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91)
290화 – 204호, 미션의 방 – ‘호텔 시네마’ (13)
– 차진철
솔직히 고백하겠다.
술이 식기 전에 저놈을 잡을 자신은 없어. 애초에 술이 펄펄 끓고 있기라도 했냐? 식는데 끽해야 10분도 안 걸릴 텐데, 그 짧은 시간에 저런 괴물을 잡을 리가 없다.
하지만 다들 이해하겠지.
남자로 태어나서 전근대 전쟁터에서 언월도를 들었다. 갈 때 가더라도 관우의 명대사 한번은 하고 가도 괜찮잖아?
… 현실적인 생각을 해보자. 저놈을 때려잡겠다며 나선 것이 나다.
쿠르타는 무르타니에와는 다르다.
그때처럼 여차하면 ‘기합으로 버티자’ 따위의 안일한 생각을 품고 달려들면 잘해야 3초 컷이겠지. 작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저 터무니없는 괴물의 약점이 대체 뭘까?
처음으로 주목한 것은 쿠르타가 뿜어대는 벼락이었다. 벼락이라고는 하나 하늘에서 내리치는 게 아니라 쿠르타가 자기 몸에서 방출하는 형태다. 쿠르타의 몸 주변에선 시퍼렇게 빛나는 길쭉한 전류의 흐름이 끊임없이 회전했는데, 그 모습은 흡사 반짝이는 실 가닥이 쿠르타의 몸 주변을 부유하는 듯했다.
그 실 가닥 중 하나가 갑자기 굵어지면 그게 바로 벼락의 신호다.
*
전방 30m, 이 정도면 저 놈에겐 코앞이네. 쿠르타가 내는 굉음 덕분에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다. 병사들을 학살하던 쿠르타의 눈이 내게 향했다. 괴수가 마치 내게 죽으러 왔냐고 비웃는 듯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쿠르타를 꿰뚫어 볼 기세로 노려본다. 무슨 행동을 취할 셈이지? 달려들어서 후려치기? 아니면….
벼락 공격?
쿠르타의 어깨 위를 흘러가던 백색의 실 가닥이 눈을 찌르는 듯한 광채를 뿜어내자 전신을 던지는 느낌으로 온 힘을 다해 대각선으로 뛰었다.
천지를 뒤흔드는 뇌전(雷電)이 한 발자국 차이로 스쳐 갔다. 피했는데도 화끈한 열기가 온몸을 지져버릴 듯한 위력!
하지만 나는 그 공격을 피했다!
적의 공격을 피했다면 이번엔 내게 기회가 오는 것이 순리다. 찰나의 순간, 벼락을 뿜어낸 늑대의 몸이 정지했다.
오른발을 반보 뒤로 움직이고 허리를 반 바퀴 비틀었다. 오른쪽 어깨를 있는 힘껏 뒤쪽으로 뻗었다. 몸 전체를 뒤틀며 용기의 축복이 내게 허락한 괴력을 한계까지 짜냈다.
한계까지 휘어진 활대가 단숨에 힘을 터트리듯이, 전신의 힘을 폭발시켰다. 사람의 몸에서 발생했음을 믿을 수 없는 폭음이 내 몸에서 터져 나오며 오른손에 들려있던 창이 허공을 갈랐다.
— 투 콰 쾅!
섬전처럼 날아든 창이 쿠르타의 어깨에 박히는 순간, 코끼리만 한 덩치를 자랑하던 늑대의 전신이 비틀거렸다.
그 순간만큼은 창을 던진 나 자신에 감탄했다! 창 한 자루를 던져서 코끼리만 한 늑대에게 유효타를 넣는 업적은 관우도 세우지 못했을 테니까!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머릿속에서 흉측한 괴성이 사람의 말처럼 들려왔다. 늑대 새끼가 무슨 텔레파시까지 써? 신의 사냥개라 가능한 건가?
고통에 떨던 쿠르타의 눈이 내가 아닌 자기 어깨를 향해 움직였다. 몸에 박힌 창을 뽑아낼 생각이구나. 늑대의 시선이 내게 떠났음을 인지한 순간, 본능이 내게 말했다.
하늘이 내린 기회가 왔다!
달렸다. 생각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생각했다.
어째서지? 왜 내 본능은 지금 저놈에게 달라붙으라고 했지? 차라리 멀리서 투창이나 던지는 게 낫지 않나?
아니다.
저 괴물을 상대로 거리를 벌리며 창을 던져대는 것 따위는 의미 없다. 애초에 기동력이 압도적으로 차이 나기 때문이다. 방금의 일격은 쿠르타가 방심해서 당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달라붙어야 한다. 근처에서 싸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저놈의 몸에 올라타야 한다.
어째서?
오래전, TV에서 봤던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머리를 스쳤다. 몽골 사람들은 예로부터 매나 독수리를 부려 늑대를 사냥했다고 하지.
맹금류가 강인한 동물이라 하나, 덩치 큰 늑대에 비하면 체중 차이가 다섯 배에서 열 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맹금이 늑대를 사냥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갯과 동물의 신체 구조상 한계 때문이다. 앞발이나 입으로 등 위에서 오는 공격을 막아낼 수 없으니 위에서 덮치는 맹금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늑대가 덩치만 커진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쿠르타에게도 비슷한 약점이 있기를 빌었다. 이빨로 창을 뽑아낸 늑대의 옆에서 전력을 다해 점프하며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이 괴물 늑대가 난데없이 앞발을 원숭이처럼 뒤로 뻗는다거나 등 뒤에 숨겨진 다섯 번째 다리가 튀어나오는 일 따위가 없기를!
그런 일은 없었다. 2차전이 시작됐다.
*
쿠르타의 등에 올라타자마자 시퍼렇게 빛나는 백색의 열선이 눈앞을 스쳤다. 흡사 줄넘기하는 느낌으로 또 한 번 뛰어서 열선을 넘자, 체공시간 동안 쿠르타가 움직이는 바람에 떨어질 뻔하고 말았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를 악물고 늑대의 연필만 한 두께의 털을 움켜쥔 후, 온 힘을 다해 주먹으로 등짝을 내리쳤다!
뭐? 코끼리만 한 늑대? 지금의 내가 내리치는 펀치는 코끼리도 놀라게 할 위력이다, 이 말이야!
— 쿵! 쿵!
연거푸 펀치를 내리쳤다. 어찌나 힘이 강했는지 내가 휘두른 펀치의 반동에 내 몸 전체가 허공에 떠오를 기세다. 허벅지와 장딴지에 힘을 담아 양다리로 늑대의 상체를 붙들고 –
“아 씨발!”
또다시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는 빛의 덩어리가 다가왔다!
아니, 이 새끼는 저런 힘이 자기 몸 주변을 날아다녀도 안 뜨거운가? 하기야 벼락을 부리는 늑대가 본인의 벼락에 타죽으면 그것도 웃기긴 하다.
이번엔 상반신 전체를 늑대의 털 속으로 숨겼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백색의 광휘는 쿠르타의 몸 주변을 부유할 뿐, 아예 털 속으로 파고들어 날 태우려 들진 않았다. 벼락이 근처를 부유하는 정도를 넘어서 신체 내부에 파고들면 쿠르타 본인도 버틸 수 없는 듯했다.
위기를 넘긴 나는 다시 전력을 다해 쿠르타의 등짝을 후드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세게 휘둘렀는지, 무르타니에에게 쇳덩이 같은 내구성이라는 평가를 받은 전신의 뼈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 크르렁!
쿠르타의 고함이 전장을 뒤흔든다.
그 울음, 그 비명은 이전의 괴성과 명백히 달랐다. 신의 사냥개조차 견디기 힘든 고통의 감정이 울음에 섞여든 것이다.
흡사 콘크리트를 연상케 하는 쿠르타의 등짝을 쉼 없이 두들기자 마침내 내 주먹도 한계에 도달했다. 아예 피부가 벗겨지고 왼손 검지는 통째로 으스러지더니 손가락뼈가 보일 지경이 되고 만 것.
이빨이 으스러질 기세로 악물었다. 지금 이 괴물 늑대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몸 전체가 기우뚱하더니 세상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으, 으엇! 이게 대체 무슨 -”
상황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쿠르타는 단순히 몸을 흔드는 것만으로는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날 떨어트리기 어렵다고 판단해 아예 돌바닥에 뒤로 드러누워 등을 비비기 시작한 것이다!
늑대의 몸이 뒤집혔고, 고개를 뒤로 돌린 내 눈에 돌로 가득한 자갈밭이 들어오자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죽는 건가? 코끼리만 한 늑대의 체중이 내게 실리며 돌바닥에 갈리면서? 뒤져도 하필 이렇게 끔찍하게 죽을 줄이야!
…
끔찍한 최후를 상상하며 공포에 떨었던 나도, 등 뒤의 야만적인 원숭이를 돌바닥에 긁어내려던 늑대도 한 가지 놓친 점이 있었다.
늑대는 사람과 달리 전신에 두꺼운 털이 있는 생물이다. 쿠르타 또한 두께는 연필만 하고 길이는 내 다리보다도 긴 털들이 전신에 솟아있었다.
쉽게 말해 난 돌바닥에 갈리는 대신 늑대의 털 속에 깊이 박히고 말았다. 단단하면서도 날카로운 쿠르타의 털 일부가 바늘처럼 상반신에 마구 박혀 들어갔지만, 돌바닥에 갈리는 것보다야 1,000배는 나은 상황이지.
짓누르는 압력으로 인해 내 얼굴이 쿠르타의 등짝에 파고들었다.
간신히 다리는 물론 팔까지 써서 주변의 털과 살을 움켜쥐며 균형을 잡자, 이미 주먹으로 수십 대를 내려쳐 살점이 반쯤 뜯어진 장소에 얼굴이 닿았음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양 팔과 양다리 모두를 늑대의 몸에 매달리는데 쓰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공격할 수 있는 수단 하나가 남았음을 깨달았다.
대자연을 살아가는 야수들의 가장 원초적인 무기, 입! 나는 상반신을 털 속에 박은 김에 아예 늑대의 등을 물어뜯었다!
진짜 별 지랄 다 하는구나. 늑대가 사람을 물었다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사람인 내가 늑대를 물어뜯을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생전 처음으로 적을 입으로 물어뜯으며 깨달은 사실인데, 사람의 입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공격 수단이었다. 이렇게까지 온 힘을 다해 뭔가를 물어뜯은 적이 없어서 몰랐을 뿐이다. 축복이 강화한 내 턱 힘은 인간의 턱 힘보다는 악어나 하이에나의 그것에 가깝지 않을까?
뭉툭한 살점을 뜯어내는 순간 머리를 찢을 듯한 소음이 들려왔다.
‘야만적인 새끼! 산채로 튀겨 주마!’
와 쓰벌!
이제 살다 살다 늑대에게 야만적이라는 소리까지 듣는구나! 오늘 이 개새끼의 척추를 뽑아서 감자탕을 끓여 먹고 말겠다!
붉은 피가 펌프처럼 뿜어져 나오는 상처를 양팔로 벌리며 다시 입을 들이미려는 그 순간 – 갑자기 늑대의 몸이 크게 흔들리며 다시 늑대가 똑바로 섰다.
동시에 뻣뻣하게 선 털이 내 몸을 사방에서 찔러왔다. 등에 힘을 강하게 준 것 같다. 의도가 뭘까? 설마 털로 찔러서 날 죽일 셈인가?
정신 차렸을 때, 전신을 휘감은 뻣뻣한 털 때문에 내가 전혀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달았다. 기다렸다는 듯, 허공을 부유하던 시퍼렇게 타오르는 광휘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쿠르타의 의도를 이해했다. 마침내 신의 사냥개가 벼락의 힘으로 들러붙은 나를 태워죽이기로 한 것이다.
쿠르타의 몸에 찰싹 달라붙은 나를 벼락으로 지지려 들면 쿠르타 본인의 몸도 크게 다치겠지. 하지만, 덩치를 고려할 때 쿠르타가 죽기 전에 내가 죽는다.
몸 전체가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쿠르타가 등 근육에 힘을 주며 털에 담은 물리력이 강하기도 했지만, 애초에 내 몸이 너무 망가진 탓이다. 이미 양손은 여기저기 손가락뼈가 보일 지경이었고, 다리는 사방에 구멍이 뚫려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벼락의 힘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가 되어서야 받아들였다. 끝이구나. 역시 이 미친 괴물은 내가 이기긴 무리였던 모양이다.
…
‘조금 도와줄게.’
?
‘보고 있다 보니 조금 답답했어.’
이게 무슨?
‘일찍이 사람의 몸이 품은 불완전함에 절망했다. 그 불완전성을 메꿀 수 있는 진화는 너무나도 느리구나.’
“너, 너는 대체 누구냐?”
‘그러므로 나는 마음먹었다. 100만 년의 진화를 단 한 순간에 이루겠노라고.’
피부가 들끓기 시작했다.
근육이 뒤틀렸다.
뼈가 흔들거렸다.
몸 전체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해가는 격통 속에서 –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고!”
‘나는 대체 누굴까?’
흐릿한 환영 속에서 스치는 소녀는 정말로 궁금해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