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9)
28화 – 103호, 저주의 방 – ‘동물농장’(2)
28화 – 103호, 저주의 방 – ‘동물농장’(2)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1일차현재 위치 : 계층 1, 103호(저주의 방 – 동물농장)
현자의 조언 : 3]
태어나서 지금처럼 두려운 순간이 없다.
산 채로 털을 뽑히다가 죽을 위기라니.
차라리 깔끔하게 목을 비틀어서 죽고 끝이라면, 그저 남은 오빠 언니들이 잘해결해주기만 믿고 마음 편히 죽을 텐데…
최대한 사육장 상태를 확인해봤다.
꽤 넓은 양계장 느낌의 공간에, 거위의 숫자도 무척 많다.
이 정도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내가 뽑힐 확률은 낮지 않을까?
그래도 혹시 몰라서 문에서 최대한 거리를 뒀다.
뒤뚱뒤뚱 걸어가다가 다른 거위의 부리나 엉덩이를 툭툭 치자 신경질 섞인 꽥 하는 소리가 나왔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미안 하지만 나 대신 죽어 주렴. 그래도 생각하는 거위는 살아야 하지 않겠니.
물론 거위의 털을 뽑는다고 꼭 죽 는 건 아니고, 오히려 대부분은 살겠지만…
어찌 됐든 내 털을 뜯길 수야 없다. 부리로 툭툭 쳐봐도 이렇게 보송보송한데. 절대 뜯길 생각 없다.
엘멍멍(엘레나) : 지금 가요!
늑대소년(박승엽) : 준비 완료
긴장감이 감돈다. 괜찮겠지. 이렇게 거위가 많고, 나는 심지어 구석에 있는데 굳이 날 찾으려들까?
부숭부숭한 털을 가진 아저씨 한 명이 들어왔다. 보자마자, 솔직히 좀 짜증이 난다.
니 털이나 뽑으라고 좀! 애먼 거위 털 뜯을 생각 하지 말고! 거위도 겨울엔 춥다고!
최대한구석에 엉덩이를 끼워 넣고, 부리로 다른 거위를 물어서 내 앞에 세웠다.
미안 해. 친구야. 날 지켜 주리라 믿어.
그게 실수였다.
“꽤애애애애애액!!!!!!!!!!”
그야말로 천둥같은 거위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변을 둘러보던 농부의 시선이 바로 나에게 와서 꽂혔다.
“뭐야 저거?”
“좀 전에 봤는데, 앞에 아이를 물더라구요.”
“허이고, 입버릇이 안 좋은 놈이 구만. 피터, 잘 봐두거라.
저런 녀석을 내버려 두면 사육장 안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다쳐서 난리가 나요.
저런 건 딱딱 솎아내야 된다. 알겠지?”
“네. 제가 잡아 올께요.”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치만, 앞의 소년이 대놓고 날 쳐다보며 일직선으로 걸어오는 걸 보고 깨달았다.
망했구나. 숨이 멎을 것 같아서 대화를 시도해 봤는데, 반응이 없다.
아, 대화량도 전부 소진된 거구나. 이제 정말 방법이 없다.
이윽고 소년의 단단한 손길이 내 몸뚱이를 붙잡아 들어 올리더니 나무상자에 밀어 넣었다.
난 여기서 털 뽑히다 죽겠구나. 심지어 언뜻 듣기로는, ‘솎아낸다?’ 털 뽑히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을지도 모르겠다.
103호에서의 끝은 거위고기행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에 사로잡힌 순간, 구원이 나타났다.
왈! 왈! 으르르르르 왈 왈!!!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개가 미친 듯이 짖는 소리, 늑대의 하울링.
너무나 명확한 상황에 농장 가족은 표정이 급변하며 거위 따위는 잊은 채로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피터!!!!!!! 네 방으로 들어가라! 메이는 방에서 나오지 말게 해라. 에이미! 내 총!!!!!!”
“내가 들고 가요! 당신 조심해요!”
“흥, 보니까 외톨이 늑대 한두 마리인 것 같은데, 오늘 혼쭐을 내주겠어!”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마도 엘레나 언니와 승엽이가 호흡을 맞춘거겠지?
당장은 살았다. 그치만… 어차피 상자 안에 있는데 의미가 있을까?
결국 늑대를 쫓아내고 와서 날 다시 잡아가는 게 아닌가.
늑대의 울음소리. 개의 울음소리. 허공을 가르는 총성.
분노로 가득 찬 농부의 외침, 비명 지르는 소녀, 흥분한 소년.
난리가 난 여러 사육장들까지…
농장 전체에 혼란스러운 시간이 30분 이상 지났다.
이런 대 혼란의 시간 속에서 다시금 도움이 찾아왔다.
탈카닥-
상자 위쪽이 열리는 순간, 깨달았다. 나, 살았구나.
기다렸다는 듯이 황금색 개가 내 목을 살짝 물더니 밖으로 밀어냈고,
근처에서 대충 비슷한 덩치의 거위 하나와 힘 싸움을 하다가 결국은 그냥 죽인 후 상자에 넣었다.
나 대신 죽을 친구구나. 조금 미안 하네. 그래도 이해하렴. 생각하는 거위는 살아야지.
그런데 아까 엘레나가 내 목을 들어서 옮길 때, 뭔가 빠직? 하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가 살짝 금이 가는 듯한 소리.
뭘까?
내 목엔 딱히 그런 소리가 날 만한 게 없는데… 잘못 들은 것 같다.
다들 날 위해서 이렇게나 열심히 최선을 다 했다. 특히 승엽이는 까딱하면 농부의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게 아니었는가!
설마 진짜 맞은 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기만 바란다. 모두에게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어디선가 음머어어어어 하는 소리도 들렸다. 가인오빠도 걱정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소가 놀라서 내지르는 소리일까.
숨을 죽인 채로 기다리고 기다렸다. 2시간 정도 지났을까?
동물이 된 후로는 시간 감각도 모호하다.
농장 가족이 하나둘 돌아왔다. 대단히 짜증 난 기색. 대충 듣기로는 늑대가 도망갔다는 말이 들린다.
승엽이는 잘 피했구나. 천만다행이다. 날 구하려다가 총에 맞아 죽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비극적인가.
조용히 사육장 구석에 숨어서, 농장 가족들이 상자에 다가가는걸 지켜보았다.
“음? 이 녀석이 왜 목이 꺾여 있지? 피터, 혹시 죽여서 담았니?”
“네? 그냥 목만 잡아다가 상자에 넣었는데요.”
“목이 꺾여서 죽었구나. 아마 갑자기 늑대가 와서 네가 실수한 것 같다.”
“어… 이상하네요. 다음엔 조심할게요.”
“뭐, 별일 아니다. 어차피 죽일 놈이었어. 입질이 심하니 별수 없지. 오늘은 이만 들어가자꾸나”
아아… 어떻게 어떻게 살았구나. 나 대신 죽어서 상자로 들어간 거위에겐 미안 하지만, 농장 부부는 나와 다른 거위를 구분하지 못했다.
사실, 개가 다른 거위를 죽여서 바꿔치기한다는 이상한 일은 보통 상상도 못 할테니 당연한 일이다.
내일 카톡이 회복되면 모두에게 짧게나마 감사를 표해야지.
고난을 이겨 내자, 긴장이 탁 풀린다.
멍하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해는 진작에 사라졌고, 슬슬 달빛이 세상을 감싸 안으며 구석구석 빛을 흩뿌린다.
아침에 아리가 전하기로는 이 세계에선 밤마다 도깨비가 나온다고 했지.
나도 이제 슬슬 모두에게 도움이 돼야 하지 않을까.
101호 – 기묘한 가족이야 승엽이 혼자 해결했다 쳐도, 그 후 수영장은 물론이고 탐색 임무나 102호 – 공포의 저택 에서도 내가 한 게 전혀 없다.
오히려 저택에 들어가자마자 빙의돼서 미친 짓만 하고 말았어.
심지어 103호에 와서도 이 모양이다. 누군가는 밤낮으로 정보를 모으고, 누군가는 거위가 털뽑히는 걸 구하겠다고 하울링으로 농부까지 끌어내는 데…
나는 아직도 사육장 안의 거위일 뿐. 대체 왜 나한테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역할 만 주어진 걸까.
아니, 그런 원망만 할 때가 아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찾아보자.
마침, 고통스러운 죽음의 위기를 막 피해서인지, 잠도 오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도깨비나 살펴보기로 했다. 아리의 말대로라면, 우리에게 별다른 관심은 없는 것 같으니까.
조용히 다른 거위를 부리로 툭툭 찔러서 밀치며 사육장 외곽의 바람이 통하는 장소로 움직였다.
짜증 나는 듯한 거위들의 불쾌한 반응. 미안 해 친구들. 근데 생각하는 거위는 할 일이 많아.
바깥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천지가 새카맣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아까 달빛이 있던 것 같은데, 구름이 가린 걸까.
아니면 거위의 시각이 생각보다 안좋은걸까.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니으아아꽤애애애애애애애액!
무언가 거대한 형체가 내려왔다.
본능적으로 꽤애애액 소리를 내지르며 깨달았다. 구름이 달을 가린 것이 아니다!
거위의 눈으로 보기엔 한없이 거대한 무언가가 사육장 바로 앞에 서 있던 것일 뿐!
너무 놀라서, 너무 무서워서 그냥 온몸이 얼어붙었다.
거대한 – 거인의 얼굴과도 같은 검은 형상이 내려와서 사육장을 바라본다.
아니, 사육장이 아니다.
저것은 ‘나’를 본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알았다. 저것은 나를 주목하고 있다.
온몸이 덜덜 떨린다. 이제서야, 내가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지 알았다.
제발 살려 줘.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그다음 일은 의외였다.
검은 형체에서 뻗어난 촉수 같은 것이 흐물거리며 내려와 사육장 안쪽으로 뻗더니,
밖으로 삐져나온 나를 툭 밀어 넣고 머리를 톡 치더니 사라졌다.
어딘가 친근감이 느껴지는 행동.
흡사, 애완동물이 집에서 나오려고 할 때 쓰다듬고 집어넣는 주인의 모습 같았다.
5분 정도 지나자 그제야 정신이 든다. 새인데도 뭔가 온몸이 긴장으로 흠뻑 젖은 느낌.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한 사육장.
이상하다.
어릴 때부터 개, 고양이, 앵무새까지 전부 길러봤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안다.
작은 동물들은 얼마나 겁이 많은가!
옷걸이만 떨어져도 비명을 내지르며 어깨에 날아와 붙는 앵무새,
로봇 청소기만 돌아가도 사람 다리에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강아지,
샤워 소리만 나도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가는 고양이.
작은 동물들은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안다.
수백만년에 걸쳐 선조로부터 받은 유전자가 그들에게 알려 줬으니까.
너희는 이 광대무량한 세계의 한없이 작은 모래알이니, 세상 전체가 곧 위험이라고.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가진 거위조차 두려워서 숨을 쉴 수가 없는 저런 공포스러운 것이 사육장 바로 옆까지 와서 촉수를 밀어 넣는데, 왜 이 사육장은 이렇게 조용할까.
모든 거위가 다 잠든 것도 아니다. 상당수 거위가 깨어 있는데도… 마치 아무 일 없던 것 같다.
내일 이야기해 봐야겠구나. 하지만 이야기한다고 해서 뭔가 결론이 나오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점점 수수께끼가 많아진다는 생각하면서 부리를 날개 사이로 집어넣었다.
점점 거위의 삶에도 익숙해지는구나. 그래도 내 털이 보송보송한 건 참 좋았다. 절대 뽑히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