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66)
265화 – ???호, 저주의 방 –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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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인
하늘의 자손에게 무궁한 영광이 함께하던 때가 있었지.
잔혹한 운명이 우리를 험난한 벌판으로 몰아세웠노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언젠가 낙원으로 돌아가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돌아가리!
귀가 울려온다. 꿈틀거리는 이빨을 잡은 후, 늙은 늑대 발톱의 공언대로 부족에선 잔치가 열렸다. 물론, 잔치라고 해봐야 대단한 먹을 것도 화려한 장식 따위도 없다. 그냥 여기저기 모닥불이 여럿 타오르고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 불렀을 뿐.
하지만, 춤과 노래만으로도 나름대로 분위기는 살았다.
하늘의 자손에게 무궁한 영광이 –
“부를 노래가 이것밖에 없어?”
“허허…. 그건 아닙니다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 예상한 노래 가사는 생각보다 별 내용이 없었다. 위대한 선조, 하늘의 자손, 언젠가 도래할 낙원. 솔직히 어느 나라 신화에나 있는 내용 아닌가? 그나마 좀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한 내용은 ‘낙원’의 위치 정도일까?
“낙원이 어디 있다. 이런 건 전혀 모른다고?”
“그렇습니다. 신인께서 이 노래에 어떤 영감을 받으셨는지 모르겠으나…. 그냥 노래일 뿐입니다. 낙원이 실제로 어딘가 있다는 둥 하는 이야기는 제가 어렸을 적 노인이었던 사람들조차 믿지 않았습니다.”
늙은 발톱은 노래의 내용에서 나오는 낙원 어쩌고는 그저 고단한 삶에 지친 부족민들이 꿈꾼 환상이라 여기는 듯했다.
“믿을만한 정보 말고 그냥 알고 있는 것 아무거나 이야기해봐. 헛소리라도 좋아. 그리고 그 ‘신인’이라는 단어는 좀 어색하니 바꾸라고 하지 않았어?”
“신 아니, 도련님 죄송합니다. 입에 붙은 단어인지라.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헛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도련님의 귀한 시간을 낭비할 뿐입니다.”
“꿈을 꿨어.”
“네?”
“며칠간 기절한 사이에 아주…. 긴 꿈을 꿨다. 선조께서 나를 머나먼 장소로 인도하심을 느꼈다. 붉은 혜성이 하늘을 가르며 어둠을 집어삼켰다….”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을 주워섬겼다. 평범한 대학생이 이런 소리를 하면 약 빨았냐는 소리나 듣겠지만, 기적을 부리는 신의 자손이라면 예지몽을 꿨다고 해도 그럴듯하지 않나?
“그런!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 미천한 지식으로 도련님을 -”
“아니, 됐으니까 좀 아는 사람을 데려오든지 해봐.”
그제야 늙은 발톱은 부족에서 가장 나이 든 노파를 데려오겠다며 움직였다. 잠시 후, 피부가 자글자글한 것이 최소한 70은 넘어 보이는 늙은 여성이 나타났다. 물론, 실제 나이는 70보단 어릴지도 모른다. 현대인보다 빠르게 노화할만한 환경이니까.
“신인이시여, 저 푸른 -”
“됐다. 이야기는 들었지? 당신은 낙원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알 것 같은데. 헛된 망상이나 뜬구름같은 이야기라도 좋아.”
말하다 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늙은 늑대 발톱도 그렇고 이 노인도 그렇고 나보다 나이가 2배 3배는 많은 사람인데, 벌써 하대가 자연스럽다. 영원히 이 부족사회의 추장으로 살 것이 아니라면 이런 싸가지 없는 말버릇에 익숙해지는건 좋지 않은데.
“으음…. 쓸모없는 이야기일지 모르나, 밖에서 부르는 저 노래의 내용이 더 떠오르는군요.”
“노래의 내용?”
“제가 어릴 때는 가사가 더 길었습니다. ‘진홍 산맥 너머 낙원으로 돌아가리’였지요.”
진홍 산맥이라.
“진홍 산맥이 대체 뭐지? 근처에 있나?”
노파가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이 휘둥그레지자, 옆에 있던 늙은 늑대 발톱이 재빨리 나섰다.
“도련님, 농담을 잘하시는군요. 푸른 물빛 눈! 이만 나가보게!”
“아, 알겠습니다. 영광으로 알고 -”
— 탁!
노파가 나가자마자 늙은 늑대 발톱에게 물었다.
“방금 내가 뭔가 실수한 모양이지?”
“아닙니다. 도련님께선 기억이 흐릿하시니 잊으실 수 있지요. 다만, 그런 이야기가 아무에게나 퍼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고마워. 그래서 진홍 산맥은 어디 있지?”
“직접 보여드리는 게 더 빠르겠군요.”
천막 밖으로 나오자 춤추며 노래하던 사람들이 날 보고 고개를 조아리며 손뼉 쳤다. 그 모습을 보니 나름대로 보람이 느껴져서 손을 흔들어줬다.
“저쪽입니다.”
그제야 조금 전에 노파가 당황한 이유를 깨달았다. 천막 밖으로 나가서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산맥인데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지.
“진홍색이 아닌데? 그냥 푸른색이잖아?”
“지금보다 더 추워지면 산맥 전체가 붉게 물듭니다.”
“얼마나 큰 산맥이야?”
“모릅니다. 부족은 오래전, 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어린 소년이던 시절에도 식량과 물을 찾아 평원을 떠돌았습니다만….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저 산맥은 항상 보였지요.”
원시 부족이 100년 이상의 시간을 떠돌아다녀도 언제나 보일 정도의 산맥이라면, 대륙 전체를 가로지를 정도의 규모가 아닌가 싶었다.
“저 산맥을 넘어가면 낙원이 있다?”
“도련님….”
“왜 그래?”
“진홍 산맥은 넘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너무 높고 험한가?”
“지리적으로도 높고 험합니다만, 더 큰 문제는 괴물이지요. 꿈틀거리는 이빨이 조금 사나운 토끼로 느껴질 정도의 터무니없는 괴물로 가득한 장소입니다.”
“…”
노래 가사의 내용이 사실이라 치자. 성경에서 인류의 먼 선조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듯이, 노래 가사에 따르면 이 무대의 인류는 산맥 너머에 있는 ‘낙원’에서 추방당해 험난한 벌판으로 쫓겨났다.
낙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꿈틀거리는 이빨이 토끼로 여겨질 정도로 강맹한 괴물이 넘쳐나는 장소라면….
호텔파티가 전부 모여도 쉽지 않은 장소인 듯하다. 나 혼자서 이 부족민을 데리고 갈만한 장소가 아니다. 사실, 그 정도로 위험한 장소라면 아무리 ‘신인’인 내가 가자고 해도 갈 리가 없다.
점점 머리가 아파졌다. 약해진 상태창에 의존하며 마도서를 사용한 후유증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답답한 상황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천막에 돌아와서 그나마 푹신한 침상에 앉아있다가 보니, 절로 동료들이 떠올랐다. 다들 잘 있을까? 이런 환경에서 잘 있는 것까진 사치지.
살아있긴 할까?
맛이 간 상태창으로는 동료들이 생존했는지 죽었는지조차도 알 길이 없었다. 축복은 맛이 가고 유산이나 도구만 멀쩡한 현재의 환경을 고려하며 동료들의 상황을 고민해봤다.
아리나 송이는 별문제 없겠지.
아리는 애초에 저주의 방 내부에선 유산만 가지고 싸우는 유형이다. 꿈틀거리는 이빨과 같은 괴물도 어떻게든 처리했을 것 같다. 괴물 상대는 나보다 훨씬 오랜 세월 해왔을 테니까.
송이의 경우 페로와 함께 있을 가능성이 크다. 친화가 약해져서 페로와 소통이 어려워지긴 했겠지만, 팔찌와 페로의 힘을 잘 사용하면 어지간한 괴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묵성 할아버지나 의사 선생님은 유산이 없으니 위의 둘보단 쉽지 않겠지. 하지만, 이들에겐 탁월한 신체 능력과 경험이라는 무기가 있다.
무대의 배경은 원시시대, ‘신인’이라는 내게 가져다주는 식량 꼬라지만 봐도 식량난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부족 최고의 전사라 해봐야 키는 170을 간신히 넘을 정도고 체격도 왜소하다.
이런 이들 사이에 ‘아브라스 전사의 팔’을 가진 할아버지는 팔 하나만 가지고도 전사 대여섯은 능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특수부대 출신인 의사 선생님도 다르지 않다. 여기에 훌륭한 판단력과 오랜 전투 경험을 살리면 괴물도 어떻게든 처리했을 것 같다.
그다음부터가 문제다. 진철 형과 은솔 누나는 버틸만해 보이면서도 불안 요소가 있었다.
진철 형은 축복과 몸만 멀쩡하다면 우리 중 가장 안전할 사람이다. 부족민 따위는 몸 하나로도 이끌 수 있을 테고, 내가 개고생하며 상대한 ‘꿈틀거리는 이빨’ 정도의 괴물은 그냥 주먹으로 때려죽일 사람이다.
문제는 형의 몸 상태다. 방에 들어오기 전, 축복이 맛이 간 채로 유산을 쓰지 않았던가? 몸 상태가 어떨지 걱정스럽다.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은솔 누나도 걱정스러웠다. 유산을 비롯한 다양한 도구의 소지자이며 무엇보다 ‘특급 셰프의 카리스마’가 있기에 부족민을 통제하는 건 쉽게 할 것 같지만, 괴물이 문제다. ‘꿈틀거리는 이빨’과 같은 괴물과 싸울 수 있을까?
승엽이는…. 아직 죽지 않았기를 빌자. 이쪽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민들이 믿고 따를지부터가 의문이니까.
엘레나는 좀 다른 의미로 걱정스럽다. 명경지수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불길한 상상을 극한까지 썼는데 제정신이긴 할까? 아예 마왕 비슷한 존재가 된 건 아니겠지? 설마 부족민을 본인 손으로 다 죽여버린 것 아니야?
이런 석기시대 수준의 원시인은 무슨 수를 써도 불길한 상상을 휘두르는 엘레나를 상대할 수 없다! 나방 같은 존재를 또 만들어내면 원시인 10만 명이 있어도 몰살이다.
“… 그냥 탈출이나 하자. 해결은 다음 기회에 노리든지 하고. 그보다 봉인은 누가 당했는지 모르겠네. 일단 나는 아니고, 차라리 엘레나가 봉인 당했다면 좋을 텐데.”
— 툭!
“누구지? 늙은 늑대 발톱?”
“저어…. 들어가도 될까요?”
늙은 발톱의 굵직한 목소리와 전혀 다른 발랄한 톤의 목소리다.
다음 순간, 이번 방에 들어온 이래 가장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거의 반쯤 벗은 소녀가 배시시 웃으며 내 천막에 들어온 것이다.
*
– 이은솔
“전부 태워. 고기에 욕심내는 사람은 무조건 사형이라고 알려.”
“알겠습니다!”
힘든 시간이었네.
난데없이 석기시대 한복판에서 깨어났더니, 주변엔 역시 나약한 여자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투로 내려다보는 원시인들 천지였다. 난폭한 곰인지 난폭한 개새끼인지 하는 덩치 큰 원시인과 웃기지도 않은 신경전을 벌이던 기억을 떠올리니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뭐? 자신과 결혼해서 ‘신인의 후계’를 낳는 게 어떠냐고? 진짜 대가리만 큰 곰 새끼를 확!
“난폭한 곰의 상세는 어떻지?”
“흐으윽! 그것이…. 마지막에 배가 꿰뚫린지라…. 어젯밤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아하! 그것참 안타깝구나. 난폭한 곰이 잘 뒤졌다는 -”
“예?”
헛! 말조심! 그놈이 이 부족에선 영웅 취급인 걸 잊지 말자.
“난폭한 곰이 벌판을 잘 뒤져서 ‘다섯 다리 황소’를 찾아낸 것은 큰 공이다. 이런 이야기지. 그의 용맹함은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리라!”
응~! 잘 뒤졌어!
설마 질긴 목숨 살아나나 했다. 살아나면 내가 투명 배지 써서 밤중에 죽이러 가야 했는데, 역시 그것보단 부족을 위협하던 괴물 황소에게 죽은 셈 치는 게 그놈에게도 더 영광스러운 죽음이겠지.
이제 진정하자.
어차피 난폭한 곰은 트럭보다 큰 황소 뿔에 찔려 죽었고, 다른 부족민들은 내가 투명 배지를 사용해 황소에게 접근한 후, 나비 브로치를 써서 황소를 기절시키는 광경을 보고 진즉에 무릎 꿇었으니 큰 위기는 지나갔다.
그보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부족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노을 산맥’ 너머에 신성한 땅이 있다고 하는데…. 그쪽을 가야 하나?
하지만, 노을 산맥을 넘자는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부족민들은 아연실색하며 죄지은 자들이 죽어서 가는 지옥이라는 말을 꺼냈다. 산맥 따위가 사후세계일 리는 없겠지만 –
생각해보니 이곳은 지구와 완전히 다른 장소니까 정말 사후세계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여하튼, 사후세계든 아니든 간에 끔찍한 존재가 넘쳐나는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벌판을 이리저리 걷던 중, 푸르른 아침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무언가 기묘한 형상을 발견했다.
“저건 뭐지? 야! 검은 손!”
“예?”
“저건 뭐야?”
나와 함께 하늘을 올려다본 검은 손은 당황해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구름인가요?”
이 녀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구나. 조금씩 눈의 초점을 먼 곳으로 움직였다.
인간의 시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관측할 수 없는 검푸른 형상, 그 실체가 서서히 내 눈에 담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조금만 더 힘을 쓰자. 아주 약간만.
… 눈에서 뜨거운 열이 느껴진다. 누군가 바늘을 머리에 집어넣고 마구 휘젓는 듯한 격한 통증이 느껴졌다. 단안거조의 눈이 한계에 달하는 그 순간.
나는 창공을 비상하는 신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