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68)
267화 – ???호, 저주의 방 – ‘????’ (5)
“에취!”
황폐한 땅, 서 있기도 힘든 강풍이 동굴 내부까지 불어닥치며 모래 먼지가 들어오자 묵성은 기침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묵성이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모래 먼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현이 네 말대로면 엘레나가 조만간 너랑 내가 있는 방향으로 들이닥치겠구나.”
“그렇습니다.”
“우리끼린 답이 없구나. 아무래도 은솔이의 피리가 필요한 것 같은데.”
“시작할 때 뜬 알림의 내용을 미루어보면, 유산은 멀쩡합니다. 은솔 양의 피리라면 엘레나를 되돌릴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은솔양이 어디 있는지도 알 방법이 없으니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해야 합니다.”
“최선의 행동? 뭐 할게 -”
“어르신, 잠시 다른 사람을 물리시지요.”
묵성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상현의 말대로 자신을 호위한답시고 따라온 부족의 전사들을 모두 동굴 바깥으로 보냈다. 둘만 남게 된 후, 상현이 미묘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어르신, 이건 지금의 주제와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이긴 한데…. 저 원시인들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뭘 어떻게 봐? 석기시대 우가우가들이지.”
“인간처럼 보이십니까?”
“풋! 그래. 너무 더럽고 멍청해서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 같냐? 내가 너보단 오래 살아서 하는 말인데, 원래 환경이 척박하면 사람이 무식하고 더러워진다.”
“아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상현은 다음 말을 꺼낼지 말지 고민했다. 의사로서, 그는 무대에 떨어지자마자 원시인들의 질병과 부상을 치료해주며 순식간에 민심을 얻을 수 있었다.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흠. 202호에서 어인 족을 봤을 때는 오히려 그냥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냐? 얘네는 외형상 인간과 아무 차이가 없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으음. 이 주제는 이쯤 하겠습니다.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상현 또한 명확한 근거를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치료 과정에서 느꼈던 ‘애매한’ 감각. 이런 것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현재 당면한 문제부터 이야기하는 게 타당하다고 여긴 상현은 다시 대화 주제를 되돌렸다.
“낙원에 관한 정보, 들어보셨지요?”
“낙원? 혹시 부족의 전설에 나온다는 ‘달콤한 땅’을 말하는 거냐?”
“부족마다 이름이 다른가 보군요. 맞습니다.”
“들어봤다. 보나 마나 방을 해결하기 위해 꼭 가야 할 장소겠지.”
“그렇습니다. 한데, 부족민들이 산맥을 넘으려 하겠습니까?”
묵성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무리다. 원시인들은 산맥을 현세에 강림한 지옥이라 여겼다. 그런 장소로 가자고 하면 아무리 신인의 말이라 해도 따를 리가 없다. 원시인이라 해서 지능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맥은 꼭 가야 하는 장소인데, 부족민들은 산맥으로 향하길 거부하는 상황이군요. 여기에 덮쳐오는 위기는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부족 전체가 당장 짐 싸서 이동한다 한들, 거대한 집단의 이동속도는 내부의 가장 느린 자들에 맞춰지기 마련입니다.”
“… 그렇지. 전사의 속도가 아닌 어린아이나 여성과 노인의 속도로 이동하게 되겠지.”
조용히 동굴 바깥을 주시하던 상현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산에서 곰을 만났을 때, 꼭 그 곰보다 빨라야 도망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옆에 있는 사람보다 빨리 움직이기만 하면 살 수 있다고 하죠.”
“상현이 너….”
“저는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어르신은 어떻습니까?”
묵성은 말문을 잃었다. 지금, 상현은 ‘부족을 버리고’ 둘이서 산맥으로 이동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
– 이은솔
“네가 잘 있어서 다행이네. 혹시 힘든 일이나 험한 일이라도 겪을까 봐 걱정이 많았거든. 물론, 네 옆의 든든~한 국밥 같은 조력자를 보니까 아무 위기도 없었겠지만!”
힘겹게 만난 동료, 송이의 상태는 내 생각보다도 너무 좋았다. 옷부터가 나와 달리 제법 깔끔하고 흰 가죽인데다가 몸 전체를 색색의 장식물로 치장 중이었다.
무엇보다도, 송이를 태운 채 다가온 ‘익숙한 새’를 보자 마음 깊은 곳에서 부러움이 치솟았다. 페로 쟤는 왜 항상 송이 옆에서 시작하는 거야? 나처럼 연약한 사람이나 도와달라고!
“대체 네 몸의 그 장식물은 뭔데!”
“부족민들이 매일 선물해주는걸요? 사람들은 절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자 배가 더 아파졌다. 왜 송이 쪽 부족민만 그렇게 착한 거야? 내 쪽 사람들은 ‘감히 여자가’ 싶은 눈초리로 내게 기어오르는 놈이 한둘이 아니라 기선제압부터가 일이었는데.
그나마 ‘감히 여자가’를 ‘위대한 신인께서’가 상쇄해줬기 때문에 황소를 제압한 후로는 위엄이 생겨난 느낌이다.
“으흠. 저도 나름대로 고생했어요. 부족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괴물이 덮쳤는걸요?”
“괴물? 나도 다섯 다리 황소인가 하는 트럭만 한 황소가 공격해오던데.”
“전 ‘자르는 자’라는 초대형 사마귀 같은 괴물이 덮쳐서 팔찌랑 페로의 도움을 받아 처치했죠.”
나와 송이는 둘 다 원시 부족의 지도자로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족을 덮치는 괴물과 싸워야 했다. 이게 우연일 리 없다. 아마도 모든 동료가 똑같은 일을 겪었겠지? 다른 사람은 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산맥 너머’로 옮겨갔다.
“부족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어요. 조상들은 모두 하늘신의 자식이고 신성한 땅에서 머물렀다고 하더군요. 어느 날, 그 땅에서 쫓겨났다고 해요.”
“솔직히 흔한 신화야. 기독교에 거의 똑같은 내용이 있고, 비슷한 종교가 한둘이 아니지.”
“그렇긴 하죠.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 ‘신성한 땅’의 위치가 제법 구체적으로 전승된다는 점?”
“산맥을 넘어가야 한다더라. 하지만…. 난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어.”
“네?”
“송이 너, 우리가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일단 ‘저주’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죠.”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탈출 판정의 기준은 방마다 다르다. 단순히 오래 생존한다고 탈출이 뜨는 건 아니고, ‘저주’ 자체를 지연시키거나 저주로부터 도주해야 한다.
“여기부턴 내 추측이니까 너도 의견을 내줘.”
“네.”
“부족 사람들에게 들은 적 없어? 계절이 이상하다는 이야기. 아직은 이렇게 추워질 시기가 아니라고 해.”
“들어보긴 했는데.”
“원시시대인 걸 확인하자마자 생각했어. 대체 이런 무대에서 ‘저주’가 뭐지? 좀 슬프게 말하면, 현대인인 우리가 보기에 이 세상은 그냥 시작부터 답이 없어. 이미 망해있는 거나 다름없잖아?”
“미묘하게 101호랑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우리 모두 여기저기 흩어져있기도 하고, 시작부터 세상 자체가 망해있기도 하고.”
“이런 망한 세상을 ‘진정으로’ 망하게 할만한 재앙이 무엇일까? 원시시대의 인류에게 다시금 치명타를 입힐만한 무언가 말이지. 마침,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추워지는 날씨를 보니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가 있더라. ‘빙하기’.”
송이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설득력 있네요. 빙하기로 인한 인류 멸망. 뭐 이런 게 이 방의 시나리오일까요? 그러면 우리는 뭘 해야 하죠? 빙하기를 막을 수는 없을 텐데.”
“자연적인 빙하기가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 사악하고 끔찍한 존재가 빙하기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지.”
“으음.”
“빙하기의 원인은 나중에 생각하자. 난 솔직히 이번 회차, 해결은 불가능이라 확신하거든.”
“…”
“축복이 고장났어. 엘레나는 정상일까? 승엽이는 이미 죽었을지도? 진철이도 정상은 아니겠지. 이런 상태에선 해결할 수 없고 생존을 도모한 후 탈출하는 게 최선이야. 여기에 대한 나름의 계획을 들어볼래?”
“언니, 뭔가 계획이 있으세요?”
일어서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제 저 하늘 저편에서 보았던 불가해한 존재의 신성한 모습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하늘에서 신적인 존재를 봤어.”
“네?”
“마치 하늘을 바다처럼 헤엄치는 푸르른 물개나 고래와 닮은 존재였지.”
“그…. 위험한 것 아니에요?”
“송이야,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장소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어?”
내 말을 들은 송이는 당황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 어, 그냥 풀밭 아닌가요? 부드러운 풀이나 고소한 열매가 열린 나무가 있어서 -”
“좀 다르지?”
“… 다른 장소에 비해 풍요로운 장소네요. 뭔가 살짝 어둡기도 하고.”
“터무니없을 정도로 풍요롭지. 페로를 타고 오면서 봤잖아? 애초에 이 세계의 계절이 슬슬 추워지고 있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황폐한 세상이야. 이렇게 열매 가득한 나무가 아무 장소에나 있지 않아.”
“…”
“송이야, 이 장소는 ‘신의 그림자’야.”
하늘에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너무나 거대하고, 그 존재의 그림자는 반경 수 킬로미터를 덮을 정도라 땅에 있는 자들은 이게 ‘그림자’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길 가다가 문득 주변이 어두워졌음을 느꼈다 해도 해가 구름에 가렸나보다 하고 넘어갔겠지.
하지만, 창공을 부유하는 존재를 인지하자 느릿하게 움직이는 ‘신의 그림자’가 땅에 있음을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림자를 따라 부자연스럽게 번성한 풍요로움 또한 찾아낼 수 있었다.
2시간.
송이가 내 말을 이해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로테스크에 탑승한 채 ‘그림자’를 따라서 한참을 달려갔다 돌아온 송이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그림자의 이동 경로를 따라서 생태계가 완전히 달라져 있어요. 자갈이 가득한 황폐한 영역인데도 난데없이 버찌가 가득 열린 풀숲이 형성되어있고, 날씨가 추워서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로 가득한 숲인데,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 경로의 나무들만 무슨 봄이나 여름의 나무처럼 열매가 열려있네요.”
“너도 이제 느꼈구나. 저 하늘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어. 다만….”
“다만?”
“내가 느끼기에 악한 존재는 아니야. 어쩌면 죄수일지도 모르겠지만, 죄수라 해서 항상 사악한 존재는 아니었으니까.”
202호의 ‘해신’, 103호의 ‘선생님’ 등 죄수가 꼭 사악한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언니의 계획은 뭔데요?”
“그림자를 따라가자. 하늘의 존재, 어제 나와 ‘시선’이 마주치더니 그 후로 마치 따라오라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
“…”
“우연일 리가 없어. 상대가 죄수라면, 우리가 ‘호텔 참가자’라는 사실도 알겠지.”
“죄수가 우릴 어디론가 인도하고 있다?”
“마침, 우리에겐 딸린 입이 아주 많지. 너와 내 부족 사람들. 이 많은 사람이 먹고 마실 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림자를 따라가면 그 문제도 해결이야.”
송이가 어딘가 고민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나무에 기댔다.
“뭔가 너무 근거가 없는 진행 같아요. 하늘에 있는 신비한 존재, 지상에 생기를 돌려놓는 생명의 신과 같은 거룩한 권능. 다 알겠는데, 그걸 따라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좋은 지적이네.”
“물론 우리가 진짜 원시시대 사람이면 저 그림자를 따라가면 식량이 솟아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따라갔겠죠.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 생존이 아니니까요. 무엇보다도, 저 그림자의 이동 방향은 산맥과 반대 방향이에요.”
“좋아, 네 말도 알겠어. 다만, 나는 반대로 물어볼게. 산맥으로 꼭 가야 할 이유는 찾았어?”
그 말에 송이도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부족에 내려온 전설 정도지. 심지어 그 산맥엔 터무니없는 괴물로 가득하다는 이야기가 돌아. 그 장소를 ‘지금’ 꼭 가야 할까?”
“지금?”
“나도 언젠가는 산맥 너머의 신성한 땅에 가긴 가야 한다고 봐. 해결을 위해 가보긴 해야겠지만, 그 타이밍이 이번 회차는 아니라는 말이지. 지금처럼 합류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우리끼리 산맥에 가면 전멸이야. 그러니까 이번 회차는 안전한 장소를 따라가면서 탈출을 노리자.”
이쯤 대화한 후, 나와 송이는 쉽게 결정하지 못한 채 고민에 빠졌다.
우리 앞에 놓인 두 개의 선택지, 한쪽은 괴물로 가득한 산맥 너머에 있다는 ‘신성한 땅’, 다른 한쪽은 창공을 부유하는 위대한 존재가 인도하는 젖과 꿀이 가득한 경로.
어디로 가야 할까?
*
강풍이 불어닥치는 초원을 내려다보며 소년은 생각했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겼는가!
소년의 몸은 드넓은 하늘로 떠올라 있었다. 자신에게 갑자기 날개가 생긴 것은 아니므로, 다른 존재가 자신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음이 명확하다.
그리고 ‘누가’ 소년을 붙잡고 비행 중인지는 명확했다. 그 존재는 흡사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와 닮아있었다.
허리 아래에서 찰랑이는 금발은 흡사 태양의 광휘를 담아낸 듯했고, 숲의 푸름이 그대로 담긴 눈동자를 보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따스해졌으니까. 등 뒤에 솟아난 불투명한 잠자리 날개 같은 신체의 변이는 솔직히 섬뜩하긴 했지만, 워낙 천사를 닮은 분위기 덕에 그럴듯해 보였다.
지상의 초원이 부슬거리는 실로 뒤덮인 ‘고치’로 가득하지 않았다면, 그 ‘고치’가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이었음을 몰랐다면….
물론, 수백의 사람이 고치가 되는걸 두 눈으로 본 시점에서 승엽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다행이야.”
“엘레나 누나….”
“다행이야. 네가 다치기 전에 발견해서. 정말 걱정 많이 했단다.”
“누나….”
“이상한 장소야. 그렇지? 깨어나자마자 온 사방이 괴물로 가득했어.”
“…”
“승엽아, 이젠 누나가 지켜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엘레나의 뒤편엔 나방‘들’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사방을 날아다니며 도망 다니는 인간을 ‘수확’중인 괴물 군단이 보였다. 승엽은 초원에 가득한 고치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