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75)
274화 – 회의 (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저녁 무렵, 회의가 시작되었다. 식사도 거른 채 방에 있던 엘레나도 조금은 회복했는지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송이가 엘레나의 손을 꼭 붙잡던 차, 노트에 무언가 끄적거리던 누나가 입을 열었다.
“오늘 회의에서 체크할 부분 적어놨으니까 화이트보드 다들 확인해.”
화이트보드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1. 각자 모은 정보 합치기.
2. 다음 회차 진행.
3. 쓰레기 같은 모래시계의 정체 탐구.
… 유일하게 감정이 담긴 3번 항목을 보고 다들 쓴웃음을 지었다. 새삼스럽지만, 그놈의 모래시계는 대체 뭐 하는 물건일까? 오늘이 지나기 전에 꼭 다시 한번 확인하도록 하자.
화이트보드를 훑어본 의사 선생님이 직접 펜을 쥐고 ‘4번’을 추가했다.
“이것도 한번 이야기해봅시다.”
4. 다른 방을 가보는 건 어떻습니까?
“좋아! 그것도 이야기해보자. 하지만, 1번부터 순서대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1번! 모두가 나뉘어서 진행한 방이니까 정보를 좀 모아보자. 먼저 ‘산맥 파티’부터 말해줘. 대충은 들었어. 무슨 멸망한 고대 문명 유적지 비슷한 장소를 발견했다며?”
나와 의사 선생님, 할아버지 등은 산맥을 넘으며 보았던 로봇들과 그 로봇을 돌파한 후 발견한 분지, 쇠락한 문명의 흔적 등에 대해 설명했다. 중간중간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조종당하며 우리를 공격하던 아리 이야기가 나왔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듣던 아리가 질문했다.
“그러니까, 203호는 일종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인 거야? 아주 오래전에는 인류 문명이 번성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힘으로 인류가 망했다? 바깥의 원시인들은 멸망한 문명의 후예들?”
진철 형이 제일 먼저 떠올린 가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만 정리하기엔 심상치 않은 단어를 적지 않게 들었다.
“내가 너한테 빙의했을 때, 이상한 단어를 들었어. 네 안에 있던 정체불명의 존재가 우리를 ‘반역자의 후손’이라고 부르던데?”
“반역자의 후손이라…. 바깥의 인류가 반역자의 후손이라는 말이야? 그러면 그 도시가 멀쩡하던 시절에 모종의 이유로 반역한 인류가 외부로 탈출했고, 그 후손이 원시인들인 걸까?”
“조금 더 생각해보자.”
무언가 놓친 것 같다. 빙의하기 전에 들었던 말이 있었는데….
“인간이 아닌 존재는 생명권이 없으며, 오직 죽을 권리만 존재한다. 반역자와 그 후손 또한 마찬가지다.”
“응?”
“이 비슷한 말을 네가 했던 것 같아.”
“뭔가 굉장히 정신 나간 문장이긴 하네.”
잠시 장내에 침묵이 감돌던 중, 은솔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희한한 문장 아니야? 마치 그 자리에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있었다는 투의 말이잖아.”
“인간이 아닌 존재라…. 상현아, 너 무슨 할 말 없냐?”
갑자기 할아버지가 의사 선생님을 지목했다.
“네가 나랑 처음 만났을 때 원시인들이 약간 이상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골똘히 고민하던 의사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확신은 없습니다만, 부족민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종종 기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묘하게 신체 구조가 인간과 다르더군요. 문제는, 다들 아시다시피 제 ‘치료’ 방법이라는 건 의학이라기보다 반쯤 마법이죠. 손이 사람 몸속을 투과해서 들어가다 보니 내부의 모습은 제 손가락 감각으로만 파악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이것저것 만지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느끼긴 했는데 눈으로 본 게 아니라 장담하긴 어렵다 그 말이지?”
“맞습니다. 이런 곳에 왜 이 뼈가 있지? 여기에 혈관이 없다고? 이 부위에 근육이 없는데 다리가 어떻게 움직이지? 이런 식의 경험을 여러 차례 하긴 했는데, 실제로 사람 몸을 절개해서 해부해본 게 아니다 보니 확신은 없습니다.”
점차 ‘원시인’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자 진철 형도 한 마디 얹었다.
“가인이랑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죠. 여러분, 원시인 못지않게 ‘신인’이라는 집단도 굉장히 이상한 것 아십니까? 신인은 원시인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도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뜬금없이 신인 아이가 부족민들 사이에 나타나는 식이라고 하더구나. 무슨 황새가 물어다 주는 것도 아니고….”
듣다가 깨달은 사실인데, 저게 바로 승엽이의 부족이 승엽이를 태워죽이려 했던 이유가 아닌가 싶다. 기적을 부리는 신의 혈통을 죽일 수 있는 이유? 죽이면 하늘에서 새로운 신인을 내려줄 테니까!
나도 의견을 냈다.
“아무래도 원시인은 인간이 아닌 듯합니다. ‘신인’이라는 단어에도 숨겨진 비밀이 많아 보이네요. 정황상 ‘대적자 아리’가 말한 ‘반역자의 후손’이란 신인을 칭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나머지는 다시 들어가서 확인해봐요. 다음번엔 의사 선생님이 여차하면 해부까지 해서 확실히 알아내는 게 어떨까요?”
‘해부’라는 단어가 나오자 순간적으로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꼭 필요한 절차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 선생님 또한 각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를 보아 꼭 해보겠습니다.”
“또, 다들 잊으시면 안 되는 게 있어요. 진입 초기에 다들 이상한 괴물과 붙으셨죠? 승엽이는 부족 전체가 식량을 찾아 떠도느라 괴물은 만나지 못한 것 같긴 한데, 나머지 분들은 겪으셨을 겁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괴물들, 이상한 촉수가 꽂혀있었어요. 빙의를 거치며 확인한 사항인데, 괴물의 몸체와 촉수는 아예 별개의 생물입니다. 촉수는 무언가 악마적인 존재가 만들어내서 세상 전체에 흩뿌린 게 아닌가 싶었어요.”
“별개의 생물이다 정도는 뜯어내면서 느끼긴 했지만, 별의별 징그러운 게 넘쳐나는 세상이다 싶었지.”
진철 형이 고개를 끄덕이던 차, 듣고 있던 아리가 의견을 냈다.
“그 촉수를 만들어낸 것도 산맥 내부에 있던 문명일까?”
“글쎄…. 이미 멸망한 문명이 그런 촉수를 만들어낼 여력이 있을까?”
“만들어낸 건 아주 오래전일지도 모르지.”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것 같습니다. 산맥의 문명이 남긴 흔적을 직접 관찰한 분들이라면 이해하실 텐데, 그 촉수와는 무언가 다릅니다.”
같은 생각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산맥에 남은 고대 문명은 굉~장히 뭔가 친숙했어요. 심지어 그 로봇들도 뭔가 익숙한 느낌이었죠. 분명히 21세기 지구보다도 더 발전한 인간의 문명이 남긴 흔적입니다.”
“반면, 그 촉수는 전혀 아닙니다. 이건 분명 무언가 오컬트적인 힘의 산물입니다.”
은솔 누나가 끼어들었다.
“그러면 산맥의 문명을 멸망시킨 무언가가 남긴 흔적이 촉수일까?”
이 질문에는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이 감돌자 은솔 누나가 노트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정리해서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몇 가지 적어봤어. 첫째, 원시인과 신인의 정체 분석. 원시인은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 있으니 해부가 필요. 둘째, 촉수의 정체 분석. 어쩌면 산맥에 남은 고대 문명을 멸망시킨 존재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산맥 파티’가 모은 정보는 어느 정도 모였네요.”
“앗!”
승엽이가 황급히 손을 들었다.
“제가 마지막에 굉장히 이상한 걸 봤어요!”
“이상한 것?”
“기억나시겠지만, 아리 누나가 제 다리를 자르려고 설치한 함정에 -”
“승엽아. 듣는 아리 누나가 너무 불편하니까 ‘대적자 아리’ 정도로 표현을 바꿔줘….”
“아리 누나가 제 다리를 반쯤 자르는 바람에 제가 넘어졌고, 할아버지가 옆으로 던졌잖아요? 그때 제가 바닥을 구르다가 큰 구멍이 뚫린 건물을 봤어요. 아마 아리 누나가 레이저를 쏴서 엘레나 누나를 태워죽일 때 -”
“진짜 너무 불편해….”
“태워죽일 때 레이저가 뒤쪽의 건물을 부쉈던 것 같아요. 그 건물 내부에 ‘방호복’이 보였죠.”
방호복! 그 말을 듣고서야 떠올렸다. 그놈의 방호복은 이번 회차에서 대체 누구에게 있었나 했더니 뜬금없이 분지의 도시에 있었다고?
“그런데 들어가 보니 방호복이 아니었어요. 방호복처럼 생긴 전혀 다른 물건이었죠. 하얗고, 복잡한 기계와 산소통 비슷한 물건이 달린 물건이었죠. 그런 물건이 벽면 가득히 그냥 수백 수천 개가 있었어요. 신기해서 만지작거리다가 갑자기 뒤에서 폭탄이 날아와서 죽었어요.”
방호복과 유사한 외견, 복잡한 기계와 산소통이 붙어있는 옷. 떠오르는 장비들이 몇 개 있다. 잠수복, 우주복 등이 그 예시다. 그런 게 수백 개가 있었다?
은솔 누나가 화이트보드에 문장을 추가했다.
“셋째, 멸망한 도시 유적에 있는 수많은 방호복을 닮은 옷의 정체. 이것도 알아내자.”
“누나, 산맥 파티가 알아낸 정보는 이쯤 하면 된 것 같은데, 그쪽은 뭘 알아내셨어요?”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누나와 송이는 둘 다 똑같이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가인 오빠. 아니 다른 분들께도 조금 죄송한 이야기인데, 솔직히 전혀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니?”
“진짜 모르겠네요. 그냥 하늘의 이상한 생물, 심지어 제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은솔 언니만 볼 수 있는 생물의 그림자를 쫓아서 열흘 정도 움직이다 보니 갑자기 ‘탈출에 성공하였습니다!’ 하고 떴어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나는 느꼈는데, 너희는 느끼지 못한 부분을 하나 말하자면 날씨 정도일까.”
“날씨요?”
“비정상적으로 추워지고 있었잖아. 그래서 ‘저주’의 정체가 빙하기가 아닌가 생각했거든. 산맥 너머의 멸망한 고대 인류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전혀 몰랐고.”
빙하기. 이것 또한 새로운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근데 언니, 하늘에 있던 존재는 정체가 뭘까요? 둥둥 떠다니는 것만으로 세상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엄청난 기적을 보면 분명 ‘죄수’가 아닌가 싶었는데 딱히 우리에게 말을 걸거나 하진 않아서.”
“모르지. 만약 죄수라면,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은 건 ‘제약’이 있기 때문일지도.”
다섯 번째 시도가 되기 전, 죄수들에겐 강력한 제약이 걸려 쉽게 개입할 수 없다. 그때까진 죄수들 또한 반쯤 NPC처럼 정해진 대로 행동한다. 그 원칙에서 유일하게 벗어나 있다고 느꼈던 존재는 104호의 ‘주’ 뿐이다.
그때, 회의에 참석한 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엘레나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화.”
“엘레나?”
“우선, 다들 죄송해요. 정신이 이상해져서 사고를 칠뻔한 것 같던데.”
“신경 쓸 필요 없다니까요. 고의로 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호텔에 온 후로 다들 몇 번 미쳐보지 않았나요? 미쳐서 다른 사람 공격하는 게 무슨 대수라고….”
아리가 킥킥거렸다.
“맞아! 난 레이저로 엘레나 태워죽였어도 사과 하지 않잖아. 그런 일은 원래 사과할 필요가 없는 거야.”
“고마워. 그러면 제가 ‘깨달았던’ 사실 한가지 말해볼게요. 여러분, 203호에서 제가 쓴 힘이 터무니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셨나요?”
“터무니없다?”
“강력한 나방 괴물 한 마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을 죄다 괴물로 만들어내는 힘! 물경 수백 수천의 괴물을 숨 쉬듯이 양산하는 힘. 이게 정말 순수하게 ‘불길한 상상’의 힘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식의 고민은 해본 적이 없어서 살짝 입을 벌렸다. 엘레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건 불길한 상상의 한계를 아득히 넘는 힘이에요. 생각해보세요. 저보다 능력의 숙련도는 물론 능력 자체도 더 강력했던 201호의 ‘베아트릭스’조차 괴물을 그렇게 쉽게 찍어내지는 못했어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괴물을 만들어내던 201호의 큐브를 되새겨보면, 베아트릭스가 괴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철저한 ‘수제’에 가까웠다. 반면, 엘레나는 무슨 공장에서 괴물을 찍어내듯이 고작해야 열흘 내외의 시간 동안 수백 마리의 괴물로 하늘을 덮어버렸다.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들어낸 괴물은 최초의 한 마리와 저 자신, 여기에 승엽이의…. ‘개조’까지. 총 3기가 전부에요.”
멍하니 듣고 있던 할아버지가 황당하다는 듯 모두의 의문을 대변했다.
“그러면 나머진 뭐냐?”
엘레나는 정작 그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게 저도 궁금해요. 당시의 저는 괴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요정의 힘으로 비틀린 세상을 정화한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했거든요.”
슬슬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제법 많은 키워드가 모였다. 원시인과 신인, 촉수, 승엽이가 발견한 장비, 빙하기, 엘레나가 괴물을 대량 생산할 수 있었던 이유 등.
문제는 이 키워드를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실을 찾아내지 못한 느낌이다.
“자! 정보 모으기는 이쯤 하자. 서로 알아낸 사실은 이 정도면 대충 다 모았어. 이젠 2번으로 가야 해. 물론 방을 바꾸자는 이야기도 있긴 한데 그건 마지막에 한 번 말해보기로 하고…. 일단 203호로 간다고 치고, 다음엔 어떤 식으로 진행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