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00)
299화 – 204호, 미션의 방 – ‘호텔 시네마’ (21)
– 이은솔
얼굴을 홍시처럼 붉게 물들인 채 다가오는 야구부 소년, 김지호를 보며 생각했다.
이 고백, 받아 말아?
무작정 거절하기엔 좀 무섭다. 아침의 그 멍청이와 저 대단한 체격의 야구부 소년은 위험성이 많이 달라. 저런 애가 날 죽이려 달려들면 주변 학생들이 막을 수 있을까?
…
결정을 내렸다.
“지호 선배님….”
“하, 한유리! 두, 두 번이나 와서 미안해. 하지만…. 내, 내 마음속에서 점점 커지는 널 도저히 놓을 수 없었어. 널 새각, 생각하면서 연습에도 집중하하르지 모, 모타니까….”
와, 이 애 진짜 엄청난데?
한국말 맞나 싶게 발음이 새어 나오는 지호의 모습을 보니까 숨이 턱 막혔다. 이 소년이 한유리를 얼마나 미친 듯이 좋아하는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잖아? 유리야, 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니?
“코치님이 한 번 더 가보라고…. 아, 아니! 코치님 말 듣고 온 거 아니야! 내, 내가!”
“천천히. 천천히 말해봐요. 들어드릴 테니까.”
나도 모르게 답답해서 나온 말인데, 그 말을 들은 소년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므, 므, 미안해…. 나, 나랑 사귀어줄, 줄, 줄 수 있어?”
최대한 친절하게 미소 지으며 소년의 손을 잡고 지그시 눈을 마주쳤다.
“그러면, 오늘부터 1일 차인가요?”
“으, 으아아아앗!”
김지호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고백하러 왔으면서 고백받아주니까 놀라는 건 뭐야?
왜 고백받았을까?
무작정 거절하기엔 너무 신체 능력이 강한 사람이라 부담스럽다는 점도 분명 한 가지 이유다. 또, 스토리 돌아가는 꼬라지나 ‘마성의 소녀’라는 제목을 보니까 미쳐 날뛰는 ‘고백 킬러’들이 계속 덤벼들 것 같아.
그러니까 고백을 거절할 정당한 명분 겸 보디가드가 필요하지 않을까?
역시나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한 것 같다. 야구부 소년은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날 덥석 껴안으려다가 갑자기 혼자 덜덜 떠는 등, 말 그대로 추태를 보인 끝에 수업 끝나고 보자며 떠나갔다.
몸을 돌려 교실로 돌아왔을 때, 교실의 분위기가 어딘가 달라졌음을 인지했다.
주변의 여자아이들이 날 눈빛으로 레이저라도 쏠 것처럼 노려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뭔가 싶었을 때, 톡 쏘는 말이 들려왔다.
“축하해! 유리 이제 남친 생겼네?”
“… 고마워.”
“오 눌 뷔 터 1일 차 잉 가 용?”
“…”
“이거 너무 귀엽더라! 그지?”
“맞아! 나 유리가 저렇게 코맹맹이 소리 내는 거 처음 봐!”
얘들아. 이건 무슨 초등학생 같은 기 싸움이니? 언니가 설마 이런 허접한 말싸움도 못 할 것 같아? 얘 이름이 김은혜였나?
“그렇게 들렸어? 은혜 너 귀 많이 막혔나 보다. 남친에게 귀 한번 봐달라 해봐! 아, 너 남친 없나?”
눈앞의 소녀는 눈을 치켜뜬 채 나를 노려봤다. 어쩔? 노려보면 내가 죽니? 니가 무슨 메두사야?
그때, 건너편의 다른 소녀가 공격을 가해왔다.
“저번 달에 지호 선배가 고백했을 때는 찼잖아?”
야구부 소년이 왔을 때 ‘또 왔다’라고 하던 기억이 났다. 이번이 첫 고백이 아니구나.
“그땐 그랬지.”
“이번엔 다르네. 왜, 지호 선배가 프로야구 지명받아서?”
“…”
“와~! 유리 대단해! 그래~! 유리는 엄~청 가난하지? 부자 남편 있어야겠다.”
그러니까 뭐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 돈 많이 벌 것 같아서 사귄다 이런 소리 하는 건가? 진짜 미안한데 그게 뭐가 잘못인지 이해하는 데 좀 오래 걸렸어.
미안. 언니가 사실 세파에 좀 찌들었거든. 나이 들면 너희도 알게 될 텐데, 원래 성인의 연애와 결혼은 직업과 재산을 당연히 따져야 한단다.
심지어 지금 알긴 했지만, 유리네 집은 가난해? 그러면 당연히 남편이든 남친이든 잘 만나야지.
“그냥 다들 솔직하게 말해봐! 너희가 -”
— 탁!
미처 반응하기 전, 누군가 내 어깨를 강하게 붙들었다. 당황해서 고개를 돌리자 아침부터 날 따라다니던 새롬이가 있었다. 얼음처럼 차갑게 굳은 소녀의 얼굴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설마 얘도 그 야구부 선배 좋아 –
“다 아가리 여물어!”
지금, 이 소녀는 아침부터 본 그 아이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단순히 입에서 욕이 나왔다는 문제가 아니다.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몇몇 아이들은 아예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 이거, 자연스러운 반응 맞아?
새롬이는 주변 사람들을 말 한마디로 무너트린 후, 내 팔을 강하게 잡고 복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힘과 기세가 너무 강렬해서 도저히 제지할 수가 없었다.
“대, 대체 뭐야? 왜 갑자기 -”
귓가로 훅 다가온 소녀의 입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금, 실수하셨어요.”
… 갑자기 존댓말?
“대체 무슨 말이야?”
“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시네요. 아무리 학교라지만 너무 많이 억누르셨잖아요? 어째 아침부터 행동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내가 뭘 했다고? 억눌러? 아침부터 이상했다?
“당장 집에 가세요. 가다 보면 제 말을 이해하실 테니까. 그리고 어떻게 수습할지 생각해보세요.”
“…”
“당장! 조퇴 핑계는 제가 댈 테니까.”
나 진짜 모르겠어. 이거 갑자기 무슨 전개야?
*
– 극장
“뭐야? 갑자기 뭐지?”
가인은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동료들도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체 뭘 실수했다는 걸까요? 갑자기 집에 가라는 건 또 뭐죠?”
엘레나의 말에 송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아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이거, 왠지 알 것 같은데.”
“뭐?”
“설마 이런 쪽 전개였어? 어째 사람을 매혹하는 정도가 비정상적이다 싶긴 했는데….”
*
– 이은솔
혼란에 빠진 채 교실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마침 조금 전에 여자애들과 싸웠기 때문에 핑계도 있었다.
근데, 내 집 주소가 어디지?
헛웃음을 지으며 그나마 뭔가 물어볼 만한 새롬이에게 묻자 또 ‘앞으로는 적당히 억제하세요’라는 속삭임과 함께 주소를 불러줬다. 스마트폰의 지도 어플로 찾아본 집 주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런 데 살아?”
교실 밖으로 나와 복도를 걸어서 학교 건물 밖으로 나오자 서서히 ‘깨달음’이 오기 시작했다.
…
각성이란 곧 탈각(脫殼)이라.
자신에게 덧씌웠던 껍질에 균열이 생기며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이 머리에 스며든다. 범속한 이는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사악한 숨결이 폐부를 가득히 채웠다.
진짜 이건 너무하잖아! 이런 스토리였어?
“으아…. 할아버님! 조금만 더 버티셨어야죠!”
할아버님이 이것까진 알아내셨어야 했는데! 너무 순식간에 당하시는 바람에 두 번째 들어온 내가 알아채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 어떻게 진행해야 해?
“유리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에 빠진 채 운동장을 걸어가던 중, 날 발견한 ‘1일 차 남친’ 김지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며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다가 충격을 받고 말았다. 건장한 체격의 야구부 소년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인간에게 느낄 수 있으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충동이 영혼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이래서구나! 이래서 ‘한유리’가 학교 내에선 항상 껍질을 뒤집어썼구나! 이 혐오스러운 충동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유리야! 가방 뭐야?”
“… 오늘은 머리가 아파서 조퇴해요.”
“뭐, 뭐! 이런! 수업 끝나고 말하려고 했는데!”
“무슨 말이죠?”
“오늘은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
“…”
“드, 들었어. 너, 너희 집이 좀 위험한 장소에 있다고 하더라고. 보통은 새롬이랑 같이 간다던데…. 오늘은 새롬이도 없잖아!”
“…”
“오해하지 마! 너에 대해 막 캐물었다는 소리가 아니라 그, 그냥 우연히….”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는 말이죠?”
“응!”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극정성이시네요.”
방금 말은 약간 톡 쏘는 것처럼 느낀 걸까? 순간 당황하던 소년은 내 의도를 제멋대로 추측했는지 엉뚱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오, 오해하지 말아줘. 이,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정말 아니야. 진짜 걱정스러워서 하는 말이야. 그러니까 -”
“알았어요. 기다릴 테니 코치님에게 말하고 오세요.”
새삼스레 이 야구부 소년이 날 바래다준다는 핑계로 엉큼한 짓을 하리라는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런 사소한 문제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그보다 내 ‘충동’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고 싶었을 따름이다.
김지호는 코치에게 무어라 떠들더니 곧 방긋 웃으며 내게 돌아왔다. 대체 뭐 하는 코치길래 유망주가 여친 집 배웅한답시고 훈련 빼먹는 걸 허락하나 싶긴 한데, 뭐 그러려니 하자.
김지호가 돌아올 때까지 운동장을 걸어 다니는 ‘어린 학생들’을 볼 때마다 향기로운 냄새를 맡았다.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심장이 내가 얼마나 격렬한 갈증을 느끼는지 알려줬다.
…
갈증은, 내 손을 붙잡고 헤실거리는 소년을 보자 몇 배로 심해졌다.
…
20분쯤 흘렀을까? 학교를 벗어나 골목을 지나칠 때쯤, 결국 멈추어 섰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호 선배.”
“응?”
“이만 돌아가세요.”
“뭐? 아직 집이 보이지 않는데? 거의 다 왔으니까 마저 -”
“돌아가.”
“유, 유리야?”
김지호의 팔을 강하게 붙잡고 멈춰 세운 후,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처음엔 부끄러운 듯한 반응을 보이던 소년은 곧, 어딘가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돌 아 가.”
“… 알았어.”
*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아름다운 소녀가 지나간 골목, 몽롱한 표정으로 담벼락에 기대었던 소년은 곧 정신을 차렸다. 왜 천사 같은 여자친구가 돌아가라고 한 걸까?
아마도 가난한 집을 보이는 게 부끄러웠을지도 모르지. 소년은 그렇게 단정한 후,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돌아섰다.
문득, 소년은 유리가 꽉 붙들었던 자기 팔에 시퍼런 피멍이 여럿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리는 보기보다 힘이 엄청나게 세네?”
*
– 이은솔
정신없이 집을 향해 달렸다. 한유리처럼 이쁜 애가 살기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허름한 골목을 연거푸 지나치자 마침내 골목 끝에 있는 허름한 폐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흐, 흐흣! 안녕!”
“…”
집의 문 앞에는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배불뚝이 남자가 있었다.
“아, 안녕! 너, 너! 유리라고 하지? 아, 아저씨가 가끔 봤어. 도, 도, 돈 필요하니?”
… 학교에서의 나였다면 지금 꽤 위기라고 느꼈겠구나. 지호 데리고 여기까지 올 걸 그랬나? 건장한 체격의 지호가 옆에 있었다면 부랑자 따위는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도망갔겠지?
기껏해야 사회의 가장 밑바닥, 인생에서 패배를 거듭한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변태 부랑자에 불과하지만 성인 남성이다. 여고생으로선 대단한 위험이고 초자연적인 힘없이는 벗어나기 쉽지 않아.
그러니까 썼다. 초자연적인 힘.
— 탈칵!
머리의 브로치가 딸깍이는 순간, 푸른 나비가 허공을 부유하며 부랑자에게 날아갔다. 남자는 이게 대체 뭔가 하다가 채 5초도 지나지 않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브로치를 쓴 것에 관한 걱정이나 불안감은 없었다. 뒤늦게 이해한 ‘마성의 소녀’는 능력을 써도 상관없는 플롯이니까. 이미 최면술이나 다름없는 힘을 연거푸 쓰기도 했고.
— 띠리링!
“강동경찰서 -”
“여기, 이상한 아저씨가 바닥에 쓰러져 있어요.”
이놈이 여기서 죽기라도 하면 귀찮다. 대충 신고한 후, 허름한 폐가에 들어섰다. 정말이지 여고생이 이런 데서 산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장소다.
물론….
일부러 골랐겠지. 이런 장소여야 ‘사냥감’을 처리하기 쉬울 테니까.
집 내부에 부모님이나 가족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내게 그 비슷한 존재가 있다면, 아직도 학교에 있는 새롬이뿐이니까.
그 대신, 심장을 울렁거리게 하는 진득한 피 냄새와 역겨운 내장 냄새가 속을 뒤집었다.
… 거짓말이다.
속이 뒤집히긴커녕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학교에서 나와 껍질을 벗은 순간부터 느꼈던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멍하니 돌아서서 거울을 본다.
어둠 속에서 떠오른 피처럼 두 개의 붉은 빛을 본다.
문득, 교복 치마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다리 사이로 삐져나온 야성의 흔적이 바닥을 살며시 스쳤다.
… 배가 고프다.
이 갈증과 식욕은 사람의 음식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다.
나는, 내가 ‘쫓기는 자’가 아니라 ‘쫓는 자’임을 알았다.
「마성의 소녀」
「마성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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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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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구미호전」