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77)
276화 – 회의 종료, 다음 방 선택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다음 방에 대한 고민, 은솔 누나의 생각을 물었다.
“내 생각이라…. 이 정도 생각은 드네. 바꾼다고 한들 편안한 길이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이미 상당한 고통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방을 굳이 고집할 필요도 없다. 솔직히 바꿔도 그만, 안 바꿔도 그만이라고 봐. 어차피 순서의 문제고, 우린 결국 모든 방을 들어갈 테니까.”
어차피 우린 모든 방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방을 바꾸는 건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다. 순서의 문제일 뿐이다.
마지막 주제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 길어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의견이 쉽게 일치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겼다 쪽에 가깝다. 203호가 너무 싫다는 소수와 바꾸는 것도 위험하다는 다수의 관계였지만, 소수의 의견은 강경했다면 다수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만 해도 그렇다. 204호로 바꾼다 한들 쉽고 편한 일이 기다릴까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203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또 아니었으니까.
회의가 끝나감을 느끼며 오늘의 마지막 조언을 사용했다.
[조언 : 1 -> 0]‘방을 바꾸는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솔직히 질문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후원자들이 다른 방의 정보를 미리 알려주는 일은 있을 수 없으니까.
[진행에는 정답이 없다.]예상대로 큰 의미 없으면서도 나름대로 위안은 되는 대답을 얻었다. 방을 바꾸는 것. 딱히 틀린 선택도 올바른 선택도 아니며 말 그대로 선택의 문제라는 이야기.
적어도 오답은 아니라는 사실에 만족하도록 하자. 내일, 우리는 204호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
“그럼 엽니다?”
204호의 문 앞, 진철 형은 문손잡이를 붙든 채 우리를 돌아보았다.
“열어. 어제 이미 결정했잖아.”
찰칵!
문이 열린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4호 – 미션의 방, ‘호텔 시네마’
현자의 조언 : 3]
사방에 가득한 영화 포스터들, 팝콘이 튀겨지는 소리와 캐러멜 향. 익숙하면서도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얼떨떨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 우리 저주의 방에 들어온 건가요? 가인 오빠! 시나리오 떴어요?”
변화가 전혀 없는 옷차림, 들어올 때의 모습 그대로 깨어난 우리. 저주의 방에 들어갈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저주의 방이 아니니까.
“저주의 방이 아닌 방이 하나 있다더니, 그게 204호였네요. 미션의 방이고, ‘호텔 시네마’라고 뜹니다.”
“호텔 시네마? 아! 그래서 여기 팝콘이 있네요.”
실시간으로 팝콘이 튀겨지는 거대한 기계가 보였다. 누가 봐도 ‘누르면 팝콘 나와요!’ 느낌의 버튼도 있었다. 진철 형이 신기해하며 버튼을 누르자 달콤한 향이 풍기는 캐러멜 팝콘이 튀어나왔다.
“진짜 영화관이네. 이런 분위기일 줄은 몰랐는데.”
“하하! 다들 어떻습니까? 그쪽의 팝콘을 챙기셨다면 그 옆의 기계에서 마실 것을 뽑으시지요!”
갑자기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와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호텔의 NPC로 추정되는 존재가 뒤편에 나타나 있었다. 누나가 재밌다는 듯 물었다.
“당신은 이 방의 안내인?”
“정확하십니다! 호텔 파티 여러분, 어제저녁에 나누셨던 대화는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혹독하고 고통스러운 저주의 방,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204호에 그런 고통은 없습니다. 오직 즐거움만 가득한 장소니까요.”
“… 우리 대화를 엿들었구나. 새삼 따지기도 우습긴 하지만.”
“특히 승엽 군의 절절한 통곡! ‘장대에 매달려서 전기구이 통닭이 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아시나요?’ 이 대목에선 저도 같이 울고 싶었답니다!”
“그,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는데요?”
최소한 전기구이 통닭이라고 말하진 않았지.
“하! 무식한 원시인들이 참 잔인하지 않습니까? 아니, 사람을 통닭으로 만들 셈이면 꼬챙이로 꿰어서 빙글빙글 돌리기라도 해야죠!”
“그, 그게 저에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더 아플 것 같은데.”
“승엽아, 너 놀리는 거니까 대답하지 마. 그래, 안내인. 슬슬 이 방이 뭐 하는 방인지나 말해줘.”
“아리 양. 물론입니다!”
함박웃음을 짓는 안내인이 손을 한번 휘젓자, 사방의 풍경이 영화관 내부로 바뀌었다. 동시에 우리 손에 작은 안내문이 각자 하나씩 들렸다.
“읽어보셔도 됩니다만,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이곳은 호텔 시네마! 호텔의 최신 기술이 반영된 영화관이지요. 거기 한가인 군!”
“… 뭡니까?”
“최신 영화관에 어떤 기술이 들어가는지 아십니까?”
“아이맥스나 3D 아닐까요?”
“역시 젊은 분답게 대충은 아시는군요? 나이 많으신 참가자분도 꼭 알아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뭐 이 새끼야? 야 인마! 아이맥스는 나도 들어봤어!”
“전 김아리 참가자께 드린 말씀입니다.”
“쿨럭!”
“아이맥스, 3D! 좋습니다. 훌륭한 화질, 생동감 넘치는 입체 영상. 모두 인류 기술의 승리라 할 만하죠. 하지만,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우리 호텔 파이오니어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냥 말해줘…. 무슨 뜸을 이렇게 들이는데?”
“다름 아닌 관객 참여형 영화! 이것이 바로 호텔 시네마의 본질입니다!”
거대한 디스플레이 앞에 선 안내인은 감동적인 멘트를 던지기라도 한 것처럼 가볍게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크흠. 아무래도 관객 참여형 영화라는 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하신 듯하군요. 간단합니다. 호텔 시네마에는 총 3편의 영화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품질은 호텔이 자부할 정도로 우수합니다만…. ‘시나리오’라는 면에선 어딘가 꺼림칙한 면이 있는 영화들이지요.”
시나리오가 꺼림칙하다. 슬슬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여러분은 한 번에 1명씩 영화 내부의 등장인물로 빙의하시게 될 겁니다. 영화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겠습니까? 3D? 아이맥스? 집어치우세요! 영화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게 최고입니다! 이것보다 생동감 있는 영화감상이 있겠어요?”
이후로도 안내인은 한참 설명했다. 규칙으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생각은 없었는지, 안내인은 우리의 질문을 받아주기도 했고 애초에 모두에게 주어진 안내문도 세세한 부분까지 잘 설명되어있었다.
204호, 미션의 방 – 호텔 시네마의 진행 방식은 간단하다.
1. 호텔이 준비한 영화를 확인한다. 영화는 총 3편이며, 순서대로 진행한다.
2. 우리 중 1 명이 그 영화 내부로 들어간다. 축복과 유산 중 한 가지만 챙겨갈 수 있다.
3. 엔딩 크레딧이 오를 시점에서 괜찮은 결말을 만들어내면 성공!
4. 실패할 경우, 진입한 사람의 기회는 사라지며 두 번의 기회는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이 해당 영화에 다시 진입할 수는 있다.
5. 호텔 파티가 9명이므로 총 9회의 기회가 있다. 9회의 기회가 다 사라지기 전에 영화 3편의 결말을 모두 괜찮게 만들면 최종 성공이다. 이 경우 적절한 보상이 주어진다.
집중해서 듣던 은솔 누나가 약간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또 203호 같은 느낌 아니야? 또 개인플레이잖아!”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혀 다르지요. 이곳은 미션의 방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잊으신 건 아니죠? 혹시 재미가 없으시다면 때려치우셔도 됩니다!”
미션의 방과 저주의 방의 가장 큰 차이점. 미션의 방은 중간에 멈출 수 있다. 다만.
“이미 1층에서 해봤어. 보나 마나 실패한 사람은 모든 미션을 해결할 때까지 나올 수 없는 거잖아.”
“그것만 해도 저주의 방과 완전히 다르지요. 저주의 방에서 실패하면 여러분은 전원이 죽는데 호텔 시네마에선 실패한 1인만 갇힐 뿐입니다. 또, ‘모든 영화’를 통과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컨대, 은솔 양이 첫 번째 영화에서 좋은 결말을 얻어내지 못해 실패하셨다면 은솔 양은 갇히겠죠? 은솔 양을 구해내기 위해 세 영화 전부를 통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갇힌 영화만 통과하면 된다?”
“그렇지요. 이제 슬슬 규칙을 다 이해하신 듯합니다. 슬슬 무슨 영화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볼까요?”
황급히 손을 들었다.
“잠깐! 제일 중요한걸 설명하지 않았잖아! ‘괜찮은 결말’의 기준이 뭔데?”
“바로 그 부분을 이제 설명해 드릴 예정입니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영화관의 디스플레이가 빛나며 3편의 영화가 모두의 눈앞에 들어왔다.
1. 황태자 길들이기
2. 방벽의 수호자
3. 무서운 이야기
뭔가 알 것 같은 제목이다. 특히 1번이 그랬다.
“1번은 로맨스 영화인가? 2번은 뭐지?”
“전쟁영화라고 보시면 되겠군요. 여러분, 이 영화들의 제목을 보시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황태자 길들이기’라는 제목을 보면 적절한 결말이 짐작이 가시잖아요? 황태자가 내게 반하게 만들어야겠죠? 물론, 생존은 필수입니다. 참가자분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반드시 생존하셔야 합니다.”
“… 만약 1번에 내가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거야? 제목이 황태자에서 공주로 바뀐다거나 -”
“하하하! 가인 군이 들어가셔도 됩니다만, 황태자를 홀릴 자신이 있으신가요? 성 정체성을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닌 -”
1번은 반드시 여성이 들어가야 하는 것 같다. 최소한 내가 황태자를 길들일 자신은 없었다. 여하튼, ‘괜찮은 결말’의 조건은 간단했다. 말 그대로 제목과 장르를 고려할 때 ‘적절한 결말’을 만들어내고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생존해야 한다는 것.
다른 건 몰라도 ‘생존’이라는 단어를 듣자 짐작이 갔다. 아리가 한숨을 쉬었다.
“3번이 제일 어렵겠네. ‘무서운 이야기’ 이거 딱 봐도 공포영화잖아.”
은솔 누나는 영화의 제목을 봤을 때부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아니! 난 1번부터 황당한데? 황태자 길들이기? 이거 대체 무슨 유치찬란한 설정이래! 저런 놈을 길들일 자신 있는 사람? 일단 난 제발 빼줘. 난 차라리 공포영화에 가볼게.”
솔직히 1번 영화는, 제목을 보자마자 적절한 사람이 떠올랐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엘레나를 향해 이동했다. 배우 지망생, 화려한 미모의 소유자. 로맨스 영화에 등장하기에 가장 적절한 사람이 아닌가! 엘레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안내인을 바라보았다.
“시작하겠다고 하면 바로 시작인가요?”
“그 전에 ‘무슨 능력’을 챙겨가실지 선택하셔야 합니다. 축복과 유산, 하나만 챙겨갈 수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축복으로 할게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인간일 것 같고, 거짓말 탐지 같은 능력이 유용할 것 같네요.”
“좋습니다. 이제 시작할까요?”
안내인이 손을 가볍게 흔들자 영화관 디스플레이 전체가 불투명해졌다. 엘레나는 어딘가 헛웃음이 나온다는 표정을 지으며 디스플레이를 향해 걸어갔다.
통과하기 직전, 엘레나는 우리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먼저 가볼게요~!”
— 출렁~!
디스플레이가 진동함과 동시에 화려한 영상이 공간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우, 우리가 이제부터 엘레나가 나오는 영화를 봐야 하는 거야?”
“그럼요. 이 장소는 영화관 아닙니까? 다들 정신을 똑바로 집중해서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만약 엘레나 양이 실패한다면, ‘왜 실패했는가’를 이해하셔야 다음 사람이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요!”
불길한 말과 함께 첫 번째 영화, ‘황태자 길들이기’가 시작했다.
*
– 엘레나
흐릿한 의식이 서서히 돌아온다. 여긴 어디지? 그러니까 –
“아가씨! 아가씨!”
누군가 날 거칠게 흔들었다. 메이드 복장을 한 나이 든 여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빨리 일어나셔야지요! 오늘은 베를렌 공작가에서 파티가 있는 날이라는 점,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파티란 전쟁이랍니다. 지금부터 반나절을 꾸며도 시간이 부족해요!”
그러니까, 이제 나는 베를렌 공작가 어쩌고 하는 장소에서 여는 파티에 가서, 그놈의 ‘황태자’를 꼬시면 되는 거야?
“하아아.”
“아가씨?”
“정말, 별의별 일을 다 시키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생각하면 두려워요.”
“네?”
생각을 그만두고 흐름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대충 황태자에게 눈웃음이라도 쳐주면 되겠지. 좋게 좋게 말해도 내게 반하지 않는다면, 뺨을 한번 후려쳐볼까? 원래 상황이 애매하다 싶을 때 뺨을 후려치면 해결된다.
*
“좋게 좋게 말해도 내게 반하지 않는다면, 뺨을 한번 후려쳐볼까?”
엘레나의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나레이션을 들으며 모두가 침묵에 잠겼다.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벌써 불안한데?”
“에, 엘레나 언니! 다짜고짜 황태자를 패는 건 아니죠?”
“아니, 그보다 엘레나는 본인 생각이 나레이션으로 나오는 거 알고는 있는 거야?”
아무래도 이 방에서 모두가 아주 ‘부끄러운’ 경험을 많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