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92)
291화 – 204호, 미션의 방 – ‘호텔 시네마’ (14)
– 차진철
벼락이 나를 후려치는 순간, 온 세상을 불사를 듯한 빛의 폭풍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흡사 섬광탄에 맞은 사람처럼 시야 전체를 가득 채운 빛의 폭력 속에서 그저 떨고 또 떨었다.
단지 한 가지 사실만큼은 명확히 깨달았다.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용기의 축복으로 강화한 내 몸, 인간을 초월한 내구성을 지닌 것은 맞으나 분명 한계가 있다. 적어도 이런 벼락에 산채로 타오르면서까지 멀쩡히 생각할 정도는 아니다.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내 몸에 일어났다.
서서히 빛이 사그라든다. 동시에 감각이 전반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몸 전체가 위아래로 진동 중이었다. 반쯤 타버린 쿠르타의 몸뚱이가 아직도 그 질긴 목숨을 이어가고 있던 것이다.
내 몸은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흑요석처럼 검고 단단한 비늘 같은 무언가가 전신의 피부를 대체했다. 눈과 귀에도 변화가 생겼다.
혼란에 빠진 채로 쿠르타의 머리 쪽으로 올라가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너는 대체 누구인가. 내 반신이 불타오를 때까지 지졌는데도 너는 멀쩡하고 나는 이 꼴이 되었구나.’
“쿠르타냐?”
‘그러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인마, 넌 모르겠지만 내 머리에 말을 거는 사람이 하나 더 있어서 그래.”
‘…’
“질긴 목숨, 이만 끊어주마.”
‘하늘의 주인님….’
마지막 순간, 신의 사냥개는 그 주인을 찾으며 죽어갔다.
쿠르타의 두개골이 터짐과 동시에 새파란 불빛이 개의 몸뚱이에서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어쩌면 하늘에 있다는 누군가가 사냥개의 혼을 거뒀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이상은 내 알 바 아니다.
“와아아아아!”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
몸서리치는 폭력의 화신, 쿠르타에게 짓밟히며 절망하던 병사들이 외치는 감격의 목소리가 전장을 가득 채웠다.
이 순간의 감정을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기쁨? 보람참? 환희?
도저히 특정한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냥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응축된 감정이 목을 간질였다.
“으아아아아!”
나도 모르게 미친 듯이 포효하자 병사들이 따라서 같이 포효했다. 아마도 이 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 하리라.
다만, 마음속에 한 가지 걱정이 생겨났다.
*
총사령관, 호국 대장군의 막사로 돌아가자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전장의 병사들이야 내게 수십 미터에서 수백 미터는 떨어진 상태다. 그들은 그저 쿠르타가 죽은 것을 보고 내가 기적을 일으켰구나 싶어 함성을 질렀을 뿐이지.
내 몸의 상태가 어떠한지는 대부분 보지 못했다는 의미다. 훨씬 가까이서 날 관찰할 수 있는 대장군의 막사로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함성을 지르던 장군들이 기이하게 변모한 내 몸을 보고 입을 반쯤 벌리며 어쩔 줄 몰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오면서 계속 생각했지만 명쾌한 답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죽은 존재의 핑계를 대기로 했다.
“차 장군! 그 몸은 대체….”
“쿠르타.”
“뭣?”
“쿠르타가 내게 저주를 걸었소. 감히 하늘신의 충견에게 이빨을 드러낸 죄를 묻겠다 했지.”
“그, 그런!”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이런 개소리가 통할까 싶었는데, 통했다. 두려운 기색으로 날 살피던 장군들이 곧 다가와서 제국 수도로 돌아가면 고칠 방법이 있을 거라며 위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기야 장군들이 생각하기에 쿠르타라는 황당한 괴물은 번개를 휘두르는 코끼리만 한 늑대다. 인간을 저주하는 힘이 있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할만했다.
분위기가 살짝 풀리자 호국 대장군이 내게 슬며시 웃었다.
“차 장군, 이리 와서 술잔을 드시게. 몸이 변하긴 했으나 술은 들 수 있지?”
… 술잔.
그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물론, 붉어지는 기분이 들었다는 말이고 시꺼먼 갑옷 같은 것으로 뒤덮인 내 얼굴이 진짜 붉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 라니!
진짜 뭔 그런 말을 했냐? 너무 분위기에 취했던 것 같은데?
… 하지만 후회는 없다.
한번 사는 인생, 그런 대사를 할 만한 기회가 여러 번 오겠냐?
“하하! 아쉽게도 술은 다 식었겠군요. 조금 더 일찍 왔으면 -”
“무슨 말인가? 그대는 술이 식기 전에 돌아왔다네.”
호국 대장군은 술잔을 난로 위에 올려둔 상태였다. 그 순간만큼은 대장군의 센스에 감탄이 나와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술과 고기를 즐기는 연회가 열렸다.
쿠르타에게 저주받았다는 핑계가 이미 군영에 퍼져나갔는지, 병사들은 날 보며 움찔거리긴 했으나 피하거나 괴물을 대하듯이 행동하진 않았다.
…
“이봐.”
…
“대답해. 내게 말 걸 수 있잖아? 보나 마나 조금 있으면 ‘다음 장면’일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장면이 넘어가는 순간까지도 ‘마녀’로 추정되는 존재는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밖으로 나가는 즉시 한 번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
차진철의 몸이 기괴하게 변이하자 극장의 관객들은 모조리 혼란에 빠졌다.
“뭐, 뭐야? 저거 대체 뭐야? 진철이 별 가져갔어? 아, 아닐 텐데?”
당황하는 은솔과 달리 묵성은 태연한 태도로 말했다.
“영화 내 전개 아니냐? 주인공에게 신이라도 내렸나?”
아리는 갸우뚱한 반응을 보였다.
“갑자기? 너무 뜬금없는데. 그보다 저런 변화는 아무리 봐도 신성한 변화는 아닌 것 같은데.”
칠흑 같은 비늘로 뒤덮인 차진철의 외형을 본 승엽은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저거 완전 영화관에서 본 블랙 팬서랑 닮았네요! 비슷한 연출인가요?”
잠시 후, 차진철이 ‘쿠르타의 저주’라고 언급하자 동료들은 다시금 혼란에 빠졌다. 밖에서 보는 그들의 눈에 쿠르타가 저주를 거는 장면은 단 한 컷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점, 차진철의 변화보단 영화의 전개 자체를 주목하던 가인이 크게 짜증을 냈다.
“아 진짜! 슬슬 결말인가 했더니 또! 호텔 이 새끼들이 전개에 약을 탔나!”
*
— 덜컹!
강철 수레가 돌부리에 걸리며 나는 소리다.
— 철컹!
좁디좁은 수레가 힘겹게 움직이며 내 몸이 연신 주변의 쇠에 부딪히는 소리다.
…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조금 전, 그야말로 폭풍같이 진행된 영화 속 전개를 요약하면 간단하다. 연회가 파할 때쯤, 눈 한번 감았다 떴더니 상당한 시간이 흐르며 눈앞에 주홍색 장포를 두른 황제의 신하가 나타나 외치기 시작했다.
“죄인, 차진철은 어명을 받들라! 오호 통재라! 그대가 만백성을 속여 초원의 도적들과 내통했음이 온 천하에 드러났노라. 그대의 사악함은 마침내 그 타락을 숨기지 못하고 육신에 드러났으니 -”
대충 주절주절하는 소리를 요약하면 간단하다. 내가 초원의 유목민들과 내통해서 제국에 위기를 불러왔다는 소리다. 황제의 신하는 그 말과 함께 이동식 감옥에 날 가둔채로 데려온 병사들을 이끌고 수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아무리 황제라도 이런 생억지를 쓸 수는 없었다고 본다.
문제는….
살짝 고개를 돌려 천장의 쇠에 내 모습을 비추었다. 누가 봐도 사람이 아닌 기묘한 존재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릴 때 자주 봤던 특촬물의 빌런과 닮은 모습.
“나름대로 멋있네.”
진짜다.
내 눈에는 나름대로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 세계의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조금만 생각해도 답이 떠올랐다. 지금 상태에선 황제가 그냥 무슨 개 잡소리를 지껄이며 내게 죄를 덧씌워도 죄다 말이 된다. 그냥 내 몸 자체가 증거가 되리라.
전장에서 함께 싸웠던 장군들이야 나에 대한 믿음, 아니 믿음을 넘어 숭배심에 가까워진 마음이 너무나 컸기에 쿠르타의 저주라는 내 변명을 믿어줬다.
그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는 수도의 황제나 신하들이 내 말을 믿을까?
애초에 지금의 나는 ‘전쟁 영웅’이니 훨씬 사소한 이유로도 날 견제하고픈 사람이 넘칠텐데, 이런 ‘적절한 명분’까지 만들어졌으니 그들이 용납할 리 없겠지.
대체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휴식!”
…
행렬이 멈추자 요동치는 강철 수레도 멈췄다. 그때, 바깥에서 요란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대체 뭔 일이여?
이동식 감옥에 갇힌 상황이다 보니 바깥의 상황이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군사가 창칼을 부딪치며 싸우는 소리만 들려왔을 뿐!
이게 뭐지? 지금 날 압송 중인 존재는 황제의 신하가 아닌가? 수도로 가는 대로에서 황제의 신하를 대놓고 공격해? 내가 역사에 대해 잘은 몰라도, 이런 짓은 무조건 역적질인 건 안다!
그냥 감옥 부수고 나갈까?
솔직히 이따위 감옥, 한 팔만 있어도 손쉽게 부술 자신 있다. 여태 이런저런 생각을 여유롭게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감옥 문을 열기 전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엇, 어엇!”
“뭘 그리 놀라는 게야?”
익숙한 노인, 호국 대장군이다.
“아니, 지금 내가 대역죄인 아닙니까? 이렇게 문 열고 막 들어와도 됩니까?”
“겨우 문짝 좀 열었다고 놀랐나? 이건 안보이고?”
노인은 피식 웃으며 동그란 물체를 내 쪽으로 굴렸다. 아까 전, 헛웃음 나오는 소리를 지껄이던 황제가 보낸 자의 목이다.
“자네, 솔직히 말해보게.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쇠창살 부수고 나갈 수 있었지?”
“…”
“자네 싸우는걸 몇 번을 봤는데 내가 그걸 모르겠나. 수도에서 내려온 머저리들이나 자네가 정말 갇혀있는 줄 착각하는 것이지. 그래서 자네가 언제 나오나 관찰 중이었는데, 하도 나오지 않길래 내가 직접 왔네.”
“…”
“대체 왜 머저리같이 앉아있던 게야? 이대로 있을 셈인가?”
“그러면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뭘 해도 해야지. 뭐, 자네 마음속에 충심이 그득해서 얌전히 죽을 셈이면 굳이 말리진 않겠네.”
“…”
“자네가 모르는 것 하나 알려주겠네.”
“제가 모르는 것이라 함은….”
“지난 몇 달간 자네 막사에서 독살 시도만 세 번이었지?”
“두 번 아닙니까?”
“세 번이야. 한번은 자네 없을 때 시종들이 발견했지. 여하튼, 배후가 누구라 생각하나?”
“저도 그게 궁금 -”
“이 친구야! 왜 이리 감이 없어? 설마 초원의 악도들이라 여겼나? 그들은 늑대 소환하자고 황족 80명이 끓는 기름에 뛰어들 만큼 수세에 몰렸었어. 놈들이 제국의 장군이 먹는 식사에 수작을 그리 쉽게 부릴 수 있겠는가?”
머리가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전란의 위기에 처한 제국, 난세에 일어선 전쟁영웅. 수많은 영화에서 골백번 우려낸 사골이 아닌가? 그 사골에 항상 첨가되던 핵심 요소가 뭐겠어?
‘황제의 견제’
이게 없을 리가 없잖아!
“이 선조 같은 새끼가 진짜!”
“선조?”
“… 아닙니다. 대장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이런 도움을 주시는지요?”
노인은 어딘가 아득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반평생 방벽을 지키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쳐왔네. 여름에는 곡식을 털기 위해, 겨울에는 사람을 납치하기 위해 덮쳐오는 도적 떼를 막아왔지. 한데, 옥좌에 앉아계신 그분은 실력 있는 장수만 나왔다 하면 밥에 재미난 걸 섞느라 바쁘시다네.”
그럴듯한 장수가 나올 때마다 황제가 독살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거 선조보다 세배는 더한 새끼구나.
이쯤 되자 비로소 머리가 맑아졌다.
첫 번째 영화에서 송이가 어느 순간 자신이 도달할 결말을 직감했듯이 나 또한 내가 도달해야 할 결말을 깨닫고 말았다.
… 옥좌에 앉아있는 자가 선조라 해서 내가 이순신이 될 필요는 없겠지.
미안하지만, 이제부터 위화도 회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