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94)
293화 – 204호, 미션의 방 – ‘호텔 시네마’ (16) – 2편 Fin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3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204호 – 미션의 방, ‘호텔 시네마’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뭐, 뭐죠 이거?”
너무나 당황한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지!
“이게 뭔데 호텔 병신아!”
아리는 대놓고 욕설을 내뱉었지만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의 생각이 똑같았거든.
아니 진짜 이게 뭐냐? 그냥 멀쩡하고 스펙타클한 액션영화로 잘 가는 중 아니었어?
후반부에 갑자기 수도 공격으로 급선회한 게 의외이긴 했지만, 전쟁영웅이 황제와 충돌하는 건 그럴만한 전개라 생각했다. 근데 결말에서 갑자기 황제 시체만 살아 움직여? 발모제 광고?
“진짜 내가 뭘 본 거죠? 이해하시는 분?”
살다 살다 이렇게 황당한 영화는 본 적이 없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정신 차린 은솔 누나가 의견을 냈다.
“다들 아까 알림 떴지?”
“알림이요?”
“정신이 없어서 못 봤니? ‘벽력을 견디는 투사의 털’을 획득하셨습니다! 이런 알림이 영화 후반부에 떴어.”
못 봤다. 솔직히 영화가 결말에서 갑자기 미쳐 돌아가서 구석에서 흐릿하게 깜빡이는 알림 따위를 볼 정신이 아니었다.
“벽력을 견디는 투사의 털이라면, 윙 부츠 재료네요.”
“맞아. 그래서 든 생각인데, 아무래도 영화 중간의 ‘변신’ 때문인가 본데?”
그 말을 듣자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쿠르타와 싸우면서 진철 형이 벽력을 견뎌낸 투사가 되었으니까 형의 머리카락이 곧 보상이다?”
“그런가 봐. 그런데, 싸우다가 갑자기 가면라이더 같은 이상한 존재로 변했잖아. 그래서 머리카락이 사라졌으니 갑자기 발모제 광고를 삽입해서 억지로 머리카락을 만든 거지.”
누나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던 할아버지가 황당해했다.
“변신하는 건 영화 속 전개 아니었나? 아니, 머리카락이 보상인데 왜 머리카락을 없애는 변신이 영화 속 전개에 있는 거야?”
맞는 말이다. 머리카락이 보상인데 머리카락을 없애는 변신이 영화 도중에 나온다? 말이 안 되는데?
변신이 영화와 무관한 무언가가 아니고서야!
그때, 특유의 딴따라 딴 하는 소리와 함께 심사위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심사위원들의 분위기는 어제와 미묘하게 달랐다. 기념품 소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들 생각도 하지 않았고, 상인은 어딘가 벙 찐 분위기로 천장만 바라봤다.
어느새 조용해진 분위기. 항상 떠들썩한 상인조차 입을 꾹 다문 분위기 속에서 이번엔 기념품 소녀가 먼저 조심스레 팻말을 들었다.
“난…. 합격으로 할게.”
“뭐?”
당황한 소리는 우습게도 우리 쪽에서 나왔다. 이런 병신같은 결말을 살면서 본 적이 없는데 합격이라고?
“겨, 결말만 빼면 좋은 스토리였다고 생각해. 특히 액션신이 인상 깊었달까? 쿠르타를 잡은 부분! 칭찬하고 싶어. 솔직히 그 부분은 정석적인 전개는 아니었지만, 실력으로 이겨냈으니 더 인상 깊네. 그 뒤의 왕위 찬탈도 괜찮았어. 전쟁영웅이 황제를 몰아내는 결단이 마음에 들었어.”
아리가 슬쩍 질문했다.
“정석적인 전개는 뭐였어요? 난 쿠르타가 나온 순간 실패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괴물을 이 악물고 때려눕히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기념품 소녀는 답하지 않았다. 심사위원의 평가가 탈락이라면, 다음 사람이 또 들어가야 한다. 정답을 알려줄 수야 없겠지.
가장 어려우리라 생각했던 기념품 소녀가 시원하게 합격을 주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상인이야 뭐, 황당한 스토리를 좋아하니까 –
“난 불합격입니다.”
“으아아악!”
“뭔데 이 새끼야! 너 병신같은 결말 좋아하잖아? 내 환갑이 넘도록 이런 개코같은 결말을 본 적이 없다!”
아니, 이 새끼가 갑자기? 황급히 손을 들었다.
“왜 불합격입니까! 심사위원님은 황당한, 아니, 개성 있고 특이한 줄거리를 고평가하신다면서요!”
갑자기 상인이 휘리릭 돌더니 딱딱한 인상의 교수님처럼 변했다. 어이없어하는 것도 잠시, 말투까지 평소와 달라진 채 답했다.
“허허…. 한가인 참가자. 대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 중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좋아하는 건 그냥 아무렇게나 끄적인 불쏘시개 같은 전개가 아닙니다.”
“예시라도 좀 들어봐! 뭐가 되고 안되는지!”
“안되는 예시? 딱 떠오르는군요. 멀쩡히 재벌 가문을 집어삼켜 가던 주인공이 결말에서 갑자기 트럭에 치여 죽고 모든 게 꿈이었구나~ 한다고 제가 합격이라 할 것 같습니까? 그냥 불쏘시개 결말이지.”
조용히 있던 엘레나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아니, 제가 황태자를 저울로 찍어 죽였을 때도 합격 주셨다면서요!”
“차진철 참가자가 호국 대장군이나 다른 장군을 찢어 죽였으면 합격 줬을 겁니다!”
“갑자기 아군을 왜 죽여요? 아군을 죽이면 합격인데 탈모 광고는 불합격인가요?”
“딱 봐도 다르지 않습니까? 전자는 신선하고, 후자는 병신같죠.”
“뭐가 다른데요!”
갑자기 상인이 테이블을 넘어트리며 벌떡 일어섰다.
“내가 보기에 다릅니다! 내가 보기에 달라!”
저 새끼가 또 뭐라는 거야?
“기준을 말해달라고 했더니 다짜고짜 내가 보기에 다르다니 -”
“이제 내가 하늘에 서겠다! 세상의 기준은 나다! 내가 보기에 아니면 아닌 겁니다!”
이 시점에서 아리가 의자를 집어던졌다.
“야! 솔직히 결말 우리가 망친 거 아니잖아! 니네가 망친 거 아니야?”
“응~! 내가 망친 거 아니야! 결말 합쳐서 평가할 거고 꼬우면 심사위원 하든가!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불합격이고 난 갑니다!”
그 말과 함께 상인은 진짜 어디론가 사라졌다. 장내에 적막이 감돌며 우리는 말문을 잃었다.
“저, 저, 저, 저 새끼 방금 뭐라고 한 거냐?”
“…”
모두가 넋이 나간 분위기 속에서 신비의 장인이 조용히 팻말을 들어 올렸다.
“X네.”
아리의 말을 들은 누나가 한숨을 쉬었다.
“아…. 진철이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불합격이라고? 진짜 이건 좀 –”
일단 손을 들었다. 항의하지 않으면 불합격 확정인 만큼 우선 멈출 필요가 있으니까.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대체 저놈의 기준은 뭐지?
우리는 첫날부터 레고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조언까지 썼다.
‘레고는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보라.’
레고는 어떤 존재일까?
호텔 밖, 스노 글로브에서 찾아낸 신비의 장인은 발견 당시부터 생물이 아니라 장난감이었다. 내부에서 활성화한 후로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로봇에 가까운 존재였다.
“레고는.”
“가인아?”
어느새 옆에 다가온 아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고는 지성이 없어.”
“뭐?”
“레고는 장난감이잖아. 지성이 없어. 신비의 장인은 소통할 수 없다고! 지능이 없는 로봇이 어떻게 판정을 내릴 수 있겠어?”
황당한 생각이 떠올랐다. 경험상 호텔에선 이런 황당한 생각이 정답일 때가 많다. 손을 들어 판정 과정을 중단시킨 채 레고 쪽으로 다가갔다.
마침, 레고 옆에 있던 상인은 미친 소리를 지껄이다 사라졌다. 기념품 소녀는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우리를 모른 체 하는 중이다.
레고가 x자 팻말을 들어 올린 손이 보이는 위치까지 다가갔을 때, 나는 반투명한 실을 발견하고 말았다.
“… 이건 대체 뭐야?”
일단 실을 발견하자 그다음은 금방이었다. 귀찮게 실을 잡고 따라갈 필요도 없이 누나의 눈이 순식간에 실의 경로를 쭉 따라갔고….
모두의 시선이 이 자리에 있던 세 번째 NPC이자 ‘진짜 심사위원’, 안내인을 향했다.
“…”
“…”
“딴 따라단!”
“너…!”
뭐라고 화를 내려던 할아버지는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마음이 너무 이해가 갔다. 이 와중에 ‘딴 따라단!’ 하는 효과음을 내는 놈에게 짜증 내서 뭘 어쩌겠는가?
공자님께서도 길 바깥쪽에서 똥을 싸는 자는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있으니 고칠 수 있다 하시며 훈계하셨지만, 도로 한복판에서 똥을 싸는 자는 훈계의 의미가 없다고 하시며 피해 가시지 않았는가.
아리가 한없이 지친 표정으로 물었다.
“… 좋아요. 신분을 감춘 세 번째 심사위원님. 당신의 기준은 뭐길래 계속 불합격을 주시는 건가요.”
“간단합니다. 전 해피엔딩을 좋아하거든요.”
“해피엔딩?”
“물론 불가능한 결말을 바라진 않습니다. 전쟁영화인데 사람이 아무도 죽지 않을 수는 없죠. 그것까진 인정! 하지만, 주요 인물들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으면 좋겠군요. 차진철 참가자의 경우 황제를 자살하게 만든 것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굳이 ‘위화도 회군’을 해야 했습니까?”
“아니, 황제가 죽이려 드는데 뭘 어쩌라고!”
“암살 시도를 막아낸 후 은거하는 방법도 있죠. 아니면 진솔한 대화를 통해 개과천선 시키는 방법도 있고, 기습해서 가둔 후 자살하진 못하게 하는 방법도 있고요.”
세 번째 심사위원, 안내인은 의외로 명쾌한 기준을 제시했다. 주요 등장인물 전원이 해피엔딩을 맞이하길 바란다는 것. 악당이라 해도 죽이기보다 감화하길 바라는 유형이다.
무작정 억지를 쓰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나름의 대체 플롯도 말해주자 무어라 반박해야 할지 떠올리기 힘들었다.
진솔한 대화를 통한 개과천선 어쩌고는 개소리 같긴 한데, 암살 시도를 막아내고 은거한다? 진철 형이 마음먹었다면 그런 쪽 스토리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 같긴 하다.
그렇다고 왜 이런 답답한 전개를 선호하냐고 따지긴 힘들다. 보나 마나 본인 취향이라고 할 테고, 취향이라는데 뭐라 말하겠어?
내가 우물쭈물하던 중, 옆에서 아리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황제가 죽어서 아쉽다는 거죠?”
“단순하게 말하면 그렇지요.”
“안 죽었는데요?”
“예?”
“심사위원님은 저랑 다른 영화 봤나요? 황제가 결말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장면 보지 못했어요?”
아리 얘는 또 뭐라는 거야?
“허허! 김아리 참가자, 또 궤변을 늘어놓으시려 하는군요. 그건 영화의 일부가 아니라 광고 -”
“광고? 영화 도중에 광고가 왜 나오죠?”
“베트남이나 인도에선 -”
“그건 베트남이나 인도 이야기죠. 여기가 인도인가? 지금 우리 한국어 쓰는 중인데요? 안내인, 영화 시작할 때 분명히 이렇게 말했죠? ‘호텔 파이오니어는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를 자부한다’라고!”
“그, 그렇게 말하긴 했-”
“그러면 기준도 세계 최고로 잡아야지! 세계 영화시장 1위 미국, 2위 중국, 3위 일본, 4위 한국, 5위 영국! 이 국가 중 영화 도중에 죽은 등장인물이 움직이면서 광고 트는 미친 나라 있으면 하나라도 뽑아봐!”
안내인이 당황해서 어물거리던 차, 아리는 더욱 기세를 드높였다.
“설마 7위 인도 이야기 꺼낼 생각 아니죠?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호텔이 7위 시장 기준 끌어오는 일은 없으리라 믿을게요.”
“… 대, 대체 무슨 말을 하시려는 겁니까? 영화 선진국에선 영화 도중에 광고가 나오는 일이 없다?”
“그렇죠. 마지막 장면은 광고가 아니에요. 영화의 일부고, 황제는 정말 살아난 거죠. 부활한 황제가 뭔가 수작을 부리면서….”
“수작을 부리면서?”
“2편을 예고한 게 아닐까요?”
아리야. 나 머리 띵해졌어.
“2, 2편이라니 진짜 말이 되는 소리를! 분명히 황제와 차진철이 함께 39,800원이라고 가격까지 외쳤는데!”
“부활하다가 황제 뇌가 녹았나 보지! 차진철은 조종당했을 테고! 그리고 뭐?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영화 결말에 탈모 광고 처넣는 건 말이 되냐?”
“…”
“내 말 틀렸어? 광고 같은 건 없었고 황제는 부활했다고! 살아나서 후일을 도모하며 2편을 암시한 장면이 나왔을 뿐이야!”
상황이 이쯤 됐을 때, 역시 에라 모르겠다는 분위기로 튀어나온 누나가 안내인의 몸을 붙들고 흔들기 시작했다.
“야! 솔직히 양심 있으면 말해! 마지막 이상한 장면, 너희가 넣었지? 뭐 실수한 것 아니야? 윙 부츠 재료 줘야 하는 상황인데 진철이가 변신하니까 별수 없이 손 쓴 거잖아!”
“…”
“이상한 짓 해서 상인이 결말 병신같다고 탈락시키고 도망갔잖아! 심사위원이 결말을 망쳐놓고, 결말이 망했으니까 탈락? 아니 진짜 이게 말이 되냐??”
호텔이 원래 말이 안 되는 장소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터무니없긴 해.
결국, 안내인이 뜻을 꺾었다.
“휴우우…. 피곤하군요. 늙을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마, 너희 때문에 내가 늙었어. 난 이제 정신적으로 70대다.”
“70대면 아직 한창 어릴 나이군요.”
“…”
“좋습니다. 이번엔 ‘우리’ 책임도 있으니 -”
멀리서 기념품 소녀가 외쳤다.
“지랄! ‘우리’ 책임이 아니고 ‘니’ 책임!”
안내인 이 새끼가 범인이었어?
“… 이번엔 ‘제’ 책임이 있으니 봐 드리겠습니다. 합격 처리해드리죠. 하지만 명심하세요. 특히 아리 양. 어제부터 궤변이 지나치신데, 이런 장난질은 이번이 끝이고 -”
아리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제발 내가 부탁할게. 너네야말로 이상한 짓 좀 하지 마.”
“이런 장난질은 이번이 끝임을 알아두시기를 바랍니다. 또 오시면 말씀드리겠지만, ‘공포영화’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 장담하죠.”
약간 화가 난듯한 안내인의 불길한 경고와 함께 두 번째 영화도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