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70)
269화 – ???호, 저주의 방 –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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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인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은 공간, 기이하게도 그림자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수많은 생명을 느꼈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벌레들의 울음소리, 늦은 밤이 돼서야 하루를 시작한 박쥐들의 울적한 소음. 일생토록 빛과 어둠을 구분하지 못한 채 흙을 기는 끈적이는 환형동물들.
피부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조차 소리를 만들어냄을 느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어둠의 장막 속에서 청각과 후각이 그 어떤 때보다 예민해지자 이젠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분명, 인간이 아닌 존재로 변해가는 듯하다. 강림의 여파일까? 마도서의 힘? 알 수 없다.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할 때도 아니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근처의 나무 뒤편으로 이동했다. 최대한 발소리를 억제한다. 발소리를 억제함은 무언가에게 들키는 걸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내 발소리로 인해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 나 자신은 이미 이 세계의 모든 것에게 들킨 지 오래니까.
“뭔가 우릴 보고 있다.”
결국 진철 형은 참지 못하고 침묵을 깨트렸다. 타박할 생각은 없었다. 나도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고, 어차피 이미 들킨 상태니까.
“일단 산 아래로 내려갈까요?”
“여기까지 와서 아무 소득 없이? 조금만 더 살피자. 그 대단하다는 산맥인데 도망가더라도 괴물 얼굴 한번은 보고 도망가야지.”
진철 형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용기를 끌어올리기라도 한 듯, 호기로운 태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 끼익!
갑자기 들려온 소음의 방향으로 즉각 고개를 꺾었을 때, 나는 상상도 하지 못한 존재를 보고 말문을 잃고 말았다.
“저, 저건! 괴물이 아닌데요? 아무리 봐도-”
위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로봇’이 뭘 어떻게 봐도 ‘포탑’으로 보이는 것을 우리 쪽으로 겨냥했다!
“튀, 튀어라!”
— 쾅! 쾅쾅!
온몸에 흩어진 힘을 한 올도 남김없이 다리에 실어서 달리고 또 달렸다!
등 뒤에서 엄청난 폭음과 먼지, 나무가 터지는 소리와 각종 생물이 도주하는 소음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가 허공을 격하며 날아들어 단단한 동굴 외벽에 부딪히는 순간, ‘동굴이었던’ 무언가는 순식간에 돌무덤이 되었다.
쀍튈릭 : 귏킾? 럴튕 팀ㄹ댜
이건 대화창? 대체 어떻게 –
“이쪽으로 오십시오! ‘경계’ 바깥으로 나오면 추격하지 않습니다!”
익숙한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신없는 질주가 끝났을 때, 우리는 또 다른 두 명의 동료를 만날 수 있었다.
*
새삼스럽지만,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은 결코 쉽고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광대한 원시의 세계, 온 사방에 흩어진 우리에게 주어진 건 원시인 부족뿐.
다들 저주의 방을 헤쳐온 경험이 있다 보니 수상한 노래 혹은 전설이 내려오는 산맥 너머로 가야 한다는 결론까지는 쉽게 도달했지만, 산맥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21세기처럼 정해진 등산로가 깔린 것도 아니고 그냥 대륙 여기저기 흩어진 사람들이 멀리 보이는 산맥을 향해 이동했을 뿐인데 어떻게 만나겠는가?
모두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산맥을 탐사하는 쪽이 오히려 정상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의사 선생님은 멀리서 우릴 찾아낼 수 있었다.
“부족을 데려오셨기 때문입니다. 이게 대체 몇 명입니까? 합쳐서 5,000명은 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이런 무지막지한 인원이 움직이다 보니 멀리서도 구름같이 흙먼지가 일어나더군요. 설마 하면서 하루를 꼬박 움직여서 여러분을 찾은 겁니다.”
“허, 부족을 데리고 이동하면 흔적이 요란해서 외부에서 찾기 쉽다는 생각까진 하지 못했는데, 이런 효과가 있었군요.”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다는 말이 딱 이 상황이지. 어쨌든 지옥 산맥에 도착한 것을 환영한다!”
산맥 아래, 원시인들이 머물기 위해 설치한 거대한 캠프에서 우린 제법 긴 대화를 나누었다. 각자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어떤 괴물과 싸웠으며 산맥을 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삼스럽지만 우리가 참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원시의 시대에 그냥 떨어트려서 부족을 통제하고 괴물을 때려잡으라는 미친 임무를 던졌는데 네 사람 모두 그럭저럭 훌륭히 해내지 않았는가! 어찌 보면 마도서나 괴력이 있는 나와 진철 형은 편한 편이다. 전투에 적합한 초능력이 없는 상현 씨가 ‘부비트랩’을 설치해서 괴물을 처리했다는 대목에선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할아버지도 새삼 감탄했다.
하지만, 그다음 이야기가 나오자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진철 형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문을 떼었다.
“그러니까…. 부족민은 그냥 버려두고 두 사람만 온 셈이군요.”
“그래. 뭐 어떻게 하냐? 산맥을 가긴 가야겠는데 부족 놈들은 거기에 가느니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는데 뭘 어쩌겠냐는 말이지.”
딱히 할아버지나 의사 선생님께 그 문제를 따질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나도 떠올렸던 생각이니까. 진철 형이 반복적으로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부족민을 반강제로 산맥까지 끌고 올 수 있는 건 나와 진철 형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몸을 강탈하는 사악한 마법사나 주먹으로 괴물을 때려잡는 원시시대의 헤라클레스에겐 가능했던 일이 할아버지나 의사 선생님께는 불가능했을 뿐이다.
뭐라 뻐끔거리며 여러 가지 말을 떠올리는 것 같던 진철 형은 결국 한 문장만 내뱉었다.
“다들…. 호텔의 시련을 거쳐오며 깨달으셨으리라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저주의 방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지키는 일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답했다.
“저도 압니다. 이 방을 해결하기 위해선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방을 해결하기 위해선 일단 탈출을 몇 차례 반복하며 정보를 모아야 하죠. 정보를 모으는 단계에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쯤에서 자르는 게 좋을 것 같다. 공연한 신경전은 좋지 않다.
“흠, 으흠. 자! 이쯤 하고 산맥 이야기나 합시다. 지금은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최종적으로 방을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과정이니까요.”
“그, 그렇지. 내가 괜한 소리를 했네. 산맥의 그 괴물들은 대체 뭡니까? 아니, 애초에 괴물이 아니라 ‘로봇’아닌가?”
산맥에서 만난 로봇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분위기가 바뀌고 모두가 열심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바로 답했다.
“로봇이지! 틀림없다. 원시인들이야 관련 지식이 없으니 로봇도 그냥 엄청난 괴물인가 보다 한 거지. 원시인들이 말하던 셀 수 없이 많은 눈이란 로봇에 달린 카메라를 말하는 거였고, 천둥을 부르는 힘은 기관포를 말하는 거였어.”
“이제 이 장소가 심상치 않은 장소라는 건 100% 확실해졌군요. 산맥을 넘으려면 저 로봇을 뚫어야 합니다.”
내 말과 함께 모두가 조용해졌다. 진철 형이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그 로봇이 기관포 쏘는 것 봤냐? 그냥 스치기만 해도 나무가 터지던데? 그런 거에 맞으면 우리는 흔적도 남지 않을 거다. 애초에 살아서 도망 나온 게 더 신기해.”
“우리가 잘 도망간 게 아니라 그 로봇이 일종의 ‘경고사격’을 한 것 같아요. 그리 먼 거리도 아닌데 포탄이 전부 우리 근처로 비껴가더군요.”
정말 고도의 ai가 장착된 로봇이라면, 그 정도 거리에서 빗나갈 리가 없다. 경고사격을 해서 일부러 빗맞힌 것.
“경고사격? 이건 뭐, 로봇의 자비에 기대서 살아남은 거냐?”
의사 선생님이 의견을 냈다.
“산맥의 로봇들에겐 일종의 행동 패턴이 있더군요. 예컨대, 로봇들은 절대 산맥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실 저런 존재들이 산맥 밖으로 나가서 날뛰기 시작하면 원시인은 물론이고 괴물들조차 로봇을 막지 못할 겁니다.”
“산맥을 벗어나지 않는다라…. 확실히 나랑 가인이가 일정한 선을 넘으니까 칼같이 물러났지.”
산맥을 벗어나지 않는 건 좋지만, 정작 우리가 그 산맥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선 큰 의미 없다. 뭔가 다른 ‘패턴’ 없을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건 패턴이라고 하긴 애매하긴 한데, ‘경고사격’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를 좀 관찰하는 것 같더군요. 산맥 인근으로 들어서자마자 외부의 시선을 강하게 느꼈거든요.”
진철 형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무릎을 ‘탁’ 쳤다.
“헛!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가인 군과 진철 씨 두 분은 힘들게 부족민을 전부 데려오지 않았습니까? 이들을 놀게 둘 필요가 있을까요? 마침, 적절하게 시킬 일이 -”
숨이 멎었다. 나도 머리 한 편에서 문득 떠올렸다가 치운 생각인데, 의사 선생님 또한 그 아이디어에 도달했다는 말인가!
“자제합시다!”
“… 네?”
“저도 비슷한 생각을 순간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선을 넘는 것은 곤란합니다. 우린 언젠가 바깥으로 나가야 하니까요. 가능하면 무고한 희생은 -”
“저기, 죄송한데 가인 군은 대체 무슨 생각을 떠올린 겁니까?”
“… 부족민을 산맥에 강제로 돌격시키자고 말하려던 것 아닌가요? 로봇들이 부족민을 죽이는 사이에 우리끼리 돌파하자?”
의사 선생님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할아버지까지 입을 딱 벌렸다.
“넌 무슨 스탈린이냐! 형벌부대를 집어넣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독전대냐?”
“가인 군, 전혀 아닙니다. 애초에 아무리 가인 군과 진철 씨의 뛰어난 통솔력이라 해도 그런 짓을 시키면 원시인들이 반기를 들 겁니다. 싸움을 늘릴 필요는 없죠.”
“그러면 무슨 생각이신가요?”
“이른바 ‘둥글게 둥글게’ 작전 어떻습니까?”
의사 선생님이 떠올린 아이디어는 단순하면서도 그럴듯하게 들렸다.
로봇은 산맥의 경계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며, 산맥에 들어서면 로봇들이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일정 선을 넘었다 싶으면 경고사격으로 쫓아낸다. 다시 말해 산맥에 들어선다 해도 즉시 죽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5,000명이 넘는 부족민 전체를 산맥의 경계 근처에 얇고 넓게 펼쳐서 배치한 후 경계를 들락날락하게 하면 어떨까?
로봇들이 수천 명의 사람을 일일이 감시하고 경계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을까? 로봇을 분산시킨 후 호텔파티가 모여서 상대적으로 수비가 약한 곳을 한 점 돌파해서 올라가면 된다!
“어떻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던 할아버지가 답했다.
“괜찮은 아이디어긴 한데, 두 가지가 걸리는구나. 첫째, 부족민들은 산맥을 보는 것조차 두려워하는데 경계 근처를 깔짝거리라고 시키는 일이 쉽진 않을 거다. 경계 주변만 돌아다니면 안전하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겠지. 또, 통신기기가 없는 세상인데 수천 명의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행동하게 만들려면 훈련도 필요할 것 같고.”
“시간을 쓰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제한 시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둘째, 이게 더 심각해. 로봇을 분산하는 데 성공했다 치자. 우리가 가는 경로엔 딱 한기만 있다 치자. 한 대는 이길 자신 있냐?”
다시금 장내에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때때로 호텔파티가 은근히 ‘단순 무식한 물리력’에 취약함을 느끼곤 한다. 차라리 초자연적인 괴물이나 악령은 내가 마도서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데, 무식하게 30mm 기관포를 쏴 재끼는 인공지능 로봇을 만나면 더 대책이 없다.
결국 진철 형이 상황을 정리했다.
“누군가 더 필요하군요.”
“…”
“최소한 기관포를 쏘는 로봇 두어대는 작살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필요합니다. 지금 나는 축복이 약해져서 영 무리라서….”
의사 선생님이 다소 침울하게 답했다.
“그게 가능한 존재가 지금 우리에게 접근 중이긴 할 겁니다.”
*
다음날, 수 KM 밖에서 엄청난 흙먼지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새로운 동료의 합류라 생각하고 기뻐했던 사람들은 곧 표정이 사색이 되고 말았다.
‘군단’은 하늘을 날아서 접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