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61)
260화 – 파티 타임 – 거울의 방에 대한 고찰, 다음 방을 위한 회의 (6)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1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복도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휴식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니. 믿을 수 없네.”
“그래서 오늘 놀고 있잖아.”
2층을 뒤지다가 찾아낸 해먹에 누워서 뒹굴뒹굴하며 화려한 호텔의 풍경을 감상하는 일은 제법 재밌었다. 10시간 연속으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느릿느릿 둥실둥실 움직이던 날 보고 있던 아리가 해먹을 –
“뒤집지 마!”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뒤집으려고 했잖아.”
아리가 킥킥거리더니 갑자기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너, 승엽이랑 이야기해봤어?”
“대충. 희한한 강화를 얻은 것 같던데.”
“무슨 강화인지 이해는 했어?”
“전혀.”
정말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애초에 승엽이 본인도 자신이 무슨 힘을 얻었는지 알지 못했다. 후원자가 보여줬다는 신비로운 환상에 관한 이야기는 한참 들었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뭐가 뭔지 모를 때는 직접 한번 써 보는 것이 제일 확실할 텐데, 하필이면 후원자가 ‘동료들이 있을 때는 쓰지 말라’고 했다고 하니 써볼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아무래도 후원자가 일부러 승엽이가 알아듣기 힘들게 알려준 게 아닌가 싶어.”
“이해하면 약해질까 봐?”
“그렇지. 말하면 말할수록 웃기는 힘이네. 공부하면 할수록 멍청해진다, 운동하면 할수록 약해진다. 이런 느낌 아니야?”
확실히 그런 느낌이긴 하다. 훈련할수록, 이해할수록 약해지는 힘. 행운에 대해 알면 알수록 세상에 무슨 이런 능력이 있나 싶다.
“그동안 승엽이가 들었다는 말을 종합해보면, 다음 방에서 그 새로운 힘을 쓰겠지. 그때가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야.”
“그건 그래. 참, 아까 송이랑 이야기하다가 신기한 사실을 깨달았어.”
“거울의 방 이야기?”
“그 장소에 들어가면 사람이 품은 다양한 소원이 거울에 비친다고 하지. 그런데, 송이 말을 듣다 보니까 한 가지 의문이 생겼거든.”
“의문?”
“송이의 경우 수십 개의 거울을 모두 다른 환영으로 채울 정도로 엄청 다채로운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하지. 이게 무슨 의미일까?”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하다.”
“그것도 맞는 말인데, 나는 거울의 방 자체에 관해 말하고 있어. 결론부터 갈게. 거울의 방은 인간의 표층 의식만 긁어내는 게 아니라 아주 깊은 내면까지 탈탈 긁어내는 듯해.”
“결론만 말하지 말고 과정도 말해봐.”
“이런 이야기지. 사람의 마음속엔 물론 헤아릴 수 없는 욕망이 숨겨져 있어. 하지만, 모든 욕망이 동시에 표층 의식에 떠오르진 않아. 애초에 사람의 뇌는 멀티태스킹에 능하지 않다고. 한 번에 하는 생각은 끽해야 두어 개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송이 말대로 그 애의 마음속엔 성공하고 싶은 마음, 쉬고 싶은 마음, 소박한 삶에 대한 동경, 초월의 길에 대한 추구 등 다양한 욕구가 있겠지만, 이 모든 욕구를 동시에 떠올리진 않을 테다.
“듣고 보니 그렇네. 거울의 방은 사람이 현재 떠올리는 생각만 긁어내는 게 아니라 뇌 전체를 탈탈 긁어서 마음 깊은 곳에 감춰진 욕망까지 읽어내는 건가.”
“그런 것 같아. 그래서 거울의 방을 사용하기가 더 어렵지. 우리가 사용하는 수단 상당수가 통하지 않을 테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수단이라….”
“예컨대, 내 암시는 별 의미 없을 거야. 암시는 말 그대로 표층 심리만 일시적으로 조종할 뿐, 내면에 감춰진 수많은 갈망을 전부 밀어버리는 힘이 아니니까. 애초에 그런 힘이면 너무 부작용이 심해.”
“명경지수나 피리는 어때?”
“그건 애초에 별 상관없는 능력이야. 둘 다 마도적인 광기로 인한 피해를 없애주는 힘이지 딱히 욕망 자체를 없애주는 힘이 아니야. 사람의 마음이 욕망덩어리인 건 딱히 정신병이 아니라고.”
거울의 방을 쓰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인간의 욕망 그 자체다. 욕망은 정신병이 아니므로 피리나 명경지수로 해결할 수 없다.
듣다 보니 어렴풋이 감이 왔다.
“훨씬 강력한 정신 제어 수단이 필요하군.”
“그거야.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재설계하는’ 수준의 힘이 필요해. 차라리 영혼을 가진 로봇이라면 거울의 방을 쉽게 쓸 수 있겠지.”
이쯤에서 아리는 조용해졌다. 그러자 내가 공백을 채워야 할 것 같았다.
“시간을 두고 생각하자. 어차피 지금은 티켓이 없어서 미로를 부활할 방법도 없어.”
“꼭 미로 때문만은 아니야.”
“다른 이유?”
“예전에 말한 관리국의 목적. 세상을 위한 힘. 어쩌면 그 힘이 거울의 방에 있을 것 같지 않아? 거울의 방에 소원을 빌어서 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거지.”
가능성 있을 것 같다. 사실, 거울의 방의 특성상 뭘 한다고 해도 다 그럴듯하게 들리긴 해.
“네 생각대로면 티켓을 두 장이나 모아야겠네. 네 어머니 살리는 데 한번, 세상을 구하는 힘을 얻어내는데 한번.”
“무료 소원 기회도 있잖아. 송이가 포기했으니 다음에 방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생기겠지.”
“그건 높은 확률로 미로의 정신을 되돌리는 데 쓰이지 않을까?”
“미로의 정신이라….”
어딘가 멍한 표정을 짓던 아리가 중얼거렸다.
“애초에 미로는 왜 정신이 나갔을까?”
“거울의 방에 소원을 빌면서 대가를 치른 것 아니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송이는 절대 아닐 거라고 했어.”
“어? 하지만 한빙지옥에서 만난 미로는 ‘많은 목적을 이루고자 했지만,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었다’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했더니 송이 생각엔 미로가 죽는 순간까지도 거울의 방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하네.”
그렇게까지 말하자 더 할 말이 없었다.
거울의 방의 함정에 빠져서 정신을 잃은 미로, 반면에 거울의 방에 들어가서 멀쩡한 모습으로 나온 송이. 최소한 거울의 방과 관련한 문제에선 송이의 신뢰성이 더 높다고 해도 그럴듯하다.
“왜 그렇게 생각한대?”
“거울의 방은 별도의 대가를 받는 장소가 아니래. 첫 1회는 무료, 이후로는 티켓. 이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장소고 무슨 인간의 지성 따위를 요구할 이유는 없다고 했어. 그 말은….”
뒷말을 굳이 듣지 않아도 내용은 짐작할 수 있었다.
거울의 방은 인간의 지성 따위를 대가로 요구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첫 1회는 무료, 그다음부터는 티켓을 받는다. 그러므로 지성의 상실은 거울의 방에 소원을 빈 대가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성을 잃은 이유는 대체 뭐지? 본인이 바랐을리는 없을텐데?
점점 더 머리가 복잡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쯤, 잊고 있던 사실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까 너도 뭔가 강화 얻지 않았어? 무슨 능력이야?”
“이따가 보여줄게.”
“보여줘?”
“재밌는 능력이야!”
아리의 표정은 불길할 정도로 밝았다. 대체 뭐 하는 능력이지?
이은솔 : 다과 테이블로 와줘!
내일이 휴식의 끝이다. 이제 슬슬 다음에 어느 방을 들어갈지 의견을 나눌 때가 됐구나.
*
다양한 음료수와 먹을거리가 모여있는 테이블 앞에 모두가 모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누나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난 당연히 203호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회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어. 딱히 203호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을 갈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렇다. 우리가 201호, 202호, 203호 순으로 진행하려던 이유는 별것 없다. 딱히 순서를 어길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 설득력 있게 들렸어.”
“간단히 말해줄게. 첫째, 남아있는 방 중에서 저주의 방이 아닌 방이 있어. 아마 미션의 방 아닐까 싶지만 봐야 알겠지. 둘째, 마지막 저주의 방은 다른 저주의 방보다 어려워. 그리고 이제부터 ‘존재감 없는 소녀’ 발동!”
아리의 설명은 제법 흥미로웠다. 후원자의 말에 따르면, 남은 방 중에선 저주의 방이 아닌 방이 있으며 마지막 저주의 방은 다른 방보다 어렵다고 한다.
“덕분에 방의 순서에 대한 고민이 생겼어. 참고로 이번에도 207호가 관문의 방인 것 같아.”
그 말과 함께 화이트보드에 203, 204, 205, 206이라는 숫자가 쓰였다. 건너편에서 칵테일을 마시던 의사 선생님이 의견을 냈다.
“205호와 206호. 둘 중 하나는 ‘매우 어려운 방’일 가능성이 크겠군요.”
“상현 씨, 205호와 206호 모두 저주의 방이 아닐 수도 있어. 1층에서 105호, 106호는 둘 다 저주의 방이 아니었잖아?”
“승엽아. 중학생은 아직 커피 마시면 안 돼.”
“흐음…. 제 생각에 1층처럼 2층에도 휴식의 방이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엘리베이터로 왔다 갔다 가능한 호텔에서 휴식의 방을 두 개 만들 필요가 있나? 아무 의미 없다.
“엣? 제 컵이 왜 갑자기 비었죠?”
“저도 의사 선생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휴식의 방은 두 개 만들 필요가 없는 장소잖아요? 아마 미션의 방만 있지 않을까요? 물론, 지금 우리는 모르는 제3의 방이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은솔이는 회의 중인데 무슨 술? 이건 내가 버릴게.”
“가인이랑 상현 씨는 미션의 방만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 생각대로라면 마지막 저주의 방은 205호나 206호겠네. 이 두 방은 피해야 – 뭐야? 내 칵테일 어디 갔지?”
방에 순서는 없다지만 가장 어려운 방은 늦게 가는 게 당연히 좋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뒤쪽 방, 특히 205호나 206호는 위험하다.
“205호, 206호는 가능하면 늦춥시다. 그러면 203호와 204호만 고민하면 될 문제네요. 그러고 보면 203호에 관한 경고를 좀 들었죠? 승엽아?”
옆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던 승엽이가 내 말에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예? 아! 그, 201호 중간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제게 말했거든요. 자질이 부족하면 203호에서 무너질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승엽이는 땅콩 까느라 회의에 집중 못하네. 땅콩은 내가 먹을게. 잘 깠네.”
“아, 기억났다! 후원자도 203호는 제게 위기이자 기회이고, 특별한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어?”
“뭐야? 왜 그래?”
“아, 아니에요. 땅콩이 어디 갔지?”
“특별한 강화라면 요번에 얻은 능력 말이지? 정체는 모르겠지만.”
“네.”
듣다 보니 약간 의아한 부분을 발견했다.
“승엽이가 얻은 정보와 아리가 얻은 정보가 미묘하게 다른데? 201호의 정체불명의 누군가와 후원자. 둘 다 승엽이에겐 203호의 위험을 경고했어. 반면, 아리의 후원자는 ‘마지막 저주의 방’을 경고했지.”
“아! 그건 내가 말해줄게. 승엽이랑 내가 들은 경고는 뉘앙스가 좀 -”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 내 말 아예 안 들리나. 좀 귀찮네. 가인이 넌 콜라 좀 그만 마셔. 이게 물인 줄 알아? 에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