄 필요 없어.”
내 입에서 나왔음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자 사방의 거울들이 흐릿해졌다. 형체를 갖춰가던 ‘무언가’들은 다시금 어둠으로 돌아갔다.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자 방법은 자연히 깨달았다.
— 쨍그랑!
몸에 두른 수건을 손에 뭉쳐서 거울을 깨트리고 또 깨트렸다. 사방으로 튀는 파편이 수건 틈새로 파고들어 곧 손이 붉게 물들었다. 그때쯤, 자연히 알림이 떴다.
/나가시겠습니까?/
“그래. 그러면 내 소원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안타깝지만, 포기하시겠다면 무료로 소원을 빌 수 있는 기회는 다음으로 거울의 방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그러니 섣불리 판단하지 마시고 -/
아깝다. ‘내 기회’가 사라진다는 경고를 듣자 마음속에서 격렬한 탐욕이 들끓었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았다.
거울의 방이 어떤 식으로 소원을 이루어주는지 알았다. 또한, 미로가 파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깨달았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이 장소는…. 내가 무언가 얻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야.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겐 끔찍한 파멸만 기다리는 장소니까.”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차례 다짐하면서도 발걸음을 떼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1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새벽에 갑자기 손이 피투성이가 된 채 알몸으로 나타난 송이는 모두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더욱 기묘한 일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멍하니 로비의 의자에 앉은 채 이런 말만 중얼거렸다.
“… 내가 지금이라도 다시 들어간다면. 그러면 내가 또 ‘첫 번째’일 텐데.”
당황한 은솔 누나가 무언가 걸칠 것을 가져다주었고 다른 사람들이 송이를 붙잡고 흔들어봤지만 송이의 떠나간 영혼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누가 봐도 전혀 괜찮지 않은 모습으로 ‘전 괜찮으니 들어가서 쉬세요.’ 하는 송이를 보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대체 왜 이러나 싶어 기여도가 깎이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썼던 조언은 기묘한 대답을 들려줬다.
[스스로 이겨내야 할 문제.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된다.]그래서 난 그냥 들어가서 잤다.
다음 날 아침, 아리와 승엽이가 깨어난 후에야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우리와 달리 본인 어머니의 문제가 엮인 아리는 거의 필사적으로 송이에게 매달렸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송이의 설명에 집중하던 아리가 되물었다.
“그러니까, 거울의 방이라는 장소는 인간이 품은 욕망을 무차별적으로 들어주는 장소다?”
“대충 비슷해.”
“하지만 그 욕망에는 모순적인 부분이 많아서 ‘기괴하게’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네. 예컨대, 한 명의 사람이 동시에 이룰 수 없는 소원이라면 아예 사람을 쪼개버리는 식으로?”
“나는 그렇게 느꼈어.”
“네 느낌이 중요해. 넌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거울의 방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일 테니까. 심지어 미로도 한번 들어가고 미쳐서 나왔는데 넌 멀쩡히 -”
“…”
“멀쩡히 나온 것 맞지?”
“아마도…. 게다가 단순히 모순적인 소원만 문제가 아니야.”
“또 문제가 있어?”
“조금…. 부끄러운 소원? 음침한 소원? 이런 것까지 마구 읽어내서 애매하게 들어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
“애매하게?”
“거울의 방이 가진 힘도 한계가 있으니까. 사람이 품은 무한히 많고 다양한 소원을 모두 완벽히 이루어줄 수는 없어. 다양한 소원을 애매하게 이루어주는 느낌이랄까?”
호텔에 쉬운 장소는 없다지만, 듣자 하니 거울의 방이라는 장소 또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느낀 바를 설명했다.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는 느낌이네. 첫째,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소원조차 들어주려고 한다. 둘째, 모순적인 소원조차도 동시에 들어주려고 하다 보니 심하면 사람을 둘로 쪼개서라도 이루어주려고 한다.”
“비슷해요. 그 정도 정리라면 적절할 것 같아요.”
어려운 문제다. 왜 송이가 소원을 포기하고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속에 어떻게 생각이 단 하나만 담길 수 있을까? 당연히 수천수만가지의 소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다채로운 소원 중에선 합리적으로 볼 때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음침한 내용도 있을 것이고, 모순적인 것도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송이가 언급한 예시인 당장 나가고 싶다는 마음과 호텔에 머물며 초현실적인 보물과 힘을 얻고 싶다는 마음 사이의 모순은 나에게도 있으니까.
미로 또한 마찬가지였겠지?
그 결과가 지성을 잃으며 무너진 미로와 아리의 탄생이리라. 물론, 대체 뭘 원했길래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어딘가 허망한 표정으로 아리가 중얼거렸다.
“네가 미로보다 낫네. 미로는 결국 욕망을 이겨내지 못했는데, 넌 멀쩡히 나왔잖아.”
“엣? 그건 아니라고 봐. 오히려 미로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대충은 알고 있으니까, 거울의 방에 분명 무언가 위험한 요소가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지. 그래서 중간에 정신 차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어쨌듯 큰 사고 없이 나와서 다행이다. 다른 사람들도 기뻐하며 송이의 어깨를 붙잡는 사이, ‘조금’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그런데 송이야.”
“네?”
“부끄럽고 음침한 소원은 대체 뭐였어? 대체 얼마나 부끄러운 소원이길래 거울을 바라보기도 힘들었어? 설마 어제 새벽에 나타났을 때 옷을 다 벗고 있던 것과 연관이 -”
“워, 원래는 수건을 걸치고 있었는데 거울을 깨느라 수건을 벗었을 뿐이에요!”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송이가 휘리릭 달려갔다. 옆에서 아리가 짜증을 냈다.
“아! 멍청아! 아직 물어볼 게 많이 남았는데 도망가게 만들면 어떡해!”
“그럼 따라가서 물어보면 되잖아. 뭐가 궁금한데?”
“거울의 방. 어찌 됐든 들어가지 말라고 만든 장소는 아닐 거야. 무료 소원 기회에 심지어 티켓을 써서 추가 소원도 빌 수 있는 장소인데, 단순한 함정이겠어?”
“그럴 리는 없지.”
“소원을 빌 방법이 있어. 송이가 알아낸 위험을 회피할 방법이 있을 거야. 그걸 알아내야 하는데.”
거기까지 말하고 아리는 내 다리를 걷어찬 후 송이를 쫓아갔다.
…
혼자 바닥에 누워서 생각했다. 거울의 방이 품은 두 가지 위험성.
이뤄서는 안 되는 소원이나 모순적인 소원.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지? 사람의 마음속에 이런 것이 없을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