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69)
268화 – ???호, 저주의 방 – ‘????’ (6)
[±úÁü : 튄엥헴{옹쟌*쟝갛 : 123쭤 리
쳄벌댕깡 : 쟀엥쭤리-람렵랑돠
폐띠뵨베괭 : X]
– 한가인
진철 형과 만난 후 4일이 흘렀다.
첫날, 우리는 회의 끝에 나와 형의 힘을 모아 산맥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갑작스러운 결론일 수 있으나 저주의 방에서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길지 않다. 무작정 대기하다 보면 어느새 ‘너무 늦었다’라는 이유로 죽음이 덮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부족민들은 제발 마음을 바꿔 달라며 무릎 꿇고 사정했고, 늙은 늑대 이빨은 내 다리를 붙들고 울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와 진철 형은 둘이 같이 ‘선조가 내린 예지몽’을 꿨다며 우겼다.
옛말에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하여 세 사람이 거짓을 말하며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고 했지? 나는 여기에 새로운 오자성어를 추가하기로 했다.
이신인성조(二神人成祖) : 신인 두 사람이 거짓을 말하며 우기면 없는 조상도 만든다.
증거 따위는 필요 없다. 논리적 설명 따위도 필요 없다. 어차피 호텔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해봐야 알아들을 사람들도 아니니까.
그냥 이 악물고 우겼다. 나랑 형은 예지몽을 꿨고, 산맥에 우리를 위한 낙원이 있으니 가야 한다. 너희가 따라오지 않겠다면 둘이서 갈 생각이다.
결국 부족민들은 설득당했다. 꽤 많은 수는 정말 우리가 예지몽을 꿨는가 보다 하기 시작했고, 터무니없다고 여기는 사람들 또한 자기들끼리 황야를 떠돌 자신이 없으니 별수 없이 따라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4일이 흘렀다.
“아무리 봐도 이런 식으로 억지로 끌고 오는 게 가능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형은 이 비슷한 이야기를 벌써 다섯 번은 했다. 부족민을 반쯤 협박해가며 산맥으로 끌고 가는 짓이 가능한 사람은 호텔 파티 중 많지 않으리라는 것.
“네가 가진 마도서의 힘은 초현실의 영역에서 극단적으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힘이고, 내가 가진 신체 능력과 별은 직관적으로 강력한 힘이지. 이런 우리니까 이 사람들도 눈 딱 감고 따라오는 거다.”
“산맥에서 진짜 악마가 튀어나온다 해도 우리 두 사람의 힘이면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비슷하지. 거기에 더해서 우리에게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게 또 한 가지 이유고.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사람, 예컨대 은솔 누님이나 묵성 할배, 상현 형님도 우리처럼은 못해. 엘레나나 아리는 가능하려나?”
엘레나는 우리보다 더 심하게 밀어붙이는 짓도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지만. 아리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강행군은 4일째 이어졌지만, 솔직히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더 걱정스러웠다.
“속도가 너무 느리네요. 덕분에 몸이 편하긴 한데.”
진철 형은 아예 땀 한 방울 흐르는 것도 본 적이 없다.
“그야 부족에 노인과 여성, 꼬맹이들이 이렇게 많으니 속도를 낼 수가 있나.”
순간 조금 냉혹한 생각이 떠올랐다. 부족민들을 두고 가는 건 어떨까?
나랑 진철 형만 움직인다면 지금보다 세배는 빨리 움직일 자신이 있다. 하지만, 괴물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이 원시인들이 신인의 도움 없이 버틸 수 있을까? 지난 4일간 나와 형은 ‘번쩍이는 새’와 ‘피를 마시는 나무’와 싸워야 했다.
그때, 날 유심히 바라보던 형이 입을 열었다.
“가인아, 조급하게 마음먹지 마. 무슨 생각 하는지 보인다.”
“생각은 무슨….”
“내가 그냥 착한 체하려고 다 데려가는 게 아니야. 나는 부족민의 존재에 어떤 이유가 있으리라 본다.”
“부족민들의 존재 이유라….”
“분명 무대 내에서 부족민들에게도 어떤 역할이 있으리라 본다.”
정말 그럴까? 아니면 형은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두었다. 솔직히 형의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지만, 인제 와서 다 버리고 둘이서 산맥으로 가자고 말해봐야 형이 설득당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내 마음 어딘가에도 날 따르는 사람들이 괴물에 잡아먹히길 바라지 않는 작은 세모가 남아있는 듯했다. 그 세모가 조금 전, 한 바퀴 회전했다.
저녁 무렵, 조금은 탁한 웅덩이 근처에서 행군을 멈췄다. 산맥 너머에 뭐가 있을지 형과 말하려던 중 누군가 거침없이 천막을 열고 들어왔다.
“가인 님! 맨날 멧돼지 신님과 있으면 재미없지 않으세요?”
요전에 내 천막에 거침없이 들어왔던 소녀, ‘겨울꽃’은 부족 내에선 사실상 내 약혼자 취급이다. 그래서 천막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전사들에게 말을 해놔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일개’ 전사가 어떻게 ‘신의 약혼자’를 막을 수 있겠는가!
“… 겨울꽃, 지금은 바쁘니까 -”
“항상 바쁘시잖아요? 어제도 바쁘셨고 오늘도 바쁘시고 내일도 바쁘시고.”
여기까지 듣던 진철 형이 피식 웃었다.
“전에 봤던 그 아가씨로군. 아가씨, 미안한데 오늘은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 같거든. 내가 대화를 일찍 끝낼 테니 일단은 나가주겠어?”
“죄송합니다….”
날 대할 때와 달리 진철 형 앞에선 제법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겨울꽃은 천막을 나갔다.
“부담스럽게 ‘애인 설정’ 따위는 왜 있는 거죠?”
평생 연애하지 않고 혼자 살 생각은 당연히 없지만, 저주의 방 내에서 만나는 존재와 깊은 관계를 맺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방을 해결하고 ‘영원히’ 이별할 가능성이 100%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호텔이 만든 이 시나리오의 ‘원본이 되는 역사’에서 애인이 있었겠지. 그보다…. 너, 이런 생각 안 해봤냐?”
“무슨 생각이요?”
“왜 밤마다 네 천막에 알몸의 여자 10명이 들어오지 않는 걸까?”
“푸엣취!”
너무 놀라서 먹던 물을 뱉었다!
대체 무슨 저질스러운 농담인가 싶어서 눈을 치켜뜬 후 깨달았다. 진철 형의 눈가엔 한 점의 웃음기도 없었다.
“내 말이 이상하게 들려? 난 너무 당연하게 들리는데? 넌 너 자신이 어떤 존재라 여기냐? 이 부족민들에게 넌 신의 자손이고 왕이고 황제다. 네 배우자는 황후고, 네 후계자는 왕자나 공주가 되는 거지.”
“…그렇네요.”
“이런 상황에선 팔자 한번 고쳐보려는 부족의 여자애들이 밤마다 네 침대에 뛰어들어야 정상이라는 생각 들지 않냐?”
“…”
“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고 저 여자애 하나만 네 주변을 맴돌지. 왜 다른 사람은 네 옆자리를 탐내지 않을까?”
그제야 조금,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해. 신인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내려오는 존재이기 때문이지.”
“예?”
형은 자기 자신과 나를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신인, 우리가 이 방에서 담당 중인 역할. 신인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그게 궁금해서 캐물어 봤더니 신기한 정보를 제법 얻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우선, 너와 날 포함해서 신비한 힘을 휘두르는 모든 신인은 부족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네?”
“몰랐구나? 혹시 신인이 평범한 인간처럼 임신과 출산을 통해 태어난다고 생각했냐? 놀랍게도 아니다. 모든 신인은 적절한 때가 되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다.”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신인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정확히는 어느 날 부족민이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내부에 모르던 아이가 신령한 기운을 뿜어내며 도착해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이전의 기억은 전혀 없고 부족민은 그 아이를 받들며 모시지.”
“…”
“그렇다고 신인의 결혼이 의미 없다는 이야긴 아니야. 어찌 됐든 신인은 살아있는 동안 부족에선 신성한 위상을 얻으니만큼 신인과 결혼한 자는 그만큼 대접받고, 신인의 자녀들 또한 귀하게 여겨지지. 하지만 그 자녀들은 신인이 아니다. 신인은 오직 하늘에서 내려오는 존재다.”
대화가 끝난 후, 늙은 늑대 발톱에게 확인한 결과 모두 사실임을 알았다. 오히려 노인은 내가 이 당연한 사실을 망각했다는 사실에 다소 충격을 받은 듯했다.
신인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존재다. 인간과 결혼할 수도 있고 아이를 낳을 수도 있지만, 태어나는 후계자는 신인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다. 신인은 오직 하늘에서 내려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번 저주의 방에서 신인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
신인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면, ‘누가’, ‘왜’ 신인을 만들어서 지상에 뿌리고 있는가?
여러 가지 의문이 맴돌며 정신이 혼란스러워졌다.
… 5일이 더 흐르고 9일 차, 우리는 드디어 산맥 인근에 도착했다. 그리웠던 동료 두 사람을 만났다.
*
– 엘레나
갈수록 태산이야. 정말로 이 표현보다 어울리는 말은 없다. 어떻게 저주의 방은 이렇게 가면 갈수록 끔찍한 방이 나오는 걸까?
202호만 해도 난데없이 어인족 공주가 되는 바람에 물고기로 변하는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경험을 했는데 이 방은 더하다.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미친 사람처럼 하염없이 비명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깨어나자마자 눈에 들어온 광경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꿈틀거리는 살점으로 가득했다. 바닥은 마치 호흡하듯이 벌렁거리는 입술 비슷한 살덩이들이 깔려있고 하늘은 보라색인데 내가 누워있던 장소는 거대한 혓바닥이었어.
이걸 보고 비명이 나오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비명을 지르다 보니 꿈틀거리는 촉수가 마구 돋아난 문어 비슷한 생물이 수십 마리나 나타나서 내 주변을 감쌌고, 나는 이성을 잃기 직전까지 몰렸다.
“정말 무섭네. 너희가 아니었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까?”
“삐이?”
“아니야! 고마워서 하는 말이야.”
인간은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성장한다고 하던가?
절체절명의 순간, ‘행복한 상상’은 별빛이 깃든 눈동자와 푸르른 잎사귀를 닮은 날개를 휘저으며 반딧불이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생물들을 만들어내었다.
내 두려움에 반응했을까?
요정들은 곧 신비한 힘을 부려 괴물들을 정화하기 시작했다. 악몽에 나올까 두려웠던 꿈틀거리는 생물의 몸을 요정들이 감싸자 곧 광기가 사라지고 아름다움이 늘었다.
그렇다. 요정이 늘어나고 있어!
점차 세상에 깃든 흉함이 사그라든다. 내 손에서 피어난 미(美)의 현신과도 같은 빛나는 생물이 혼탁한 세계를 밝게 되돌렸다.
“그래도 좀 외롭긴 했어. 요정은 말할 줄 모르거든. 그래서 승엽이 너를 만나서 참 기뻐.”
“꿀럭!”
이상하게 승엽이는 나랑 만난 후 딸꾹질이 늘었다.
“괜찮니?”
“네! 괘, 괜찮아요!”
“승엽아, 많이 아픈 것 아니지?”
“누나! 저 진짜 괜찮아요.”
요즘 드는 생각인데, 사람의 몸은 참 약하고 불편하다. 힘도 약하고 튼튼하지도 않아. 무엇보다 날 수 없잖아? 약점이란 극복해야 하는 법!
“어떻게 생각해?”
“네?”
“네 몸이 너무 약한 것 같지 않아?”
“꿀럭!”
또 딸꾹질하는 승엽이의 피부를 가만히 만지자, 역시나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물론 이 부드러운 피부도 나쁘진 않지만, 딱정벌레처럼 단단한 피부라면 –
“으악!”
“음?”
신기하게도 내 손가락이 닿은 승엽이의 피부 일부가 단단해졌다. 그리고 승엽이는 기절했어.
가만히 일어서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이 속도라면 모레쯤 산맥에 도착할 것이다. 산맥에 도착하면 분명 동료들을 만날 수 있겠지!
이 정보는 확실해. 며칠 전, ‘아름답게’ 만들기 전 꿈틀거리는 문어에게 얻어낸 정보에 따르면 할아버님이 ‘자신들을 버리고’ 산맥으로 움직였다고 하니깐. 물론 문어들이 대체 왜 할아버님에게 격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잠시 고개를 돌려 기절한 승엽이를 보고 있으니 다시금 아까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 아이는 너무 약하다. 내가 조금,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