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95)
294화 – 윙부츠 재료의 비밀과 마지막 영화를 위한 회의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3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혼란 속에서 어떻게든 두 번째 편까지 끝낸 후, 비로소 의사 선생님과 진철 형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어딘가 자존심 상한 듯하면서도 구해줘서 고맙다는 의사 선생님과 달리 형의 반응은 ‘허무함’ 그 자체였다.
“와…. 진짜 뭐냐? 정말 내 인생에서 이보다 빛나는 순간은 없다 싶을 정도로 몰입했는데….”
형이 영화에 엄청나게 몰입했다는 사실은 보던 우리도 느꼈다. 그렇게 몰입하며 인생의 빛나는 순간이라 여겼는데, 결말에 갑자기 발모제 엔딩을 뿌렸으니 무슨 생각이 들까?
할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형을 위로한 후, 1층에 가서 쉬기로 했다.
“형! 그러고 보니 영화 도중에 변신은 뭐였어요? 갑자기 무슨 검은 표범처럼 변하시던데. 제국의 시조가 내린 축복?”
진철 형은 대체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날 돌아보았다.
“뭔 소리야? 무슨 변신?”
모두의 발걸음이 멈췄다.
*
기이한 일이다.
형은 자신이 ‘변신’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떠올리지 못했고 쿠르타의 몸 위에서 자기 피부가 시꺼먼 비늘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본인이 더 놀랐다.
“아니, 마지막에 발모제 광고가 나온 게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고? 내 몸이 변신하면서 머리카락이 없어지니까 머리카락을 만들어야 해서?”
누나가 긍정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하 씨이발! 그따위 이유로 결말을 망쳐? 아니, 지나간 일은 그렇다 치고 왜 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까?”
“영화를 보던 우리도 중간에 장면이 편집되었다 느끼긴 했는데, 너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일 줄은 몰랐네.”
이런 상황에서 쓸만한 능력은 하나뿐이다.
[조언 : 3 -> 2]‘차진철이 변신에 관련한 기억을 잃은 이유가 뭐지?’
[시야가 좁은 자의 쓸데없는 짓에 불과하다. 신경 쓸 필요 없다.]“이 답변은 또 뭐야?”
주변의 시선이 몰려들길래 내용 그대로를 전했다. 잠시 모두가 갸우뚱하던 중, 아리가 경쾌한 반응을 보였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
“신경 쓸 필요 없다잖아? 후원자가 보기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란 의미지.”
*
식사 중, 아리가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내 말 들어봐. 저주의 방 내에서 우리 몸에 생긴 변화는 밖으로 나오면 다 초기화돼. 진철이가 겪은 변화 역시 영화에서 나오니까 당연하다는 듯 사라졌지.”
“미션의 방도 그런 면에선 저주의 방과 비슷한가 보네.”
“어차피 밖에 나오면 머리카락이 다시 생길 텐데 왜 억지스럽게 발모제 광고를 넣었을까?”
… 그렇네?
듣고 보니 아리 말이 설득력 있다. 쿠르타를 처치한 시점에서 ‘벽력을 견디는 투사의 털’을 얻을 자격이 생겼다고 치자.
형의 몸에 비늘이 생기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사라진 게 문제라면 그냥 밖에 나온 후에 주면 그만이다. 굳이 영화 재생 시간 동안 발모제 광고를 집어넣는 억지를 쓸 이유가 없다.
“간단해. 영화가 진행되는 도중에 주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지. 그러면 그런 원칙이 생긴 이유는 뭘까?”
윙 부츠의 보상을 영화 내에서 줘야 하는 원칙이 있다면 의문은 해결되지만 다음 의문이 생긴다. 애초에 그런 요상한 원칙은 왜 있는가?
여기까지 듣던 은솔 누나가 갑자기 역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 나, 방금 끔찍한 생각을 떠올렸어.”
아리가 즉시 답했다.
“끔찍한 생각이라면 그게 맞을 거야. 나도 같은 생각 중이거든.”
할아버지가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 둘만 알지 말고 나한테도 좀 말해봐라.”
“할아버님, 윙 부츠의 재료…. 어쩌면 전부 ‘우리의 신체’가 아닐까요?”
순식간에 주변에 침묵이 감돌았다. 누나는 우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벽력의 힘조차 버텨내는 투사의 털의 정체는 쿠르타에게 번개 공격받으며 버텨낸 진철이의 머리카락이었죠.”
송이가 입을 반쯤 벌린 채 중얼거렸다.
“태풍을 뚫고 비상하는 새의 날개깃은 페로의 깃털이에요?”
나는 크게 당황해서 입을 열었다.
“아니, 머리카락하고 깃털은 뽑아도 별일 없으니 그렇다 치는데 안구는 뭡니까? 눈알을 뽑으라고요?”
누나가 점점 더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아리가 깨달은 그 원칙이 있는 거야. 보상은 영화 내에서, 정확히는 ‘탈출만 하면 부상이 사라지는 장소에서’ 주어져야 하는 거지. 영화 내부나 저주의 방 내부에서 눈알을 뽑아야 해. 그러면 밖에 나가는 즉시 회복할 테니까.”
이해했다. 보상이 방 바깥에서 주어진다면 깃털이나 머리카락은 몰라도 눈알은 답이 없다. 물론 우리에겐 방 바깥에서 입은 부상을 치료하는 수단도 있다. 105호와 의사 선생님이다.
하지만 무슨 손가락 잘라내는 것도 아니고 눈알이다. 105호나 의사 선생님만 믿고 안구를 적출한다는 건 위험해도 너무 위험하다.
… 왠지, ‘누구의 눈’을 뽑아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우리 중 저런 보상에 언급될 만큼 ‘특별한 눈’의 소유자는 한 명뿐이니까. 불길한 예감 속에서 고개를 푹 숙인 누나를 바라보며 다들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중, 유일하게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시험해보자꾸나!”
“할아버님?”
“다짜고짜 눈알을 뽑을 수야 없는 것 아니냐. 게다가 은솔이 네 가설이 맞다 쳐도 아무 때나 뽑는 게 아니라 ‘정점에서 만물을 관조하며’ 뽑아야 한다는 건데, 조건 자체가 복잡하구나.”
“그거야….”
“그러니 가설이 맞는지 실험해봐야지. 저거 저거! 저 건방진 앵무새! 태풍에 던져!”
— 삐이익!
영화 상영시간 내내 꾸벅꾸벅 졸던 앵무새가 화들짝 놀라서 고함질렀다. 할아버지는 그 어떤 때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태풍 비슷한 것 보이자마자 바로 던질 테니 다들 걱정 말거라. 페로 저놈이 그동안 뽑은 내 머리카락 숫자만큼만 뽑으면 되겠지!”
“하, 할아버지! 그건 엄청난 동물 학대에요!”
“송이야, 저놈이 그동안 내 머리카락을 학대한 건 잊었니?”
송이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
저녁 무렵, 모두와 내일도 영화에 들어갈지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안내인이 대놓고 공포영화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 경고까지 했기 때문이다.
은솔 누나가 의견을 냈다.
“안내인이 제법 협박하듯이 말하긴 했는데…. 사실 저주의 방에 가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야. 게다가 우리, 남은 사람 엄청 많잖아?”
즉시 대답했다.
“그렇죠. 저랑 아리, 승엽이, 누나, 할아버지까지 다섯 사람이나 남았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호텔 시네마’는 조금 쉬운 편 아닌가? 난 그렇게 느꼈어. 첫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영화 둘 다 두 번의 시도만으로 깼으니까.”
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호텔 시네마는 좀 쉬운 편이라 느끼는 중이야. 그 이유도 알 것 같아.”
“이유?”
아리가 의사 선생님 쪽을 살짝 살핀 후 입을 열었다.
“우린 9명 전원이 멀쩡히 살아있는 상태니까.”
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그렇군요. 그게 정말 크긴 합니다. 예전 파티처럼 1층에서 두 명 정도 죽고, 2층 와서 또 싸우다가 두 명 정도 죽어서 4~5명이 시네마에 들어갔다고 생각해보시죠. 이미 남은 기회가 1번입니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 면이 있네요.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솔로 플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면에선 또 팀플레이군요. 지금까지 관계가 괜찮았다면 기회가 많아져서 쉬워지는 건가?”
엘레나가 다른 이야기도 꺼냈다.
“심사위원을 설득할 수 있다는 점도 커요. 사실, 두 번 다 원래 실패였잖아요? 그걸 말발로 우겨서 통과한 셈이지. 기념품 아가씨는 의외로 말이 잘 통하고 안내인도 대놓고 억지는 쓰지 못하는 느낌이네요.”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 면에선 상인 그놈이 제일 개새끼더라. 그놈은 그냥 설득할 수 없다고 보면 된다.”
“뭐, 나머지 두 사람만 합격을 줘도 통과니까요.”
모두의 의견이 호텔 시네마가 생각보다 쉽다, 내일도 들어가자 쪽으로 모여들었다. 조언이 남은 김에 한 번 물어봤다. 물론, 영화의 내용을 물어보진 않았다. 그런 질문에는 답하지 않을 테니까.
[조언 : 2 -> 1]‘마지막 영화에 대한 주의사항은? 내용을 묻는 게 아니다.’
[왜 공포영화가 어렵다는 것인지 안내인에게 상세히 물어봐라.]“어?”
“올빼미가 뭐래?”
“왜 공포영화가 어려운 건지 자세히 물어보라는데?”
“흐음…. 무슨 의미지?”
이리저리 생각해봤지만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물어보라고 했으니 내일 물어봅시다. 그 수밖에 없네요.”
우리끼리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므로 내일 물어보기로 했다. 회의의 마지막 주제는 ‘누구부터 들어갈래?’였다. 이번엔 할아버지가 우울한 태도를 보였다.
“내가 먼저 들어가마.”
“…”
“이제 슬슬 알잖냐. 깰만한 사람은 뒷순위로 가는 게 낫다. 어차피 깨긴 힘든 사람이 먼저 가서 변수를 좀 알아내고 죽어야지.”
은솔 누나가 끼어들었다.
“가인이나 아리야 말할 것도 없고, 승엽이도 ‘행운’은 딱 봐도 공포영화에서 유용할 능력이니 뒷순위죠. 그러니 저랑 할아버님이 먼저 들어가는 게 맞긴 하는데…. 그냥 제가 먼저 가는 게 어때요?”
“넌 유산이 있잖으냐. 나보단 나으니 뒤에 들어가야지.”
“그 유산이 꼭 도움이 된다는 보장은 있어요?”
“공포영화인데? 정신 공격을 무력화하는 유산이 도움이 안될 리가 있냐? 자학이 심하구나.”
“그, 그런가요?”
내일 첫 번째로 들어가는 사람은 할아버지로 결정되었다. 이것으로 오늘의 회의는 끝났다.
*
늦은 시각, 2층 설원을 바라보다 보니 예전보단 훨씬 덜하지만, 시야가 뿌옇게 흐려질 정도의 눈보라가 보이자 묘한 생각이 들었다. 눈보라도 일종의 태풍 아닐까?
마침, 조언 횟수도 하나 남아있었다.
[조언 : 1 -> 0]‘윙부츠 재료 말인데, 그냥 페로를 저기다 던지고 깃털 뽑으면 안 될까?’
어차피 깃털은 뽑아도 되잖아? 굳이 저주의 방에서 시련을 겪는 와중에 앵무새 깃털을 뽑는 건 귀찮지 않나?
[… 한번 해봐라.]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
다음 날, 우리는 마지막 영화를 해결하기 위해 204호에 다시 들어왔다. 올빼미의 조언대로 왜 공포영화가 어렵다는 것인지 묻자 안내인은 순순히 대답해줬다.
“뭐어? 이제 와서 갑자기?”
“하하! 은솔 양, 왜 그러십니까? 따지고 보면 그리 특이한 변화도 아니에요. 오히려 그동안이 특혜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
“특혜라니!”
“특혜죠. 앞의 두 편에서 여러분은 저주의 방에선 존재하지 않았던 ‘과도한 혜택’을 받으셨죠. 이제 그 혜택을 거둬갈 뿐입니다.”
“…”
“너무 두려워하실 것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에겐 이게 더 익숙한 조건 아닙니까? 저주의 방은 항상 이런 식이었으니까요.”
마지막 영화, ‘무서운 이야기’는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그동안 여러분은 영화의 상영시간을 기준으로 현재 어느 지점까지 왔는지 가늠하실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장면처럼 ‘보이는’ 장면이 나오면 숨겨진 위기가 있으리라 예측하실 수 있었죠. 이제 이런 혜택은 사라집니다.”
“…”
“바깥의 관객들은 물론 편집이 끝난 영화를 봅니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가신 분은 실시간입니다. 5시간, 10시간이 흐를 수도 있고, 일주일이 흐를지도 몰라요. 장면의 생략 따위는 없으므로 현재 위기 상황인지 아닌지 쉽게 알 방법도 없습니다.”
“…”
“그러나 여기는 미션의 방입니다. 여러분에겐 여전히 후퇴라는 선택지가 있지요. 물러서겠습니까? 다른 방으로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냥 들어가마. 바꾸긴 뭘 바꾼단 말이냐?”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김묵성 참가자, 들어가시지요.”
약속대로 할아버지가 굳은 표정으로 나아갔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