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64)
263화 – ???호, 저주의 방 –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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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인
최소한 이 방이 미션의 방은 아니다. 첫 번째 미션이 어쩌고 하는 알림이 뜨지 않은 데다가, 조금 전 호텔이 띄운 알림의 마지막 문장은 현재 방이 저주의 방임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보통은 저주의 방에 들어오면 방 내부의 일에 집중하는 편이지만, 이번만은 들어오기 직전 상황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힘들다? 위험하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 이상하다. 이런 정도의 불합리함은 호텔에 맨 처음 들어왔던 초기에나 느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이상할 정도로 불합리한지 따져봤다.
첫째, 새벽에 나온 알림 그 자체.
평소엔 뭔가 알릴 내용이 있어도 평범하게 아침이나 저녁에 알려왔던 호텔이 소포 알림만 유독 새벽에 다 깨워가며 전달한 이유는 뭐였을까?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내 눈의 회복이 끝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순수하게 우릴 엿 먹이려고 알림이 새벽에 나왔다.
여기까진 그렇다 치자. 정말 이해하기 힘든 건 그다음이다.
둘째, 바보 멍청이가 된 후원자들.
후원자들은 기본적으로 호텔의 진행에 대해 알고 있다. 숨겨진 요소가 무엇인지도 다 알고, 각 저주의 방의 시나리오도 안다. 그게 아니라면 올빼미가 내게 조언해주는 내용들이나 우리가 성소에서 후원자들을 만났을 때 조금씩 얻는 힌트들을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의 일이 황당하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처음부터 정해진 판이었다면, 소포가 함정이었다면 올빼미는 바보 멍청이인가? 대체 왜 새장에 갇혀가면서까지 소포를 찾게끔 유도했지?
행운의 후원자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다음 방의 첫 시도는 축복이 고장 날 텐데 왜 강력한 강화를 지금 줬다는 말인가.
…
조용히 천막 내부를 거닐다 보니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째, 아무래도 지금의 판은 후원자의 의도는 아닌 것 같다. 억지를 써가며 개입했던 올빼미. 자신의 힘을 소모해가며 강력한 강화를 승엽이에게 내렸던 행운의 후원자.
분명 이들이 그린 그림은 우리가 모래시계를 올바르게 잘 쓰고, 승엽이는 새롭게 얻은 강화로 203호에서 잘 버텨내는 흐름이었겠지.
불온한 손길이 개입했다. 어쩌면, 올빼미를 새장에 가둔 누군가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둘째, 모래시계는 함정이 아니다. 함정이라면 페널티를 감수해가며 모래시계를 우리에게 전하려 했던 올빼미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분명 무언가 올바른 사용 방법이 있는 물건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가진 유산들 또한 리스크가 대단히 크다. 마도서는 상태창 보호 없이 계속 보다간 미쳐 죽기 딱 좋고, 별은 다짜고짜 소환하면 자폭기일뿐이며 불길한 상상은 명경지수 없이는 대체 어떻게 쓰나 싶은 능력이지.
모래시계도 비슷하리라. 적합한 사용 방법이 분명 있다. 나가서 확인해야 한다. 바닥 면에 숫자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 털컥!
“신인이시여….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할 말이 있어? 네 이름이 그러니까….”
“늙은 늑대 발톱이라 하옵니다.”
“좋아. 늙은 늑대 발톱. 할 말이 있나?”
이쯤 하자. 바깥 생각은 접어두고 방 내부의 일에 집중할 시간이다. 대체 몇 호인지도 모르겠고 방 이름이나 시나리오도 모르겠지만, 이 방 또한 돌아가는 꼬라지가 상당히 피곤하다.
늙은 발톱은 손짓과 발짓을 섞어가며 현재 부족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한지 눈물을 섞어가며 설명했다. ‘신인’인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님은 알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돌아다니며 건재함을 보이지 않으면 모든 이가 불안해할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니까 이제 천막에서 나와달라는 이야기다. 듣다 보니 슬슬 머리가 아파져서 알겠으니 일단 나가라고 손짓한 후, 간단히 벽면에 걸린 털가죽을 걸친 채 천막 밖을 나섰다.
걸쳐 입은 털가죽은 묵직한 데다가 불쾌한 냄새까지 났다. 하다못해 중세 정도의 문명만 되었어도 이런 물건은 입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천막 바깥의 부족민들 사이를 거닐다 보니 자연스레 느꼈다. 지금 내가 입은 털가죽 정도면 이곳의 사람들이 보기엔 황제가 입은 곤룡포 비슷하다. 최소한 나름대로 깔끔하긴 했으니까!
보아하니 이 무대의 문명 수준은 고작해야 석기시대인 것 같다. 사람들이 대부분 헐벗은 이유는 가난한 이유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럴듯한 옷을 만들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천막 밖을 걸으며 맑은 공기를 쐬다 보니 어딘가에서 거의 반쯤 벗고 있는 여인이 꼬마를 업고 달려왔다.
“제발, 제 아이가 어제부터 잠을 설치고 피부가 뜨겁습니다. 부탁이니 -”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꼬마의 머리나 한번 쓰다듬으면 마음이라도 편해지려나?
“당장 비키지 못하겠느냐!”
무슨 행동을 하기도 전에 내 앞에선 거의 사족보행을 하던 노인이 눈을 부라리며 여인을 몰아냈다. 당황하며 그럴 필요 없다고 하자 노인이 오히려 내게 간곡히 말했다.
“병에 걸린 자에게 가까이 가는 일은 몹시 위험합니다! 신인께서 또 쓰러지시면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이런 석기시대조차도 병에 걸린 자의 곁에 섣불리 다가가선 안 된다는 지식 정도는 있구나. 정작 21세기 현대인인 내가 그 사실을 간과하고 실수할 뻔했다.
바깥을 걷는 내 상태가 멀쩡해 보였는지, 이번엔 조금 젊은 남자, ‘푸른 늑대 발톱’이라는 자가 다가왔다. 보아하니 이 ‘늑대 발톱’이라는 단어는 부족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에게 붙는 명칭 같다. ‘늙은 늑대 발톱’은 아마 전대의 뛰어난 전사였겠지?
“깨어나신 것 축하드립니다.”
“내가 꽤 오래 쓰러져있었나?”
“거의 일주일은 쓰러져 계셨지요.”
잘됐네. 기억 상실 설정으로 가자.
“좋아. 푸른 늑대 발톱, 내가 깨어나고 보니 기억이 좀 흐릿하거든? 몇 가지 질문 좀 하지.”
“무엇이든지 물어보시지요.”
“혹시 나 같은 사람들 없나? 그러니까…. ‘신인’? 신인이 더 있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8명 정도.”
동료들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젊은 전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평원의 부족을 이끄는 존재들은 다들 위대한 혈통을 계승했습니다. 그분들의 인원수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위대한 혈통이라…. 아무래도 다른 동료들도 각자 자신이 관리해야 하는 부족에서 깨어난 모양이다.
이후에도 부족의 상황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했다. 석기시대 수준의 문명이라 워낙 단순한 집단이다 보니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부족’은 2,000명이 넘는 사람이 포함되어있는 제법 거대한 규모의 난민 무리 비슷했다. 나는 이들이 숭배하는 신의 혈통을 이은 추장쯤 되는 모양이다. 이들이 현재 가장 걱정하고 있는 문제는 기후와 괴물이다.
얼마 전부터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기존에 부족이 버텨왔던 터전은 ‘꿈틀거리는 이빨’의 공격으로 황폐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식량 문제가 심각해졌고, 밤마다 덮쳐오는 ‘꿈틀거리는 이빨’은 부족민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물론, 이 ‘꿈틀거리는 이빨’이 대체 무엇인지는 아무도 제대로 설명하질 못했다. 아무래도 신의 혈통을 이었다는 나보고 괴물에 맞서가며 안전한 터전으로 자신들을 인도해달라는 모양인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이건 뭐 지도도 없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고민에 빠진 내게 식사랍시고 죽 한 그릇이 왔다. 불쾌한 누린내와 그사이에 어설프게 섞여서 더 짜증 나게 하는 나무 열매의 기묘한 단맛, 바다 비린내가 느껴지는 찝찔한 풍미까지.
장담하는데 21세기 기준으로 이런 음식은 송이가 기르는 개나 앵무새도 먹지 않았겠지. 하지만 옆에 있는 ‘부족 최고의 전사’가 그 죽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광경을 보자 그냥 먹었다.
*
부족의 상황을 대충 파악하고, 노인들이 기억하는 근처의 지리 등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듣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슬슬 해가 지려 하는 시간대, 천막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뭐지?”
“… 요 며칠간 겪으셨겠지만 -”
“예전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부족민들이 밤만 되면 신인께서 머무르는 천막 주변으로 몰려든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다가 곧 이해했다. ‘꿈틀거리는 이빨’이라는 괴물들에게 쫓겨난 후, 밤마다 괴물이 덮쳐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늦은 시간이 되면 다들 그나마 안전하리라 여겨지는 내 천막 근처로 모여드는 것이다.
“한번 보자.”
“예?”
“꿈틀거리는 이빨. 대체 뭐 하는 놈들인지 한번 보자고.”
반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천막에서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던 사람들은 모두 눈을 형형히 빛내며 따라나섰다.
이런 석기시대 수준의 부족에서 ‘신의 자손’ 취급받는 존재 근처에 있을 만한 사람들이 어떤 이들일까? 대부분 힘센 전사이거나 전사였던 노인들이겠지. 싸우다 죽을지언정 싸움을 두려워할 만한 사람들은 아니리라.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천막 바깥, 사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원숭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초라한 몰골의 사람들이 보인다. 왜소하기 그지없는 체격과 그 몸보다도 더 작게 움츠러든 마음들을 보고 있자 나도 모르게 속이 답답해졌다.
모두의 앞에서 보란 듯이 손을 하늘로 뻗어 ‘마도서’를 불러냈다. 허공에서 나타나는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는 서(書)!
혼탁하고 어두운 세계, 사람에게 남은 운명은 암흑 속에서 으스러지는 것뿐. 이런 장소에서 강대한 힘이란 설령 불길하고 사악할지언정 만인이 의지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마도서를 살짝 펼쳐서 혹시나 했던 부분을 확인했다.
상태창의 정신 보호가 확연히 약해졌다. 아예 100% 사라진 느낌은 아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떴던 호텔의 알림은 ‘축복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을 경고했는데, 이는 ‘축복을 쓰실 수 없습니다.’라고 했던 107호와 다른 표현이다.
돌이켜보면, 진입하기 전 차진철도 평소보단 약해졌을지언정 괴물과 힘겨루기가 성립할 정도의 힘은 있었다. 대화창도 아예 작동하지 않은 건 아니다. 최소한 무언가 ‘신호’정도는 보낼 수 있었지. 정황상 모두의 축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터무니없이 약해지고 고장 났을 뿐이다.
이 정도로 약해진 정신 보호라면 마도서의 사용에도 제약이 생기겠구나. 빠르게 끝내자. 싸움을 오래 끌면 문제가 심해질 것 같다.
— 끄르륵! 아우우!
서쪽 하늘에서 흉성(凶聲)이 들려온다. ‘꿈틀거리는 이빨’이 나타났다. 괴물의 소리를 듣자 새삼스럽게 의문이 생겼다.
대체 이 방의 ‘저주’는 뭘까? 세상을 말아먹는 무언가? 아무리 봐도 이 세상은 이미 망해있는데? 복잡한 기분으로 ‘이미 망한 세계’의 주민들을 훑어보자 그들의 눈에 실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본래라면, 괴물이 토해내는 살의를 느끼자마자 오들오들 떨며 내 천막으로 몰려들었을 사람들의 눈에 설마 하는 기대감이 엿보였다. 어쩌면, 내가 자신들의 문제를 전부 해결해줄지도 모른다는 그 믿음.
분위기에 취해 입이 열렸다.
“오늘 밤, 사냥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