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65)
264화 – ???호, 저주의 방 –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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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인
전사들과 함께 천막을 벗어나 ‘꿈틀거리는 이빨’을 쫓았다. 낮은 키의 잡초와 바스러지는 자갈이 가득하던 황폐한 풍경은 어느새 시야를 가로막는 칠흑 같은 나무로 가득한 숲으로 변화했다.
용맹하게 나섰던 전사들의 움직임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풍요로운 나무 열매와 깨끗한 물, 살진 사냥감으로 가득해야 할 숲이 어째서 이토록 두려운 공간이 되었는가?
그 범인이 다시금 우리를 불러내듯 서쪽에서 고음을 토해냈다.
— 오오오!
“꿈틀거리는 이빨, 하늘을 날 수는 없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땅을 박차고 바람처럼 움직이며 -”
“아닙니다! 나무를 타고 오르는가 싶더니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는걸요?”
“멍청아! 그건 날아오른 게 아니라 그냥 강한 힘으로 나무에서 뛴 거다.”
“이봐, 나는 분명히 퍼덕이는 모습을 보았-”
“미안한데 둘 다 좀 닥쳐라.”
대체 어떤 괴물이기에 하늘을 나는지 땅을 기는지조차도 헷갈린다는 말인가?
— 우지끈!
바로 그 순간, 숲의 한편에서 나무 한 그루가 으스러지더니 거대한 형체가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왔다. 날 따라온 전사들이 겁에 질린 듯 물러서면서도 조잡한 창을 내밀며 고함치기 시작했다.
— 끼익!
이번은 반대쪽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움직였다. 개체 수는 둘인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환경이 좋지 않았다. 구체적인 형상이 눈에 들어오진 않았으나, 이런 늦은 시간에 어두운 숲속에선 찾는 것부터 일이었으니까.
옆에서 ‘늙은 늑대 발톱’이 고함치자 전사들이 날 중심으로 창을 내민 진영을 짰다. 날 지키며 싸우겠다는 의도는 가상했으나, 치켜세운 창이 내 시야를 가려서 마도서를 생각하면 방해였다.
“창대 낮춰!”
“예? 신인이시-”
“내 시야 가리지 말라고!”
“으아아악!”
뒤쪽에서 탁한 괴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대열에서 살짝 벗어나 있던 남자 한 명이 숲에서 뻗어온 살덩이에 붙들렸다. 붙들린 남자는 구하고 말고 할 틈도 없이 삽시간에 산 채로 먹히기 시작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덕분에 괴물의 신체 일부를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길쭉하게 뻗은 촉수만 두고 보면 흡사 거대한 나뭇가지와 닮았으면서도 검고 거친 털이 잔뜩 돋아있었다. 특이한 날카로운 이빨 같은 것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달려 있었다. 왜 이 녀석을 ‘꿈틀거리는 이빨’이라고 부르는지 이해했다.
마도서를 움켜쥔 채 정신을 촉수에 집중하며 괴물의 몸을 강탈했다.
과연, 강대한 힘과 별개로 딱히 격이 높은 존재는 아니었는지 빙의에 저항하지 못했다. 이제 자살이라도 하면 –
…
아무것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았다.
강탈한 몸에 눈도, 귀도, 코도 그 어떤 정상적인 감각기관도 달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저 꿈틀거리는 살갗 속에서 끝없는 굶주림을 느꼈다. 동시에 영혼을 산채로 회 치는 듯한 무궁한 고통이 –
“크으읍! 대체 이게 무슨!”
“무, 무슨 일이십니까? ‘조종 ’하시려고 한 것 아닙니까?”
대화할 틈이 없다. 노인을 밀어내며 다시 숲의 저편을 노려보았다. 조금 전의 일을 ‘위협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였는지 괴물은 어느새 숲 저편으로 사라졌다.
“… 저거, 한 마리가 아니야.”
“예?”
“촉수 하나하나가 별도의 생물인가? 그러면 본체는? 아니, 애초에 저게 본체와 기생체의 관계가 맞나?”
조금 전, 나는 괴물 자체가 아니라 괴물에게 솟아오른 ‘촉수’ 한 가닥에 빙의했다. ‘꿈틀거리는 이빨’은 어처구니없게도 일종의 군집 생물이었던 것! 하지만 잠깐의 빙의를 통해 나는 더 이상한 지식을 얻고 말았다.
“촉수가 본체 또한 잡아먹고 있다? 그냥 자신에게 닿는 모든 것을 먹으려 드는 살덩이인 건가?”
늙은 늑대 발톱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다행히 그는 귀찮은 질문 따위로 날 방해하지 않으며 말없이 전사들을 통제할 정도의 판단력이 있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숲에선 흉흉한 살기와 인간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광포한 기세가 느껴졌다. 뭐가 어찌 됐든 저 괴물 중 하나의 본체를 빼앗아야 한다. 촉수 한 가닥 통제해서 될 일이 아니니까.
“또 살덩이가 날아오면 창으로 찍어서 고정해! 알아들었어?”
이미 천막에서 출발할 때 보였던 용기의 흔적조차 남지 않은 이들의 눈을 보자 시키는 대로 잘할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이 사람들이 제 몫을 해줘야 한다.
마치 거대한 고슴도치처럼 모두가 창을 바깥으로 내민 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무너지는 나무, 코를 찌르는 독한 악취와 흔들리는 세 개의 그림자.
다행히 세 마리의 괴물이 서로 손발을 맞춰 우리를 협공하는 형세는 아니다. 잠시 빙의했던 기억에 따르면, 본체는 모르겠지만 지금 우릴 덮치는 촉수에게 그 수준의 지능은 없다.
— 끼이익!
“크으읏!”
“찍어! 찍어!”
쉽지 않다.
꿈틀거리는 이빨이 뻗는 촉수 하나하나의 힘은 굵고 튼튼한 나무로 만든 창을 이쑤시개처럼 부수며 내부의 우리에게 날아들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창으로 짠 대열은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촉수를 창으로 찍어서 고정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간신히 창으로 촉수를 찍은 사람들도 어린아이처럼 끌려가다가 창을 놓치고 말았다.
“한 사람이 찍으면 다른 사람도 찍어라!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라!”
마침내 무언가 바닥이 꽂히는 소음이 들려왔다. 바로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특히 체격이 컸던 전사 한 명이 이 악물고 촉수 하나와 씨름하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의 다른 전사들도 곧바로 달려가자, 곧 여러 개의 창이 촉수를 바닥에 고정했다.
“비켜 봐.”
“어? 예? 갑자기 -”
달렸다. 촉수가 고정되었으니, 지금은 본체도 쉽게 움직이지 못할 터! 갑작스레 내가 뛰기 시작하자 전사들의 눈이 커졌다.
그 순간, 흔들거리는 나무 사이에서 또 하나의 촉수가 허공을 갈랐다. 기묘하게도 그 궤적을 ‘느꼈다.’
하늘은 이미 해가 그 흔적만 남은 상태라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태인데도, 이상하게 날아오는 촉수의 움직임을 알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그려지는 궤적과 전사들과 힘 씨름 중인 본체의 위치가 손에 잡힐 듯 그려졌다.
가볍게 상체를 한번 숙이자 살덩이가 그리던 단조로운 궤적이 나를 스쳐 갔다. 이번엔 살짝 위로 뛰었다. 저능한 촉수가 무슨 복잡한 각도를 그리며 날아오는 것도 아니고 페인트 모션을 주는 것도 아니기에 그리 요란한 움직임은 필요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옆으로 돌며 피한 후 앞으로 다섯 보. 지금이다. 배꼽이 훅 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내 몸은 한순간에 숲을 가로질렀다.
마침내 마주한 ‘본체’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짐승의 머리, 나뭇가지 같은 촉수가 마구 돋아난 기괴한 몸통. 흡사 동물과 식물을 어설프게 섞은 후, 나뭇가지를 마구 꽂은 듯한 형상.
“그 몸, 내놔라.”
서서히 ‘한가인’이라는 물결이 괴물의 육신을 잠식해간다. 오래 지나지 않아 나는 숲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괴물의 몸을 강탈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한가인’의 인간 몸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아까 확인한 대로 이 괴물은 군체 생물. 촉수를 통제했다고 본체를 통제할 수 없듯이, 본체를 통제했다고 촉수를 통제할 수 없다.
몸에 뻗은 나뭇가지 같은 촉수들이 의식이 사라진 채 숲에 쓰러진 ‘인간 몸’을 먹어 치우려 드는 것을 제지했다. 다음으로 전사들과 힘 씨름 중인 거대한 촉수 한 가닥을 입으로 물어서 뜯어냈다.
견딜 수 없는 흉측한 본성이 끓어오른다. 육신의 통제권을 내게 빼앗겼으면서도 이런 흔적이 남았는가? 당장 주변의 모든 ‘살덩이’를 씹어 삼키고픈 충동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충동. 충동. 충동.
자연적인 생물에게 있을 수 없을 정도의 불가해한 식욕과 흉포함, 폭력성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다행히 이 숲에 그 폭력성을 받아낼 만한 존재는 더 있었다.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감각이 숲의 저편에 도사린 또 다른 형상을 감지했다. 주저 없이 지면을 박차고 나무를 부수며 달려들자 조금 전까지 인간을 노리던 다른 두 마리의 ‘꿈틀거리는 이빨’은 당황한 듯 내게 거리를 벌렸다.
안타깝게도 적의 도주는 실패했다. 내가 너무 빨랐기 때문도 아니고, 상대가 느렸기 때문도 아니다.
전투를 피하고 싶지 않아 하는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꿈틀거리는 이빨의 몸에서 솟아난 촉수들은 본체의 의사를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이윽고 두 마리의 야수가 서로의 살점을 탐했다. 어차피 내 몸이 아니므로 방어 따위는 도외시한 채 아가리를 뻗어 상대의 뱃살을 뜯어냈다. 두 앞발로 상대의 목덜미인지 몸통인지 모를 무언가를 고정한 채 물어뜯던 중, 알고 보니 상대도 내 뒷다리를 먹고 있음을 알았다.
찢고, 삼키고, 뜯고 물었다.
하늘에는 어느새 휘영청 밝은 달이 빛을 내뿜었다. 이윽고 감당할 수 없는 식욕의 충동에 시달리던 두 야수에게 걸맞은 최후가 다가왔다.
*
“으음…. 머리가 좀 아프네.”
“깨어나셨습니까?”
정신을 차리자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이는 전사들이 내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무래도 야수의 혈투가 벌어지는 사이, 무방비였던 내 몸을 잘 지키고 있던 모양이다.
“그래. 두 마리는 내가 처리한 것 같은데, 다른 한 마리는 어떻게 됐지?”
“도망가는 것 같았습니다.”
셋 모두 처치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지만 별수 없다. 어차피 이 끔찍한 세계에 괴물이 이들만 있을 리도 없으니 체력을 회복해야겠지.
“잠깐 괴물 시체 좀 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해.”
정말 이상하다. 촉수에 빙의했을 때 느꼈던 의문은 본체에 빙의한 후 더 심해졌다. 처음엔 촉수를 가진 거대한 괴물인 줄 알았다. 그다음엔 촉수가 별도의 생물임을 깨닫고 일종의 군체 생물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양쪽에 다 빙의해보고 나서야 그 실체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꿈틀거리는 이빨에 비유할 수 있는 유사한 개념은 다름 아닌 ‘동충하초’였다. 이질적인 생물, 촉수가 거대한 야수의 몸에 기생하며 야수에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식욕과 갈증, 폭력성을 끝없이 들이붓고 있었던 것.
대체 저 촉수는 뭐지?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데 내 손모가지를 걸 수 있다!
누군가, 사악하기 그지없는 존재가 빚어낸 피조물임이 분명하다. 누군가 촉수를 만들어 이 원시의 세계에 흩뿌렸다. 그 결과 자연적으로 있을 수 없는 끔찍한 괴물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옆에 있던 전사의 부축을 받아 뻐근한 몸을 일으켜서 숲을 걷기 시작했다. 문득, 전사의 몸이 떨림을 느꼈다.
“뭐야? 왜 이래?”
“다, 당신은!”
“음?”
“정말이지 신이십니다! 인간이 아니십니다. 신인(神人)께서는 정녕 절대 무적의 존재이십니다.”
시선을 한 차례 돌리자 모두 그 즉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어졌다. 어떤 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아예 바닥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 솔직히,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약간은 불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늙은 늑대 이빨이 뒤에서 내 팔을 살짝 잡았다.
“‘꿈틀거리는 이빨’의 시체를 살펴보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가시지요.”
“아. 그랬지.”
“… 축하드립니다. 오늘의 위업은 부족 모두가 대대로 기억하며 노래로 만들 것입니다.”
“노래?”
“그럼요. 내일은 작은 잔치를 열 겁니다. 신인께서는 본디 ‘노래’를 즐기시지 않았습니까? 부족의 역사가 담겨있다며 즐기셨지요.”
‘역사가 담긴 노래’. 이건 ‘떡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